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개천사 비자나무숲 오르며 뒤돌아 본 개천사 지붕
▲ 개천사 개천사 비자나무숲 오르며 뒤돌아 본 개천사 지붕
ⓒ 김재근

관련사진보기


에스엔에스(SNS)에 올라 온 사진 한 장이 눈길을 붙들었다. 시리게 빛나는 아침에 흰 댕댕이가 산정을 바라보며 계단에 앉아 있다. 차가운 아침 풍경이 따스한 고요로 가득했다. 아마도 주인은 동창 앞에서, 아님 방문을 열다 말고 서서 그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았을 것이고.

댓글이 해시태그가 많았다. 전남 화순군 춘양면 가동리 천태산 자락에 있는 개천사였다. 그 댕댕이는 '보리'라는 법명을 가지고 있고. 그 사진이 며칠째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인터넷에 물어 보았다, 개천사를.

"대한불교조계종 사찰로 송광사의 말사이다. 신라 흥덕왕 3년(828) 도의(道義)가 창건하였다.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 때 불탔다. 이후 기록이 끊겼다. 1907년 중건하여 용화사(龍華寺)라 하였다. 6·25 때 불탔다. 1963년에 중건하였다."


구우일모(九牛一毛) 같았다. 못 가 본 사찰이 더 많은데 서울에서 전라도까지 천릿길을 나설 정도는 아니었다. 잊기로 했다. 하지만 마음뿐, 인연이랄까. 사진 속 보리가 마음을 떠나지 않았다.

길 떠날 채비를 했다. 출장 일정에 연차 하루를 보탰다. 11월 27일, 길을 나섰다. 겨울비가 내렸다. 추적추적 비 위에 비가 내렸다. 점차 가늘어졌다.
 
절집 들어서는 다리 건너기 전 최즉에 있다.
▲ 개천사 부도탑 절집 들어서는 다리 건너기 전 최즉에 있다.
ⓒ 김재근

관련사진보기

   
산문(山門)은 없었다. 절집 경계로 여겨지는 돌다리 건너기 전 이끼 낀 부도 네댓 기가 조용히 맞아준다. 정면 언덕 위로 지붕이 있고 좌측으로 구름이 내려앉은 산정이 보인다.
 
우측 지붕이 요사채, 좌측 멀리 봉우리가 개천산이다.
▲ 개천사 오르는 길 우측 지붕이 요사채, 좌측 멀리 봉우리가 개천산이다.
ⓒ 김재근

관련사진보기

   
돌계단을 올랐다. 이렇게 환한 고요함이라니. 마당은 은행나무가 주인이었다. 한여름 풍성했을 자태는 옛 영화인 듯 벌거벗은 모습이 안쓰러웠다. 뒤로 대웅전 좌측으로 천불전 우측으로 요사채, 그리고 저 아래 화장실 한 채. 잡스러움은 없었다.

보리가 앉았던 곳은 요사채 오르는 계단이었다. 그날 아침 보리가 본 것을 나도 볼 수 있을까. 대웅전 뜨락에 앉았다. 마당엔 구름이 다녀갔고 간간히 바람도 지났다. 은행잎은 한 줌 바람에 몸을 말리고 있었다. 한편엔 약수 쪼르륵 흐르고.
 
대웅전 뜨락에서 본 모습
▲ 개천사 마당 대웅전 뜨락에서 본 모습
ⓒ 김재근

관련사진보기

   
예전에는 개를 색맹이라고 했다. 그들이 보는 세상은 흑백영화이고. 눈 내리는 날, 개가 폴짝폴짝 뛰는 것은 발이 시려서가 아니라, 환하게 빛나는 것들이 가득한 게 좋아서 그렇다고.

지금은 색약일 뿐이라고 말한다. 빨간색과 푸른색을 구분 못하는 적록색약이다. 흑백의 세상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다만 지독한 근시여서 오륙 미터 너머는 뿌연 세상이라 한다.

여하튼 보리가 본 풍경은, 내가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뿌염과 어둠을 물리치는 빛나는 환희는 아니었을는지. 보이는 게 많고 들은 것이 넘친다고 더 많이 알까. 둘러봐도 산뿐인 마당을 하릴없이 거닐었다.
 
쥔장의 성품이 느껴진다.
▲ 개천사 채마밭 쥔장의 성품이 느껴진다.
ⓒ 김재근

관련사진보기

   
보리는 채마밭 가에서 무심했다. 칠순 노인의 모습으로 쳐다본다. 차마 깨달음의 경지를 묻지 못했다. 그의 정적을 깨우고 싶지 않아서였다.
 
