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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31일부터 6월 5일까지 67일간의 이탈리아 여행기입니다. 때로는 셋이 때로는 둘이 좌충우돌 하면서 살아낸 체험기, 생존기입니다. [편집자말]
시칠리아에서 여행하는 동안 버스를 타기도 하지만 기차가 있으면 기차 이용을 우선으로 했다. 'trenit'이라는 앱을 휴대전화기에 깔아 자주 이용했다. 기차 시간표와 목적지가 잘 나오기 때문에 일정을 짜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연착이나 특정한 날 운행 여부까지도 알아볼 수 있다. 숙소를 구시가지 오르티지아에 잡으면 버스터미널이나 기차역까지 1km 이상을 걸어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긴 하지만 그것을 감내해도 좋을 만한 곳이 오르티지아다.

노토는 시칠리아에서 바로크양식의 3총사로 꼽히는 세 도시 중 하나이다. 누구는 '황금빛 도시'라 하고 누구는 '고급스러워 보이는 소도시'라고도 했다. 시라쿠사에 머무르는 동안 하루 짬을 내어 다녀오기 딱 좋은 도시였다.

노토로 가는 기차는 시라쿠사 중앙역에서 10시 30분에 첫차가 있다. 중앙역은 신시가지에 있고 숙소에서 역까지 가려면 1.4km 정도 걸어가야 한다. 숙소를 구시가지인 오르티지아에 잡았기 때문이다.

버스가 있다고는 하나 버스 기다리는 시간과 타고 가는 시간까지 계산하면 걷는 게 빠를 수도 있다. 캐리어 없이 간단한 슬링 백 하나만 메고 가니 부담도 없었다. 천천히 구경하며 걸어갈 셈으로 9시쯤 숙소에서 나섰다. 4월이라 걷기에 더 할 나위 없이 좋은 날씨였다.
  
노토역에서 내려서 중심가까지 가는 길에 아름드리 가로스가 양쪽에 늘어서 있다.
▲ 노토 가는 길 노토역에서 내려서 중심가까지 가는 길에 아름드리 가로스가 양쪽에 늘어서 있다.
ⓒ 송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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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쿠사에서 30~40분 정도의 거리로 아주 가까운 편이다. 역에서 내려 언덕길을 15분쯤(1.1km) 올라가면 아치형의 문(Porta Reale o Ferdinandea)이 나오고 곧바로 중심가인 Vittorio Emanuele 거리로 이어진다. 노토는 아주 작은 도시이다. 돌아보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진 않지만 걷다 보면 매력에 빠지게 된다.

노토는 1693년 대지진으로 시칠리아 동쪽의 도시와 마을들이 초토화된 후 당대의 유명 건축가들에 의해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된 도시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도시가 북쪽의 약간 높은 지역과 남쪽의 평탄한 지역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중심이 되는 대성당을 포함한 메인 스트리트는 남쪽에 위치한다.

사실 노토는 중심거리인 비토리오 에마뉘엘 거리에 성당이나 시청 등 주요 건물들이 많아 그 거리만 구경해도 충분하지만 숨겨진 보석이 몇 군데 있다. 그중 미리 검색해서 위치를 알아둔 곳이 있다.

비토리오 에마뉘엘 거리에서 한 블록 북쪽, 즉 대성당 북쪽에 Scalinata Fratelli Bandiera라는 긴 계단이 있다. 계단의 챌판(계단 수직면)에 그려진 멋진 그림을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자신 있게 데리고 갔는데 빈 계단뿐이었다. 아니 이런!
  
왼쪽은 '22년 6월에 방문했을 때의 사진이고 오른쪽은 '23년 4월에 갔을 때의사진이다. 아직 꽃축제 전이라 빈 계단으로 남아 있었다.
▲ scalinata Fratelli Bandiera(Fratelli Bandiera 계단) 왼쪽은 '22년 6월에 방문했을 때의 사진이고 오른쪽은 '23년 4월에 갔을 때의사진이다. 아직 꽃축제 전이라 빈 계단으로 남아 있었다.
ⓒ 송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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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계단에 그려진(아마도 하나의 큰 그림을 잘라서 계단 수직면마다 붙인 듯?) 그림이 있어야 하는데... 혹시나 잘못 왔나 싶어 구글 지도와 사진을 다시 확인해 봤지만 틀림없는 이 장소였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었다. 멋진 사진이 나올 수 있는 장소였는데 못내 아쉬웠다.

사실 난 작년에 여기에 왔었다. 그리고 매력에 빠져 이번에 친구들을 데리고 두 번째로 방문했다. 작년 6월에 왔을 때 봤던 풍경이 매우 예뻐서 포토존이라고 친구들을 데려갔던 것인데 갑자기 거짓말한 것처럼 되어버렸다.

'왜 그림이 없을까'를 생각해 봤다. 그림이 있는 멋진 긴 계단은 5월의 꽃축제 무렵의 장식이 1년 동안 이어진 것 같다는 게 내 생각이다. 멋진 장식을 보려면 5월 꽃축제 이후에 가야 할 것 같다. 아쉽다. 4월에 갔더니 그림 계단을 보지 못했다. 친구야! 다음에 다시 와!
  
