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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통일 역사에서 남북한 평화통일을 본다>
▲ 국경선평화학교 평화워크숍 안내 <독일 통일 역사에서 남북한 평화통일을 본다>
ⓒ 국경선평화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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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동이 지난 11월 10일부터 12일까지 철원 월하리 국경선평화학교(대표 정지석)가 개최한 '독일 통일 역사에서 남북한 평화통일을 본다' 평화 워크숍에 참가했다. 강사는 독일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현재는 튀빙겐대 한국학연구소 펠로우로 국경선평화학교 석좌교수 한운석 박사였다.

내가 독일과 맺은 인연은 2011년 여름 방학 때 영국 버밍엄 체류를 위해 가는 도중 경유지로의 경험이다. 프랑크푸르트 상공에서 현지의 산과 들과 마을을 내려다봤다. 공항에서 5시간을 보내면서 서점을 둘러봤고 유로화로 기념품을 샀다. 약 한 달 후 귀국 시에는 대기 시간이 짧아 프랑크푸르트 공항 의자에 앉아 컴퓨터로 업무를 봤던 것 같다.

최근 독일에서 광부로 일했던, 팔순이 넘은 분과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1974~1976년까지 3년간 독일 광산에서 일했다며 은혜의 나라, 농장에서 아르바이트할 기회를 준 배려의 나라, 광부와 간호사들에게 부부의 연을 맺어준 나라로 기억하고 있었다.
 
2011년 프랑크푸르트 공항 상공에서 내려다 본 독일의 산, 들, 마을
▲ 상공에서 바라 본 독일 2011년 프랑크푸르트 공항 상공에서 내려다 본 독일의 산, 들, 마을
ⓒ 최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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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으로 동독은 소련, 서독은 연합군에 의해 분할 통치되다가 1949년에 분단이 공식화됐다. 이후 중립 통일론, 베를린 장벽을 세운 대결기, 1969년 서독 빌리 브란트 총리의 신동방정책을 통한 전환기, 1970~1980년대 협력체제 구축기 등을 거쳐 1990년 10월에 통일됐다. 같은 해 12월에 연방의회 선거에서 헬무트 콜이 통일 독일 정부를 구성했다.

독일 통일은 밑으로부터의 평화혁명에 의해 시작됐지만, 동독인 절대 다수가 빠른 통일을 원하는 가운데 편입에 의한 통일로 귀결돼 서독의 엘리트와 자본에 의한 위로부터와 밖으로부터의 통일로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빚어진 통일의 결과를 강사는 동독인의 시각에서 회고하고자 했다. 강연은 4강으로 구성됐다. 독일의 분단과 냉전시대 동서독 관계, 독일 통일과정, 통일 30년 내적통일의 문제들, 분단시대와 통일 이후 개신교의 역할이었다.
 
두 번째 평화워크숍 참가자들. 앉은 이 오른쪽에서 세 번째부터 정지석 대표, 최원영 선생, 한운석 강사임
▲ 국경선평화학교 평화워크숍  두 번째 평화워크숍 참가자들. 앉은 이 오른쪽에서 세 번째부터 정지석 대표, 최원영 선생, 한운석 강사임
ⓒ 최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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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는 꼼꼼하게 준비한 자료와 질의응답을 통해 독일 통일 역사를 들려줬다. 남북한과 독일의 차이점을 여섯 가지로 짚어주기도 했다. 분단의 원인, 베를린의 특별한 처지, 지속적인 경제교류, 내전으로서의 한국전쟁, 유럽 통합운동, 역내 헤게모니 국가들의 역학관계다. 또 독일 통일에 관한 관점의 균형점을 찾을 수 있는 도서로 리하르트 슈뢰더 저, 최기식·정환희 역 <독일 통일에 관하여 잘못 알고 있는 것들>(2014, 법무부)을 소개했다.

강연을 듣고 개인적으로 다음 세 가지가 인상적으로 남는다. 첫째는 베를린의 특별한 역할이다. 강사도 베를린을 '양 독일을 연결해 주는 클립(klammer)과 같은 존재'로 언급했듯이, 베를린은 서독과 동독은 연결하는 가교역할을 했다.

둘째는 1969년 서독 총리 브란트는 동독을 국가로 승인하고 교류와 협력을 강화함으로써 민족 이질화를 막고 이산 고통은 완화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즉 동독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접근을 통해 변화를 시도하고 협조하는 것을 통일 해법으로 봤다. 브란트의 신독일정책은 기본조약을 반대했던 보수당인 기민당도 수용해 헬무트 콜 정부에서도 계승 발전됐다. 콜 정부는 두 차례나 경제적으로 위기에 처해있던 동독 정부에 거액의 은행 차관 지불보증까지 해줬다.

셋째는 분야별로 지속적인 교류가 있었다는 점이다. 1961년 베를린 장벽이 건설된 이후조차도 모든 교류를 단절하지 않았다. 특히 경제교류는 지속했다. 1972년 기본조약 체결 이후에는 동서독의 인적, 경제적 교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1980년대까지 점차로 자유로운 여행, 서신과 소포 교류, 문화 교류, 도시 간 자매결연, 환경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 과학과 기술상 협동을 위한 조인, 꾸준한 무역 등으로 발전해 갔다.

