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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탈주민 언어 이해 특강 현장
 북한이탈주민 언어 이해 특강 현장
ⓒ 이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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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언어교육은 북한말을 버리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남북한말 두 가지 모두를 다 잘하기 위해 진행합니다."     

지난 21일 서울 강서구 남북통합문화센터에서 열린 '북한이탈주민 언어 이해' 강연에서 최선영 강사가 이렇게 말했다. 2012년부터 탈북민 교육시설 '하나원'에서 탈북민을 대상으로 '언어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그는 언어교육을 통해 개인별 화법 이외에도 수료 후 학교생활과 정착생활에 도움 되는 활동도 지원하고 있다. 

"북한말, 얼마나 알고 있나요?"     

이날 행사의 부제인 '남과 북의 언어, 얼마나 같고 얼마나 다른가요?'가 말해주듯 이번 강연은 남북 언어 차이에 대한 이해와 대화법이 남북 통합문화에 기여하고 남북 주민 간 갈등을 해소할 수 있다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같은 언어를 쓰지만 탈북민과의 대화와 소통은 쉽지 않다. 북한말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탓이다. 탈북민들의 고충은 더하다. 탈북민들이 대화 중간에 "이 말이 실례되지 않을까요"라며 자주 묻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선영 하나원 언어교육 강사
 최선영 하나원 언어교육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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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강사는 탈북민들이 쓰는 언어를 '발음' '어휘' '맞춤법' 등 여러 주제에 걸쳐 예시를 들어 설명했다. 우선 북한말 발음에 미묘한 차이가 있다. 두만강을 접한 함경도와 양강도 쪽에서 탈북한 사람들은 평양과 황해도 쪽에 비해 '부정 접두어'를 강하게 발음한다. "안 그렇습니다"라는 표현에서 '안'에 힘주어 말하는 식이다.  

우리는 탈북민 비중을 많이 차지하는 함경도 쪽 말에 비교적 익숙하다. 주변에서 자주 듣게 되는 북한말 '구래요?'는 전형적인 표현이다. 'ㅡ'보다  'ㅜ' 발음을 선호한다. 북한말은 가끔 싸우는 말투처럼 들리기도 한다. 우리가 경상도 사투리를 들을 때 큰 소리에 놀라는 것과 유사하다. 

또한 북한말은 우리말에 비해 속도가 빠른 편이다. 강사는 1분에 6백 자 정도 말하는 양강도 혜산 출신 남성의 대화를 녹취로 들려주었는데 내 귀에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거기에 특유의 사투리까지 섞여있어 '대략난감'이었다. 강사는 그에게 천천히 말해도 대화가 가능하다고 조언했다고 말했다.  

"고향이 어디지요. 혹시?"     

북한말 발음과 관련한 의식조사가 눈길을 끈다. 강사는 탈북민 중 40%가 말투에서 차별과 무시를 당했다는 의식조사결과를 인용하면서 "하나원 교육생들에게, '남한사람 10명 중 6명이 탈북민의 말투와 태도 등 생활방식에 불편해한다'는 결과도 주지시키고 있다"라고 말했다.  

위 조사결과를 뒷받침하는 사례는 많다. 필자는 최근 탈북민들과 심층대화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한 탈북여성은 "남한 사람들이 '고향이 어딘가요. 혹시?' 자주 물어와서, 그럴 때마다 하던 말도 거둬들이고 입을 닫는다"며 씁쓸한 경험담을 고백했다. 이는 가뜩이나 말투로 오해받거나 상처받을까 전전긍긍하는 탈북민들이기에, 사람들이 고향을 물으면 매우 민감하고 경계한다는 것이다. 

한편, 탈북민 중에 특정 표현에 대해 "북한에서 그런 말 안 씁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자신이 그 표현을 북에서 사용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강사는 "북한은 1960년대 '주체언어'라는 이름으로 쓰던 말을 대폭 정리해 2만 5천 개 '문화어'를 지정 보급했지만 실제로는 쓰지 않는 말들이 수두룩하다"라고 말했다.  

북한은 '한자 사용'을 전면 폐지했다. 강사는 "문해력에 도움이 되지만 한자를 배우지 않아 탈북민 다수가 자신과 부모 이름 한자를 쓰지 못한다"고 전했다. 하기는 한자교육이 있어도 한자를 모르고 사용하지 않는 우리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뮨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북한에는 남한에는 있는 두음법칙이 없다. 1946년 탄생한 '로동당' 표기가 대표적이다. 하나원에서 교육받은 한 탈북민은 한국에 와서 자기 성 '리'가 '이'로 바뀐 것에 당황했다고 한다. 두음법칙이 적용된 우리 식 성 이름이 처음에는 어색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북한은 라팔(나팔), 록두(녹두) 등 표기를 고수하고 있다. 이처럼 두음법칙을 적용하지 않는 것에 북한도 사실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뭣보다 발음하는데 불편하기 때문이다.
 
