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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과 화분에서 길러낸 채소.
 텃밭과 화분에서 길러낸 채소.
ⓒ 노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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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을 보다 가끔씩 안타까운 마음에 "아, 저건 아닌데"를 외칠 때가 있다.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의 쌈을 먹을 때다. 쌈이라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 그럴 수 있다지만, 작은 쌈도 한 입에 넣지 못하고 햄버거 베어물 듯 깨작거리는 모습은 쌈에 진심인 사람으로선 답답하기 그지없다. 당장이라도 뛰어 들어가 그게 아니라고 말해주며 볼이 빵빵해지게 쌈을 싸 먹는 모습을 시연해 보이고 싶은 마음 가득하다.

쌈은 본디 그런 음식이다. 양볼이 울음주머니를 부풀린 개구리처럼 빵빵하게 부풀어 올라야 제대로 맛이 느껴지는, 우아함과는 다소 거리가 먼 것 같은 그런 음식.

역사에도 등장한 쌈채소 

역사가 삼국시대로까지 올라간다는 쌈은 상추나 배추 같은 널따란 잎채소에 고기나 생선, 밥 등을 넣고, 그 위에 된장이나 초장 등의 양념장을 올린 후 채소 끝을 오므려 둥글게 만들어 먹는 음식이다. 넣는 재료에 따라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으니, 비록 아이스크림이 아니더라도 취향에 따라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 하겠다.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고기를 넣어 먹어도 좋고, 생선을 좋아하는 사람은 생선을 넣어서 먹어도 좋다. 그저 담백한 채소 맛을 즐기고 싶다면 밥을 싸서 된장만으로 맛을 내도 된다.

큰돈이 들지 않아 조상들에게도 사랑 받았을 쌈을 조선시대 학자인 이덕무는 그의 책 '사소절(士小節)'에서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유학자의 입장에서 쓴 글이라 이해되기도 하지만 그의 쌈 싸 먹는 방법은 참으로 맛없고, 밍밍하다. 그게 무슨 쌈이냐란 말이 절로 난다.

"상추를 싸 먹을 때 직접 손을 대서 싸서는 안 된다. 먼저 수저로 밥을 떠 밥그릇 위에 놓고, 젓가락으로 상추 두세 잎을 들어 밥을 싼다. 적당한 크기로 싼 밥을 먼저 입에 넣고 난 다음 된장으로 떠먹어야 한다. 너무 크게 싸서 입 안이 다 보이게 벌리고 먹는 것은 상스러우니 조심해야 한다."

상추를 싸 먹을 때 손을 써서는 안 된단다. 입 안이 다 보이게 벌리고 먹는 것은 상스러우니 조심하란다. 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청장관(이덕무의 호)님의 말씀이시다. 그분의 많은 것을 따르고 싶지만 이 방법만은 도저히 따르지 못하겠다. 반면 그의 벗 유득공의 시는 나를 감동시킨다. 쌈의 정수를 보여주는 것 같아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는 쌈을 먹을 줄 아는 사람이다. 그가 쌈을 싸 먹는 방법을 한번 보자.

밥숟갈 크기는 입 벌릴 만큼
상추 잎 크기는 손안에 맞춰
쌈장에다 생선회도 곁들여 얹고
부추에다 하얀 파도 섞어 싼 쌈이
오므린 모양새는 꽃봉오리요
주름 잡힌 모양은 피지 않은 연꽃

손에 쥐어 있을 때는 주머니더니
입에 넣고 먹으려니 북 모양일세
사근사근 맛있게도 씹히는 소리
침에 젖어 위 속에서 잘도 삭겠네


사근사근 씹히는 소리. 상큼한 소리다. 이런 소리는 아무 계절에나 어울리지 않는다. 어울리는 계절이 따로 있다. 바로 요즘 같은 계절이다. 사방천지에서 푸르름이 올라오는 지금, 세상의 푸르름이 쌈을 싸 먹으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 같다.

계절마다 맞는 쌈이 있다

그래서 나도 마당 한 귀퉁이에 마련된 텃밭에서 채소들을 땄다. 이제 막 살이 차오르기 시작한 여리디 여린 잎들이다. 채소 중에는 모종을 사다 키운 것도 있고, 겨우내 땅 속에 숨어 있다가 돋아난 채소도 있다. 명이나물과 머위, 당귀가 땅 속에 있다 올라온 채소라면 상추와 배추는 모종으로 키운 채소다. 채소를 많이 심지 않았는데 늘 우리 식구가 먹기 충분한 양을 제공해 주니 고맙다. 텃밭의 채소는 입맛이 없을 때나 마땅한 반찬이 없을 때 이용하기에 좋다.

쌈을 싸 먹을 때는 입이 커진다. 욕심이 많아서가 아니다. 채소 위에 올리는 재료가 많아서다. 채소 위에 밥을 놓고 그 위에 고기 한 점, 마늘장아찌 하나, 청양고추 한 톨만 넣어도 쌈의 크기는 커진다. 커진 쌈을 입이 감당해내지 못할 때는 남편을 보는 것이 민망스럽다. 그럴 때는 살짝 고개를 돌려야 한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식사 예절은 지켜줘야 한다. 그렇게 고개를 돌려 몇 번 오물거리다 보면 쌈은 금세 사라진다. 연한 잎일수록 빨리 사그라든다.

겨울에도 쌈을 먹었다. 하지만 봄, 여름에 먹는 쌈과는 차원이 다르다. 겨울의 쌈은 고기와 생선회가 주메뉴라면 이 계절의 쌈은 채소가 주메뉴다. 상추가 아니더라도 좋다. 한창 나오기 시작한 열무도 좋고, 머위나 취, 미나리도 좋다. 식성에 맞게 고르면 된다. 나른해지기 쉬운 봄, 몸에 좋은 쌈으로 이 계절을 즐겨 보자.

덧붙이는 글 | 본 글은 다음 브런치스토리와 네이버 블로그에도 실릴 수 있습니다.


태그:#음식, #쌈채소,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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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학원을 운영하며 브런치와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쓰기 보다 읽는 일에 익숙한 삶을 살다가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글을 썼습니다. 신문과 책으로 세상을 읽으며 중심을 잃지 않는 균형 잡힌 삶을 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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