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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청기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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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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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세 아버지는 10여 년 전부터 보청기를 끼고 있다. 처음에는 한쪽만 필요했는데 얼마 안돼 다른 귀에도 착용했다. 희한하게 보청기를 낀 후 멀쩡한 귀도 금방 청력이 소실됐다.  
    
양쪽 귀에 보청기를 한 아버지 모습이 처음엔 어색했지만 차츰 익숙해졌다. 자신도 모르게 자주 잃어버리는 콩알만 한 귀 속 보청기를 집 안에서 찾는 것도 내 일과 중 하나였다.
     
아버지는 어느 날 한쪽 보청기를 잃어버린 후 오른쪽 귀 보청기만으로 생활했다. 양쪽을 온전히 껴야 하는데 성능이 고르지 않고 일일이 끼고 벗는 것이 귀찮았던 모양이다.
     
아버지의 고통 이해하는 데 오래 걸렸다 
    
보청기를 끼기 전에는 아버지 귀는 정말 밝았다. 주의 깊게 듣지 않으면 들을 수 없는 조그만 소리에도 자다 깨 밤새 잠에 못 들 정도로 청력이 예민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게 청력이 소실되고 있다는 전조였다.
     
다른 신체 기관과 마찬가지로 나이 들면 청각기능도 점차 떨어진다. 노인 청각장애인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있어야 하는 이유이다. 아버지의 장애와 고통을 이해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버지가 일어나서 제일 먼저 챙기는 것이 보청기다. 지금은 보청기를 끼더라도 정상인처럼 들을 수는 없다. 아버지 경우, 대강의 말소리는 들어도 말의 정확한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보청기를 낀 이후 아버지와 나의 의사소통법은 많이 변했다. 우선 오래 대화하는 것이 쉽지 않다. 말할 때마다 서로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기 때문이다.
     
대화를 하려면 아버지와 나는 얼굴을 마주한다. 아버지는 입모양을 보고 내 말을 이해하기도 한다. 나 또한 아버지께 드릴 말씀이 있으면 보청기부터 착용하라며 귀를 가리킨다.

귀가 안 들리면서 아버지는 외출을 삼가기 시작했다. 부득이 모임에 나가야 할 경우 대화를 돕기 위해 내가 대동할 때가 많다. 밖을 나서면 외부 모든 소리는 거의 소음으로 들리고 잘 모르는 사람들과의 대화는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보청기를 끼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지인들은 종종 아버지를 오해하기도 한다. 아버지가 상대방의 말과 표정에 집중하다 보니 말수가 적어져, 딴생각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것이다.  
    
아버지가 보청기를 벗고 있을 때 우리는 손짓으로 의사를 전달한다. 아버지와 나만의 수화법이다. 때로 '필담'을 나누기도 한다. 

아버지가 보청기를 끼면서 내게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아버지를 따라 목소리가 커지고 말을 한 번 더 반복하는 것이다. 한 번은 아버지가 들을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고 또 한 번은 보다 주의를 집중하라는 제스쳐다.
     
말하기 전에 아버지를 잠시 쳐다보는 버릇도 생겼다. 이 또한 집중을 유도하는 것이다. 외부에서 아버지에게 전화를 하려면 나는 조용한 장소부터 찾는다.
     
새 보청기에 기뻐하는 아버지
    
가족 중에 아버지와 내가 대화가 가장 잘 통한다. 많은 시간 대화를 하면서 아버지 귀가 내 목소리에 특화된 것이다. 아버지는 같은 말이라도 여자보다 남자 목소리 파장에 민감하고 이해도 빠르다.
      
지난해 11월 아버지 보청기의 정부 보증기한 5년이 다 돼 새 보청기를 구입하기로 했다. 정부 보조금을 받는 보청기를 새로 맞추려면 병원 이비인후과에서 몇 번의 청력검사를 주기적으로 받아야 한다.
        
아버지를 모시고 다니면서 병원에는 나이 든 사람만 보청기를 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청각장애인들이 그렇게 많을 줄이야. 외모로 판단할 것이 아니었다. 또 한 번 장애인에 대한 시각이 달라졌다.
     
엊그제 몇 개월 만에 드디어 아버지 귀에 새 보청기를 장착했다. 그렇다고 청력이 금방 회복되는 것이 아니다. 새 보청기라도 얼마간 적응한 후 청력검사를 다시 받고 이상이 없어야 제 것이 된다.
     
아버지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표정도 한결 또렷해졌다. 예전보다 작은 소리로 대화가 가능해졌다, 아버지 목소리도 한 톤 작아졌다.  
    
아버지의 한결 밝아진 귀에 아내와 나는 "아버지 앞에서는 흉보거나 농담도 할 수 없게 됐다"라며 함께 웃었다.

이참에 새로운 정보도 알았다. 과거처럼 장애인 카드가 아니라 이제는 '복지카드'라 부르며, 세부적인 장애등급 표시를 없애고 중증과 경증으로만 단순히 구분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마지막까지 기능하는 감각이 청각이라 한다. 장애 중에서 심한 고통을 주는 장애가 청각장애라는 말에도 내 경험상 십분 공감한다.
     
나도 때가 되면 언젠가 아버지처럼 보청기에 의지할 것이다. 지금 아무 어려움 없이 무엇이나 들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아버지가 새 보청기로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자식으로서도 행복하다. 아버지를 보며 귀가 눈보다 훨씬 많은 대화를 주고받는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합니다.


태그:#보청기, #청각장애인, #복지카드, #청력, #소리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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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메모와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기존 언론과 다른 오마이뉴스를 통해 새로운 시각과 영감을 얻고 있습니다. 주요 관심사는 남북한 이산가족과 탈북민 등 사회적 약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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