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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한 장애인단체가 서울시내 한 사찰의 주지를 검찰에 고발했다. '지적장애인에게 승복을 입히고 승려 생활을 하게 하면서 30년이 넘도록 마당쓸기, 잔디깎기, 농사, 제설작업, 경내 공사 등 각종 노동에 동원한 것이 장애인의 노동을 착취한 것'이란 내용이었다. 이 사건은 소위 '사찰노예사건'으로 불리며 사회적으로 파장을 일으켰다. 고발장을 낸 장애인단체는 불교계의 각성과 함께 사찰이 소속된 종단 측에 유사 사례에 대한 전수조사를 요구하기도 했다.

사건은 재판에 넘겨졌다. 피고인 사찰 주지는 '해당 노동행위가 사찰에서 스님들이 행하는 수행의 일종인 울력이었다'고 주장하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법원의 판단은 이랬다. 2022년 6월 1심 법원은 사찰 주지에 징역 1년을, 2023년 2월 2심에서는 (피해자와 합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징역 8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일명 '사찰노예사건' 1심 판결이 선고된 후 장애인단체가 엄벌과 재발방지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 1심 판결선고 후 기자회견 일명 '사찰노예사건' 1심 판결이 선고된 후 장애인단체가 엄벌과 재발방지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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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스님이라고 하고 승려증도 안 주고 스님 역할을 하게 하면서 밤늦게까지 일만 시켰고, 돈도 안 줬다. 일을 못하면 욕을 하고 때리기도 했다. 스님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일이 힘들고 때리기도 하고, 절이 커서 눈 치우는 것이 춥고 힘들어서 2017. 12. 말경에 절을 나왔다." (원심 판결문에 기재된 피해자 증언)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 사건은 1심과 2심에서 실형이 선고되면서 종교의 이름으로 장애인을 착취한 이에게 철퇴를 가한 사건으로 마무리 되는 듯했다. 판결 선고 후 피고인이 취재를 요청하는 기자들을 피하고, 기자는 추격하는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1월 4일 선고된 대법원의 판결은 1·2심의 판결과 결이 달랐다. 대법원이 원심판결 중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을 파기해 원심법원으로 환송했던 것이다. 비록 피해자 명의 예금을 인출하려고 문서를 위조한 점은 유죄를 유지하면서, 파기 환송심에서 전부 무죄가 선고될 것으로 보이진 않지만 불교계는 '사찰에 대한 부당한 처분을 바로잡고 장애인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불교계의 자비행을 제대로 평가한 사례'라고 반응했다. 언론도 판결문의 내용을 상세히 점검해 사실관계를 확인하기보다는 파기환송 사실 자체에만 초점을 맞춘 보도를 내 사찰 측이 누명에서 벗어났다고 전했다.
  
'사찰노예 사건' 대법원 판결 이유

대법원 판결의 주요 논리는 다음과 같았다.

①함께 거주하였던 스님 중 비장애인에게도 급여를 지급하지 않았으므로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행위 자체를 인정할 수 없고, ②승적에 올려주지 않았던 점은 별다른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없으며, ③30여년 동안 부담한 의식주·의료비·보험료·여행비·성지순례비·피해자 명의로 매수한 부동산 가액 등을 더하면 금전적 착취가 존재하는지도 의문이 든다는 것이었다.
 
"피고인이 피해자를 사찰 내 종교적 사역에 비장애인 스님과 같은 지위에서 참여하도록 한 것은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참여와 평등권 실현'이라는 장애인차별금지법에 오히려 부합하는 정황이라고 볼 여지가 있다."

"12회의 폭행은 장애인·비장애인 여부와 무관하게 일상생활에서 발생할 수 있는 경미한 수준" - (대법원 판결문의 일부)

더욱이 대법원은 피고인이 피해자를 사찰 내 종교적 사역에 비장애인 스님과 같은 지위에서 참여하도록 한 것이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참여와 평등권 실현'이라는 장애인차별금지법에 오히려 부합하는 정황이라고 볼 여지가 있다"고 봤다. 그리고 다른 재판에서 유죄로 인정돼 2019년 11월 벌금형이 선고된 총 12회의 폭행은 "장애인·비장애인 여부와 무관하게 일상생활에서 발생할 수 있는 경미한 수준"이라고 했다.

