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와 4.16연대가 지난달 21일 오전 서울시의회앞 세월호 기억공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원에 의해 사찰 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피해자 가족, 전 특조위원 및 조사관들,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의 불법사찰 문건 공개를 촉구했다. 맨 왼쪽이 기자회견에 참석한 권영빈 변호사.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와 4.16연대가 지난달 21일 오전 서울시의회앞 세월호 기억공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원에 의해 사찰 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피해자 가족, 전 특조위원 및 조사관들,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의 불법사찰 문건 공개를 촉구했다. 맨 왼쪽이 기자회견에 참석한 권영빈 변호사.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벌써, 아니 이제 10주기다. 세월호 참사의 아픔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공영방송 KBS는 세월호 참사 관련 다큐를 불방시켰다. 유가족들과 시민단체의 항의가 이어지는 중이다. 또 유가족들은 전국을 돌며 세월호 10주기 전국 시민 행진단을 통해 국민들을 만나는 중이다. 두 달여 앞으로 다가온 세월호 참사 10주기, 진상 규명 목소리는 여전하다. .

지난달 21일 4·16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와 4·16연대가 서울시의회 앞 세월호 기억공간에서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권영빈 변호사를 만났다. 국정원에 의해 사찰 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피해자 가족, 전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 위원 및 조사관들,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국정원의 불법사찰 문건 공개를 촉구하는 자리였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기자회견장에서 잠시 얼굴을 마주한 권 변호사에게서 착잡함이 그대로 묻어났다. 권 변호사는 참사 이후 수년 간 1기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와 선체조사위원회(선조위)에서 세월호 유가족 추천 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 그에게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은 소회와 여러 평가들을 듣기 위해 지난달 28일 그의 변호사 사무실(법무법인 한결)에서 다시 만났다.

"추모하고 서로 힘들게 살아온 남은 사람들이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고 그러는 게 보통일 것 같은데, 세월호 참사는 10주기가 됐는데도 여전히 해결된 게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고요. 또 다수는 반대로 이제 잊어버리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제가 볼 때 일반 다수의 국민들은 약간 특별한 것이 '이렇게 해결 됐으니까'라고 하기보다 국민들 모두가 당사자라는 생각들이 좀 있는 것 같아요."

진상규명 등 참사의 해결에 있어 그런 당사자성은 필수적이면서도 어떤 이중성을 띨 수 있을 것 같다. 1기 특조위에 이어 선조위에서 연이어 활동했던 권 변호사 역시 그런 양가적인 감정을 누구보다 절감하고 있는 듯했다. '진짜 세월호 변호사'를 넘어 검사 출신 변호사로서 또 다른 역할을 고민 중이라는 권 변호사의 세월호 10주기 소회가 궁금해졌다.

다음은 권 변호사와 한 인터뷰 내용이다.
 
2016년 8월 초, 세월호 1기 특조위 강제해산에 저항하는 릴레이 단식농성 당시 권영빈 변호사.
 2016년 8월 초, 세월호 1기 특조위 강제해산에 저항하는 릴레이 단식농성 당시 권영빈 변호사.
ⓒ 세월호1기특조위

관련사진보기

  
'세월호 변호사'가 바라보는 참사 10주기

-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국민들의 감정을 떠올리면 이태원 참사와 비교해도 확실히 다른 것 같다.

"그게 좋은 의미인지 나쁜 의미인지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아이들한테 이제 세월호 세대라는 어떤 명칭이 부여됐잖나. 뭐랄까, 우리 사회에 있어서 그건 어떤 굉장한 상징성과 역사성이 있는 거다.

그러면서 국민 모두 그때 느꼈던 충격과 슬픔, 안타까움 이런 것들에서 다 자기들이 당사자인 거다. 그러니까 일정 정도 당사자로서 느끼는 감정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그런 게 좀 있는 것 같다. 세월이 이 정도 흘렀으면 이제 나는 좀 빠져도 되지 않을까 하는. 그런 느낌이 있어 사실 더 안타까운 거다."

