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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31부터 6월 5일까지 친구들과 두 달여 동안 얼레벌레 이탈리아를 자유로이 여행하며 겪은 이야기를 쓰려 합니다.[기자말]
시라쿠사에서 라구사로 가는 길 풍경
▲ 라구사 가는 길 시라쿠사에서 라구사로 가는 길 풍경
ⓒ 송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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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9일은 라구사로 이동해야 하는 날이었다. 'trenit'에 시라쿠사에서 라구사로 가는 기차 검색을 했더니 운행이 없다. 혹시 앱에 문제가 있나 싶어  9일이 아닌 다른 날을 넣어 검색했더니 운행 일정이 뜬다.

'뭐지?'
'왜 9일만 운행을 안 하지?'


기차역에서 티켓 판매기에서 확인을 해도, 매표소에서 사람에게 직접 물어봐도 그날은 운행이 없단다. 부활절이라 운행을 안 한단다. 혹시 버스는 있을까 해서 알아봤지만 시라쿠사에서 출발하는 버스 운행 일정은 없었다. 맙소사!

부활절엔 이동을 하지 말란 얘긴가? 아무리 가톨릭 국가라지만 너무한 거 아닌가?일정을 조정할 수 없는 여행자들은 어떡하라구? 라구사 숙소 예약은 이미 해놓은 상태인데... 난감했다. 구글로 검색을 해보니 카타니아에서 라구사로 가는 버스는 있다. 그러나 카타니아는 우리가 갈 라구사와는 반대 방향에 있기 때문에 한 시간 반을 거꾸로 갔다가 돌아가야 해서 두 시간 십분 정도의 거리가 네 시간 반으로 늘어난다.

카타니아를 거쳐 가는 방법은 최후의 방법으로 남겨두고 좀 더 빨리 갈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는지 찾아 보기로 했다. 우선 현재 숙소 주인에게 방법을 물었다.

"혹시 당신들이 원하면 내 차로 데려다 줄 수도 있어. 다만 지금은 밀란에 있어서 내일 점심때쯤 시라쿠사에 도착할 거야."
"오후여도 괜찮아. 데려다주면 고맙지."


얼마 후 숙소 주인한테 연락이 왔다.

"비행시간이 오후로 연기되어 데려다줄 수가 없을 것 같아. 미안해. 택시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어. 비용은 120유로 정도 할 거야."
"음 비싼데... 좀 더 생각해 볼게."


돌아가긴 하지만 비용을 아끼기 위해 버스를 타고 가야 할 것 같다. 시라쿠사로 올 때 터미널에서 숙소까지 타고 왔던 택시 기사한테 연락을 했다. 신시가지 버스터미널까지 10유로에 데려다주겠단 연락을 받았다.     
 
시라쿠사에서 라구사로 이동하는 길 풍경
▲ 길 시라쿠사에서 라구사로 이동하는 길 풍경
ⓒ 송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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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시라쿠사 숙소 주인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라구사 숙소 주인에게 픽업을 부탁해 봐. 시라쿠사에서 라구사로 가는 것 보다는 라구사에서 픽업을 하는 것이 좀 더 저렴할 거야."

갑자기 머릿속에 전구가 켜지는 느낌이었다. 그런 방법도 있구나! 바로 라구사 주인에게 연락을 했는데 저녁때까지 답이 없다. 포기하고 있었는데 밤중에 자고 있던 친구가 Whatsapp 문자에 깼다. 라구사 주인에게 몇 시에 픽업하면 되겠냐고 연락이 왔단다. 그러더니 잠이 덜깬 친구는 자기 휴대전화의 비밀번호를 풀어주고는 다시 잠에 떨어졌다.

친구의 휴대전화가 꺼질까 봐 틈틈이 클릭을 하며 라구사 숙소 주인과 연락을 주고받았다. 밤 11시 넘은 시간까지 연락하던 끝에 100~110유로 정도면 가능하다고 했다. 시라쿠사에서 가는 것보다는 확실히 저렴했다. 좀 더 협상했다. 혹시 100유로 이하로는 안 되겠냐고 물었다.

"3명이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비용이 아주 적진 않을 텐데... 픽업서비스를 받을래? 대중교통을 이용할래?"

100유로에 합의를 보았다. 세 사람과 여행 가방 세 개 포함이라는 것도 확인받았다. 혹시 나중에 다른 말을 할 수도 있어 미리 다짐받았다. 자정이 넘었다. 마지막으로 몇 가지 정보를 알려 준다. 12시 30분에 알려준 주소로 갈 것이고, 차는 검은색 밴이고, 기사 이름도 알려줬다. 잘됐다.

숙소 주인이 밤늦게까지 교통편에 대해 같이 고민해 주고 도와준 것이 고마웠다.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그의 따뜻함이 느껴진다. 역시 여행은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중요해!

다음 날 아침 떠나기 전에 짐을 싸서 마당에 내놓고 차가 올 때까지 동네를 좀 더 돌아보았다. 이동하는 동안 먹을 점심거리를 사러 가는 사이 픽업 차량이 10분 안에 도착한다고 연락이 왔다.
 
