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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될 때 중국은 홍콩에 반환 이후 50년 동안 '고도의 (정치, 경제적) 자치' 권한을 부여하여 하나의 국가에 두 개의 체제가 존재한다는 '일국양제'를 약속했다. 당시 홍콩 시민들의 마음은 복잡했다. 중국은 홍콩이 마침내 서구의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로부터 '해방'된다고 주장했고, 많은 홍콩 시민들은 이 논리에 공감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민주적 방법을 실현하고 있는 홍콩의 사회, 정치, 경제 제도가 중국의 제도와 충돌할 것이라는 우려도 존재했다. 

이러한 우려는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이 됐다. 홍콩은 제한된 범위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었지만, 중국 정부가 이마저도 훼손하려고 하자 2014년 '우산 혁명'이라고도 불리는 민주화 운동이 발생했다. 중국이 고도의 자치를 약속한 지 17년 만이다. 경찰은 시위대를 강경 진압했고 시위대도 격렬하게 저항했다. 홍콩 경찰은 시민들로부터 폭넓은 신뢰와 지지를 받고 있었지만, 이 시위를 계기로 서로 간의 불신과 갈등이 심화됐다. 2014년 우산 혁명은 많은 홍콩 시민들에게 시민 참여 민주주의를 경험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중국 정부는 계속해서 홍콩의 완전한 편입을 추진했다. 2015년 반체제 서적을 판매하던 퉁러완(銅鑼灣) 서점의 운영진이 체포됐다. 이어서 2019년 홍콩 정부는 범죄인 인도 법안을 추진했고, 이에 저항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2019년 대만에서 한 홍콩인이 다른 홍콩인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나 홍콩 법으로는 외국에서 저지른 범죄를 처벌할 수 있는 권한이 없었기 때문에 이 사건을 계기로 외국에서 저지른 범죄자를 해당국으로 송환할 수 있게 하는 '범죄인 인도 법안'을 추진했다. 많은 홍콩 시민들은 이 법으로 인해 홍콩 정치범들이 중국으로 송환될 것이라 우려했고 법 제정에 저항했다. 

당시 시위대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노래인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화제가 되었다. 1년 가까이 이어진 시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집회에는 약 200만  명의 시민들이 참여했는데, 당시 홍콩 전체 인구가 약 740만 명인 점을 고려하면 당시 시위가 홍콩 시민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시위는 격화되고 홍콩은 분열됐다. 대부분의 홍콩인들은 이 시위를 지지했지만, 일부는 홍콩의 질서를 어지럽힌다며 부정적으로 봤다. 홍콩 경찰은 강경 진압과 함께 홍콩인들의 분열을 이용했다. 2020년까지 이어진 시위는 이 시위를 이끌던 지도부의 분열과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으로 중단됐다. 이를 틈타 중국 정부는 '홍콩 국가보안법'을 통과시키며 모든 시위를 금지했다. 이후 중국과 홍콩 정부는 홍콩을 빠르게 중국 공산당 정부로 편입시켰다. 홍콩 시민들에게 일국양제는 허황된 구호였다는 절망적인 인식이 자리잡았다.

필자는 홍콩을 찾았다. 12월 중순인데도 홍콩은 무더웠다. 홍콩 혁명은 홍콩에 무엇을 남겼을까. 민주화운동의 흔적은 모두 사라졌을까. 작은 흔적이라도 발견하고 싶었다. 홍콩의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으며 현재는 신변 보호를 위해 다른 국가로 이주한 한 활동가로부터 여전히 홍콩의 혁명을 기념하고 있는 '저항' 서점들을 추천받았다. 홍콩의 구룡반도에 있는 네 곳의 서점을 찾아갔다.

- Hunter books (Sham Shui Po, Wong Chuk St, 1C地舖)
- Book Punch (3/F, Tai Nan street 169-171 Tai Nan Commercial Building, Sham Shui Po)
- Have a nice stay (3/F, 228 Sai Yeung Choi St S, Mong Kok)
- Hong Kong Reader (Mong Kok, Sai Yeung Choi St S, 68號號 7F)
 
Hunterbooks 서점 입구
 Hunterbooks 서점 입구
ⓒ 박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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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Punch 서점 입구
 Book Punch 서점 입구
ⓒ 박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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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ve a nice stay 서점 입구
 Have a nice stay 서점 입구
ⓒ 박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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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K Readers 서점 입구
 HK Readers 서점 입구
ⓒ 박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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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공안 통치가 심해졌기 때문에 폐쇄적인 방식으로 서점을 운영할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다르게 서점의 입구부터 '저항 서점'임을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다양한 스티커와 포스터 등으로 서점의 운영 정신을 드러내고 있었다.

서점 주인들은 새로운 사람을 경계하는 분위기였다. 필자는 먼저 홍콩의 혁명을 경험하고 싶은 한국에서 온 방문자라고 밝혔다. 이를 설명하기 위한 몇 마디로 서점 주인들의 경계를 풀 수 있었다. 서점을 구경하고 사진을 찍어 한국에 소개해도 되느냐는 요청에 서점 주인들은 흔쾌히 허락했다.
 