- 2~3주기 정도 됐을 때만 해도 10주기 때 이렇게 결론이 난다든지, 10주기 때 한국 사회가 이런 모습이 될 거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거다.

"맞다. 참사 발생 이후 2014년 연말에 우여곡절 끝에 특조위가 출범하면서 상임위원으로 지명을 받았다. 2015년에 막 활동하면서 우리는 열심히 하면, 한 1년 6개월 정도면 국민들이 관심 있어 하는 부분이 어느 정도 밝혀지고 남은 과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으로 생각했다. 너무 큰 참사라 깔끔하게 정리할 수는 없어도 말이다.

근데 최소한의 특조위 활동 자체가 너무 어려운 상황에 부딪혔다. 엄청난 과제를 부여받았는데 순진한 면이 분명 있었다. 여야가 합의로 법을 통과시킨 거니까 정부가 적극적인 협조는 아니더라도 방해는 안 할 거다, 이렇게 생각했다. 근데 그게 순진한 생각이었다."

- 언론도 국민도 그랬던 측면이 다분했던 것 같다.

"오히려 당시 정부는 특조위를 만들어준 것 자체로 자기네가 면죄부를 받겠다는 심산이 있었던 것 같다. 활동을 못 하게 해놓고는 '우리는 책임을 다했다' 이런 구상을 가지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고. 

그런 안타까움이 있었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보면 세월호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게 박근혜 정부의 몰락을 가지고 온 거고 발목을 잡은 거다. 그 당시에 제가 많이 말했던 게 '박근혜가 물러가니까 세월호가 올라왔다'였다. 많은 국민들도 결국 세월호가 박근혜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다만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법리적으로 묻는 거는 헌법재판소 내 소수 의견에 국한했지만 말이다."

- 이후 문재인 정부 들어 광화문 촛불 이후라 더 마음을 놓은 측면도 분명 있었다. 언론이 주목을 안 하면 특조위 활동 자체가 들여다보기 어려운 구조이기도 하고.

"문재인 정부가 세월호 문제에 많은 책임을 졌어야 했다. 하지만 제가 기억하는 건 유가족들을 청와대에 불러서 만찬 한 번 한 게 끝이었다. 이후 2020년인가, 유가족들이 청와대 연풍문인가 분수대 앞에서 추운 겨울에 단식 농성하고 삭발하고 그래도 문 대통령이 만나주거나 한 일이 없는 걸로 알고 있다."

- 특조위 등 진상규명 조사에 참여했는데 문재인 정부 당시 상황을 좀 더 들려준다면.

"세월호 특별수사단이라는 걸 문재인 정부에서 했다. 저는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이 했다고 생각하는데 물론 그것도 그 당시 문재인 정부 관계자들이 윤석열 총장을 신뢰했기 때문에 가능했을 수 있다. 그게 언제냐 하면 조국 장관 법무부 산하에서 2기 법무검찰개혁위원회가 만들어졌을 때다. 제가 그때 위원이었다.

검찰 개혁 분위기가 한창일 때 윤석열이 특별수사단을 만든 거다. 저는 그때 검찰 개혁에 대한 공격을 회피하고 관심을 분산하기 위한 수단으로 특별수사단을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검찰 세월호 특별수사단 결과가 초라했잖나. 11명인가 기소했는데 1심에서 1명 빼고는 다 무죄가 났다. 실제 마무리도 이상했고. 또 한번 국민에게 (세월호 참사에 대해) '뭔가 이제 더 할 게 없다'는 인식을 심어준 거다." 
 
