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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영화관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인 영화는 다름 아닌 <서울의 봄>이다. 해당 영화는 1979년 벌어진 12.12 군사반란과 그에 연관된 실존인물들을 모티브로 다루고 있다.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각색되긴 했으나, 누구나 쉽게 모티브인 실존인물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다. '전두광'과 '전두환'이 그 가장 큰 예이다. 그만큼 해당 영화의 '역사'에 대한 재현과 시사는 아주 선명하다.

감독은 해당 영화를 제작한 이유로 그가 고등학교 3학년일 당시 육군참모총장이 납치될 때의 총성을 들은 것을 언급했다. 그리고 10여 년이 지나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그때의 총성이 무엇이었는지를 알게 되었고, '이렇게 우리나라의 군부가 단지 하룻밤 안에 무너졌었다니'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대체 그날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대체 무슨 일이었기에 현대사에 큰 줄기를 나눌 코너가 생겨난 것인지 감독은 해당 영화를 보며 1979년 당시로 돌아가 "관객들을 그 순간에 밀어 넣고... 경험해보기를 바랐다"고 했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더 궁금하다면 관객들이 해당 사건을 찾아보고 알아볼 것이라 여겼다고 한다. 44년 전의 총성을 "오래된 숙제"라고 표현한 것 또한 인상 깊다. 감독의 작품 제작에 대한 이유와 과정 그리고 연출에 대한 의도는 아주 다분히 '역사적 사실'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렇다면, '전두광'을 보며 '전두환'을 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니, '전두환'을 보지 못하는 관객들이 과연 있을까. <서울의 봄>이 SNS 상에서도 극찬을 받고 여러 리뷰나 후기들이 이어지면서 의외로 '전두광'을 단지 '전두광'으로만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서울의 봄>을 보고 나오며 '전두환'하면 자연스레 연계되는 '6월 민주항쟁'을 겪은 또 다른 관객과 인터뷰를 나눠보았다. 인터뷰에 응한 사람은 김홍연(1966년생, 사업가)씨다.

김씨는 당시 20대 초반이었다. 하물며 대학을 나오지 않아 대학과는 큰 인연이 없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6월 민주항쟁'이라는 혁명적이고도 뼈아픈 역사를 아주 가까이에서 목격한 사람이었다.

"집안 사정이 좋지 못했던 터라 여섯 살인가부터 혼자 타지로 나와 학교를 다녔어요. 대학에 진학하진 못했지만, 자연스레 일도 빨리 시작했던지라 10대 중후반, 지금으로서 고등학교의 나이부터는 일터에 있었죠. 스물에는 이미 지금 진행하고 있는 사업에 몸을 담그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6월 민주항쟁'을 기억하는 모습은 어떨까.

"당시 학생들이 도망을 쳐야하거나 숨어야 하면 저희 사무실로 데려가곤 했었습니다. 그리고 학생에 대해 '이 사람은 누구냐'라고 묻는 사람이 생기면 '동생이다. 내가 형인데, 환경이 환경이다 보니 다친 모양이다'라고 둘러대고 병원에 데려가고는 했습니다."

당시 그렇게 누군가의 형, 누나, 동생, 삼촌과 이모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많았느냐 물으니 "제 주변엔 그랬던 것 같습니다. 함께 사업을 하는 형님들 그리고 거래처 사장님들이나 그나마 저와 나이가 비슷했던 주변 친구들, 다들 그랬던 것 같습니다"라고 답했다.

이름 없는 형이 되기를 자처했던 그는 <서울의 봄>을 그리고 '전두광'을 어떻게 바라봤을까. 

"'6월 민주항쟁' 당시가 딱 저의 20대에 걸쳐있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딱 5년이 지나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았습니다. 제가 스물의 나이였을 때보다 제가 스물인 자식의 아버지가 되었을 때 더 분노하게 되었던 것 같"다며 "당시엔 '6월 민주항쟁'이 품은 의도를 위해 분노했고, 지금 와서 되돌아보면 그 폭력적이었던 풍경에 분노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권력을 위해 사람을 잡는다니. 자신을 위해 누군가를 짓밟는 풍경이 참혹했습니다. '전두광'을 보면 이름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자연스레 '전두환'에 대한 생각이 납니다"라고 밝혔다.

"그건 영화에선 '전두광'의 승리만을 비추게 되었지만, '전두광'에 덧입혀지는 이러한 영화 밖의 역사와 사실들이 그의 승리가 적어도 영원하진 않을 거라는 것을 깨닫게 했습니다. 우리들이 기억하는 역사는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의 패배가 돌아올 거라는 것, 하물며 애당초 저런 방법으로 얻어내고 지켜내는 승리는 패배에 지나지 않아야 마땅하다는 것."

김 씨는 <서울의 봄>이 창작물로서도 완성도 있으며 좋은 작품이지만, 역사를 시사하는 방면 또한 크게 작용하는 영화로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대한민국의 현대가 시작된다고 말할 수 있을 시점에, '정말로'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되어줄 영화라고 <서울의 봄>에 대한 감상평을 말했다.

"사실, 우리는 현재에 어떻게 도달했는지 잘 모르고 살아갑니다. 삶에서 과거, 그러니까 역사가 큰 효용을 가지진 못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이 벌어졌었음을, 그로 인해 시민들은 이런 일을 겪었음을 기억할 필요성은 충분"하다며 "이 영화를 통해 대한민국의 현대사가 어떻게 시작되었고 현재에 어떻게 정착했는지를 깨닫거나 환기하게 되는 경험 또한 관객으로서 중요한 경험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전두광'과 '전두환'은 다른 사람이다. 허나, 우리가 '전두광'을 통해 비추어볼 수 있는 현실은 분명히 있다. 김 씨에게 인터뷰를 마치며 '6월 민주항쟁' 뿐만 아니라 '전두환'에 대한 지식이나 인식, 역사가 올바르게 전달되고 있는 것 같냐고 물으니 "아마 <서울의 봄>이 정말 있었던 일이라는 걸 자세히는 모를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라고 답했다. 그리고 그의 말이 옳았다.

