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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진하게도 은퇴하면 모든 게 좋을 줄 알았다. 6년 남짓 나를 힘들게 한 주말부부의 삶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고, 자유롭고 풍족한 시간은 여유와 평안의 신세계로 안내할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런 기대가 반만 맞고 반은 틀렸음을 깨닫기까지 채 석 달이 걸리지 않았다. 은퇴 생활이 여유인 건 분명한데, 평안하기만 한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은퇴하니 무엇보다 달라진 건 내가 '집에 있다'는 거다. 깨어있는 시간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직장 동료와 보내는 대신 가족과 지내게 된 것이다. 30년 이상 출근하는 사람으로 살던 내가 아내와 두 명의 아들을 '지켜보는', 새롭고 낯선 세계다.

'지켜보는' 행위가 일상이 되자 이번엔 가족 구성원과의 갈등이라는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아내와는 평소에도 대화를 많이 나누는 편이라 은퇴하고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도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사소한 다툼이 있었지만, 그 여파는 보통 그때그때 해소되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둘째 아들이었다. 첫째는 지방 근무로 어쩌다 마주치는 상황이었고, 내가 갖는 관심은 건강 정도가 다였다. 하지만 대학생인 둘째 녀석은 코로나로 수업도 온라인으로 대체되어 하루 종일 같이 생활하다 보니 일거수일투족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아들의 24시간을 마주하자 걱정이 앞섰다
 
▲ 은퇴하고 정신 차려 보니 나는 가족의 트러블 메이커가 되어 있었다.
 ▲ 은퇴하고 정신 차려 보니 나는 가족의 트러블 메이커가 되어 있었다.
ⓒ 정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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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생활 태도적 관점에서 보면 둘째 아이는 규칙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운 듯한 생활, 그래서 종일 빈둥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내 눈에 녀석의 일상은 나태함과 무위도식 그 자체였다. 결국 나는 잔소리를 하게 되었고 이는 좋지 않은 반응으로 이어졌다. 나중에는 녀석의 말투와 식사 태도까지 거슬렸다. 훈육의 시간은 언쟁의 시간으로 변해갔다.

두 남자 사이의 갈등이 커지자 인내하던 아내도 개입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직장생활에 묶여 있는 나를 대신하여 아들을 이십 년 넘게 홀로 키우다시피 한 아내로서는 초짜 아빠인 주제에 분수(?)를 모르고 아들과 언쟁을 벌이는 내가 한심스러웠을 테다. 아내는 나를 이해시키려다 어느덧 아들 편을 들었다. 그것은 나에게 두 배의 상처로 돌아왔고, 아내는 아내대로 속상해했다. 불이 번지듯 전선이 확대되는 형국이었다.

은퇴하고 정신 차려 보니 졸지에 나는 '트러블 메이커'가 되어 있었다. 오랜 세월 직장생활에서 조직 내 갈등을 나름대로 잘 조정하고 해결했다고 자부하는 내가 가족에게는 문제를 일으키는 말썽꾼이라니, 자괴감이 들었다. 갈등은 가족의 평안을 깨뜨렸고 나에게서 점차 여유도 앗아갔다.

'이게 아닌데' 싶어 마음을 가라앉히고 갈등을 객관화하려 했다. 연구하듯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스스로 해법을 모색하고 하나씩 실천에 나갔다. 고심해 낸 실천법은 크게 세 가지다.

말의 변화, 관점의 변화, 행동의 변화 

첫째, 갈등 조짐이 나타나면 – 즉 지적하고 싶거나 화가 나면 - 한 호흡 쉬고 가능한 한 친절한 어투의 간접화법으로 대화했다. 가령 약속 시간이 촉박한데 아들이 준비하고 있지 않으면 "야! 뭐 해! 준비하지 않고!" 대신 "시간이 이렇게 되었네... 조금 서둘러야 할 것 같지 않니?"하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대개 서로 화를 내는 상황으로까지 가지는 않는다. 약간의 양보로 소정의 결과를 얻어낼 수 있고 표면적 갈등도 줄여주는 것이다.

둘째, 이왕 갈등이 일어났다면 반성하고 이해하는 마음을 갖고 내 선에서 먼저 복기했다. 갈등은 대개 생활 태도나 오해에서 비롯된다. 가령 외출하는 경우를 보자. 나는 미리 준비하는 유형이다. 하지만 아들은 임박하여 아슬아슬하게 준비하는 유형이다. 약속 시간은 다가오는데 준비하지 않는 녀석을 보면 속에서 열불이 나서 참지 못하고 먼저 화를 내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들이 약속에 늦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생활 태도에 따른 '다름'인 것이다.

오해로 인한 갈등 역시 마찬가지다. 미리 예단해 화를 냈는데 알고 보니 아들은 느릴 뿐 자기 딴에는 준비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처럼 복기해 보니 생활 태도와 관련한 것들은 대부분 정답 찾기가 아니라 각자 삶의 양식이라는 점이 이해되었다. 이해되니 반성과 함께 상처 난 마음도 진정시킬 수 있었다.

셋째, 상황을 복기하고 나서는 갈등 상대(아들)와 가능한 형식으로 대화를 나누고자 했다. 내가 잘못한 점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의도를 아들에게 알게 하는 한편, 아들의 생각도 이해하고 싶어서다. 그렇게 하면 대개 내가 양보하거나 중간쯤 지점에서 타협할 수 있었다.

다만 질풍노도 세대인 아들과의 직접 대화는 피하려 했다. 대신 아내를 통해 아들의 생각을 듣고 내 의도를 알려주는 간접 방법을 택했다. 갈등 현장을 아내가 목격했다면 아내에게 묻고 잘못한 부분을 지적해달라고 요청했다. 십중팔구는 도움이 되었다. 자녀를 엄마만큼 잘 아는 존재는 없기 때문이다.

나름 세운 방법대로 실천해 보니, 갈등이 확연히 줄어드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내도 나를 보다 이해해 줬고, 그러면서 자연스레 예전 관계가 회복되었다. 아들과 잘 지내니 이제 집에서 싸울 일이 뭐가 있겠는가.

몸이 약한 편인 아들이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게임을 오래 하면 나는 아들 목이나 허리의 디스크를 염려해 잔소리를 하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여간해서는 잔소리도 하지 않는다. 내 20대 때를 반추해 보더라도 그때는 부모님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으니, 소용없겠다 싶어서다.

요즈음 나는 아들에게 가끔 농담을 건다. 매번 녀석은 썰렁하다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농담을 받아준다. 그렇게 가족 사이로 평화가 다시 자리 잡았고, 도망간 내 여유도 돌아왔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태그:#가족 간 갈등, #은퇴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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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와 산책을 좋아하며, 세상은 더디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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