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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강원도 삼척 산골에 살고 있는 중학교 3학년 청소년이다. 어느 날 국어시간에 긴 글을 쓰는 수행평가가 있었다. 그때 갑자기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이야기를 글로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본 국어 선생님께서 이 이야기를 기사로 쓰자고 하셨다.

나를 키워주신 할머니, 할아버지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이 살고 있다. 아빠는 타지에서 밤낮으로 일을 해야 했고 엄마와는 7살 때 이별했다. 그 상황 속에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나를 키워주셨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부유한 편은 아니지만 성실히 농사 지으시며 나를 사랑과 정성을 다해 키워주셨다.

시간이 지나고 초등학교 4학년쯤 나에게도 사춘기가 찾아왔다. 그 전에는 학교 다녀와서 그날 있었던 일을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이야기 하느라 저녁 시간이 길었는데 사춘기가 온 후부터는 말없이 저녁만 먹고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그때의 나를 혼내지 않고 묵묵히 기다려 주신 것 같다.
 
여권 발급을 위해서는 조부모가 아닌 부모님의 동의서가 필요했다.
 여권 발급을 위해서는 조부모가 아닌 부모님의 동의서가 필요했다.
ⓒ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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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한 사건이 있다. 전교생이 열 명 남짓인 시골의 작은 학교는 수학여행을 해외로 가는 경우가 많다. 물론 비용도 학교에서 부담한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수학여행을 중국으로 가기로 결정되었는데 여권이 필요했다.

여권 발급을 위해서는 조부모가 아닌 부모님의 동의서가 필요했는데 아빠의 동의는 받을 수 있었지만 엄마의 동의를 구하기는 어려웠다. 이별한 시간이 길어서였을까? 초등학생인 나는 알 수 없는 어른들만의 오해가 있었던 것일까?

동의서 한 장을 받기가 쉽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전화기를 붙잡고 엄마에게 사정사정하던 굽은 등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결국 어렵게 동의서는 받았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나는 지금도 울고 싶다.

중학교 1학년 때다. 입학식 날 학교 갈 준비를 하던 도중 거울에 비친 할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초등학생 때만 해도 검은 머리였는데 이제는 흰 머리가 다 되어 있으셨다. 그 모습을 보자 내가 할머니와 지내온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그때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2 때 담임선생님과 할머니가 수화기 너머로 통화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적 있다. 그때 선생님께서 "대환이가 너무나 밝고 바른 아이예요. 잘 키우셨어요"라고 말하자 할머니는 "그늘 없이 키우고 싶었는데 다행이네요"라며 환하게 웃으셨다. 할머니의 웃음과 함께 드리운 주름에 잠시나마 근심이 가시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지금처럼 서로 아끼며 많이 웃고 지냈으면

현재 나는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다. 내가 사는 이곳은 산골이라 고등학교가 없어서 시내에 있는 기숙사형 고등학교에 진학하기로 결정했다. 나 없이 두 분만 지내실 모습이 눈에 밟힌다.

이제는 나의 끼니를 차려줄 필요가 없으니 두 분이서 대충 식사를 하시지는 않을까? 지난 여름처럼 할머니가 뙤약볕에서 밭일 하시다 쓰러져 며칠을 누워 지내시는 건 아닐까? 이제는 그럴 때 내가 돌봐드릴 수 있을 만큼 컸는데 내가 곁에 없어서 더 걱정이 된다.

할머니, 할아버지, 아빠 그리고 고모까지 우리 가족이 지금처럼 서로 아끼며 많이 웃고 지냈으면 좋겠다. 나는 충분히 좋다. 이 이야기를 마음 속에 담고 있을 줄만 알았는데 이렇게 표현할 기회가 생겨서 더 좋다.

태그:#할머니할아버지이야기, #나의보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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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환 청소년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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