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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치유 글쓰기 프로그램에서 만나 시민기자가 된 그룹입니다. 20대(Z), 30대(M), 40대(X)까지 총 6명의 여성들로 이뤄진 그룹 'XMZ 여자들'은 세대간의 어긋남과 연결 그리고 공감을 목표로 사소하지만 멈칫하게 만드는 순간을 글로 씁니다.[편집자말]
이사를 하고 나선 출근길 루트가 달라져, 항상 가던 카페 말고 새로운 곳을 뚫어야 했다. 지하철역과 회사 건물 사이의 한 카페에서 요즘은 필수인 키오스크로 익숙하게 주문을 하고 기다리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내 커피가 나오지 않았다.

알고 보니 앱으로 미리 주문한 사람들의 커피가 너무 많아 내 순서는 한참이나 남았던 것. 키오스크 옆 테이블엔 주문서와 테이크 아웃 커피가 체스 말들처럼 가득 세워져 있었고, 셔츠와 구두를 신은 이들은 무신경한 표정으로 자신의 커피를 휙휙 낚아채 가져갔다.

1분 1초가 촉박한 출근길에 끊임없이 테이블로 올라오는 야속한 테이크아웃 컵들을 아련하게 바라보며, 무려(!) 15분이 지난 후에서야 내 커피를 받아볼 수 있었다. 

키오스크쯤이야 빠릿빠릿하게 사용하고, 사이렌오더니 패스오더니 하는 모든 원격주문 앱들을 다 능숙히 사용할 줄 아는 나지만, 초행길 정보의 결핍으로 인한 피해를 보자니 조금 당혹스러웠달까.

앱으로 도착 5분 전에 미리 커피를 시켜두고, 지도에서 실시간 버스 현황을 보며 적절한 시간에 나갈 준비를 하고, 침대에 누워서 우유나 양파를 주문하면 다음날 새벽 문 앞에 놓여 있는 삶. 편리함이 주는 달콤함은 어찌나 중독성이 강한지.

그날 출근길에 맛본 아주 작은 불편함이, 정보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의 일상은 어떨지를 엿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 시대를 살아나가는 누군가는 앞선 기술 혜택에서 소외된다. 그것은 '디지털디바이드'라는 단어로 설명되기도 하는데, 경제적, 사회적 여건 차에 의해 발생하는 정보격차를 의미한다. 이 정보격차는 사회계층의 단절을 가져오기도 한다(출처 : 시사상식사전). 그 예를 찾는 것은 정말이지 어렵지 않다. 

임영웅 콘서트 티켓을 예매하다가

얼마 전 엄마는 '임영웅 콘서트 티켓 2개'라는 엄청난 미션을 나에게 안겨주었다. 전국의 30만 효자워너비들과 경쟁하며, 장장 50분 동안의 트래픽을 견뎌 겨우겨우 2층 끄트머리의 좌석을 꿰찼다. 엄밀히 말하면, 남편의 클릭 덕분으로 한동안 그는 최고의 사위로 칭송 받을 예정이다. 
 
PC와 노트북을 동원한 임영웅 효켓팅의 현장
 PC와 노트북을 동원한 임영웅 효켓팅의 현장
ⓒ 이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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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지켜보며 생각했다. 내가 60대, 70대가 되었을 때 문화생활을 위한 티켓팅 시스템은 어떻게 바뀔까. 대신해서 해줄 자식이 없다면 공연은 포기해야 하는 것일까. 지금도 그런 사각지대에 있는 분들이 많지 않을까. 그때쯤이면 티켓팅을 도와주는 도우미 시스템이라도 개발 되려나.

명절을 앞두고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KTX 예매도 마찬가지다. 코로나 확산 이후 명절 기차표 예매는 100% 온라인 예매로 전환되었다고 한다. 고령자나 장애인에 한 해 온라인이나 전화로 예매 가능한 표는 겨우 10%였다.

결국 취소표를 노리거나 입석 좌석을 구매해야 하는데, '100% 온라인 전환' 같은 급격한 변화 앞에서 노년층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은 큰 벽으로 느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부모님이 맛집 앞에서 한참을 기다려도 순서가 오지 않아 헛걸음을 하며 집으로 돌아오셨다고 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이름과 전화번호를 수기로 적는 것이 아닌 앱을 통해 원격줄서기를 하는 식당이라는 것을 전혀 몰랐던 것이다. 

새로 생긴 유명 맛집을 가볼까 하고 검색을 해보았는데, 원격줄서기 앱으로 저녁 6시에 등록을 해두었더니 저녁 9시에 밥을 먹을 수 있었다는 후기가 있었다. 지금은 간단한 검색 한 번으로 3시간의 기다림을 방지할 수 있었지만, 내가 할머니가 되면 나는 어떤 방법으로 맛집을 다닐까.

전국의 효녀들을 대표하여

우연히 서점에서, 도서 검색 줄 앞에 서 있던, 막역한 사이인 것으로 보이는 두 어르신이 독수리 타자 법으로 "몽….고….ㄹ", "아 빨리 좀 쳐봐! 몽.골.여.행!"이라고 하는 것을 목격했다. 화면이 유달리 크고 키보드가 유달리 아래에 위치해 있어 타이핑이 더더욱 어려워 보여 선뜻 "혹시 도와드릴까요?"라고 말을 건넸다.

내가 대신 쳐드리면 줄도 빨리 줄어들고 나의 책도 더 빨리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이기심도 한 스푼 들어갔던 제스처였지만. 내 줄 앞의 사람이 복잡한 키오스크 세상에서 허우적대고 있다면 작은 튜브라도 던져 줄 여유를 찾아보면 어떨까. 

적극적으로 배우고 시대에 발맞추고자 하는 노력, 소외되는 계층을 배려하는 점진적이고 섬세한 제도, 서로 좀 더 여유를 가지고 돕고자 하는 마음. 이 삼박자가 잘 맞는다면 앞으로 다가올 급변의 세계를 맞이하는 마음에 불안감을 한 스푼 덜어낼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영웅씨, 다음번에는 6일간 공연장에서의 콘서트보다는 호남평야에서 한 달간 공연을 열어줘요. 전국의 효녀들을 대표하여 이렇게 부탁합니다.

그룹 'XMZ 여자들'은 세대간의 어긋남과 연결 그리고 공감을 목표로 사소하지만 멈칫하게 만드는 순간을 글로 씁니다.
태그:#디지털디바이드, #충격받았던일, #임영웅효켓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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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기쁨을 더 자주 기록하고 싶은 취미부자 직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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