다른 건축물과 달리 종탑이 반원형이어서 전망도 예쁘고 어느 위치에서 사진을 찍어도 멋진 사진을 얻을 수 있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 Montevergine 교회 종탑 다른 건축물과 달리 종탑이 반원형이어서 전망도 예쁘고 어느 위치에서 사진을 찍어도 멋진 사진을 얻을 수 있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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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엔 전망이 좋은 Montevergine 교회에 올라갔다. 교회 내부 관람은 무료지만 종탑에 올라가려면 2.5유로를 내고 티켓을 끊어야 한다. 종탑이 높진 않지만 자체가 높은 지대에 있어 노토 구시가지가 잘 보인다.

전망이 아주 좋다. 게다가 종탑이 반원형으로 오목해서 어느 쪽 풍경이든 잘 보인다. 왼쪽으로는 위엄 있고 장엄한 대성당이 보인다. 어떻게 사진을 찍어도 잘 나오는 포토존이다. 여기서 인생 최고 장면을 건질 수도 있다. 종탑 올라와서 아름다운 전망을 보고 인생 최고 장면을 건지는 것만으로도 노토에 온 건 성공이라는 생각이다.

사람들은 꾸준히 올라왔다. 공간이 좁아서 오래도록 머물 수는 없었다. 풍경을 눈에 담고 마음에 담고 내려와 점심 먹을 식당을 찾아 나섰다.
  
정어리와 펜넬과 잣과 건포도를 곁들인 파스타인데 정어리의 비린내가 나지 않고 맛있다. 마요네즈 소스를 겿들인 문어샐러드. 감자와 퀴넬과 야채 볶음을 곁들인 소고기 등심
▲ 점심 정어리와 펜넬과 잣과 건포도를 곁들인 파스타인데 정어리의 비린내가 나지 않고 맛있다. 마요네즈 소스를 겿들인 문어샐러드. 감자와 퀴넬과 야채 볶음을 곁들인 소고기 등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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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한 블록 내려와 비토리오 에마뉘엘 거리의 Cassaro Bistrot에 들어갔다.
정어리, 회향(펜넬), 잣, 건포도를 곁들인 스파게티, 감자, 퀴렐과 야채 볶음을 곁들인 소고기 등심, 마요네즈 소스를 곁들인 문어를 주문했는데 세 가지 음식이 다 맛있다.

혹시 나의 지인이 노토에 간다고 하면 추천해 주고 싶은 맛집이다. 구글 지도에도 저장해두었다. 후식으로 그라니따 맛집이라는 caffe classica에 가서 아몬드와 커피 그라니따(슬러시와 유사)를 주문해서 먹어본 결과 내 입맛에는 아몬드 그라니따가 좋았다. 몇 군데 들르지 않았는데도 시간은 훌쩍 흘렀다.

돌아오는 길에 대성당에 들렀다. 대성당은 노토의 중심가에 있고 높은 계단 위에 지어진 건물이라 그 자체로 위엄이 있다. 햇빛을 받은 황금빛 건물은 화려하게 차려입은 귀부인의 모습 같다. 그러나 과하지 않고 기품이 있어 보인다.

성당 내부는 1996년 붕괴 이후 재건한 것이라 예스러움은 느껴지지 않지만 단아하다. 간단히 둘러보고 나왔다. 노란색 석회암으로 지어진 바로크양식 건축물인지라 외관을 보는 것만으로도 아름답다. 긴 계단 한군데 앉아 여유를 가져보는 것도 여행자의 낭만인 것 같다.
 
높은 계단위에 지어진 성당으로 위엄을 보여주며 노란색응회암으로 지어진 바로크양식의 건물.햇빛을 받아 노란색으로 빛난다.
▲ 대성당 높은 계단위에 지어진 성당으로 위엄을 보여주며 노란색응회암으로 지어진 바로크양식의 건물.햇빛을 받아 노란색으로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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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두 시간에 볼 수 있을 만큼 작은 도시이긴 하지만 시간이 있다면 하루쯤 시간 내서 천천히 둘러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시청 내부 관람+시청 테라스+nicolisi 성당 통합권을 5유로에 끊어 시청 테라스에서 시내를 둘러보는 것도 추천한다. 골목을 천천히 둘러보며 산책하고 기념품 가게 구경도 하고 예쁜 카페에 앉아 젤라또나 그라니따를 먹으며 즐기는 것도 좋은 것 같다.

다음에 다시 올 기회가 있다면 5월 꽃축제 때 와 보고 싶다. 혹시 이곳에 오실 분은 5월 꽃축제 때 방문할 것을 추천한다. 또 한 가지 팁은 시청 테라스에서 내려다보면 계단의 그림이 더 멋지게 보인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덧붙이는 글 | 브런치에도 올립니다.


태그:#시칠리아, #시라쿠사, #노토, #바로크 건축, #노토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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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성과 감동은 늙지 않는다"라는 말을 신조로 삼으며 오늘도 즐겁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에 주저앉지 않고 새로움이 주는 설레임을 추구하고 무디어지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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