라구사로 이동하는 밴의 웰컴캔디
▲ 웰컴캔디 라구사로 이동하는 밴의 웰컴캔디
ⓒ 송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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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시간을 잘 지켜준 것에 호감이 갔다. 숙소 앞 골목이 좁아서 차가 들어올 수 없었다. 부랴부랴 캐리어를 끌고 약속 장소로 나갔다. 검은색 밴이 서 있었다. 짐을 트렁크에 싣고 차에 탔다. 승합차라 좌석도 넉넉했고 엄청 깨끗했다.

그리고 좌석엔 웰컴 캔디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우리는 나란히 앉아 앞자리에 발을 뻗고 아주 편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100유로의 행복이다. 시라쿠사에서 라구사까지 가는 길도 편하고 승차감도 안락하고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도 싱그러웠다.   
   
식탁에는 먹거리가 놓여 있고 벽걸이 칠판에는 환영한다는 글귀가 씌어 있다.
▲ 라구사 숙소 주방 식탁에는 먹거리가 놓여 있고 벽걸이 칠판에는 환영한다는 글귀가 씌어 있다.
ⓒ 송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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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한 시간여 만인 1시 반쯤 라구사에 도착했다. 우리가 알려준 숙소라며 다 왔다고 한다. 번거롭지 않고 편하게, 빠른 시간에, 비용도 이 정도면 아주 잘 왔다고 생각했다. 주인이 알려준 대로 체크인하고 들어갔다. 내부가 아주 깨끗하다. 건물도 오래되지 않은 건물이었다. 산뜻하고 정갈해서 맘에 들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코너에 초콜릿이 놓여 있다. 출출해서 한 개를 집어서 입에 넣었다. 기분이 좋아졌다. 내부는 불을 안 켜도 될 만큼 환하다. 볕이 잘 들어온다. 숙소는 2층이었다. 주방과 냉장고에는 먹거리들이 잔뜩 있었다. 그리고 방에서도 주방에서도 거리가 보이는 전망이 좋았다. 이곳에도 봄이 오는 모양이다. 어린 나뭇잎이 연둣빛으로 돋아나고 있었다.   
 
현관문을 들어서면 코나 테이블에 쿠키와 초콜릿이 손님을 반긴다.
▲ 라구사 숙소 응접실 쿠키 현관문을 들어서면 코나 테이블에 쿠키와 초콜릿이 손님을 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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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구사에서는 이동하기 쉽게 기차역 근처 신시가지에 숙소를 잡았다. 짐을 풀어놓고 동네 길도 익힐 겸 해서 슬렁슬렁 나갔다. 점심을 숙소에 있는 간단한 먹거리로 대충 때웠더니 배가 고프다. 숙소 근처엔 문을 연 식당이 거의 없다. 결국 식당을 찾아 구시가지인 이블라(Ibla)까지 내려갔다.  

신시가지와 구시가지의 고도 차이가 크기 때문에 구시가지는 계단을 한참 내려가야 한다. 구글 지도로 검색해서 That's Moro라는 식당에 갔는데 예약이 꽉 차서 예약을 안 한 우리의 자리는 없었다. 부활절이라 문을 연 식당도 드문 데다, 있다 해도 이미 예약이 다 되어 있어 우리가 갈 곳은 없었다. 점심도 저녁도 굶어야 하는 건가? 
         
차구사 숙소에서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
▲ 창밖 풍경 차구사 숙소에서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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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부활절은 힘들어! 교통도 식사도 어려워! 식당은 포기하고 지나가다 문을 연 bar에 들어가 실내에서 식사가 가능하냐고 물었다. 실외에서는 추워서 식사할 수가 없었다. 메뉴에 파스타가 있어 치킨 튀김과 정어리 파스타, 모든 메뉴, 탄산 와인을 주문했다. 기대보다 음식도 맛있고 친절해서 좋았다.
 
부활절에 문을 연 식당도 별로 없고 문을 연곳은 예약손님만 받아서 지나가던 bar에서 먹은 저녁
▲ 부활절 저녁 부활절에 문을 연 식당도 별로 없고 문을 연곳은 예약손님만 받아서 지나가던 bar에서 먹은 저녁
ⓒ 송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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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까지 돌아갈 길이 멀다. 하염없이 계단을 올라 숙소로 가야 한다. 계단이 끝나가는 지점부터 신시가지라 할 수 있다. 계단이 끝나는 곳에 뷰포인트가 있다. 뷰포인트로 가는 길이 있고, 그 옆길에 또 다른 전망대가 있어 거기서 전망을 구경하고 사진 찍는 사이 앞서갔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언니들 어디에 있어요? 왜 안 와요? 다른 길로 갔어요?"

아마도 밤중에 같이 가던 두 사람이 안 보여 많이 당황했나 보다. 불안해 할 친구를 생각하며 친구에게 달려갔다. 그녀는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 뒤로 한동안 그녀는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덧붙이는 글 | 브런치에도 올립니다.


태그:#라구사, #부활절, #대중교통, #시라쿠사, #B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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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성과 감동은 늙지 않는다"라는 말을 신조로 삼으며 오늘도 즐겁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에 주저앉지 않고 새로움이 주는 설레임을 추구하고 무디어지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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