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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산 구룡쟁주 산봉우리들
 성수산 구룡쟁주 산봉우리들
ⓒ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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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중순 얼레지가 꽃을 피우는 계절에, 임실 성수산(聖壽山, 876m) 정상을 향하는 생태 탐방로를 답사하였다. 성수산 오토 캠핑장에서 편백 향기가 바람결에 실려 오는 1.2km의 편백길은 꼬부랑재로 향하는 오르막이다. 전망대임도 2.1km의 구간에는 겨우내 침묵하였던 활엽수의 가지 끝 겨울눈마다 연녹색이 드러났다. 

연화봉에 올라서면 상이암(上耳庵)과 여의주 바위로 모여드는 구룡쟁주(九龍爭珠) 형세의 명당이라는 산줄기 능선이 장관이다. 상이암 도량 마당에 화백 나무가 높이 솟아 있다. 연화봉에서 능선길로 0.8km 진행하면 헬기장이 나오고 0.4km를 더 오르면 성수산 정상이다. 진안의 백운면 들녘이 눈 아래 펼져지고, 북쪽 10km 위치에 마이산의 두 봉우리가 보인다.

지장재 안부로 0.4km를 내려갔다가, 태조 이성계 기도터 들머리를 지나 능선을 2.0km 올라가면 905고지(905m)에 도착한다. 0.9km의 능선을 내리 걸어 구름재길 정자를 거쳐 대판이봉 능선길 3.5km를 지나서 생태관광지 원점 회귀하였다. 전체 산행길은 12.6km 거리로 6시간 걸렸다. 
 
성수산 상이암 맞은 편 산록 임도에서 본 구룡쟁주 형세
 성수산 상이암 맞은 편 산록 임도에서 본 구룡쟁주 형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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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산 정상(876m)과 905고지(905m) 비교

임실 성수산을 오르는 등산객 중에는 905m 높이의 봉우리가 있는데, 876m 높이 봉우리를 정상으로 정한 데에 의문을 가지기도 한다. 성수산의 형세를 살펴보면 'ㄷ'자 형태인데, 현재의 정상 봉우리는 'ㄷ'자 형태의 아래쪽 모서리에 홀로 위치한다. 905고지는 'ㄷ'자 형태의 가운데 연결 부위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성수산의 등고선 지형 지도를 보면, 성수산 'ㄷ'자 형태의 가운데 능선에 855m, 860m, 862m, 875m, 888m, 886m, 902m, 905m, 903m, 879m와 887m 높이의 봉우리 11개가 능선에 한 줄로 늘어서 있다. 현재 정상으로 지정된 봉우리(876m)보다 높은 봉우리 7개는 가까운 거리에 어깨를 마주하여 무리를 이루고 있다. 좌우로 3개씩의 봉우리를 거느리고 있는 905고지에는 변변한 표식조차 없다.

임실 성수산의 기원은 '구룡쟁주 명당과 상이암(도선암) 창건' 설화에 있다. 도선(道詵, 827~898)국사가 구룡쟁주의 명당을 확인하고 도선암을 창건하였고, 왕건과 이성계가 이 사찰에서 기도하였고 훗날 새로운 왕조를 창업했으니, 이 산의 이름이 성수산이 되었다.

조선 시대 후기의 여러 고지도에 임실 '聖壽山(성수산)'이 명확히 표기되어 있는데, 우리나라 전통 지도에는 고도(高度) 표기가 없었다. 임실 성수산의 표고(標高)는 일제 침략기의 지도에 처음 나오는데, 임실 성수산의 봉우리 중에서는 현재 정상으로 지정된 곳에 876m의 표기가 있다.

임실 성수산은 진안군 백운면과 경계에 있고, 진안 백운 들녘에서 임실 성수산의 현재 정상 봉우리만 잘 보이므로 일제가 이 봉우리에 측량 깃대를 꽂아 측량에 활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성수산 연화봉에서 본 구룡쟁주 형세
 성수산 연화봉에서 본 구룡쟁주 형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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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측량 침략의 현장 

예로부터 산봉우리가 깃대처럼 뾰쪽하거나, 나라에서 하사받은 사패지(賜牌地)를 표시하려 산봉우리에 깃대를 세우면 깃대봉이라 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많은 깃대봉은 19세기 후반에 일제가 한반도 침략을 목적으로 지도를 제작하기 위해, 산봉우리에 깃대를 꽂고 측량 기점으로 삼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구한말과 일제침략기에 일제의 육지측량부와 육군참모본부 간첩대는 한반도 지도 제작에 중심 역할을 수행하였다. 지도는 어느 나라나 어느 시대나 부국강병을 위한 필수적 국책사업이었고, 침략과 군사 작전을 위해서는 절대적인 정보였다. 

일제는 을사늑약(乙巳勒約, 1905.11.17)이 체결되기 11~15년 전에 군사적 목적으로 간첩대가 활동하여 은밀하게 한반도의 지도를 제작하였다고 한다. 19세기 말 한반도 내에서 외국인의 정보 조사와 수집 활동은 범법 행위였기에, 일제 간첩단은 조선인으로 위장하여 지리, 풍속, 정치, 재정과 군사 등을 조사하고 지도 제작을 수행하였다. 일제는 한반도를 식민지화하자 이미 은밀하게 작성한 각종 지도를 기초로 신속하게 각종 도로, 철도, 수리와 치수 등 건설 사업을 전개할 수 있었다. 