비자나무숲길 옆에 있다. 예전에 산막으로 쓰인 듯.
▲ 산막 비자나무숲길 옆에 있다. 예전에 산막으로 쓰인 듯.
ⓒ 김재근

관련사진보기

  ​
절 뒤쪽으로 돌았다. 비자나무 찾아 가는 길이 고즈넉했다. 쓰러질 듯 위태로운 장남감 같은 집이 스친다. 개천사 비자나무 숲은 천연기념물이다. 제일 큰 나무가 450살 먹었고, 어미 줄기와 자식 줄기가 한 몸인 연리목이라고 하여 '모자나무'라는 애칭도 붙었다. 뿌리에서 올라 온 줄기의 암수까지 구별하는 탁월한 감식력이 놀랍다. '모녀나무'라고 불렀으면 더 정감이 있을 듯도 한데.
  
제일 큰 나무라 한다. '모자 나무'라는 애칭이 붙었다. 450세.
▲ 비자나무 제일 큰 나무라 한다. '모자 나무'라는 애칭이 붙었다. 450세.
ⓒ 김재근

관련사진보기

 
비자나무 사이로 산책로가 구불구불 이어진다.
▲ 비자난무숲길 비자나무 사이로 산책로가 구불구불 이어진다.
ⓒ 김재근

관련사진보기

   
또 하나의 명물인 개천산 거북바위를 찾았다. 숲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걸었다. 한겨울 푸르름이라니 산뜻했다. 진짜 거북 같다. 대개가 그렇듯 이 바위도 주저리주저리 사연이 열렸다(아, 헷갈릴 것 같아서. 개천사는 천태산 자락에 있다. 바로 옆이 개천산이다. 쌍둥이 같달까. 개천사는 천태산을 등지고 우측으로 개천산을 바라본다).

"개천산(497m) 중턱에 있다. 산정을 향해 오르고 있다. 자연석을 이용하여 만든 형상이다. 연원은 알 수 없다. 전해진 바에 따르면 이곳이 도선국사(827~898) 수도처였다. 그가, 거북이 정상에 오르면 주변나라들을 누르고 우리가 우뚝 서리라, 예언했다. 이를 두려워하여 당나라 승려가 개천산 혈맥을 막았다. 일본 장수가 거북의 머리를 잘랐다. 도선이 정상에 철마(鐵磨) 방아를 얹고, 동학교도가 머리를 찾아 붙여 정기를 살렸다. 지금도 개천절에 개천산 정상과 거북 바위에서 단군제를 지낸다."

거북바위가 영험하여 기도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소문이 나서일까. 염원이 가득했다. 각각의 사연을 담음직한 천 원, 오천 원 지폐들이 비에 젖어 거북과 한 몸이 되어 갔다.
​ 
개천산 정상을 향하고 있다. 염원을 바라는 지폐가 머리에 목에 등에 촘촘하다.
▲ 거북바위 개천산 정상을 향하고 있다. 염원을 바라는 지폐가 머리에 목에 등에 촘촘하다.
ⓒ 김재근

관련사진보기

 
보리 보살에게 눈인사 건네고 절을 나섰다. 예전에 들었던 이야기 한 토막 떠올랐다. 왕이 화공들을 모아 놓고 그림그리기 대회를 열었다. 화제(畫題)는 '절'이었다. 조건이 붙었다. 절을 나타내되 절을 그려서는 안 된다. 장원을 차지한 그림은 이랬다.

산 중턱에 연기가 피어오르고 산 아래 계곡 옆으로 물지게를 지고 가는 동자승의 뒷모습이 살짝 보였다. 개천사의 감흥을 이렇게 표현하면 맞으려나. 소박하고 텅 비어 맘이 꽉 찼다. 개천사에서는 하늘에 앞서 마음이 먼저 열렸다.

덧붙이는 글 | '화순저널'에도 실린다. 네이버 블로그(cumpanis) '쿰파니스 맛담멋담'에서도 볼 수 있다.


태그:#개천사, #비자나무숲, #화순저널, #쿰파니스맛담멋담, #천연기념물
댓글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쿰파니스'는 함께 빵을 먹는다는 라틴어로 '반려(companion)'의 어원이다. 네이버 블로그(cumpanis) <쿰파니스 맛담멋담>.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