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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은 '집', '땅, '길'의 3위 일체로 완성된다. 구체적으로 인간이 거주하는 주택으로서의 '집', 물자 생산과 공급 장소, 경지로서의 '땅', 농가와 인간과 물자의 연결과 소통을 이어주는 도로로써 '길' 등이 '사람 사는 마을'을 구성하고 운영하는 3가지 핵심요소라 할 수 있다. 한마디로 마을의 생존 조건이자 생업 기반이 '땅'이다.

따라서 좁은 의미의 마을(취락)은 가장 중심적인 요소인 '집'의 결합체로 규정하되, 넓은 의미로는 인간 생활과 관련된 생활 무대 전반으로서, 집을 비롯해 경지, 공한지 등의 '땅', 도로, 수로 등의 '길'을 포함해야 비로소 마을을 만들고 꾸리고 대대손손 지속가능하게 발전하고 진화할 수 있다.

무엇보다 삶의 터전은 '토지(땅)'에 긴밀히 밀착되고 좌우된다. 다소 차이는 있고 특징은 다를지언정, 결국 농촌, 산촌, 어촌의 마을은 모두 토지(땅)에 생업 기반을 거의 의탁하고 있다. 마을의 '땅'이란 마을이 입지하는 특정지역으로서의 '땅'인 것은 물론, 장기간에 걸쳐 생활과 생존을 의지하는 농업 등 생업 기반으로서의 '땅'이라는 중차대한 의의와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특정한 입지조건의 '땅'에 장기간 뿌리를 내리고 대대로 고착되는 마을은 보수성이 강한 지역 주민 특유의 생활 양식으로 체화된다. 나아가 지방색(地方色) 또는 지역감정이라는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고유 성격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땅'에 기반한 지역성, 동질성으로 인해 내부 주민 상호 간에 일종의 사회적 자본으로서 결속력과 공동체성이 강해지기도 한다. 이렇게 농산어촌 지역의 마을을 도시의 동네와 구분짓는 본질적이고 실제적인 장소성, 지역성, 공동체성 등의 특별한 차이점이 바로 '땅'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신라에서 백제로 넘어가는, 정감록 십승지 마을 무주 무풍면으로 들어서는 관문인 ‘나제통문’
▲ 무주 나제통문  신라에서 백제로 넘어가는, 정감록 십승지 마을 무주 무풍면으로 들어서는 관문인 ‘나제통문’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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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이상적 입지조건, '십승지 땅'

그렇다면 가장 좋은 '땅', 즉 명당에 들어선 마을은 어떤 마을일까. 과연 어디에서,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조선 후기에 민간에 널리 유포되었던 도참서 '정감록'에 그런 마을들이 등장한다, 이른바 한국인의 전통적 이상향 '십승지(十勝地)' 로 불리는 마을들이다. 여기서 승지(勝地)라는 말은 현실의 이상향을 표현한 말로서 길지(吉地), 낙토(樂土), 복지(福地), 명당(明堂), 가거지(可居地) 등의 용어들과 유사하게 쓰인다.

일종의 조선 후기 사회적 담론인 십승지 관념은 당시 국가적인 정치·사회의 혼란, 민간 사회의 경제적 피폐라는 역사적 배경에서 민간을 바탕으로 발생했다. 근본적으로 개인의 안위를 보전하며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피난지를 말했다. 정감록에는 '몸을 보전할 땅'으로 십승지를 설명한다.

