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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세월호 참사 1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세월호 생존자 중 한 명인 김동수 씨(파란바지의 의인이라고도 불리는)와 함께 세월호 참사 10년을 기억하며, 416챌린지를 펼칩니다. 4.16km이상을 걷거나 뛰고난 뒤 sns 등에 #416챌린지 등의 태그와 함께 인증사진을 올려주셔서 함께 힘을 실어주시길 바랍니다.[편집자말]
세월호 9주기를 한 달여 앞둔 3월에 동아마라톤에 참여했다. 물론 9주기에 달려야 할 거리와 시간은 41.6km를 4시간 넘게 달려야 하는데 그러한 시간과 거리를 누군가와 함께 달릴 수 있는지 먼저 시험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한번도 마라톤 대회에 나가본 적이 없었기에 특정한 시간과 거리를 목표로 삼고 달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몰랐다. 대회 시작 며칠 전 대회 티셔츠가 도착했다. 김동수씨와 나는 대회 티셔츠에 부착할 작은 문구를 제작했다. 마침 도착한 티셔츠에 미리 부착해 보니 나름 잘 어울렸다.

'잊지 않겠습니다.'

그저 그것뿐이었다. 잊지 않겠다는 다짐, 잊지 말자는 당부, 잊지 않고 있다는 우리의 마음, 그런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세월호 피해자들과 가족들...

그 마음을 담아 첫 공식 대회에서 당당히 티셔츠를 입고 뛰기로 한 것이다. 김동수씨 역시 같은 날 같은 문구를 달고 달리기로 했다. 대신 나는 10km를, 김동수씨는 42.196km 풀코스를 달리는 것이 차이일 뿐.
 
첫 마라톤 대회에서 입고 뛸 마라톤 티셔츠.
 첫 마라톤 대회에서 입고 뛸 마라톤 티셔츠.
ⓒ 변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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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아침은 여전히 쌀쌀했다. 몽촌토성역에 도착해 대회가 열리는 올림픽공원으로 올라가는 도중에 만난 엄청난 인파에 깜짝 놀랐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달리기를 위해 모인다는 것에 놀랐고, 이렇게 장거리 달리기에 참여하는 동호인들이 많다는 것에 또 놀랐다.

단축 마라톤이라 하더라도 평소 꾸준히 달리지 않는다면 10km 이상 달리기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모인 수만 명은 대부분 겨울 내내 성실하고 꾸준히 달리기 연습을 해왔다는 것이다. 풀코스를 달린다는 김동수씨에 비해 내가 달려야 하는 거리는 짧지만 그래도 10km를 무리 없이 잘 달릴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처음으로 많은 사람들과 달린다는 설렘이 교차했다.

사실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가 평소에는 달려볼 수 없는 길을 달려본다는 것이다. 특히 좁은 인도나 보행 전용도로가 아닌 자동차 도로를 달린다는 것이다. 평소 인도를 걷거나 달릴 때 보이는 풍경과 자동차 도로를 달리며 보는 풍경은 굉장히 달랐다.

더군다나 출입이 금지된 곳에 들어가 달린다는 것은 작은 일탈을 감행(?)한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교통이 통제됐기에 신호대기로 멈춰서 대기할 일도 없다. 그저 목표지점까지 계속 달리기만 하면 된다.

우리 인생에서 아무런 걸림 없이 목표한 곳까지 그저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되는 경험이 얼마나 될까? 처음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 나는 이러한 경험이 오로지 신기하고 낯설기만 했다. 물론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중에 그러한 풍경이 제대로 눈에 들어올 리 없다. 대부분 앞사람의 머리나, 발뒤꿈치, 바로 3~4미터 앞의 아스팔트 바닥이 완주하는 동안 보는 대부분의 풍경이다.

그래도 그렇게 힘들게 달리는 동안 옆이나 뒤를 돌아보게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응원 소리다. 여러 동호회원들이나 소위 '크루'(공통의 목적을 위해 모인 그룹을 일컫는다)들이 길가에서 소리치는 응원 소리는 달리는 주자에게 커다란 힘이 된다. 비록 나를 향한 응원이 아닐지라도, 한번도 마주친 적 없는 낯선 사람일지라도 그 응원은 나에게 커다란 힘이 된다. 달리기를 즐기고 그 마음을 나누는 사람이 전하는 응원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구의 응원이든, 누구를 향한 응원이든 상관없이 그 모든 마라톤 주자에게 커다란 힘이 되는 것이다.

