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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옛 가요 가운데 <오동동타령>이란 노래가 있다. 1956년에 부산 도미도레코드에서 발매된 곡으로, 1959년 신문 기사에 의하면 음반 판매량이 만 3천 장 정도에 달했다고 한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아무것도 아닌 기록 같지만, 초판 5백 장의 반도 안 팔리는 곡들이 허다했다는 당시 상황에선 대단한 히트곡이었다고 할 수 있다.

'오동추야 달이 밝아 오동동이냐'로 시작하는 <오동동타령>은 익살스런 표현에 민요 정취도 느껴지는, 대중가요 가사로서 제법 매력적인 작품이다. 그리고 흥미로운 그 가사를 쓴 작사자의 이름이 또 눈길을 끄는데, 바로 야인초(野人草)라는 인물이다. 많고 많은 성씨 중에 야(夜)씨는 있어도 야(野)씨가 있다는 말은 들어 보지 못했으니, 이는 당연히 본명이 아니라 필명이다.

야인초가 쓴 1960년대 가사들 

야인초의 본명은 김봉철로, <오동동타령> 외에도 1950~60년대에 제법 많은 대중가요 가사를 발표했다. 또 작사 활동뿐만 아니라, 서울 아닌 지역에서 설립된 최초의 음반회사인 부산 코로나레코드를 1948년에 설립해 얼마간 운영했다는 점에서도 대중음악 역사에 중요한 자취를 남겼다. 하지만 야인초의 이력에 관해서는 확인된 내용보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점이 더 많은 편이기도 하다.
 
왼쪽부터 1950년대, 1960년대, 1980년대 야인초의 모습.
 왼쪽부터 1950년대, 1960년대, 1980년대 야인초의 모습.
ⓒ 이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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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드러난 자료라 할 수 있는 그의 작품을 통해 야인초의 행적을 더듬다 보면, 1960년대 초에 한 가지 눈에 띄는 점이 있다. 4월 혁명 이후인 1960년 여름 무렵부터 박정희 쿠데타 이후인 1962년 봄 사이에 발표된 야인초의 가사 네 편에서 묘한 흐름이 보이는 것이다. 네 편 모두 대중가요 치고는 상당히 직설적으로 당대의 정치 상황을 표현한 작품이다.

우선 살펴볼 곡 <아 4·19>는 노래를 부른 가수 한정무가 1960년 11월에 사망했으므로 그 전에 만들어졌음이 분명한데,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4월 혁명의 역사적 의미를 기리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내용이다.
 
겨레가 울고 싶은 슬픈 노래를/ 가로맡아 외치다가 쓰러진 학도/ 네 죽음 장하도다 하늘도 땅도 운다/ 화랑도 기상이다 민족의 자랑이다/ 아 4·19 4·19 길이 빛나리
새싹이 트기 전에 피기도 전에/ 모질게도 꺾어 버린 회오리바람/ 네 이름 찬란하다 꽃 같이 별과 같이/ 화랑도 기상이다 민족의 자랑이다/ 아 4·19 4·19 길이 빛나리
들어라 너도 나도 단군의 자손/ 어린 민주 정화불에 흘린 그 피를/ 잊어서 되오리까 그 모습 그 공훈을/ 화랑도 기상이다 민족의 자랑이다/ 아 4·19 4·19 길이 빛나리
(야인초 작사, 허경구 작곡, 한정무·합창단 노래)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사사오입타령> 역시 4월 혁명 관련 작품이며, 비장한 느낌을 주는 <아 4·19>와 달리 몰락한 이승만 정권에 대한 풍자적 표현이 두드러진 가사이다. 다른 작품들과 달리 이 곡은 작사자 이름이 필명 야인초 대신 본명 김봉철로 표기되어 있다.
 