2023년 3월 참사 9주기를 맞아 권영빈 변호사가 '지성 아빠' 문종택씨와 함께 세월호 인양 현장을 감시했던 동거차도 정상을 찾았다.
 2023년 3월 참사 9주기를 맞아 권영빈 변호사가 '지성 아빠' 문종택씨와 함께 세월호 인양 현장을 감시했던 동거차도 정상을 찾았다.
ⓒ 권영빈 변호사

관련사진보기

 
세월호 특조위와 문재인 정부 

- 특조위 활동 등과 관련해서 문재인 정부에 할 말이 많아 보인다.

"사실 문재인 정부에서도 몇 가지 진전은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외형적으로 세월호 특조위는 1기 특조위 하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사참위(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일단 조직 크기 자체도 가습기 살균제 피해 중심이고 세월호는 거기 붙어 있는 거였다. 일반 국민이 보기엔 그 반대였지만 말이다. 조직을 만든 것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였다.

근데 사참위가 생기면서 사람들이 기대했던 게 '이제 더 센 게 온다'였다. 그런 기대가 있었지만 사참위가 한 게 약간은 있지만 (세월호 관련해서는) 거의 없었다. 위원 구성도 마찬가지였고. 사참위는 회의체 비슷한 걸로 끝났다. 조사관들이 가능하면 직접 움직였고 진도도 엄청 나갔던 1기 특조위와는 여러모로 달랐다."

- 시간이 흘렀어도 아쉬움이 꽤 남아 보인다.

"그때만 해도 세월호가 인양이 안 됐으니까. 세월호 수중 탐사까지 직접 했었다. 예산을 달라고 했더니 해양수산부가 거절했다. (인양을 담당했던) 상하이 셀비지 측에 장비를 빌리려고 해도 (해수부가) 안 된다고 했다. 크게 어려운 것도 아니고. 그래서 위험을 무릅쓰고 민간 잠수사들이 산소통 두 개 메고 바다로 들어가고 그랬다.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인명) 사고가 나는 순간 특조위는 문을 닫아야 하니까.

경찰청 통화 내역 파일을 받아내기 위해 해경본부에 위원들이 직접 가고 조사관들이 농성하기도 했다. 압수수색 권한을 줬으면 사실은 그냥 가져오면 되는데 안 주니까. 활동기간도 엉터리로 해석하고 그래서 우리가 한 열흘을 버티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가) 적폐 청산도 있고 또 새로운 미래를 위해서 개혁적인 것도 풀어나가야 하는 것도 많고 관심사도 엄청 많았는데 안타깝게도 집값에 대한 불만 같이 여러 다른 이슈들이 부각되면서 사참위 이후 세월호 문제에 대해 국민적 관심이 줄어든 것도 같다. 대표적으로 세월호 청문회를 안 한 것도 있고. 청문회야말로 국민적 관심을 엄청나게 환기시키고 궁금증을 풀어드릴 수 있는 계기인데 말이다."

- 전체적인 평가를 내린다면. 

"문재인 정부가 세월호 참사를 해결해 줄 거다, 그러면 우리는 역시 촛불을 잘 들었고 그 정부를 잘 선택했고, 그래서 세월호 참사의 어떤 트라우마로부터 우리가 벗어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국민들이 했던 것 같다. 처음 말씀드린 대로 국민들이 세월호 문제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가끔 저한테 '세월호 이제 다 끝난 거지'라고 묻는 분들이 계시는데 그러려면 사참위가 결과를 내놓아야 했다. 국민들 기억엔 1기 특조위 활동이 더 각인돼 있는 것 같다. 이런 점으로 보면 정부의 의지가 약했던 측면이 분명히 있는 것 같다."

세월호 10주기, 그래도 진전은 있었다 

- 세월호 10주기다. 유족들이 또 거리에서 국민들과 만나고 있는데.

"그분들은 여전히 해결된 게 하나도 없다고 한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걸 반복하고 있는데 그게 문재인 정부에 책임이 있는 거지. 다만 저는 지금 유가족들이 말씀하시는 거랑은 조금 생각이 다른 면이 있다.