당시 피폐한 육체와 불안한 정신을 맡길 무엇인가를 찾던 민간인들은 정감록의 십승지론을 믿었다. 실제로 거주지의 선택, 인구 이동, 공간 인식에 큰 영향력을 끼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심지어 1959년 기준의 조사연구에 의하면, 풍기로 전입한 주민들의 이주 동기 중에 8%가 정감록의 영향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주한 주민들은 대부분 한국전쟁을 피해 평안도와 황해도에서 월남한 피난민 출신들로 현재도 소백산 자락 오지 산골 마을인 금계 마을에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십승지는 '정감록'의 문헌에 따라 위치와 장소가 조금씩 달리 나타나는데 대략 영월의 정동(正東)쪽 상류, 풍기의 금계촌(金鷄村), 가야산의 만수동(萬壽洞), 부안 호암(壺巖) 아래, 보은 속리산 아래의 증항(甑項) 근처, 남원 운봉 지리산 아래의 동점촌(銅店村), 안동의 화곡(華谷, 현 봉화읍), 단양의 영춘, 무주의 무풍 북동쪽 등을 들고 있다.

한결같이 자연 환경이 좋고, 외침이나 정치적인 위해 요인이 없으며, 자족적인 경제 생활이 충족되는 입지 조건을 갖춘 곳이다. 십승지 모두 산과 하천으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의 자연 환경과 배산임수의 풍수지리를 갖추고 있다. 또한 마을을 이루어 농경을 영위할 수 있는 지리적 조건으로서 토지의 규모, 토양의 비옥도 및 생산성, 수자원 이용의 충족성, 온화한 기후 조건이 구비된 곳이었다. 그래야 장기간, 안정된 농업 경제를 통해 자급자족이 가능한 생활과 생존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특히 전란이 미치지 않아서 몸을 보전할 수 있는 입지 조건이야말로 생사를 가르는 필수 조건이었다. 정감록의 십승지가 모두 지리적으로 내륙의 산간 오지에 위치하며, 조선시대 한양 등 큰 마을로 이어지는 큰길에서 벗어난 곳에 자리잡은 이유이다.

가령 이중환의 <택리지>에서도 '복지(福地)'로 거론된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이 그런 곳이다. 정감록에도 '무주 무봉산 북쪽 동방 상동으로 피란 못할 곳이 없다'고 기록되어 있다. 특히 무풍면 북리마을에는 1890년경 고종과 명성황후가 피신할 적지로 여겨 99칸짜리 행궁 '명례궁'을 지었을 정도다. 지금의 대덕상 5일 장터 뒤쪽으로, 건축물은 외지로 다 뜯겨 팔려나가고 궁터와 표지석만 남아있을 뿐이다. 일부 건축물 자재는 무풍면 청년회가 따로 회수해 보관하며 일부라도 명례궁의 복원을 기대하고 있다고 한다.
 
십승지 이상향을 체험할 수 있는, 무주 무풍면 무풍승지마을에서 운영하는 샹그릴라레스토랑
▲ 샹그릴라레스토랑  십승지 이상향을 체험할 수 있는, 무주 무풍면 무풍승지마을에서 운영하는 샹그릴라레스토랑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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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자립적 생업기반, '28가지 땅의 지목'

마을이 들어선 입지인 '땅'은 또한 마을의 자립적 생업 기반이다. 이런 의미와 기능을 띠는 토지의 지목, 토지의 종류는 다종다양하다. 주택을 짓는 대지를 비롯해, 농업의 기반인 전, 답, 과수원, 임업의 기반인 임야, 축산업의 기반인 목장 그리고 어촌의 염전과 광천지, 농산어촌 마을의 생활기반인 학교, 주차장, 공장용지, 주유소, 창고, 도로, 철도용지, 제방, 하천, 구거, 유지, 양어장, 수도용지, 공원, 유원지, 체육용지, 종교용지, 사적지, 묘지, 잡종지 등 28가지에 이른다.

'전(田)'은 우리 농촌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농업기반이다. 물을 상시적으로 이용하지 않고 농사를 짓는 묘목, 곡물, 식물, 원예작물 등에 적합한 재배공간이다. '답(畓)'은 논농사를 위해 물을 상시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공간 조건이라야 한다. 벼는 물론, 보리, 밀 등 이모작 식량작물을 비롯, 미나리, 왕골, 연 등 대체식물까지 재배한다.

