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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정 독서 지도사가 강원도 춘천 소재 한 부대에서 장병들을 대상으로 독서 지도를 하고 있는 모습.
 정혜정 독서 지도사가 강원도 춘천 소재 한 부대에서 장병들을 대상으로 독서 지도를 하고 있는 모습.
ⓒ 임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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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국회 시정연설에서 "내년 병사 월급을 35만 원 인상해 2025년까지 '200만 원' 달성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고 했다. 반면 정부는 내년 예산안에서 그동안 병사에게 현금성 또는 현물로 지원했던 복지 예산 914억 원을 삭감했다. 이에 따라 병사들은 내년부터 생일 케이크는 물론이고 축구화 구매비나 이발비, 효도 휴가비를 받지 못한다.

한쪽은 어르고 한쪽은 때리는 앞뒤 맞지 않는 예산편성이다. 야당은 조삼모사(朝三暮四)라고 했다. 병영 독서활성화사업 또한 전액 삭감했는데 단견이자 졸속 정책이다. '뭣이 중한지'를 모르는, 정부의 철학 부재를 보여주는 실망스런 결과다.

책읽기 중요성을 반박할 사람은 없다. 더구나 사회와 격리된 장병들에게 독서 효용성은 두말할 나위 없다. 군이라는 특수 상황에 있는 장병들에게 독서는 유용한 매개 수단이다. 나아가 20대 초반 청년들에 독서는 유용한 지적 행위임이 틀림없다. 독서는 사유 능력을 길러주는 한편 상대와 소통‧공감하는 통로다.

국방부와 문화체육관광부는 이 같은 취지에서 수년째 병영 독서활성화 사업을 추진 중이다. 계급을 초월해 책 읽는 병영문화는 의사소통과 상호존중, 배려에도 도움이 된다. 올해도 300여 부대가 참여했으며 병영 독서는 병사들이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한데 전액 삭감돼 내년에는 중단된다.

필자는 병영 독서활성화 추진 위원으로 활동하며 이 사업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안다. 올가을 육군과 해군, 특수전 사령부를 다니며 오히려 확대 필요성을 절감했다. 병사들끼리 생각을 공유하는 모습을 보며 '바로 이것'이라고 확신했다.

특수전 사령부에서 열린 북 콘서트는 책과 독서가 왜 중요한지 거듭 실감케 했다. 행사 내내 사령관은 자리를 지켰으며 병사와 부사관, 지휘관까지 허물없이 어울리는 현장에서 강군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확인했다. IT 기반 현대전에서 전투력은 근육보다는 깊은 사유능력이 좌우하는 경우가 많다. 병영 독서활성화 사업은 바로 강군으로 가는 핵심 프로그램이다.
 
병영 독서를 마친 뒤 정혜정 강사와 필자가 부대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병영 독서를 마친 뒤 정혜정 강사와 필자가 부대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 임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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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예산을 싹둑 자른 건 앞만 본 결과다. 올해 병영 독서 예산은 19억 9894만 원으로 전년보다 28% 줄었다. 사업비가 감소하는 바람에 참여 부대도 421개에서 283개로 급감했다. 참여를 원했던 많은 장병과 부대는 줄어든 예산 탓에 기회를 얻지 못했다. 병영 독서 사업을 늘려도 부족할 판국에 예산이 줄면서 나타난 부작용이다. 병영 독서를 책이나 나눠주는 것 정도로 인식한 관료들 때문에 군은 뒷걸음치고 있다.

한국도서관협회는 날아간 예산을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애를 태우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정부가 병영 독서 사업을 한가한 책읽기 정도로 인식하는 한 뒤집기는 난망하다.

부처 관계자들이 한 번이라도 현장을 찾았다면 있을 수 없는 결과다. 남북 대치 상황에서 우리 군은 상시적 긴장 관계에 있다. 장병들에게는 독서를 통한 긴장 관리가 월급 인상이나 첨단 장비 구축 못지않게 중요하다. 강군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동료끼리 소통하고 하나가 될 때 전투력은 배가 된다.

올해 병영 독서활성화 사업 캐치프레이즈는 '독(讀)한 장병, 미래를 바꾼다'였다. 책 읽는 장병은 자신과 군, 나아가 국가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 깊은 사유능력을 갖춘 군은 흔들리지 않는다.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할 때 우리 군은 싸우면 이긴다.

병영 독서는 시간 때우기가 아니다. 긴장 관리와 전투력 강화, 신뢰 구축, 배려 등 여러 유용성을 지닌다. 정부는 비슷한 이유로 독서 진흥 예산을 대폭 깎았다. 국민독서문화증진 사업은 통째로 날아갔고, 또 어린이를 위한 북 스타트 등 11개 독서진흥 사업도 중단 위기에 놓였다.

책 읽지 않는 군과 국민이 도달할 지점은 한 곳이다. 전투력도 국가경쟁력도 담보하기 어렵다. 북 콘서트 현장에서 만난 한 지휘관은 "책읽기는 결속력과 전투력을 배가시키는 유효한 방법이다"며 병영생활에서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현장 지휘관은 책읽기가 중요하다고 하는데 책상에 앉은 관료들은 생각이 없다. 국회 예산심사에서 관료들의 짧은 생각이 바로 잡히길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임병식 한양대학교 갈등문제연구소 수석 연구위원(전 국회 부대변인)


태그:#윤석열시정연설, #병영독서, #독서진흥, #강군, #국회예산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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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문, 여행, 한일 근대사, 중남미, 중동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중남미를 여러차례 다녀왔고 관련 서적도 꾸준히 읽고 있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 중심의 편향된 중동 문제에는 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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