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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기자들이 취재 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롭게 쓰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30일 오후 서울 동작구 공군호텔에서 열린 ‘백선엽장군 기념재단 창립대회’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30일 오후 서울 동작구 공군호텔에서 열린 ‘백선엽장군 기념재단 창립대회’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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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월 9일 일요일 오전 9시 30분, 국립서울현충원에 갑니다. 박민식 국가보훈부장관 때문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박 장관은 지난 6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국가공인 친일파 백선엽이 친일파가 아니라는데 자신의 직을 걸겠다'고 말했습니다.

"백선엽 장군을 친일파라고 지금 거기 위원회에서 규정을 해 놨지 않습니까? 그런데 저는 제가 공부를 해보면 해볼수록 이분은 친일파가 아니에요. 제가 제 직을 걸고 이야기를 할 자신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박 장관은 "국립묘지(홈페이지)에 친일파가 기재되지 않았냐"며 "수십만 명의 독립유공자들이든 우리 전쟁에서 전사자들은 있는데 딱 열두 명만 거기에 친일파라고 기재가 돼 있다. 법적 근거 없이 그냥 그 당시에 정치적 환경 때문에 그런 조치를 했다는 강한 의심을 갖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루 앞선 5일 '백선엽 장군 서거 3주기 추모식'에 참석한 박 장관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국가보훈부와 국립 현충원 홈페이지에서 백 장군의 안장 기록을 검색하면 비고란에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문구가 같이 뜬다"며 "백 장군을 비롯한 12명의 현충원 영령이 그런 수모를 겪고 있다. 보훈부 차원에서 문구를 삭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며 곧 결론을 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백선엽이 친일파면 직을 걸겠다'는 박 장관은 사퇴하십시오.

박 장관이 언급한 12인은 백선엽을 비롯해 김백일, 신태영, 신응균, 이응준, 이종찬, 백낙준, 김홍준, 송석하, 신현준, 백홍석, 김석범입니다. 12인 모두 대한민국 정부에서 공인한 국가공인 친일파입니다. 

이들은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의해 2005년 5월 31일 대통령 소속으로 발족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 의해 선정된 국가공인 친일파입니다. 놓쳐서는 안 되는 사실은 해당 위원회는 노무현 정권 때 출범했지만 보수정권인 이명박 정권 때인 2009년 11월 활동이 종료됐습니다. 그리고 2009년 11월 이명박 정권이 발표한 국가공인 친일파에 이응준을 제외한 백선엽 등 11인이 선정됐습니다. 대한민국 초대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이응준만이 위원회 초기인 2006년 친일파 1기 명단에 포함됐습니다. 

2009년 11월 위원회는 4년 6개월의 활동을 끝내면서 4부·25권, 총 2만1000여 쪽에 달하는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를 발간했고, 해당 보고서에는 1기·2기·3기에 따라 국가공인 친일인사 총 1005명의 명단이 실렸습니다. 그리고 이들 중 박 장관이 언급한 12인이 호국영령과 순국선열이 잠든 국립서울현충원과 대전현충원에 안장됐습니다.

현충원 안장 국가공인 친일파 무슨짓 했나?
   
국가공인 친일파 신태영
 국가공인 친일파 신태영
ⓒ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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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2020년 4월 프로젝트 '추적'이라는 이름으로 연속보도를 했습니다. 현충원에 안장된 국가공인 친일파 11인을 추적해 알리는 보도였습니다(기획 보기 https://omn.kr/1mv5e ). 당시는 백선엽이 사망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현충원에 안장된 국가공인 친일파가 11인이었습니다(백선엽은 2020년 7월 10일 사망했고, 논란 끝에 7월 15일 대전현충원 장군 2묘역 555번 무덤에 안장됐다).

이들은 대부분이 '장성급 장교자격' 및 '순직군경자격'으로 현충원에 안장됐습니다. 대표적 인물이 서울현충원 장군 2묘역에 안장된 대한민국 4대 국방부 장관과 초대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신태영과 이응준입니다. 

박 장관은 이들을 '현충원 영령'이라 칭했지만 두 사람은 모두 일본 군인으로 30여 년을 복무한 인물들입니다.

특히 신태영은 1943년 11월 17일 <경성일보>에 "조선인들은 한시바삐 제국의 신민이 되어 동아시아를 개척해야 한다. 내 첫 출진의 목표는 야스쿠니 신사(안장이)"라는 희대의 망언을 남긴 인물입니다. 당시 그는 청년·학생들을 전쟁에 동원하기 위한 '임시특별지원병제도 종로익찬위원회'에 참여해 조선인 병력 동원을 선전하고 선동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대한민국 초대 육군참모총장 이응준, 그가 남긴 친일 찬가
친일파 이응준의 묘는 장군2묘역 입구에 자리해 있다. 장군2묘역 아래쪽에는 대한독립군무명용사위령탑과 애국지사들이 묘역이 있다. 두 묘역 간 거리는 직선으로 40m에 불과하다
▲ [현충원 안장 친일파] 이응준 묘지 대한민국 초대 육군참모총장 이응준, 그가 남긴 친일 찬가 친일파 이응준의 묘는 장군2묘역 입구에 자리해 있다. 장군2묘역 아래쪽에는 대한독립군무명용사위령탑과 애국지사들이 묘역이 있다. 두 묘역 간 거리는 직선으로 40m에 불과하다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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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영 옆쪽에 안장된 이응준 역시 일본 군인으로 30여 년을 복무하며 일본군 대좌(대령)까지 오른 인물입니다. 바꿔 말하면 1910년대부터 1945년 광복을 맞이할 때까지 변함없이 일본에 충성했던 인물이라는 뜻입니다.