'과수원'은 과일을 재배하는 땅이다. 사과, 배, 포도, 밤, 호두, 귤나무 등 과수류를 집단적으로 재배하는 농경지와 과수원에 부속된 저장고 등 부속시설물을 조성하는 부지를 말한다. 임업의 생업기반인 '임야'는 산림은 물론 수림지, 죽림지, 암석지, 자갈땅, 모래땅, 습지, 황무지 등의 토지를 포괄하는 부지이다. '목장용지'는 축산업과 낙농업을 영위하는 초지를 조성한 토지, 가축을 사육하는 축사 등의 부지, 관련 부속시설물의 토지를 아우른다.

'광천지(鑛泉地)'는 온천뿐만 아니라 지하에서 온수, 약수, 석유류가 나오는 땅을 부르는 용어다. '염전'은 바닷물을 끌어들여 소금을 재취하기 위하여 조성된 토지와 이에 접속된 제염장 등 부속시설물의 부지를 말한다. '구거​(溝渠)'는 용수 또는 배수를 위해 인공적으로 만들어 놓은 둑이나 수로이다.

'유지'는 물이 고이거나 상시적으로 물을 저장하고 있는 댐저수지, 소류지, 호수, 연못 등의 토지, 연, 왕골 등이 자생하는 배수가 잘 되지 않는 토지에 해당한다. 특히, 소류지(沼溜地)는 하천이 잘 발달하지 않은 농촌 지역에서 경작지에 공급할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극히 규모가 작은 저수시설로서 평지를 파고 주위에 둑을 쌓아 물을 담아 놓은 형태를 말한다.

'양어장'은 육상에 인공으로 조성된 수산 생물의 번식 또는 양식을 위한 시설을 갖춘 부지와 이에 접속된 부속시설물이 조성된 부지이다. '잡종지'는 갈대밭, 실외에 물건을 쌓아둔 곳, 돌 채석장, 흙 굴토장, 야외 시장, 비행장, 공동우물, 영구적 건축물 중 변전소, 송신소, 수신소, 송유시설, 도축장, 자동차운전학원, 다른 지목에 속하지 않는 토지를 총괄한다.
 
한라산 아래 첫마을 서귀포 광평리의 생업 기반인 메밀밭
▲ 광평리 메일밭  한라산 아래 첫마을 서귀포 광평리의 생업 기반인 메밀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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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땅'의 쓸모와 쓰임새, 용도지역·지구·구역

마을의 땅은 용도지역(用途地域)으로 그 쓸모와 쓰임새가 구분되고 제한된다. '용도지역(Zoning)'이란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제6조(국토의 용도구분)에 따라 토지의 이용 및 건축물의 용도, 건폐율, 용적률, 높이 등을 제한함으로써 토지를 경제적,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공공복리의 증진을 도모하기 위하여 서로 중복되지 아니하게 도시·군관리계획으로 결정하는 지역을 말한다.

국토는 토지의 이용상태 및 특성, 장래의 토지 이용 방향, 지역 간 균형발전을 고려하여 크게 도시지역, 관리지역, 농림지역, 자연환경보전지역 등 4개의 용도지역으로 구분한다. 도시지역은 다시 주거지역, 상업지역, 공업지역, 녹지지역 등으로 구분한다.

'도시지역'은 인구와 산업이 밀집되어 있거나 밀집이 예상되어 그 지역에 대하여 체계적인 개발, 정비, 관리, 보전 등이 필요한 지역을 뜻한다. 이중 '주거지역'은 거주의 안녕과 건전한 생활환경의 보호를 위하여 필요한 지역으로서, 전용주거지역, 전용주거지역(양호한 주거환경 보호), 제1종전용주거지역(단독주택 중심), 2종전용주거지역(공동주택 중심), 일반주거지역(편리한 주거환경 조성), 제1종일반주거지역(저층주택 중심), 제2종일반주거지역(중층주택 중심), 제3종일반주거지역(중고층주택 중심), 준주거지역(주거기능 위주로 이를 지원하는 일부 상업기능 및 업무기능 보완) 등으로 세분된다.

