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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새벽 4시, <국민일보>는 "윤석열 대통령이 신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에 김홍일 국민권익위원장을 내정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단독 보도했다. <국민일보>는 "윤 대통령은 뚝심 있고 안정감이 장점인 김 위원장이 방통위를 잘 이끌어 갈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렇기 때문에 권익위원장을 새로 뽑아야 하는 부담감 속에서도 김 위원장을 신임 방통위원장으로 내정한 것"이라는 여권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했다.

보도가 사실이라면 인사 참사가 되풀이되고 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김홍일은 겨우 다섯 달 전인 지난 7월 3일 국민권익위원장에 임명됐고,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후임으로도 거론된 인물이다. 서울중앙지검 3차장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을 지낸 '특수통' 검사 출신이다. 이제는 검찰 권력을 이용해 언론까지 다스리겠다는 대통령의 의지가 읽힌다는 얘기도 들린다.

만약 김홍일 국민권익위원장이 신임 방통위원장으로 임명된다면 '제2의 이동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물론, 예상을 깨고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앉는다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누가 방통위원장이 되든, 이동관이 밀어붙인 방식대로 혹은 그와 비슷하게 언론을 장악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누가 방통위원장이 되든 '제2의 이동관' 될 것

그래서 중요한 게 이동관의 '기관지 판별 잣대'이다. 이동관 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후보자 시절인 지난 8월 1일 "특정 진영의 정파적 이해에 바탕을 둔 주장을 무책임하게 전달하는 것은 언론의 본 영역에서 이탈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선전․선동을 능수능란하게 했던 공산당의 신문과 방송을 언론이라고 하지 않는다. 기관지라고 한다"고 덧붙인 바 있다.

이동관 전 방통위원장이 말한 "특정 진영의 정파적 이해에 바탕을 둔 주장을 무책임하게 전달하는" 기관지는 어느 언론을 가리키는 것일까. 그가 언론사를 특정하지는 않았지만, 방통위원장 자리에 앉은 후 벌인 일련의 행태에 비추어볼 때 KBS, MBC,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오마이뉴스 등 진보적 색채를 띤 매체를 지칭하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한 마디로, 윤석열 대통령이나 정부 여당에 비판적 논조를 유지해온 언론사다.

하지만,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선정 결과 발표 전후의 국내 언론 보도를 살펴보면, 진짜 '기관지'는 따로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엑스포 개최지가 공식 발표된 지난 11월 29일 새벽 이전부터 일부 언론매체는 부산이 역전승으로 엑스포 유치에 성공할 것처럼 보도했다. 다음은 관련 기사 중 일부를 캡처한 것이다.
 
2030 엑스포 개최지 선정 결과가 발표되기 전 한국의 '역전승'을 예상한 언론 보도(화면 갈무리)
 2030 엑스포 개최지 선정 결과가 발표되기 전 한국의 '역전승'을 예상한 언론 보도(화면 갈무리)
ⓒ 매일경제, 조선일보, 한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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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는 지난달 21일 "49대 51까지 따라왔다…결선서 대역전극 'BUSAN is Ready'" 제하의 기사를 내보냈고, <조선일보>는 3일 후인 24일에 "49대 51까지 쫓아왔다…2차 투표서 사우디에 역전 노려" 제목을 달아 보도했다. 다시 3일이 지난 27일에 <한국경제>는 "대역전극 벌인다…1년 늦게 뛴 부산, 사우디와 초접전"이라고 대역전극 가능성을 점치기도 했다. 하루 뒤인 28일 YTN은 [굿모닝 와이티엔] 코너에서 "역대급 박빙…엑스포 D-1 '코리아 원팀' 총력전"이라고 보도했다(아래 캡처 화면 참조).
 
2030 엑스포 개최지 선정을 하루 앞둔 11월 28일 "역대급 박빙"이라고 보도한 YTN(화면 갈무리)
 2030 엑스포 개최지 선정을 하루 앞둔 11월 28일 "역대급 박빙"이라고 보도한 YTN(화면 갈무리)
ⓒ Y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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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여러 언론이 '띄우기' 보도에 동참했지만, 지면 관계상 여기까지만 언급하고자 한다. 더욱 어처구니없는 일은 부산이 사우디에 119대 29로 완패한 결과가 나온 이후 발생했다. 일부 언론이 '석패'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사실상 왜곡한 보도를 이어간 것이다.

<서울신문>은 선정 결과 발표 직후인 11월 29일 새벽 1시 45분에 "[속보] 2030 부산엑스포 유치 불발…사우디에 석패" 기사를 내보냈다가 뒤늦게 "[속보] 2030엑스포 부산 유치 실패…사우디에 막혔다"라고 기사 제목을 슬그머니 바꿨다. 이보다 조금 앞선 새벽 1시 24분에 <서울경제>는 "[속보] 2030 부산엑스포 유치 불발…사우디에 석패"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공영방송 KBS, 기사 제목에 '석패'

이동관 전 방통위원장의 '기관지' 목록에 포함됐다가 사장이 교체되면서 '공정 언론'으로 거듭난(?) KBS의 보도 행태는 더욱 기가 막혔다. 공영방송 KBS는 11월 29일 아침 '뉴스광장 1부'에서 "엑스포 부산 석패…'원팀 코리아'로 뛰었다"고 낯 뜨거운 기사를 방송했다(아래 캡처 화면 참조). 그러면서 "비록 엑스포 유치는 실패했지만, 윤 대통령은 100명이 넘는 정상을 상대로 부산 지지를 호소했고 한덕수 총리와 장관들도 세계 곳곳을 누볐습니다. 이런 노력들이 앞으로 우리 외교의 자산이 됐다는 평가입니다"라고 여전히 성과를 홍보하는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2030 엑스포 개최지 선정 결과가 발표된 후 '석패'라는 단어를 제목에 쓴 KBS 보도(화면 갈무리)
 2030 엑스포 개최지 선정 결과가 발표된 후 '석패'라는 단어를 제목에 쓴 KBS 보도(화면 갈무리)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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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지'의 사전적 의미는 "특정한 개인이나 조직, 단체 따위가 그 기관의 목적을 이루고 이념 따위를 널리 펴기 위하여 발행하는 신문"이다. 이동관 전 방통위원장이 사용한 '기관지 판별 잣대'는 번짓수를 잘못 찾은 것으로 보인다. 누가 되든, 새로 임명되는 방통위원장이 잘못된 잣대를 그대로 받아 쓸지 궁금하다. 인사청문회 때 그(녀)의 기관지 판별법을 반드시 물어볼 필요가 있다.

태그:#기관지, #부산엑스포, #방통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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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대전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교사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맘껏 놀고, 즐겁게 공부하며, 대학에 안 가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상식적인 사회를 꿈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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