북한말 표기 예시
 북한말 표기 예시
ⓒ 이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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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말의 또 다른 특징으로 외래어에 ' 된소리'와 ' 일본식 발음'이 많다. 강사는 땅크, 미싸일. 삐쨔, 스까뜨, 아빠트, 짬, 쩨리, 타치, 프란트(프런트), 나트, 팔프, 레루, 빠다. 도란스, 고뿌(컵) 등을 예시했다.    
  
탈북민들은 '소확행', '복세편살' 등 우리말 신조어가 무슨 뜻인지 고개를 젓는다. 탈북민들이 신조어에 대해 "왜 이리 ' 잡탕말'이 많은지" 불평하지만 북한에도 사실 외래어와 신조어, 지역마다 유행어가 있는데 우리처럼 다양하지 않다고 한다.      

'아기가 호랑이 뒤에 있다'?     

북한사전에는 '아기가 호랑이 뒤에 있다'는 말이 있다. 자음과 모음의 배열 순서가 남북이 다른데 북한은 '겹자음'과 'ㅇ'을 초성 배열 뒤쪽에 배열하고 있고, 따라서 '아기'를 사전에서 찾으려면 '호랑이' 단어 뒤에서 찾아야 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북한은 우리와 달리 글자 모양보다는 소리를 중시하고 있다. 

존대표현도 북한은 우리와 조금 다르다. 북은 의사에게는 '선생'이라는 존칭을 붙여도 운전수에게는 붙이지 않는다. 운전수가 북에서 매력 있고 선망하는 직업인데도 말이다. '사돈님'이라는 표현은 있어도 서방님, 도련님, 아가씨, 올케라는 말은 북에서 쓰지 않는다. 북한은 '사이시옷'도 쓰지 않는다. 한국에서 깻잎논쟁은 거기선 '깨잎논쟁'이라 쓴다. 

흥미로운 것은,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일반인은 물론 연인사이에 '동무'라는 표현이 자주 쓰인다는 점이다. 동무와 비슷한 표현으로 '동지'가 있는데 이는 여자가 남자를 올려 부를때 자주 쓰인다고 한다. 남편을 '세대주'나 '나그네'라 부른다는 것도 특이하다. 

이날 강연에는 탈북민에 관심 있는 학생과 시민 50여 명이 자리했다. 탈북민을 지원하는 봉사단체와 탈북민 전문가들도 여럿 보였다.

한 대학생은 "강의를 듣고서 장차 통일이 되면 북한말을 잘 하는 능력도 일종의 스펙이 될 것 같다"라고 예상했다. 플로어의 80대 할머니는 "남북한 어휘가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이렇게 많이 변하고 쓰임새가 다를 줄 몰랐다"면서 "이번 강의를 통해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자세를 배웠다 "며 소감을 말했다.

남북한 말에 우열이 있을 수 없다. 서로 다를 뿐 틀린 것이 아니며 이러한 차이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언어교육 과정은 남북통합에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다. 끝으로 탈북민들이 하나원 언어교육 이수 후 심화된 교육을 원하면 온라인과 줌으로 표준어와 맞춤법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참고> 다음 북한말(남한에서 통용되는 뜻)을 안다면 당신은 '북한말 고수'다.  
    
딱친구(절친), 바치다(반납하다), 수표하다(서명하다), 몸이 나다(살이 찌다). 몸이 까이다(살이 빠지다), 도덕 없다(싸가지가 없다), 값이 눅다(값이 싸다), 쭉내다(원샷하다), 공민증(주민등록증), 비법(불법)  
    
갔다 오겠습니다(다녀오겠습니다). 잘 주무셨습니까?(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앓지 않았습니까?(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친하자(친하게 지내자), 여보시오, 전화 놓습니다(여보세요. 이만 끊을게요), 새해를 축하합니다(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덧붙이는 글 | 이 내용은 <브런치스토리>에도 게재할 예정 입니다.


태그:#북한이탈주민, #북한말, #두음법칙, #하나원, #남북통합문화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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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메모와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기존 언론과 다른 오마이뉴스를 통해 새로운 시각과 영감을 얻고 있습니다. 주요 관심사는 남북한 이산가족과 탈북민 등 사회적 약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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