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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광평리는 '한라산아래첫마을'이라는 메밀식당으로 유명하다. 마을의 특징과 가치를 상징하는 브랜드라 할 수 있다. 광평리를 포함한 안덕면은 해발고도 200~600m의 수많은 오름군집을 이루고 있는 한라산 자락에 펼쳐져 있다. 광평리 등 북쪽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대부분 지역의 경사도는 2~15%대로 비교적 완만해 마을을 이루고 정주하기에 좋은 자연환경이었다.

이야기가 가득한 오름군집 
 
한라산의 품에 깃든 ‘한라산아래첫마을’ 서귀포 광평리
▲ 한라산  한라산의 품에 깃든 ‘한라산아래첫마을’ 서귀포 광평리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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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 이전으로 더 거슬러 올라가면, 신생대 제4기, 약 120만 년 전부터 제주도 4~5단계의 화산분출로 형성된 화산암 구릉 지형이다. 제주도 지하 최하부에 기반암이 분포하고 그 상부에는 모래와 진흙으로 구성된 미고결 퇴적층과 현무암질 화산쇄설물의 서귀포층, 용암류가 피복하는 제주도의 전형적인 지질구조를 보여준다.

광평리 메밀식당을 찾는 손님들은 마을 뒷산 '고배기동산'을 산책 삼아 즐겨 찾는다. 옛날에 '고백'이라는 화전민이 살았다 하여 '고백이 동산'이라 불린다. 가벼운 트레킹코스, 힐링쉼터 등이 마련되어 있어 삼림욕이나 휴식을 하기에 적합한 자연공간이다.

마을 곳곳의 오름군집도 재미있는 스토리텔링이 전해진다. 삼신왕이라는 왕이 이 산의 봉우리에 깊이 파진 '배리창'이라는 곳에 들어가 삼일간 쉬고 기도하다가 돌아갔다 하여 '왕이메'라 불렀다는 '왕이메오름', 그 서쪽에 이어진 '괴수치오름'과 '돔박이오름', 대비라는 선녀가 하늘에서 이 산에 내려와 사방을 두루 살펴보고 놀다간 일이 있다고 유래된 '족은대비악', 꼭대기 주변에 돌무더기가 서 있다고 이름 붙여진 '돌오름' 등이 줄을 지어 광평리의 독특한 자연경관을 이루고 있다.

제주도의 이색적인 자연자원, 자연이 내린 용천수(湧泉水)는 광평리를 비롯한 제주도 마을의 식수원이었다. 빗물이 지하로 스며든 후에 대수층(大水層)을 따라 흐르다 암석이나 지층의 틈새를 통해 지표로 솟아나는 물이 용천수다. 제주도의 여러 마을들은 자연스레 식수원인 용천수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용천수의 용출량은 그 마을의 인구수 등 규모를 결정하는 근거이자 기준이 되었다.

광평리도 용천수에 주민들의 생명을 의지했다. 뱃남동네 인근에 위치하여 이 지역 거주민들이 식수로 이용하기 위해 돌로 주위를 쌓아 식수 물량을 많이 확보하였던 데서 유래된 현재 가축급수원 '담단물', 감나무가 유난히 많아 '감나물', 몸이라는 해초가 바다에 떠 있는것 같다는 '몸튼물' 등이 광평리 마을을 먹여살렸다. 특별히, 계곡 하천 가운데 물웅덩이로 물 위에 떠있는 행기(놋그릇)를 건지려다 주인이 빠져 죽었다는 옛이야기가 전승되는 '행기소'도 광평리 마을의 소중한 식수원이었다.
 
수많은 생태마을을 품고 있는 설악산 한계령
▲ 설악산 한계령  수많은 생태마을을 품고 있는 설악산 한계령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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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최고보물은 자연과 생태

과연 '한라산아래첫마을'이라는 브랜드에 함축된 이러한 천혜의 자연자원과 경관과 입지를 갖지 않았다면 광평리 같은 외지고 작은 산골의 메밀식당에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찾아올 수 있었을까. 약 300여 년 전에 '조가'들이 50여 호를 이룬 화전민촌 '조가웨' 마을로 설촌되어 4.3사건으로 소실된 '잃어버린 마을'이 1963년에 다시 복원되어 오늘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광평리뿐 아니라, 제주도뿐 아니라, 자연이야말로 한국의 농산어촌 마을마다 자랑할 만한 최고의 보물 같은 자원이자 자산이다. 환경부에서도 자연환경보전법 제42조에서 '자연생태 우수마을'을 따로 정하고 있다. 이 법에 따르면 환경부장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생태ㆍ경관보전지역안의 마을이나 생태ㆍ경관보전지역밖의 지역으로서생태적 기능과 수려한 자연경관을 보유하고 있는 마을을 생태마을로 지정할 수 있다. 

