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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놀고 싶다, 이태원>은 이태원을 구성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각자에게 이태원은 어떤 의미인지, 참사 이후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기억해 왔는지, 앞으로 우리는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이 기록이 또 다른 이야기를 여는 마중물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10⋅29 이태원 참사 당시의 경험이 서술되어 있습니다. 이 점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음악과 사람이 있는 곳, 이태원

이태원을 한 단어로 소개하자면 '다양성'일 것이다. 이태원은 다양한 사람과 음악 장르가 모여 특색 있는 클럽 문화가 만들어진 곳이다. 특히 언더그라운드 문화와 서브 컬처를 기반으로 한 클럽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클럽 DJ로 활동하고 있는 H씨에게도, 이태원은 음악 활동의 시초가 된 곳이었다.

"스무 살 때 처음 이태원 클럽을 방문했는데, 새로운 충격을 느꼈어요. 멋진 DJ의 모습들, DJ의 음악에 맞춰서 노는 다양한 사람들의 에너지에 매료되었죠. 그 후로 DJ 활동도 시작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이태원을 베이스로 활동하고 있어요. 이태원만큼 음악적인 다양성과 깊이를 보장하는 곳은 없다고 봐요."(H)

이태원은 새로운 사람을 자유롭게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가장 먼저 터를 잡는 곳은 이태원이다. 그만큼 이태원에서는 다양한 나라와 문화를 접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다름'이 흠이 되지 않는다. 모두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열린 마음으로 타인을 맞이하는 곳이기에, 환대에 목마른 사람들이 이태원에 모이곤 한다. 클럽 DJ Seesea씨에게도 이태원은 그런 곳이었다.

"이태원은 사람들과 오픈 마인드로 교류할 수 있는 곳 같아요. 다양한 문화가 유입되는 곳이라 열려 있고 자유로워요. 우리 사회는 자신의 다양한 모습을 숨기며 살아가는 경향이 있죠. 핼러윈 축제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있더라도 상관없어요. 그래서 모두가 행복한 축제라고 생각해요. 자신의 정체성을 맘껏 드러낼 수 있는 해방구 같아요."(Seesea)

이태원 핼러윈 축제에서는 남들의 시선에 억눌려 살아가던 사람들, 자신의 정체성을 마음껏 드러내고 싶은 사람들, 모두가 한데 어울려 서로를 반긴다. 핼러윈 축제가 아니었다면 낯선 이에게 눈을 맞추고 웃으며 말을 건네는 일은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이태원 핼러윈 축제는 연결과 환대가 오가는 축제의 장으로 자리 잡았다. 
 
이태원 스트롱 파티 현장 사진
 이태원 스트롱 파티 현장 사진
ⓒ DJ Sees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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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29일, 일상에서 마주친 죽음의 공포

2022년 10월 29일, 그날도 사람들은 어김없이 핼러윈 축제를 즐기기 위해 이태원에 모였다. 길었던 코로나 격리 이후 처음으로 맞는 핼러윈 축제였다. 이태원 상인, 클럽 DJ, 이벤트 기획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기대감에 가득 차 있었다. Seesea씨도 홍대에서 핼러윈 축제 준비로 분주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코로나 이후에 맞는 첫 번째 핼러윈이었기 때문에 엄청 기대하고 있었어요. 코스튬 만드는데 엄청난 공을 들이고, 파티 일정도 2개나 잡혀 있어서 정신없었던 한 주였어요."(Seesea)

H씨도 처음으로 코스튬 복장으로 이태원을 찾았다. 동묘 시장을 돌아다니며 골라 입은 복장이었다. 참사가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SNS에 핼러윈 축제를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즐겁게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그러나 몇 시간 후, H씨의 사진첩에 남아있는 사진들은 끔찍한 참사의 잔상으로 변했다.

"갑자기 소방차 한 대가 쓱 지나가는 거예요. 어디서 불이 났나 하고 있는데, 그 이후에도 소방차 서너 대가 지나갔어요. 그때까지 휴대폰 전파가 안 터졌거든요. 사람이 워낙 많이 모였으니까요. 그래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몰랐죠. 그냥 불이 좀 크게 났나 보다고 생각했어요. 일반적으로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압사 사고가 일어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하니까요.