이상의 세 가지 인상적인 내용 중, '서독과 동독을 이어준 역할을 한 베를린과 같은 곳을 남과 북은 어디로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강사도 언급한 개성공단이 그 역할을 하면 좋겠지만 지금은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어디가 좋을까?

은사 중 고향이 북에 있는 철원인 분이 있다. 프랑스의 문명비평가 기소르망이 '20세기 최후의 전위예술'이라고 했던, 1998년 6월 16일 현대그룹 고 정주영 회장이 소 500마리를 몰고 방북하던 날은 무의식적으로 그곳으로 운전대를 돌린 자신을 발견했노라고 했다. 노 은사는 지척에 둔 고향 땅을 밟아보지 못하고, 코흘리개 시절 골목에서 뛰어놀던 추억도 흐릿해져 가고 있다.

독일 통일 과정에 보인 베를린의 가교 역할을 남과 북에도 있는 철원이 그 역할을 하면 어떨까? 인지상정으로 우선 고향을 북에 둔 실향민과 그 가족부터라도 만나게 했으면 한다. 또 정치가들은 서독과 동독의 정치인이 통일 과정에서 보인 포용력을 배웠으면 한다.

한편 분야별 교류가 시작되기를 바란다. 특히 통일 후 인권 차원의 내적 갈등을 겪고 있는 독일을 보면서, 어려서부터 타인을 존중하는 인권교육도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상대를 한 인격체로 존중, 진정한 의미의 통일이 가능하리라 본다.

통일 전 독일에서는 3~4일 동안 개최한 '교회의 날'에 동서독 교인뿐 아니라, 누구나 참가하여 세미나, 예술 등이 어우러진 문화축제를 열었다고 한다. 이번 강연 참가자는 개신교인이 많았던 만큼, 독일에서 개신교가 독일 통일에 큰 역할을 했듯 철원에서 그 역할을 시작하자는 제안이 있었다.
  
명동 필하모니를 운영했던 최원영 선생이 김민기 친필이 든 음반을 정지석 대표에게 기증 중
▲ 음반 기증식 명동 필하모니를 운영했던 최원영 선생이 김민기 친필이 든 음반을 정지석 대표에게 기증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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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미술화가 박진화 화백의 우리 역사가 부여하고 우리 현실에서 솟아나온 그림 설명 중
▲ 박진화 화백의 그림 설명 민중미술화가 박진화 화백의 우리 역사가 부여하고 우리 현실에서 솟아나온 그림 설명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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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박 3일 동안의 강연은 진지했고 참가자들을 고민하게 했다. 통일을 염원하며 이른 아침 소이산 오르기, 명동 필하모니를 운영했던 최원영 선생의 김민기 친필이 든 음반 기증식과 음악감상, 민중미술화가 박진화 화백의 우리 역사가 부여하고 우리 현실에서 솟아나온 미술 이야기와 기획전시 중인 그림 감상은 감동적이었다.

또 김원배 빛고을평화포럼 원장, 김준권 평화나무농장 대표, 김기석 성공회대 전 총장, 이양호 전 고려대 교수 외 참가자들과 먹고 마시며 시·노래·담소가 이어진 향연은 즐거웠다. 이충재 사무총장의 재치 있는 전체 진행과 피스메이커 전영숙 사무국장의 정성스러운 음식은 행복감을 더해줬다.

독일 통일의 가교였던 베를린처럼 철원이든 어딘가에 남과 북을 연결하는 장소를 만들고, 국경선평화학교에서 '교회의 날'이 시작하기를 바란다. 일찍이 영국에서 평화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평화를 품고 미국에서 퀘이커 공동체 체험을 했던 정지석 대표가 12년 전에 철원에 뿌리를 내린 이유이기도 하다. 다가올 미래가 기대되고, 최규훈(愚林) 목사가 워크숍 참가 시 지은 시 '철빗장 국경의 밤'도 여운을 남기고 평화 통일꾼을 다짐하게 한다.
 
철빗장 파숫꾼의 밤/ 소이 빛살 일렁이던 날/ 순롓꾼 잰 걸음 오름으로/ 박제 두루미에 깃세우자// 소이산 국경의 밤/ 빛내림 구름걷힌 날/ 한탄 용트림 염원으로/ 박제 솔개에 날개달자// 도피안 백마병사 지샌 밤/ 소이 하루 신명이는 날/ 철원고지 품앗이 걸음으로/ 생명 솔개 두루미로 솟나게 하자// 하루의 신명/ 하늘에 닿아/ 국경의 밤을 떠올린/ 또 한 사람, 그 또한 통일꾼되었다

태그:#평화통일, #남북가교, #국경선평화학교, #독일통일, #한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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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춤형 부모교육 & 교사교육 전문가로 자연 속에서 국제아동발달교육연구원 공명재학당을 운영하며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다. "글을 짓고 벗을 사귀는 일이 인생 최고의 경지이다(연암 박지원)." 는 말처럼 살면서, 그 경지에 이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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