그러한 응원 중에 더욱 힘이 되는 응원이 있다. '세월호 파이팅!', '세월호 힘내세요'와 같은 응원이다.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내 귀에는 아주 크고 정확히 그 응원의 외침이 들린다. 그리고 그 외침은 멈추지 말고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가 되었다.

사실 처음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문구를 달고 뛸 때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였다. 혹시나 마라톤 대회에 왜 이런 민감한 사회적 문제를 거론하느냐는 따가운 시선이 있으면 어쩌나 하는 신경쓰임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기우였을 뿐이었다. 더 많은 이들이 세월호를 잊지 않겠다는 나의 다짐을 통해, 일상을 살며 잠시 잊었던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여전히 세월호를 잊지 않고 진상을 규명하려는 이들이 우리 주변에 있다는 것을 기억할 수 있다면 나는 멈추지 않고 계속 달릴 수 있다.
 
첫 마라톤 대회를 완주한 필자. 카메라 앞에서는 웃고 있지만 사실 팔 들어올리는 것조차 힘들었다.
 첫 마라톤 대회를 완주한 필자. 카메라 앞에서는 웃고 있지만 사실 팔 들어올리는 것조차 힘들었다.
ⓒ 변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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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나 서울 등에서 김동수씨와 종종 마주하는 일이 있다.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누군가 쭈뼛하며 다가와 혹시 세월호 김동수씨 아니냐며 고생했다는 말과 함께 손을 잡고 가는 사람들이 있다. 길을 걷다가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보면 저 멀리서부터 뛰어와 세월호 의인, 파란바지 의인 아니냐며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가는 사람들이 있다. 카페에서 이야기를 마치고 일어서는데 주인이 드립커피 한 상자를 건네며 '가만히 들어보니 세월호에서 고생 많이 하신 분 같은데 힘내시라'며 건네는 선물과 위로가 있었다.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는 낯선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 시민들은 커다란 용기를 내 누군가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기 위해 다가왔다. 그것은 어떤 말이나 행동, 위로보다도 큰 울림이다. 그 위로와 울림은 마라톤에서 골인 지점을 향해 마지막까지 달릴 수 있도록 길가에서 외치는 알지 못하는 시민의 응원과도 같다. 그 외침과 응원은 김동수씨가 세월호 참사 의인으로서 위로받으며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고 진상이 규명될 수 있도록 멈추지 않고 달려갈 수 있게 하는 힘이다.

비록 길거리의 작은 말과 외침이지만 그러한 작은 말과 외침이 모이고 모여 결국 우리 사회와 역사를 움직이는 커다란 파도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첫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던 나는 많이 힘들었지만 무사히 10km를 완주했다. 첫 대회였지만 기록 또한 그렇게 처참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1년여가 지난 지금도 그 기록에서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출발지점은 각자 달랐지만, 결승점이 있는 잠실올림픽주경기장에서 김동수씨와 만났다. 풀코스 마라톤을 달린 사람들은 모두 쓰러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너무도 멀쩡해 보이는 풀코스 주자들이 놀라웠다.

김동수씨도 마라톤 풀코스를 달린 사람이라고 보이지 않을 만큼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김동수씨 역시 달리는 동안 가족과 시민들의 응원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얼마나 힘이 되었느냐고 굳이 물어보지 않았다. 너무도 당연한 질문과 대답이 될테니까.

김동수씨와 나는 그날 그렇게 누군가의 응원과 격려, 위로를 받았다. 우리는 살면서 누군가로부터 응원과 격려, 위로를 받으며 산다. 그리고 살면서 누군가에게 응원과 격려, 위로를 하며 산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응원과 위로 속에 산다는 것을 달리는 동안 깨닫게 된다.

세월호 참사를 향한 그 응원과 격려를 멈추지 않고 알리기 위해 우리는 4월 15일 세월호 9주기 달리기 행사로 향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변상철씨는 공익법률지원단체 '파이팅챈스' 소장입니다. 파이팅챈스는 국가폭력, 노동, 장애, 이주노동자, 군사망사건 등의 인권침해 사건을 주로 다루는 법률그룹입니다.


태그:#파이팅챈스, #FIGHTINGCH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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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가는 세상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변화시켜 나가기 위해서 활동합니다. 억울한 이들을 돕기 위해 활동하는 'Fighting chance'라고 하는 공익법률지원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문두드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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