저는 12시쯤 간신히 인파를 빠져나왔어요. 슬슬 전파가 잡히니까 뉴스 속보도 뜨고... 가족과 지인들로부터 계속 연락이 왔어요. 휴대폰을 봤는데 사람들이 깔려서 심정지가 왔다는 이야기들이 계속 들렸어요. 그 뒤로는 기억이 잘 안 나요. 그냥 집에 빨리 가고 싶었어요. 근데 경찰이 교통 통제를 하고 있어서, 돌아갈 방법도 없고 꼼짝없이 갇혀 있었어요. 계속 앰뷸런스 사이렌 소리가 들리고... 원래 제가 공황 장애가 있었는데, 완치된 지 몇 년 지났거든요. 근데 다시 공황이 오더라고요. 제 기억으로는 새벽 3시 반까지 이태원에 묶여 있었어요. 그러다가 서빙고역까지 걸어가서 간신히 택시를 잡았어요. 집에 돌아와서 잠을 자려고 했는데, 잠은 안 오고..."(H) 


사람이 많이 몰린 탓에 이태원에서는 휴대폰 전파가 터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이태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참사 소식을 한참 뒤에야 알 수 있었다. 소식을 전해들은 뒤 피해자들은 패닉에 빠졌다. 축제가 한창인 이곳에서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고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뉴스에서는 사망자의 숫자를 실시간으로 보도했다. 한 자리였던 숫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무서운 속도로 늘어났다. 유례없이 큰 숫자였다.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지? 소식을 접하고 나서도 계속 부정했었어요. 당시에 언론이 보도 윤리를 지키지 않고 희생자들의 사진을 공개했잖아요. 저도 그 사진들을 어쩔 수 없이 보게 됐거든요. 그 거리, 그러니까 시신이 있던 거리가 제가 맨날 취하면 케밥을 먹던 곳이었어요. 케밥 먹고, 그 위에 있는 식당에서 해장하고 피시방에서 밤새우면서 첫차 기다리는... 그런 곳이었죠. 일상이었던 곳에 죽음이 도사리고 있다는 게 체감되니까 많이 힘들었어요."(H)

당시 이태원이 아닌 다른 지역에 있던 Seesea씨에게도 참사 소식은 견디기 어려운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때 당시 어떤 기분이었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요. 다 지워진 느낌이랄까요. 저는 그때 홍대에서 플레이(클럽 파티에서 DJ가 음악을 트는 행위)를 하던 중이었어요. 그런데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전화가 자꾸 오는 거예요. 이상하다 싶었습니다. 제 차례가 끝나고 쉬는 시간에 참사 소식을 알게 되었어요. 다들 제가 이태원에 있는 줄 알고 전화한 것이었어요. 밖을 내다보니 홍대 앞길에도 많은 사람이 빽빽하게 채워져 있었어요. 사망자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을 뉴스로 지켜보고, 현실 감각이 돌아오면서 무서운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파티를 즐기지 못하고 집에 돌아왔어요."(Seesea)

참사 이후, 유난히 추웠던 겨울
 
2022년 11월 1일 오후 이태원 압사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국화와 메모가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다.
 2022년 11월 1일 오후 이태원 압사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국화와 메모가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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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 이후에도 충격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Seesea씨에게 이태원 참사는 큰 트라우마로 남았다. 참사 이후 별다른 조치나 개선 없이 잠잠했다는 사실도, 트라우마를 악화시켰다. 뉴스에서는 매일 다른 소식을 전했고, 사람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삶을 살아갔다. 그 후로도 크고 작은 재난들이 반복되었다. 그러나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사회에 대한 불신은 정신적인 불안으로 이어졌다.

"정신적인 불안감이 너무 높아졌었어요. 트라우마가 계속되어서 정신과에 가서 울며불며 상담하고 약을 먹기 시작했어요. DJ 일을 다시 시작하기가 한동안은 쉽지 않았습니다."(Seesea)

당시 참사 현장 주변에 있던 H씨에게도 이태원 참사는 지울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았다. 