납득할 수 없는 대법원의 논리
 
일명 '사찰노예사건'의 대법원 판결선고 후 장애인단체가 판결을 규탄하는 기자회견
▲ 대법원 판결 비판 기자회견 일명 '사찰노예사건'의 대법원 판결선고 후 장애인단체가 판결을 규탄하는 기자회견
ⓒ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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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고발인 장애인단체 측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대법원의 판결을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첫째, 사찰 내 비장애인 승려에게도 보수를 주지 않은 것은 그 자체가 문제이지 피해자에 대한 노동착취를 정당화 할 수 있는 근거는 아니다. 이는 차별행위에 대한 형식 논리적인 해석이며 비교 대상을 떠나 장애인을 착취하는 행위 자체를 장애인에 대한 괴롭힘으로 인정하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의 문언을 넘어선 해석이다. 목사, 승려 등 종교인에게도 그 근로관계의 실질에 따라 근로자성을 인정해 온 것은 이미 대법원의 확립된 판례이니 경우에 따라 비장애인 승려에 대해서도 위법행위가 될 수 있다. 사찰 측이 또 다른 범법행위를 자인한 셈이라는 것이다.

둘째, 대법원 판결에는 피해자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피해자는 추위와 고된 노동, 폭언과 폭행이 고통스러웠다고 분명히 진술했고, 스님이 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고 했지만 대법원 판결문 속에서 피해자는 철저히 보이지 않는 존재였다. 인격과 동등한 인권을 가진 한 사람은 없었으며 단지 동정과 선행의 막연한 대상자로, 아니, 인격이 없는 사물로 존재했다. 그의 30여 년간의 삶은 철저히 지워진 채 30여 년의 세월은 '장애인을 돌봐준 선행'으로 탈바꿈됐다. 그가 무엇을 겪었으며 무엇을 원하고 느끼고 생각했는지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셋째, '장애'가 고려되지 않았다. 지적장애인인 피해자는 기본적인 의사소통은 가능하지만 복잡한 사고나 계산, 의사결정에는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다. 대법원은 피해자가 피고인 모르게 피해자 명의의 부동산을 제3자와 상의해 매각했고, 그 대금을 제3자가 피해자로부터 차용해 소비했다고 했다. 또한 피해자가 보험을 해지해 환급금을 직접 수령했다고도 했다. 타인에게 빌려주는 형식으로 결국 장애인의 손에 들어오지도 않은 부동산 매매대금을 피해 금액에서 공제해 버리면서 '금전적 착취가 존재하는지도 의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부동산매매, 매매대금 수령, 차용, 보험 해지, 환급금 수령 등의 법률행위들을 지적장애가 있는 피해자가 본인의 의사로 스스로 처리하기란 극히 어려운 일이다. 피고인이 피해자 명의로 부동산을 구입한 것이 과연 피고인의 진술대로 '피해자의 노후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재산을 은닉하기 위해 피해자 명의를 도용한 것인지는 따져보지 않았다.

문제가 불거지자 제3자에게 명의를 이전하고 대여금 형식으로 매매대금을 지급하지 않거나 되돌려 받았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이 모든 일들에 피고인은 관여하지 않았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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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은 오히려 피고인이 피해자를 사찰에서 승려 생활을 시킨 것이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참여와 평등권 실현'에 부합 하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했다. 이 점이 장애인의 인권에 미칠 악영향이 가장 염려스러운 지점이다.

일단 사찰 생활은 '사회참여'와는 거리가 멀지 않은가? 출가행위 자체가 속세를 떠나는 것이니 이는 자발적인 사회적 격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기에 누군가에겐 일생을 건 진지한 결단과 각오가 필요한 일이 아닌가? 만일 본인의 진지한 의사에 의하지 않고 타의에 의해 혹은 장애로 인한 의사결정의 어려움을 이용당하거나 어려운 상황에 떠밀려 승복을 입고 원치 않는 사찰 생활을 했다면 이는 극단적인 차별과 사회적 배제가 아니었을까? 30여년 세월동안 사찰에서 버틴것을 두고 과연 그가 자발적으로 승려 생활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 다른 삶을 선택할 기회를 박탈당한 30여년 이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여기서 나가고 싶으냐고 누가 물어보기나 했을까?

피해자가 장애인이 아니었더라도 이런 일을 겪어야 했을까?

이번 대법 판결이 나온 사건 외에 피해자가 고소해 이미 실형까지 선고(2019년 11월)된 12회의 폭행은 대법원의 판단대로 그저 일상생활에서 발생할 수 있는 경미한 수준 우발적·일시적인 부적절한 행위(12회가 일시적이었다고 할 수 있겠는가?)에 불과한가? 만일 장애인복지시설에서 문제의 사찰과 같이 일을 시키고 돈을 주지 않았다거나 크고 작은 폭행과 폭언을 반복했다면 어떤 처분이 내려졌겠는가? 이 모든 일들은 종교의 이름이면 정당화 될 수 있는 것인가? 무엇보다, 피해자에게 장애가 없었더라면 이 모든 일들을 겪어야 했을까?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김강원씨는 법무법인 디라이트 공익인권센터 부센터장입니다.


태그:#사찰노예, #장애인학대, #인권, #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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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서 장애인 인권 분야 활동을 10여년 했습니다. 지금은 법무법인 디엘지 공익인권센터로 옮겨 장애 분야 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국내외 인권의 사각지대를 발굴하고 조명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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