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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이자, 작가이자, 두 아이의 아빠이자, 가장인, 대리기사의 사소한 이야기다. 그러나 한 인간의 이야기다. 그러하기에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부디 이 이야기를 통해서 많은 분들이 한 움큼의 희망을 얻어 가시길.[기자말]
제네시스 G90. 내가 첫 대리운전을 한 차종이다. 그날은 딱히 인과 관계를 유추할 수 없는 두통으로 하루 종일 앓던 날이었다. 몸은 제발 꼭 오늘이어야 하냐고 사정사정을 하며 바짓가랑이를 붙잡는 것 같았다. 

그렇기에 오늘 시작해야만 했다. 가장 악조건일 때 시작을 하고 싶었다. 그래야지 그 후로는 모든 것이 그보다는 나은 나날들로 여겨질 테니. 

대략 1.5킬로 거리에 있는 방이시장에서 남양주 호평으로 가는 콜을 잡았다. 손님이 전화를 받으면 뭐라고 말해야 하는지 배운 적이 있을 리가 없다. 떨리는 목소리로 그저 대리 부르셨죠? 하고 빨리 가겠습니다,라고만 말하고 주마가편하듯 킥보드를 밟았다. 

모든 게 처음이라 어쩔 줄 몰라하는 나와 달리, 모든 게 익숙한 것인 양 아무런 긴장감도 넘치지 않는 분위기 속으로 도착했다. 항상 끝선을 맞게 주차했음에도 한참을 앞으로 툭 튀어나와 있었던 그 차, 그래서인지 어떨지 속내가 더 궁금했던, 제네시스 G90.
 
제네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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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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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동 소리보다 더 크게 심장이 부르릉 거렸다. 손님은 바로 옆자리에 탔다. 보통 뒷자리에 타서 가지 않나 생각했던 것을 가볍게 오산으로 만들었다. 제법 아는 사람이 옆자리에 타도 운전을 할 때 살짝 신경이 쓰이는데 이건 꽤 신경 쓰이는 일이 되어버렸다. 

출발하겠습니다를 외치고 액셀을 밟았다. 촘촘한 골목을 나가는 자체가 난이도 '상'이었다. 내 차라면 문제 될 것이 없었을 텐데, 남의 차이고, 또 고가의 차이다 보니 머릿속에 온갖 걱정들이 조작을 홀가분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무사히 큰길로 나왔을 때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정다운 대화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옆자리에 앉아서 핸드폰도 보지 않고 꼿꼿한 자세로 전방주시를 하고 가는 손님 덕분에 사이드미러를 확인하는 것조차 꽤 민망스럽게 느껴졌다. 

하긴 이건 상당히 괴이한 풍경이다. 어떻게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자기 고가의 차를, 운전대를, 집으로 가는 길을 맡길 수가 있을까. 그리고 그 사람과 이 비좁은 공간에 나란히 앉아서 간다는 것은 MBTI 극 I성향인 나에게는 매 순간 태어나서 처음 경험하는 공기들을 느끼게 해 주었다. 

다만, 행운이라 생각한 것은 나의 첫 손님은 꽤 친절하신 분이었다는 거다. 갈림길에서 다소 헷갈려할 때 직접 길을 알려주시기도 했고, 미세한 내 긴장을 읽으셨는지 맘 편하게 안전하게만 하시면 된다고까지 해주셨다. 처음인 날에 무척 고마운 일이었다. 

첫 대리 운전으로 번 돈... 돈의 무게가 꽤 생생했다

목적지에 무사 착륙했다. 3만 5천 원짜리 콜이었는데, 지갑에서 5만 원을 꺼내서 주셨다. 맙소사, 이거 오늘 내 첫 대리운전을 축하해 주시는 걸까? 나도 문득 오늘 제가 첫 대리운전을 한 날이고, 손님이 첫 손님이신데 돈은 받지 않겠습니다라고 해볼까 라는 마음이 1cm 정도 솟아올랐지만 금세 소멸 되었다. 

오만 원을 소중히 받고 '고맙습니다'라고 고개를 숙였다. 분위기가 엄했다. 손님이 뭘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아, 이거 다 가지라는 게 아니라 거슬러 달라는 거였구나. 살짝 멋쩍은 미소가 흘렀다. 손님 죄송한데 거스름돈이 없다고 하니 지갑에서 삼만 오천 원을 꺼내서 주셨다. 

첫 대리 운전으로 번 삼만 오천 원을 품에 고이 안쪽 주머니에 찔러 넣고 마침 바로 앞에 집으로 가는 버스가 있어서 올라탔다. 돈의 무게가 꽤 생생했다. 마치 수산시장에 회를 사러 갈 때마다 목격하는 그 펄떡펄떡 살아있음과 비슷했다. 

이렇게 일을 해야지 이 정도를 버는구나. 그게 바로 느껴지는 게 좋았다. 그 감각들이 선명할수록 내가 현재 돈을 받고 하는 일들에 무게감 역시 더해짐을 알 수 있었다. 이 정도를 받으니 그 정도 값을 해내는 것이 마땅하다는 그런 진중함이랄까. 

거기다 이 일은, 흔치 않게도 일을 한 즉시 바로바로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날 번 것을 고스란히 그날 정직하게 가져가는 일이다. 살다 보면 돈 때문에 사람이 어려워질 때는, 큰돈이 없어서 일 때도 있었지만 아주 적은 돈임에도 내 손에 없을 때 그러했다. 그럴때가 오히려 어려웠다.

그런 상태에 놓이는 일이 흔했던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 일을 꾸준히 하다 보면 마치 하루하루 한 줌의 희망을 차곡차곡 쌓이니 그런 일들을 만들 일은 적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작 삼만오천 원 가지고'?, 누군가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지만 당시의 내게는 나를 미소 짓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럼에도 처음은 처음이라, 대리 운전을 마치고 나니 야생동물이 가득한 밀림을 똥강아지 혼자 이리저리 발발 거리며 생존해 낸 것 같은 기분이었다. 긴장이 지나쳤는지 허리도 무릎도 아팠다.

그 때 번 돈 삼만오천 원이 아직도 고스란히 내 지갑에 놓여있다. 소중하게 간직하는 첫걸음의 기억이다.
 
첫 대리 운전을 하고 번 삼만오천원은 여전히 소중하게 간직돼 있다.
 첫 대리 운전을 하고 번 삼만오천원은 여전히 소중하게 간직돼 있다.
ⓒ 김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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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대리, #대리운전, #대리기사, #달려라김대리, #김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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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당연스럽게 '내'가 주체가 되어 글을 쓰지만, 어떤 순간에는 글이 '나'를 쓰는 것 같을 때가 있다. 마치 나도 '생명체'이지만, 글 역시 동족인 것 같아서, 꿈틀 거리며 살아있어 나를 통해서 이 세상에 나가고 싶다는 느낌적 느낌이 든다. 그렇게 쓰여지는 나를, 그렇게 써지는 글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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