"한동안은 앰뷸런스 소리만 들으면 패닉이 왔어요. 몸이 떨리고 움직이기 어렵고... 당시에 이태원 참사 피해자를 대상으로 무료 상담을 해줬던 걸로 기억해요. 저도 두 차례 정도 심리 상담을 받았어요. 지금은 많이 괜찮아졌죠. 다만 아직도 이태원역 1번 출구를 못 가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참사를 추모하는 포스트잇이 붙어 있는 그 골목을 못 봐요. 참사 이후에 한 번도 그곳에 발을 디뎌 본 적 없어요. 다 괜찮아졌는데... 그것만 남아 있네요."(H)

참사 이후 이태원에는 짙은 안개가 깔린 것처럼 무거운 분위기가 맴돌았다. 이태원을 찾는 사람은 눈에 띄게 줄었다. 상인들은 가게 문을 여는 것조차 주저했다. 클럽들도 마찬가지였다. 애도 기간 중 문을 굳게 닫은 클럽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체감상 확실히 사람들이 많이 없었어요. 그 겨울이 되게 추웠었어요. 여러 클럽이 문을 닫고, 오랜 기간 쉬었다가 돌아오는 클럽도 있었어요. 코로나에 비극적인 사건까지 일어나면서 여러모로 힘든 분들이 많았을 거예요. 저도 그게 참 걱정이었어요. 잘 버텨주기를, 어서 빨리 날이 따뜻해지고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어요. 그래도 지금은 회복세에 접어들고 있기는 해요." 

혐오 발언에 또 다시 상처 받기도

참사 이후, 희생자들을 비난하는 여론도 있었다. 클럽 문화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이태원 지역에 대한 편견에서 시작된 말들이 대부분이었다. 이태원 지역과 클럽 문화에 대한 애정이 깊었던 H씨에게, 이런 말들은 크나큰 상처로 다가왔다.

"당시 이태원을 빠져나와서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에서 기사님이 그러시더라고요. '그러게, 뭐 하러 사람 많은 곳에 놀러 가서 이렇게 불쌍하게 죽냐'라고요. 그래서 '기사님, 저희 마음이 너무 힘든데 그냥 아무 말씀 없이 갈 수 있을까요?'라고 말하고 갔어요. 그때는 그분이 밉기도 했죠. 지금 돌아보면 그분이 나쁜 사람이라서라기보다는 상황을 잘 모르셨으니까 그렇게 이야기하신 것 같아요. 차 안에서 라디오로만 참사 소식을 들으셨을 거 아니에요. 저희는 참사를 경험한 사람이고요.

이후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희생자를 비난하는 글을 많이 봤었고, 화도 많이 났어요. 너무 분노에 차서 오히려 절망스러웠죠. 어느 순간부터 보고 싶지 않아졌어요. 댓글 창 들어가는 게 무서웠고, 다 두려웠어요. 내가 사랑하는 이태원이라는 공간과 그곳에 순수하게 놀러 온 사람들에 대한 비난을 보고 있기가 힘들었어요. 저는 세월호 세대거든요. 고등학교 2학년 때, 정확히 제가 수학여행을 다녀온 다음 주에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어요. 그때 느꼈던 절망감과 무기력이 다시 찾아왔었어요. 이루 말할 수 없는 종류의 슬픔이 꽤 오랫동안 남았던 것 같아요."(H)


편견은 혐오로 이어졌다. 고요하던 이태원 거리를 혐오의 말이 채우기 시작했다. 피해자들을 향한 비난 섞인 발언에, 분노에 차올랐던 기억이 Seesea씨에게 생생하다.

"기회가 닿을 때마다 이태원역에서 추모했어요. 당시 조용히 추모 의식 중이었는데, 해밀톤 호텔 앞쪽에 어떤 종교 세력 분들이 앰프와 마이크를 가져와 '외세 종교의 미신을 믿어서 그렇게 된 거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어요. 저와 몇몇 분들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당장 사라지라고 윽박질렀던 기억이 나요."(Seesea)

H씨도 혐오 발언을 담은 현수막을 기억하고 있었다.

