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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기사 "다시는 세상에 오지 않을 거예요'에서 이어집니다)

주말, 휴일 잘 보내셨습니까. 저는 어제 교회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생소한 경험을 했습니다.

70대 중반으로 보이는 어떤 남자분이 제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었습니다. 60살인 저로서는 의아할 밖에요. 한사코 사양을 했지만 그분도 막무가내였지요. 기어코 저를 자리에 앉히고는 버스를 탈 때마다 당신은 자리를 양보한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본인의 기쁨이라면서. 그러면서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다른 사람을 위해 하는 일이 삶에 얼마나 빛을 주는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고도 하셨습니다.

제 표현대로 하자면 그분 또한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었던 거지요.

끌어당김의 법칙처럼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한 후부터 이런 사람들을 자꾸 만납니다. 이렇게 우연히 버스 안에서조차.
 
관동대학살 다큐영화 <1923>을 후원하는 콘서트를 연 '이등병의 편지' 작사작곡자 김현성 씨
 관동대학살 다큐영화 <1923>을 후원하는 콘서트를 연 '이등병의 편지' 작사작곡자 김현성 씨
ⓒ 신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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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영화 <1923>을 후원하기 위해 콘서트를 연 '이등병의 편지' 김현성씨가 "알고는 모른 척 할 수가 없었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 시대에 살았던 것도 아닌 100년 전 일이건만.

저도 같은 마음입니다. 김현성씨처럼 저 역시 알고는 모른 척 할 수가 없게 된 거죠. 지난 9월 초, 일본에서 열린 관동대학살 100주기 추모제에 참석하게 된 것부터가 시작이었습니다. 번개탄처럼 피어오르는 정체 모를 기이한 열망에 이끌려.
9월 3일, 씨알재단 주관으로 동경 아라카와 강변에서 열린 관동대학살 100주기 추모제 참석자들
 9월 3일, 씨알재단 주관으로 동경 아라카와 강변에서 열린 관동대학살 100주기 추모제 참석자들
ⓒ 신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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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던 것이 이렇게 연탄불을 피우게 된 것이죠. 열망의 번개탄이 매개가 되어. 관련 행사를 찾아가고, 관련자들을 만나고, 관련자료를 모아 100년 전의 진상을 한땀한땀 그물을 짜듯이, 한코한코 뜨개질을 하듯이 기록해 나가고 있으니까요.

추모제에 오신 분들 중에는 경비가 없어 어디서 급하게 100만원을 빌려서 왔다는 분도 있었지요.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알고는 모른 척 할 수 없는 사람이 되는 비용지불이자, 가슴 속 열망의 끌림이었던 거지요.
 
1923년 관동대학살을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제노사이드로 판결받는 일에 동참을 호소하는 씨알재단 김원호 이사장
 1923년 관동대학살을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제노사이드로 판결받는 일에 동참을 호소하는 씨알재단 김원호 이사장
ⓒ 구미꼬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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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콘서트에는 '2023 관동추모제'를 주관한 씨알재단 김원호 이사장님이 참석하셨습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의 대부(代父)'라고 불릴 만한 분이시죠.

"씨알재단 이사장 김원호입니다. 우선 공연이 성황리에 이뤄진 것을 축하드립니다. 1923년에 대한 사후대책을 저희 씨알재단에서 마련, 그것에 대해 잠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일본에 해방된 지 78년, 한일협정이 체결된 지 58년, 우리와 일본이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가를 거듭하면서 서로 친절한 이웃이 되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이는 과거지사가 정리되지 못하고 봉합되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관동대학살 문제도 같은 선상에서 해결의 실타래를 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씨알재단은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국제사법재판소를 통해서 이 학살이 제노사이드(국민, 인종, 민족, 종교 따위의 차이로 집단을 박해하고 살해하는 행위)임을 밝히고 우리와 일본이 진정한 이웃이 되는 주춧돌을 놓고자 합니다. 오늘 참석하신 여러분들, 관동대학살이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처리될 수 있도록 동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 일은 씨알재단뿐만 아니라 여기 계신 분, 나아가 우리 국민 모두가 참여해야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다음 기사에 계속됩니다)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싣습니다.


태그:#관동대학살, #씨알재단, #김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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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생. 이화여대 철학과 졸업. 저서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좋아지지도 놓아지지도 않는』 『강치의 바다』 『사임당의 비밀편지』 『내 안에 개있다』 등 1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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