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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2023. 12. 18. 2면 '-18℃ 오늘도 동장군과의 전쟁'
 <한국일보> 2023. 12. 18. 2면 '-18℃ 오늘도 동장군과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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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온이 뚝 떨어지면 신문방송으로 '동장군'이라는 말을 보고 듣는다. 이렇게 겨울이면 입버릇처럼 쓰는 말이지만 '동장군'은 왜 동장군인가? 말뜻이 흐리터분하거나 말밑이 궁금할 때는 우리 말 사전을 찾아볼 수밖에.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이렇게 말한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말하는 '동장군'의 뜻풀이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말하는 '동장군'의 뜻풀이
ⓒ 국립국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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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성의 없고 불친절하다. 한자 '동(冬)'을 우리 말 '겨울'으로 뒤친 것 말고 무엇이 더 있나. 더욱이 한자 동(冬)을 감당한 토박이말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하면 굴때장군, 대갈장군처럼 처음부터 '겨울장군'이라고 하지 굳이 '동장군'이라고 했을까.

'동장군'을 처음 쓴 우리 기록은 1946년 10월 13일 <경향신문> 2면 <금년 겨우사리는 걱정 없는가?>라는 기사로 보인다. 작은 제목으로 '겨울이 박도'라고 쓴 데를 보면 "가난한 서민층과 월급쟁이의 덜미를 사정없이 나리누르는 무서운 「동장군」(冬將軍)이 바로 목전에 박도하였다"고 적었다.

이윤옥은 '동장군'의 이른 기사로 1948년 10월 15일 <동아일보>에 '동장군(冬將軍)이 문 앞에, 2주간(二週日) 빠른 서울의 냉기(冷氣)'라고 쓴 대목이라고 했지만, <경향신문> 기사에서 보듯 그전부터 썼음을 알 수 있다(관련 기사: 동장군은 겨울장군? 국립국어원, 창피합니다).
 
<경향신문> 1946년 10월 13일치 2면
 <경향신문> 1946년 10월 13일치 2면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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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생각에 '겨울장군'이란 말을 문자깨나 쓰는 먹물들이 '동장군'이라고 쓰지 않았을까 했는데 그게 아니다. 생뚱맞게도 영어 '제너럴 프로스트'가 말밑이다. 우리 사전은 말밑 따윈 몰라라 하지만 일본어 사전인 <다이지센(大辞泉)>은 이 말이 어떻게 생겨났는가를 짐작할 수 있게 다음과 같이 풀어놨다.
 
후유쇼군 【동장군】 ≪러시아 원정에 나선 나폴레옹이 겨울 추위와 눈 때문에 패한 일에서≫ 겨울철 몹시 매서운 추위를 일컫는 말이나 추워서 매우 혹독한 겨울.
ふゆしょうぐん 【冬将軍】 ≪モスクワに遠征したナポレオンが、冬の寒さと雪が原因で敗れたところから≫ 冬の厳しい寒さをいう語。また、寒くて厳しい冬のこと。
 
한편, 일본 위키피디아사전(https://ja.wikipedia.org/wiki/冬将軍)을 보면, 낱말 뜻은 말할 것도 없고 말밑, 동장군에 얽힌 역사까지 꼼꼼하게 적어놔서 놀랐다. 어설프지만 구글에서 번역해준 것을 바탕으로 말을 조금 다듬어 옮겨 본다.  
 
동장군(후유쇼군, 영어: general winter, general frost, shimoshogun)은 매서운 겨울 날씨를 사람처럼 나타낸 말이다. 겨울철 북쪽 지방에서 일본으로 불어오는 시베리아 기단을 가리킨다.

어원: 러시아 원정에 나선 여러 나라 군대가 혹독한 러시아 겨울 날씨 탓에 번번이 실패하면서 생겨난 말이다. '동장군'이란 말은 1812년 러시아에서 프랑스군이 물러난 일을 영국 풍자화가가 '동장군이 작다리 보나파르트를 싹 문댔다(GENERAL FROST Shaveing Little BONEY)'고 한 데서 생겨났다. 실제로 프랑스군은 모스크바에서 물러난 때는 10월 19일부터인데, 그해 모스크바에는 11월 5일에 첫 눈이 내렸다.

'동장군'과 역사: '동장군'란 말은 1812년 러시아 전투에서 프랑스군이 물러난 일을 영국기자가 '제너럴 프로스트(general frost)'라고 기록한 데서 생겨났다. 실제로 러시아는 기후 이점을 살려 18세기 대북방전쟁, 19세기 나폴레옹의 프랑스군과 맞선 전쟁, 20세기에 들어 독일과 치른 전쟁 등에서 승리한다. 카를로스 12세가 이끄는 스웨덴군(발트제국),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군(프랑스제국), 히틀러가 이끄는 독일군(제3제국)에게 크나큰 피해를 입혔고 러시아를 누구도 치지 못했음은 이미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13세기에 몽골 제국이 쳐들어왔을 때는 (동장군이)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몽골군은 침엽수림이 꽁꽁 얼어붙는 한겨울에 쳐들어와 모스크바, 키예프 같은 러시아 주요 도시를 빼앗는다. (뒤줄임)
 
길지만 이렇게 옮긴 데는 일본어사전이나 일본 위키피디아가 낱말을 대하는 태도와 우리 말 사전이 낱말을 대하는 태도가 어떻게 다른가를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위키피디아든 <다이지센>이든 '동장군'은 '제너럴 프로스트(general frost)'을 뒤친 말이라고 분명하게 말한다. '제너럴 프로스트'를 일본 사람들 '휴우쇼군(ふゆしょうぐん, 冬將軍)'이라고 뒤친 말을 들여와 우리는 우리 식 한자음 읽기로 '동장군'으로 지금껏 썼음을 알 수 있다.

여기까지 읽고 동장군이 일본에서 온 한자말이니 쓰지 말자는 소리냐고 딴죽을 걸고 싶은 분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지 않다. 이미 우리 말로 굳은 말인데 말밑을 구태여 따져서 무슨 소용이 있겠나. 말을 쓰고 말지는 어디까지나 언중의 선택에 달렸다. 다만 말밑을 몰라라 하고 대충 한자 풀이식 뜻풀이를 일삼는 우리 말 사전의 게으름과 불친절을 짚고 싶었을 뿐다. 

말난 김에 눈 내리고 매운바람이 부는 매우 심한 추위를 일컫는 우리 말들이 있다.  강추위, 된추위, 맹추위, 한추위, 장대추위 같은 말이 있고, 사람에 빗댄 '손돌이추위'도 있다. 물론 이런 말이 있긴 해도 '동장군'이나 '최강 한파', '역대급 추위', '역대급 한파' 같은 자극스런 말을 더 많이 쓴다. 

태그:#동장군, #나폴레옹, #강추위, #된추위, #표준국어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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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과 글쓰기 교육, 어린이문학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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