특조위 때도 그렇고 선조위 때도 그렇고 그런 활동들이 의미가 없거나 성과가 없었던 게 아니다. 일정한 성과는 있었다. 쉽게 표현하면, 세월호 참사의 진실 규명이 한 80% 정도는 와 있다고 할까. 객관적으로 한 10년 동안 세월호 참사에 대해 일정하게 진전된 게 있기 때문에 사람들, 국민들 마음에서 조금씩 덜어진 게 있는 거다. 아무것도 안 됐는데 (슬픔이나 아픔이) 덜어졌다 그러면 오히려 이상하잖나.

희생자들을 전부 위로하기에는 부족하지만 일정하게 진전된 것들은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세월호 특조위 활동할 때 '아, 이걸 하면 희생자들을 위로하고 유가족을 위로하고 그런 것도 있지만 안전한 사회를 만들 수 있겠구나, 거기에 진짜 주춧돌이라도 놓을 수 있겠구나'라는 점이 제일 기뻤다."

- 위원회 공식 명칭에도 안전사회가 들어가 있지 않나.

"공식 명칭도 원래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및 안전사회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다. 단순히 진상 규명에 그치는 게 아니고 더 큰 과제는 안전한 대한민국을, 그러니까 국가의 부재를 목도하게 만든 세월호 참사를 통해서 우리 국민들은, 아이들은 국가  안에서 어떻게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가라는 걸 기대했고, 제가 거기 일조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활동했다.

예를 들어, 10·29 이태원 참사를 봐도 그렇다. 세월호 참사에서 교훈이 하나도 없는 거다. 세월호 참사를 대하던 정부 태도가 지금 이태원 참사에 똑같이 나타나고 있다. 정부 대응을 보면 더 심해졌다. 이 정부가 교훈을 얻은 거다. (세월호 참사 당시처럼) 저렇게 하면 욕을 먹는구나. (현 정부가) 그런 교훈들을 저들이 배운 거다."

- 세월호 10주기가 이태원 참사와 맞물리게 되는 상황도 안타깝다.

"그렇다. 그러니까 예를 들면 제가 진상 규명의 80% 정도를 거론했는데, 일반 국민들도 어떤 게 규명이 됐고 어떤 게 남아 있고 또 앞으로 더 뭐가 필요하다, 이런 규정이 되면 정리도 훨씬 잘 될 것 같다.

사람들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듯이 또 관심이 다를 수 있지 않나. 예를 들면 한 80% 정도 해결된 걸 통해서 트라우마를 벗어날 수 있는 국민도 있을 거다. 나머지 20%까지 다 해결돼야 국민 모두 (세월호 참사)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는 건 아닐 것 같고. 해결이 안 되는 부분은 또 잘 풀도록 우리가 뭔가 더 노력을 해야 되겠구나, 이렇게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이태원 참사 특별법도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를 해서 재의결이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이런 상황에 와 있으니 세월호에 대해 3기(조사위)나 새로운 위원회를 또 만들자고 하는 게 어렵고 부담될 수 있다."

- 정리하자면 세월호 유가족들 입장에서도 이태원 참사가 발생하면서 어떤 주장을 하기 부담스러운 측면이 생길 수밖에 없을 거 같다.

"그러니까. 그런데 또 10주기랑 (이태원 참사가) 지금 맞물린 거잖나. 지금 세월호 유가족들은 생명안전기본법을 제정하자고 했는데 그건 이태원 참사 일어나기 전에도 어쨌든 생명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그런 일상적인 우리 사회의 안전 조치들이 필요한 거다.

그런 문제가 발생하면 조사할 수 있도록 하자고 하는 거고. 그 이전부터 그런 주장들이 있었던 건데 문재인 정부 때 그걸 좀 더 해놨으면 좋았을 텐데. 얘기하다 보니 또 그 쪽으로 돌아갔다(웃음)."

(인터뷰 2편으로 이어집니다.) 

태그:#권영빈, #세월호, #세월호참사, #세월호10주기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