지난 7일, 한 트위터 유저의 질답 SNS를 통해 '<서울의 봄> 스포일러'에 대한 이야기가 불거졌다. <명량>과 <사도>에서 '다음 작품(<노량>)에서 이순신이 죽는다'거나, '사도세자가 죽는다'하는 이야기를 '스포일러'라고 언급하는 네티즌들이 여럿 있었다. 그에 뒤이어 이번엔 <서울의 봄>의 결말이 어떨지에 대한 이야기, 즉 역사적 사실과 모티브에 대한 이야기를 스포일러라고 비난하는 일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스포일러라며 욕설을 쏟고, 비난하고, 비방하는 일은 분명히 잘못된 태도이지만, 과연 역사를 모르는 것 자체가 큰 흠이 되는가?'라는 근본적이고 근원적인 질문들이 뒤따라 왔다.
  
이에 청년 세대에 속하는 김민준씨(1992년생, 학생)를 인터뷰 했다. 그에겐 20대 후반과 20대 초반인 동생들이 있었다. <서울의 봄>을 알고 있느냐 물으니,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배경이 된 실제 사건 또한 알고 있다. 동생들도 그럴 것이고, 막내 동생은 얼마 전에 영화를 보고 왔다"고 했다. 그리고 앞서 불거진 '스포일러' 논란을 언급하며 김씨와 동생들의 견해를 물었다.

"역사를 모른다고 비방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학문이든 강제할 수 있는 건 없고, '하지만 이건 상식이잖아'라고 말할 때의 상식 또한 범위가 아주 넓고 애매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창작물은 창작물로 봐야지'라는 견해도 포함되었으리라고 본다. 그에도 동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뒤이어 "하지만 <서울의 봄> 결말을 '스포일러'라고 생각하게 됐을 때, 그러니까 '전두광'의 근간에 '전두환'이 있음을 알지 못했을 때는 단지 '창작물'로, '예술'로 존재하는 작품으로도 오역할 가능성이 생길 거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SNS에서 '디씨인사이드 갤러리'에 올라온 하나의 후기를 접했다. '영화는 '이태신'을 띄우려고 하나 오히려 그래서 더 '전두광'이 잘 보였다. 주변인은 무능한데 '전두광'은 협박에 회유를 통해 자기 편을 만들 줄 알고, '이태신'은 너무한 이상주의자이지만 '전두광'은 현실주의적인 난세의 간웅처럼 나온다. 오히려 '전두광'이 관객들에게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질 것 같더라'라는 내용이었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김 감독은 확실히 실화를 모티브로 영화를 만들었으며, 이 영화가 '역사의 대변자'가 되거나 '역사적 메시지'를 전달할 목적이 아닌 예술이고 창작물이라 하여도 '전두광'의 배경에 '전두환'이 존재함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역사 중에는 미화되어선 안 되는 인물, 하다못해 미화되어선 안 되는 순간이 존재한다"며 "과연 감독이 '전두광'을 난세의 영웅으로 바라보는 것을 의도했을까"라고 물었다.

역사를 모른다는 건 죄가 될 수 없겠지만, 이런 경우엔 작품의 오역을 불러오거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게 김씨의 견해다. '이런 경우'라 함은 해당 역사에 수많은 피해자들이 있음을 잊고 작품을 오역했을 경우다. 위의 후기 또한 그렇다.

역사를 다룬 미디어와 창작물들은 '우리가 이런 역사를 거쳐 왔지'라고 상기해 주는 힘이 있다. 이를 통하여 역사를 깨닫고 접하기 시작하는 것 또한 그 힘의 일종일 것이다.

<서울의 봄>은 어떤 메시지나 강력한 주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몰아넣고' 그때의 일을 보여줄 뿐이다. 이 영화를 보는 모두가 느껴야 하고 실천해야 하는 전체적인 가치는 없을 것이다. 다만, 현재의 뒤에 이런 일이 '정말로' 있었음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것이 아닐까.

감독의 "관객들을 그 순간에 밀어 넣고... 경험해보기를 바랐다"는 말은 바로 그 의미일 것이다. 이 영화가 하나의 경험 혹은 기억이 되는 것 말이다. 그 경험에서부터 출발해 다른 것들을 얻어내는 것은 관객 각자의 몫일 것이다. 
 
 
<서울의 봄>은 개봉 2주차에 입소문을 타며 역주행에 성공했다. 16일째 흥행 1위를 달리며 이제는 700만을 향해 나아가는 중이다. 금년 국내 상영작 중엔 세 번째로(첫 번째와 두 번째는 <범죄도시3>와 <엘리멘탈>) 700만 명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이는 청년층, 즉 20-30대의 지지가 크다. CGV의 <서울의 봄> 상세 정보를 보면, 예매 분포의 55.7%(12월 8일 오전 9시 20분 기준)가 20-30대의 예매다.

SNS에서는 역사에 대한 분노와 더불어, 역사를 잊지 않겠다는 일종의 'n차 챌린지'가 유행하기도 한다. 그리고 '좋은 군인과 나쁜 군인의 문제로 이 사건을 다루는 큰 그림이 합당한가' 등의 활발한 논의도 이어지는 중이다.

태그:#서울의봄, #현대사,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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