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비행기가 아니라 저어새가 훨훨 날 수 있는 수라 갯벌을 꿈꿉니다. 포클레인이 아니라 흰발농게가 마음껏 춤출 수 있는 수라 갯벌을 희망합니다. 가슴 뛰도록 아름답게 살아있는 소중한 생명들의 수라 갯벌을 토건 자본의 이윤과 미군의 전쟁활주로에 빼앗길 수 없습니다. 33년이라는 참혹한 생태학살과 착취의 시간에서 살아남은 만경수역의 마지막 갯벌, 기어코 다시 힘찬 바다로 되살릴 이름, 수라 갯벌에 함께 들어요!"
 
2024년 수라갯벌 첫 탐방
▲ 수라갯벌 들기 2024년 수라갯벌 첫 탐방
ⓒ 김웅헌

관련사진보기


3월 초 '새만금 신공항 백지화 공동행동'이라는 단체로부터 한 통의 문자를 받았다. 16일 토요일 오후 1시. 큰맘 먹고 처음으로, 주말부부 데이트 겸, 수라 갯벌로 향했다. 부랴부랴 장화도 빌렸다. 조촐한 인원 15명, 안면이 있는 사람도 있었고, 멀리서 온 낯선 이들도 있었다. 서로의 앎이 중요하지는 않았다.

군산에서 출발했다. 그곳은 세계에서 가장 길다는 '새만금 방조제'에 갇혀 있었다. 다시 '동서도로'와 '남북도로'라는 이름으로 나눴다. 이제 그나마 남은 갯벌조차 사라지고 있었다.

남북도로 초입에 멈춰서 시야를 넓혔다. 멀리에는 군산 산업단지와 미군기지, 군산공항이 한눈에 들어왔다. 제주로 가는 민항기가 이륙했다. 다음은 대한민국 공군기인지 미국 군용기인지 알 수 없는 시커먼 비행기가 반대 방향으로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군산 쪽 남북도로 초입에서 바라 본 신공항 부지, 미군기지
▲ 수라갯벌 군산 쪽 남북도로 초입에서 바라 본 신공항 부지, 미군기지
ⓒ 김웅헌

관련사진보기


시선 가까이에는 좀도요새가 무리 지어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녔다. 장관이었다. 성능 좋은 카메라가 없다는 사실이 아쉬웠다. 잠시 후 장화를 갈아신고, 갯벌로 향했다. 광활한 갯벌은 조금씩 사라지고, 연안 습지의 형태로 바뀌고 있었다.
 
갯벌이 사라지고 있다.
▲ 수라갯벌 갯벌이 사라지고 있다.
ⓒ 김웅헌

관련사진보기

   
여기저기 폐사된 작은 조개와 굴 껍데기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동할 때마다 쑥 빨려 들어간 갯벌 바닥에는 시커멓게 변한 진흙이 드러났다. 냄새가 좋지 않았다. 아마도 작은 생물들이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갯벌에서조차 작은 좀도요새는 부리로 먹이를 찾았다. 무리 지어 수없이 갯벌을 쪼아댄 작은 흔적들과 발자국은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없는 예술이었다.
 
바다물이 들어 오지 않아서 폐사된 굴
▲ 수라갯벌 바다물이 들어 오지 않아서 폐사된 굴
ⓒ 김웅헌

관련사진보기

 
좀도요새 발자국과 드러난 갯벌 바닥
▲ 수라갯벌 좀도요새 발자국과 드러난 갯벌 바닥
ⓒ 김웅헌

관련사진보기

     
갯벌의 가운데로 갈 수로 바다였던 증거만 남아 있었다. 쓰러져 가는 지주식 김 양식장, 칠게잡이 어망들, 녹슨 닻과 버려진 어구들. 예전에는 이 바다에서 많은 어민이 세대를 이어가며 맨손으로 자식들을 키워 냈을 게다.
 
버려진 어구들
▲ 수라갯벌 버려진 어구들
ⓒ 김웅헌

관련사진보기

 
버려진 칠게 장비용 어구
▲ 수라갯벌 버려진 칠게 장비용 어구
ⓒ 김웅헌

관련사진보기

     
신공항 예정부지와 미군기지가 가까이 보이는 예전의 해안 쪽으로 다가갈수록 갯벌의 흔적은 사라지고 없었다. 군데군데 짠물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는 물웅덩이만이 존재했다. 그 주변은 키 큰 갈대들이 장악하며 해안을 점령하기 시작한 지 오래됐다.
 
습지로 바뀌고 있는 수라갯벌
▲ 수라갯벌 습지로 바뀌고 있는 수라갯벌
ⓒ 김웅헌

관련사진보기

   
갯벌 생명체는 점점 사라지고 없었으나, 그곳을 거처로 삼은 다양한 생명의 흔적을 만날 수 있었다. 갈대와 웅덩이 곳곳에서는 멧돼지의 흔적들이 무수했다. 안내자가 고라니, 삵, 너구리의 흔적도 설명해 줬다. 작게는 물거미와 물자라도 만날 수 있었다.
 
멧돼지를 추정되는 발자국
▲ 수라갯벌 멧돼지를 추정되는 발자국
ⓒ 김웅헌

관련사진보기


눈을 감고 생각했다. 사람 발길이 닿지 않는 시간 동안, 다양한 동물이 어떻게 움직였을까를 상상하는 것조차 좋았다. 자연의 힘이란 무엇일까? 인간은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자연을 파괴하고 있는데, 인간 외의 생물들은 그곳에서 파괴된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내고 있으니 말이다.
 
물거미
▲ 수라갯벌 물거미
ⓒ 김웅헌

관련사진보기

     
갈대숲 한가운데서 누군가 춤을 추자고 제안했다. 넬켄 라인 프로젝트(Nelken Line Project). 이름을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설명했다. 참여자들이 새만금을 걸으며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다양한 생명을 기억하자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설명에 따라 참가자들이 걸으며 춤췄다. 갈대의 움직임과 바람 소리와 새들의 울음소리와 함께했던 작은 몸짓들, 그 춤을 한편의 영상으로 남기지 못한 게 아쉬웠다.
 
갯벌이 사라지고 있다.
▲ 수라갯벌 갯벌이 사라지고 있다.
ⓒ 김웅헌

관련사진보기

 
참여자들이 함께 춤을 추고 있다.
▲ 수라갯벌 참여자들이 함께 춤을 추고 있다.
ⓒ 김웅헌

관련사진보기

     
15명이 함께 갔던 길을 따라 되돌아 왔다. 돌아오는 길, 여러 차례 뒤를 돌아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멀쩡한 새만금 갯벌을 메워서 지금 우리는 잘 살고 있는가? 절대 이룰 수 없는 목표에 경제 논리만을 내세워 국민을 기만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되돌아 오는 길, 많은 생각을 했다.
▲ 수라갯벌 되돌아 오는 길, 많은 생각을 했다.
ⓒ 김웅헌

관련사진보기

   
다양한 생명체와 공생할 수 없는 개발만이 기후위기의 대안인가? 과연 미래세대의 삶과 직결되는 문제를 기성세대가 일방적으로 결정해도 되는가? 미군기지 확장, 다원적 외교가 필요한 변화된 국제 정세와 반대로 가는 일방적인 한미동맹만으로 국민의 안전과 생명과 국익에 진정한 도움이 되는가?

태그:#수라갯벌, #군산, #새만금신공항, #백지화, #공동행동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