대표적인 활동이 1941년의 일입니다. 일본군 육군 대좌로 승진한 이응준은 신병 보충과 교육 업무, 후방에서 전쟁을 지원하는 수송 업무에 집중했습니다. 과정에서 공개적으로 "조선의 청년들이 일본 군인이 돼 전쟁터로 나가 목숨을 바쳐 천황에게 충성을 다해야 한다"라고 발언했습니다.

일제의 기관지였던 <매일신보> 1943년 8월 3일 '생사를 초월하라'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응준은 "조선 징병제 실시에 의하여 조선 청년에게도 국가 방위의 숭고한 병역 의무가 부여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무상의 광명이며 명예"라며 "대원수 폐하의 고굉(손과 발)으로 황군의 일원으로 한번 죽음으로써 그 책무를 완수하는 것이야말로 명예를 완수하는 길이다"라는 발언했습니다.

광복 후 그는 일본군 경력을 인정받아 미군정청 국방사령부 국방사령관 고문으로 위촉됐습니다. 그리고 김백일, 백선엽, 김홍준 등 일본군 및 만주군 출신 군인들을 미군정 운영 군사영어학교에 보낸 뒤 국군의 전신인 국방경비대에 입대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런 이력으로 그의 묘비에는 '대한민국 국군의 아버지'라는 문구가 새겨졌습니다.

신태영과 이응준의 무덤 바로 아래쪽에는 일제에 항거하다 목숨을 잃은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들이 잠들어 있습니다.

박 장관이 추앙하는 국가공인 친일파 백선엽도 다르지 않습니다. 2009년 위원회가 발표한 공식 보고서에 따르면 백선엽은 "1941년부터 1945년 일본 패전 시까지 일제의 실질적 식민지였던 만주국군 장교로서 침략전쟁에 협력했고, 특히 1943년부터 1945년까지 항일세력을 무력 탄압하는 조선인 특수부대인 간도특설대 장교로서 일제의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했다"라고 기록됐습니다.

백선엽 또한 1983년 일본에서 출간한 '대(對) 게릴라전-미국은 왜 졌는가'라는 제목의 책에서 "한국인이 독립을 위해 싸우고 있었던 한국인을 토벌한 것이기 때문에 이이제이(以夷制夷)를 내세운 일본의 책략에 완전히 빠져든 형국이었다"면서 "우리가 전력을 다해 토벌했기 때문에 한국의 독립이 늦어졌던 것도 아닐 것이고, 우리가 배반하고 오히려 게릴라가 되어 싸웠더라면 독립이 빨라졌다고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동포에게 총을 겨눈 것은 사실이었다"라고 간도특설대 활동을 인정한 바가 있습니다.

스물여섯 번째 현충원 투어를 진행하는 이유
 
지난 3월 진행한 현충원투어 모습.
 지난 3월 진행한 현충원투어 모습.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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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9일 오전 9시 30분 서울현충원 만남의집에서 '현충원에 잠든 국가공인 친일파를 만나자'라는 주제로 현충원 투어를 진행합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박민식 장관이 언급한 현충원에 안장된 국가공인 친일파의 무덤을 직접 찾아 그들이 어떤 길을 걸었고 어떻게 호국영령과 순국선열 머리 위에 잠들었는지를 설명할 예정입니다. 

개인적으로 스물여섯 번째 진행하는 현충원 투어입니다. 왜 이렇게 반복적으로 하느냐고요? 2020년 10월 10일 받은 이메일 한 통 때문입니다. 스스로를 "친일파의 후손"이라고 말한 이였습니다. 그는 글에서 "일본 침략은 틀리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우리는 기득권을 잃은 양반이었지만 다른 이들과 달리 빨갱이에 붙지 않고 자유진영의 문명을 동경해 왔다. 당시 조선은 지금의 이북보다 더한 계급제사회로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예로 살아야 했다. 민생치안조차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 조선은 일본에 나라를 그냥 넘겼다. 목적이 어떠하든 일본은 조선을 해방시켜 민초들은 처음으로 자유와 문명 그리고 현대교육의 기회까지 얻었다. 일본이 미국에 지는 바람에 남한은 어부지리로 자유진영에 살고 있다. 조선에 현대 법치를 적용한 친일이 과연 욕먹을 일인가?"

'친일사관'을 지닌 전형적인 글이기에 웃어 넘길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인물이 한 명 두 명 늘다보면 종국에는 국가공인 친일파로 선정된 이들이 대한민국 사회에서 영웅으로 불려질 것이 우려됐기 때문입니다. 불행하게도 상상만 했던 일이 2023년 오늘 현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다시 현충원을 찾는 이유입니다. 영화 <암살>에서 배우 전지현씨가 연기한 안윤옥의 말처럼 "​알려줘야지, 우린 계속 싸우고 있다"는 걸 현충원투어를 통해 계속 알리고 알리고자 합니다. 여러 시민과 함께 걸음을 잇다 보면 현충원에 잠든 국가공인 친일파의 비정상적인 현실이 언젠가 바뀌지 않을까 희망하고 있습니다.

함께하시겠습니까?

태그:#박민식, #백선엽, #현충원, #보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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