서점에 붙어있는 민주화운동 관련 포스터들
 서점에 붙어있는 민주화운동 관련 포스터들
ⓒ 박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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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은 크지 않았고 서점마다 5~10명의 손님이 책을 고르거나 구입한 책을 읽고 있었다. 주로 인문학, 사회과학 서적을 판매하고 있었고 문구류와 소품 등도 함께 판매했다. 퀴어, 페미니즘, 동물권, 채식 등을 주제로 한 도서 코너가 있었고 연대하는 단체들의 행사를 홍보하기 위한 게시판도 있었다. 모든 서점은 작은 규모에도 한 쪽에는 반드시 의자 몇 개를 두고 손님들이 잠시라도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두고 있었다. 이 공간에서 방문자들은 책을 읽거나 잠시 쉬어갈 수 있었다. 홍콩 민주화운동에 대한 사진집을 비치해둔 곳도 있었다.
 
서점 휴식 공간에 비치된 홍콩 민주화운동 사진집
 서점 휴식 공간에 비치된 홍콩 민주화운동 사진집
ⓒ 박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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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중국어를 몰라서 책을 구입할 수 없어요. 그러나 홍콩의 혁명을 기념하는 다른 물품이 있으면 구입하고 싶습니다.

이 요청에 서점 주인들은 분주해졌다. 어떤 서점에서는 진열된 엽서나 포스터, 에코백, 달력, 텀블러 등을 보여주기도 했고 다른 서점에서는 '비매용' 엽서와 책자를 창고에서 꺼내다주기도 했다. 한 서점에서는 홍콩 민주화와 관련된 서적을 구입하면 증정하는 엽서를 주겠다고 했다. 2019년 민주화운동을 촬영한 사진을 인쇄한 엽서였다. 필자는 값을 매겨주면 작은 금액이라도 지불하고 구입하고 싶다고 부탁했다. 곤란해하던 서점 주인은 작은 가격을 받고 엽서를 판매했다.
 
서점에서 판매중인 도서와 소품들
 서점에서 판매중인 도서와 소품들
ⓒ 박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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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서점을 다니며 이곳 말고 홍콩 혁명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장소가 있는지 물었다. 과거에는 온라인에 홍콩 시위대를 지지하거나 후원하는 '노란 가게 지도(Yellow-Blue Map)'가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사라졌다고 했다. 함께 의지하며 운영하던 다른 저항 서점들도 하나 둘 문을 닫는다고 했다. 개인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홍콩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식당과 카페 몇 곳을 추천받을 수 있었다. 영어를 잘 하지 못하던 한 서점 주인은 번역기와 몸짓을 섞어 영업 시간을 넘겨가면서까지 홍콩 민주화운동과 현재 홍콩의 민주주의 상황을 전하는 독립 언론을 소개해줬다. 한 서점에서는 다음과 같은 우문현답이 있었다.
"제가 너무 늦게 온 것 같아요. 이제 가볼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네요."
"당신은 늦지 않았어요. 내가 여기 있고, 나를 만날 수 있잖아요."

서점을 나서며 서점 주인들에게 같은 인사를 건냈다. 이 의례적인 인사에 간절한 소망을 담았다. 그리고 돌아오는 답변은 모두 같았고 이 역시 간절했다.
"항상 안전하고, 건강하세요. 다음에 다시 만나요."
"꼭 다시 만나요."

지난 10일에는 홍콩 구의원 선거가 있었다. 2019년 구의원 선거에서는 역대 가장 높은 71.2%의 투표율을 기록했으며, 민주당 등 범민주 진영이 전체 선출직 452석 중 392석을 차지하는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이후 '홍콩의 중국화' 과정에서 구의회 직접 선출직이 대폭 줄었고 이마저도 '애국'을 검증하는 위원회의 추천을 받은 후보만 입후보할 수 있게 되었다. 홍콩 시민들은 '투표 거부'로 자신들의 의사를 전달했다.

이번 홍콩 구의원 선거는 27.5%의 역대 최저 투표율을 보이며 초라하게 치러졌다. 홍콩 민주화에 대한 시민들의 열망과 이를 가로막는 제도의 높은 장벽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선거였다.

홍콩의 스카이라인과 야경은 여전히 눈부셨지만 높은 빌딩이 만들어내는 깊은 골목 사이를 걸으며 왠지 모를 공허함을 느꼈다. 고개만 돌리면 나타나는 입이 떡 벌어지는 명품 상점들과 좁은 식당에서 빠른 회전으로 식사하는 사람들은 여전했는데도 말이다.

밀려드는 천민 자본주의와 훼손되는 민주주의에 당신들은 어떻게 견뎌내고 있냐고 지나치는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보고 싶었다. 스치는 눈빛들로는 홍콩 시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생각을 읽어내기 어려웠다. 그러나 낯선 지도를 보며 힘겹게 찾아간 저항 서점에서는 여전히 홍콩 민주주의의 작은 불씨를 경험할 수 있다. 작은 불씨는 선명했다. 이 불씨가 다시 이어붙어 활활 타오르게 될 순간을 기대한다.

태그:#홍콩, #우산혁명, #저항서점, #구룡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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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지리학과 박사과정 인도네시아 도시 지리, 이주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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