'자연생태우수마을'은 한마디로, 자연환경 및 경관이 잘 보전되어 있는 마을이거나, 마을주민들의 노력으로 자연환경 및 경관이 잘 보성된 마을로 정의된다. 생태ㆍ경관보전지역 등 우수한 생태지역을 포함한 지역, 또는 숲·습지·철새도래지 등 생태적 가치가 높은 지역에 마을이 자리잡고 있어야 한다.

또 마을공원 등 녹지공간을 확보하고 수령이 오래된 나무, 동·식물 서식지 등 경관을 갖춘 지역이라야 한다. 따라서 마을주민들의 생활양식도 친환경이라야 한다. 취락구조, 건축물 등이 주변환경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태양열 등 신재쟁 청정에너지와 돌담, 흙벽, 나무 등 친환경건축재를 사용해야 한다. 무공해 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오수처리시설도 갖추어야 한다.

정부는 이렇게 지정된 생태마을에 대해서 공공시설 등 해당 지역주민을 위한 편의시설의 설치 및 주민소득증대 방안을 우선적으로 강구ㆍ시행하여야 한다. 이후, 도시개발 등으로  생태적 기능과 수려한 자연경관 등이 크게 훼손된 경우에는 생태마을의 지정을 해제할 수 있다. 

아울러, 자연형 하천 조성, 녹화, 생태연못, 생태공원 등 오염된 지역이나 생태계가 훼손된 지역을 주민들의 노력으로 복원한 효과과 우수한 마을은 '자연생태복원 우수마을'로 따로 지정한다.     
무주 서면마을의 이야기가 지줄대고 흐르는듯한 금강
▲ 금강  무주 서면마을의 이야기가 지줄대고 흐르는듯한 금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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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인간이 조화로운 마을이라야
 

'자연(自然)'은 "사람의 힘이 더해지지 아니하고 세상에 스스로 존재하거나 우주에 저절로 이루어지는 모든 존재나 상태"를 뜻한다. 한마디로 '스스로 그러함'이 곧 자연이다. 특히, 한국의 마을에서는 자연이 전통적으로 '풍수지리(風水地理)'라는 방법론으로써 마을에 적용되고 체화되었다.

구체적으로 땅의 기운, 지기(地氣)에 대해 음양과 오행, 주역의 논리로 체계화한 것이 풍수지리라 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전통지리라고도 칭할 수 있는 풍수지리는 19세기까지 실학자들의 지리관, 동학 같은 개벽사상의 밑바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일제에 의해 미신으로 격하, 왜곡되면서 봉건시대의 속신으로 폄하되고 무시된 것도 역사적 사실이다.  

풍수지리는 우리 조상들이 일찍부터 자연 속에서 삶을 영위하려고 통찰하고 지각한 지혜에 바탕을 두고 있다. 특히 농경을 시작하면서 작물의 재배와 성장과 직결되는 땅의 성격과 분포의 차이를 기의 차이로 이해함으로써 이론적 토대를 갖추게 되었다.

여기에 춘추전국시대 이후 기의 변화와 동정을 음양으로 파악하는 방법론까지 접목되며 학문적인 차원의 풍수지리서로까지 발전했다. 비·눈·바람 등의 기후현상, 토양, 수분, 지형, 생태계 내 물질순환 등 일체의 자연현상을 기의 작용으로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이다.
 
보석같은 바다, 섬, 하늘에 둘러싸인 서귀포 강정마을
▲ 강정 바다  보석같은 바다, 섬, 하늘에 둘러싸인 서귀포 강정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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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지리는 본질적으로 땅에 인간이 어떻게 잘 조화해 살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땅은 좋고 나쁜 것이 없고 스스로 그러한 모양, 자연상태로 존재할 뿐이다. 그러한 땅에는, 또는 자연에는 인간이 조화해서 살아야 하므로 인간이 조화로운 땅의 기를 느껴서 마을이나 주택의 입지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문명은 인간을 점차 자연에서 멀어지게 했을 뿐이다. 풍수지리는 땅이 살아야, 자연이 살아야 사람도 살 수 있다는 논리에 다름 아니다. 마을도 마찬가지다. 마을도, 마을사람도 저절로 그러해야, 자연스러워야, 잘 살 수 있다.

태그:#마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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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연구소(Commune Lab) 소장, 詩人(한국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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