"제일 무서운 건 올해 핼러윈 축제 때 혐오 발언을 내뱉는 현수막이 다시 걸리는 일이에요. 분향소가 차려졌을 때, 극단적인 정치 성향의 사람들이 유튜브를 많이 찍기도 했죠. 피해자들은 놀다가 죽었는데 보상금이 말도 안 되게 많다는 비난도 있었고요. 그런 나쁜 말들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어요."(H)
 
'이태원 스트롱' 파티 포스터
 '이태원 스트롱' 파티 포스터
ⓒ planet_turbo_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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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의 방식은 다양할 수 있다

참사 이후, 이태원에서 활동하던 클럽 DJ들은 참사를 기억하기 위해 '이태원 스트롱'이라는 파티를 열기도 했다. 보스턴 마라톤 참사 이후, 보스턴 시민들은 '보스턴 스트롱'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폭탄 테러가 있고 나서도 여전히 보스턴이라는 도시는 건재하고, 우리는 잘 이겨낼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은 것이다. 보스톤 스트롱의 슬로건을 따라 파티 이름을 짓고, 파티 수익금의 일부를 이태원 참사의 유족이나 상인회에 기부하기로 했다. 그러나 참사가 일어난 곳에서 파티를 여는 것이 옳은 일일까. 기획자, 클럽 DJ들 모두 고민에 잠겼다. 그러한 고민을 잠재운 것은, '파티도 추모의 방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추모의 방식은 다양할 수 있는 거니까요. 노래하는 사람은 노래로 추모를, 춤추는 사람은 춤으로 추모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마찬가지로 이태원에서 디제잉을 하는 우리는 음악을 통해서 추모할 수 있는 거예요. 물론 국가적인 재난이나 비극이 있을 때 한 주 정도 모든 걸 스톱하는 것도 방법이에요. 슬플 때는 우는 게 맞고, 어느 정도 엄숙함이 유지되어야 하기도 하죠. 그렇지만 아프리카에서는 장례를 치를 때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면서 흥겹게 고인의 마지막을 보내주잖아요.

이태원이 다시 예전의 에너지를 되찾게 만드는 일이야말로 하나의 추모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태원을 저주받은 땅처럼 두는 게 옳은 방식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태원이라는 공간 자체가 잘못한 게 아니니까요. 다른 이유로 참사가 벌어진 거잖아요. 희생자들도 이태원의 에너지와 즐거움을 찾아서 온 사람들이고요. 그렇다면 희생자들이 원했던 그 모습으로 되돌려 놓는 게 추모라고 생각했어요."(H)


시민과 정부의 숙제로 남은 2023년 핼러윈 축제

시간은 계속 흐르고, 다시 핼러윈 시즌은 찾아올 것이다. 이들이 생각하는 2023년의 이태원 핼러윈 축제는 어떤 모습일까. H씨는 트라우마를 이겨내고, 이태원에 다시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저는 이태원에 갈 거예요. 그게 제가 사랑하는 공간을 회복하는 방법이기도 하니까요. 물론 힘들겠죠. 전처럼 흥이 나게 즐기지는 못할 거예요. 사람들도 이태원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가서 핼러윈을 보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적어도 저는 이태원에 남아 있고 싶어요. 아집이 아니거든요. '1년 전에 비극이 있었지만 그래도 나는 놀겠어' 같은 가벼운 마음도 아니에요. 1년 뒤에도 우리는 이태원 참사를 이런 방식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말하는 거죠."(H)

DJ Seesea씨는 예측할 수 없을 것 같다며 입을 열었다. 당연히 핼러윈 축제는 돌아와야 하지만, 아직도 많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행복하게 핼러윈을 즐길 수 있을 순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2023년, 핼러윈 축제가 더 안전해지기 위해서 실질적으로 어떤 해결책이 필요할지 물었다. Seesea씨는 시민의 감시와 문제 해결 의지를, H씨는 지자체와 정부의 통제 인력 배치를 답했다.