19세기 말에 일제가 간첩단 활동으로 은밀하게 군사 지도를 제작할 초기에는, 산악 지대에서는 측량사가 계곡 입구의 낮은 산정에 올라 조감하면서 거리와 고도 등을 목측(目測)하여 지형을 묘사하였다고 한다. 임실 성수산에 905고지(905m)의 봉우리는 진안 백운 들녘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현재의 성수산 봉우리(876m)가 일제가 1918년 무렵에 간행한 지도에 표기되었고, 이후에 성수산 정상으로 지정된 것으로 추정된다.
 
성수산 대판이봉 능선에서 본 성수산 구룡쟁주 형세 산봉우리들
 성수산 대판이봉 능선에서 본 성수산 구룡쟁주 형세 산봉우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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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쟁주 설화의 중심지, 임실 성수산 905고지 

일제는 우리의 민족정기를 없애려고 갖은 책동을 다 하였다. 일제는 남원 운봉에 있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황산대첩비'를 파괴하였다. 백두대간과 지리산의 정기를 끊는다며, 남원 주천면과 운봉읍 경계의 곡중분수계를 백두대간의 목으로 보아서 이곳에 한 개에 100kg이 넘는 무거운 목돌 6개를 땅속에 묻기도 했다. 

임실 성수산은 고려말에 왜구를 격멸한 이성계 장군의 설화가 전승해 오며, 새 나라 조선의 건국 희망을 품은 산이다. 일제가 한반도를 침략한 1918년 무렵에 발행한 지도에, 임실 성수산에 조선 태조 이성계의 설화가 전승되는 구룡쟁주 산세를 조성하는 산봉우리들의 높이가 무더기로 기록되지 않았다. 

임실 성수산에서 현재 정상으로 지정된 봉우리(876m)는 일제 측량 침략의 깃대봉이었고, 삼각점인 측량 기점이 설치되어 있다. 이 봉우리는 진안 백운면 들녘에서 잘 보여서 성수산의 전위봉(前衛峰) 역할을 한다. 일제의 침략 역사를 임실 성수산 깃대봉에서 현재도 기억한다.

임실의 오래된 향토 역사 읍지(邑誌)의 산천(山川) 항목에 성수산과 상이암에 대한 의미 있는 기록이 있다.

雲水誌(운수지, 1675년) : 

聖壽山在縣東四十五里(성수산재현동사십오리) 
東面上耳寺後接長水鎭安界(동면상이사후접장수진안계)
성수산은 현의 동쪽 약 18km 위치에 있다. 
동면 상이사 뒤에 있는데, 장수 진안과 경계가 된다.


이 내용처럼 905고지 바로 옆 봉우리의 산줄기의 끝에 상이암 무량수전이 자리 잡고 있으며, 905고지는 장수와 경계에 가깝다.

雲水誌(운수지, 1730년) :

聖壽山在縣東三十里 (성수산재현동삼십리) 
聖跡山初落也 (성적산초락야) 
其形特秀最著靈異 (기형특수최저영이)
有旱祈雨必應 (유한기우필응)
성수산은 현의 동쪽 12km 위치에 있다. 
성적산(장수 팔공산)의 기세가 처음 뭉친 곳이다. 
그 형세가 특수하고 영험하고 기이함이 가장 드러난다. 
한발이 들어 기도하면 반드시 비가 온다.


이 내용처럼 905고지 부근은 성적산(장수 팔공산)의 기운이 처음 뭉친 곳이다. 칼날 능선이 가로로 몇 봉우리를 이어가면서 세로로 구룡쟁주의 용틀임을 힘차게 펼치며 상이암 여의주 바위 방향으로 휘감아 내려오니, 그 형세가 특수하고 기이한 형세라 할 만하다.

임실 성수산의 등산 주제는 'ㄷ'자 형태 산세의 중심에 있는 구룡쟁주의 명당 형세를 확인하고, 아홈 용의 용틀임 같은 호연지기를 가슴에 품는 데 있다. 성수산과 상이암에 전승되는 설화와 부응하는 905고지의 여러 산봉우리가 장엄하게 펼쳐져 있는 장면을 바라보며, 905고지가 진정한 성수산 정상임을 확인한다. 우선, 성수산의 '905고지'라는 의미 없는 표시보다는 성수산 '태조봉(太祖峯)'이나 '상봉(上峯)' 등으로 이름을 정해야 마땅하겠다.
 
진안 백운면 내동산 기슭에서 본 성수산, 성수산 구룡쟁주 형세 산봉우리들은 안 보임
 진안 백운면 내동산 기슭에서 본 성수산, 성수산 구룡쟁주 형세 산봉우리들은 안 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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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일제의측량침략, #깃대봉일제측량침략, #성수산정상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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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해설사입니다. 향토의 역사 문화 자연에서 사실을 확인하여 새롭게 인식하고 의미와 가치를 찾아서 여행의 풍경에 이야기를 그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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