'상업지역'은 상업이나 그 밖의 업무의 편익을 증진하기 위하여 필요한 지역이다. 중심상업지역(도심ㆍ부도심의 상업기능 및 업무기능의 확충), 일반상업지역(일반적인 상업기능 및 업무기능 담당), 근린상업지역(근린지역에서의 일용품 및 서비스의 공급), 유통상업지역(도시내 및 지역간 유통 기능의 증진)으로 세분된다.

'공업지역'은 공업의 편익을 증진하기 위하여 필요한 지역이다. 전용공업지역(주로 중화학공업, 공해성 공업 등을 수용), 일반공업지역(환경을 저해하지 아니하는 공업의 배치), 준공업지역(경공업 그 밖의 공업을 수용하되, 주거기능ㆍ상업기능 및 업무기능의 보완) 등이다.

'녹지지역'은 농지 및 산림의 보호, 보건위생, 보안과 도시의 무질서한 확산을 방지하기 위하여 녹지의 보전이 필요한 지역이다. 보전녹지지역(도시의 자연환경ㆍ경관ㆍ산림 및 녹지공간을 보전), 생산녹지지역(주로 농업적 생산을 위하여 개발을 유보), 자연녹지지역(도시의 녹지공간의 확보, 도시확산의 방지, 장래 도시용지의 공급 등을 위하여 보전) 등이다.

'관리지역'은 도시지역의 인구와 산업을 수용하기 위하여 도시지역에 준하여 체계적으로 관리하거나 농림업의 진흥, 자연환경 또는 산림의 보전을 위하여 농림지역 또는 자연환경보전지역에 준하여 관리할 필요가 있는 지역이다. 자연환경보전지역 지정이 곤란한 보전관리지역, 농림지역 지정이 곤란한 생산관리지역, 도시지역으로의 편입이 예상되는 지역이나 자연환경을 고려하여 제한적인 이용ㆍ개발을 하려는 지역인 계획관리지역 등이다.
 
풍력발전소, 리립조랑말박물관 등이 들어선 서귀포 가시리 마을의 200여만 평에 달하는 마을공동목장
▲ 가시리 마을목장  풍력발전소, 리립조랑말박물관 등이 들어선 서귀포 가시리 마을의 200여만 평에 달하는 마을공동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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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림지역'은 도시지역에 속하지 아니하는 농지법에 따른 농업지흥지역, 또는 산지 관리법에 따른 보전산지 등으로서 농림업을 진흥시키고 산림을 보전하기 위하여 필요한 지역이다.

'자연환경보전지역'은 자연환경, 수자원, 해안, 생태계, 상수원 및 문화재의 보전과 수산자원의 보호, 육성 등을 위하여 필요한 지역이다.

용도지역과 더불어 토지이용을 규제・관리하는 토지이용계획의 대표적인 법적 실행수단으로서 '용도지구'와 '용도구역'이 있다. '용도지구'는 토지의 이용 및 건축물의 용도·건폐율·용적률·높이 등에 대한 용도지역의 제한을 강화 또는 완화하여 적용함으로써 용도지역의 기능을 증진시키고 미관·경관·안전 등을 도모하기 위하여 도시·군관리계획으로 결정하는 지역을 말한다.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의한 용도지구는 경관지구, 고도지구, 방화지구, 방재지구, 보호지구, 취락지구, 개발진흥지구, 특정용도제한지구, 복합용도지구로 구분되며, 시·도 또는 대도시의 조례로 용도지구를 신설할 수 있다.

'용도구역'은 토지의 이용과 건축물의 용도·건폐율·용적률·높이 등에 대한 용도지역 및 용도지구의 제한을 강화 또는 완화하여 따로 정함으로써 시가지의 무질서한 확산방지, 계획적이고 단계적인 토지이용 도모, 토지이용의 종합적 조정·관리 등을 위하여 도시·군관리계획으로 결정하는 지역을 말한다.*

태그:#마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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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연구소(Commune Lab) 소장, 詩人(한국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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