"시민들의 지속적인 감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 일이 아니니 모른 척 한다는 사고는 모든 문제를 키울 수 있기 때문에 항상 감시하고 서로 공유하고 보고해야 합니다. 더불어, 참된 반성과 문제 해결 의지가 있어야 진정한 치유의 과정을 밟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 없이는 침전밖에 되지 않으니까요. 하루 빨리 치유가 되고 다시 이태원에서 뛰어놀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Seesea)

"참사가 일어났던 위험한 골목들에 통제 인력을 두는 게 맞다고 봐요. 지자체나 정부에서 충분하게 관리만 해주면 더 이상 이런 일은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참사를 한번 겪고 나면 '핼러윈 축제 금지', '몇 천 명 이상의 행사 금지' 같은 방식으로 대응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행사를 아예 금지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해야 안전하게 행사할 수 있는지 논의가 필요하다고 봐요. 안전 정책의 미비를 보완해서 더 이상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H)

우리가 그리는 이태원의 미래

지나간 과거는 되돌릴 수 없지만, 다가올 미래는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이태원은 어떤 모습으로 변화할 수 있을까? Seesea씨는 이태원이라는 지역의 특성을 이해한 도시 운영이 필요함을 언급했다.

"이태원은 지형이 험준하고 골목들도 크기가 제 각각이고 미로처럼 지어진 도시입니다. 도로 자체도 넓지 않아 항상 정체 현상이 있는 곳이기도 하고요. 이런 특징에 걸맞은 안전한 도시 운영이 필요합니다. 이태원의 다양성을 지키면서도 고도의 상업화로 인한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지 않는 모습이면 좋겠습니다."(Seesea)

H씨는 이태원의 문화를 애정하는 마음과 함께,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이태원을 사랑해주었으면 좋겠다며 힘주어 말했다.

"이태원은 다양한 사람이 모여서 에너지를 내는 곳이에요. 이런 에너지를 발산하는 공간은 서울 어디에도 없죠. 우리가 과거로 완전히 돌아갈 수는 없을 거예요. 그렇지만 과거보다 더 나은 에너지를 만들 수는 있겠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고요. 여러 클럽도, 이태원에서 함께 하는 사람들도, 모두 이태원을 여전히 사랑하고 있어요. 

작년, 올해, 내년… 앞으로 많은 사람이, 그리고 저보다 더 어린 친구들도 이태원에 놀러 올 거란 말이죠. 이태원 클럽 음악이 재밌다, 이태원에는 다양하고 독특한 음식을 먹어 볼 수 있다 등 여러 가지 이유로요. 그런 유입들이 계속해서 잘 융화되었으면 해요. 이태원이 지금보다 더 사랑받는 공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H)


이태원의 회복을 바라는 의미로 시작된 이번 프로젝트, '다시 놀고 싶다. 이태원'.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이태원에서 다시 놀 수 있을지를 물었다.

"사실 저는 지금도 이태원에서 놀고 있어요. '다시 놀고 싶다'라는 말보다는, 이미 놀고 있으니 '같이 놀자'가 더 적절한 것 같아요. 이태원에는 재밌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어요. 꼭 놀러 오시면 좋겠어요. 오시면 벌겋게 취한 제 모습도 볼 수 있을 거예요. 여름에 이태원은 진짜 재밌거든요. 대로변 근처에서 편의점 캔맥주를 마시면 진짜 좋아요. 조금 습하지만 새벽바람도 불고요. 아, 물론 분리수거를 잘하셔야 해요. 딱 한 잔만 먹고, 그러다 보면 다시 또 음악을 들으러 가고 싶어질 거예요. 음악을 듣다가 첫 차를 타거나, 해장 플레이스에서 서로 마주칠 수 있겠죠. 이태원은 그런 재미가 있는 곳입니다."(H)

- 인터뷰어 :  신솔아 / 인터뷰이 : H, DJ Seesea

태그:#이태원, #이태원참사, #1029이태원참사, #다시놀고싶다이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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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구에서 주민들과 마을방송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지역에 주요 현안을 콘텐츠로 제작하고 지역주민과 청소년 대상 라디오 교육을 통해 라디오방송 DJ을 양성하고 있습니다. 2012년부터 용산구에서 활동하고 있는 비영리민간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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