귀하신 몸 나오신다 귀하신 몸 나온다/ 모모 특권 모모 장관 아드님이 나온다/ 색안경 끼고 보면 요지경 속이라네/ 엣다 모르겠다 닐니리 쿵다쿵/ 요즘 같으면 국물도 없다
사사오입 나오신다 사사오입 나온다/ 모모 세력 모모 공작 사사오입 하더니/ 드러난 부정축재 강 건너로 떠나시고/ 엣다 모르겠다 닐니리 쿵다쿵/ 남은 것들은 국물도 없다
사월달은 제 잘못을 버리자는 사자요/ 오월달은 민주 오산 고치자는 오자요/ 유월달 새 건설에 칠월달은 수수께끼/ 엣다 모르겠다 닐니리 쿵다쿵/ 정신 차려요 국물도 없다
(김봉철 작사, 김성근 작곡, 김진희 노래)
 
1961년 봄에 발표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월의 꽃 한 송이>는 혁명 와중에 희생된 아들을 그리는 어머니 입장에서 만들어진 곡으로, 노래 사이에 아들 이름을 애타게 부르는 대사도 있어 단장의 슬픔을 더욱 짙게 표현했다.
 
겨레의 슬픈 사연 앞장서서 외치다가/ 한없이 쓰러졌네 어김없이 죽었구나/ 수영아 수영아 대답이 왜 없느냐/ 아 사월의 꽃 한 송이 사월의 꽃 한 송이
(대사) 수영아. 네 죽음을 아껴 우는 어리석은 어머니가 이제야 깨달았구나. 오직 나라에 바치자는 사나이 죽음터를 택한 어린 열사의 어머니 된 감격은 다시 한 번 가슴에 용솟음친다. 수영아, 수영아.
사월달 잔디 위에 우뚝 솟는 추념 탑에/ 엄마는 찾아왔네 보고파서 찾아왔네/ 수영아 수영아 장하다 내 아들아/ 아 사월의 꽃 한 송이 사월의 꽃 한 송이
(야인초 작사, 유금춘 작곡, 시민철 노래)
 
1960년 여름 이후 1년이 안 되는 동안 4월 혁명 소재 대중가요 가사를 이처럼 세 편이나 썼다는 것은 아무래도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하나 정도라면 혁명 분위기에 편승해 발표해 본 것이라 할 수도 있겠으나, 확인되는 작품만으로도 세 편이라면 그 배경에 분명 작사가 야인초의 어떤 생각이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대중가요는 작가의 손을 통해 만들어지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 소비 대중의 정서와 욕망을 대변하는 것이라, 거기에 작가의 개인적 성향이 적극적으로 드러나는 경우는, 특히 과거 대중가요에서는 그리 많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야인초처럼 특정 내용으로 쓴 작품을 연이어 발표한 경우는 눈에 띄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그가 어떤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있었는지, 무슨 뜻에서 그런 작품 활동을 했는지는 당사자가 이미 세상을 떠났는지라 확인할 길이 없다.

쿠데타 이후에 이어지는 난감한 야인초의 노래 
 
쿠데타를 긍정적으로 묘사한 <랏슈 재건> 음반 딱지
 쿠데타를 긍정적으로 묘사한 <랏슈 재건> 음반 딱지
ⓒ 이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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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야인초가 시대의 정치 상황을 반영해 쓴 가사는 위 세 곡에 그치지 않았다. 1962년 초쯤에 발표된 것으로 추정되는 <랏슈 재건>이라는 노래가 앞서 본 4월 혁명 관련 작품들과는 상당히 다른 결로 또한 눈길을 끈다(노래 듣기). '랏슈'는 영어 'rush'의 일본식 발음이고, '재건'은 쿠데타로 집권한 당시 군부의 핵심 슬로건이었으니, 재건을 향해 돌진하자는 의미가 담긴 제목이다.
 
3·1운동 기념탑의 파고다공원/ 형씨도 실업자요 나도 실업자/ 똑같은 처지에서 정사를 논하자면/ 못 살겠다 갈아 보자 사치기 사치기 사뽀뽀/ 갈아 봐도 별 수 없네 사치기 사치기 사뽀뽀/ 사치기 사치기 사뽀뽀
4·19라 학도들의 피 흘린 땅에/ 풍년은 왔소마는 벌레가 먹네/ 똑같은 그 장단에 그 춤을 출 바에는/ 농사짓고 못 살겠다 사치기 사치기 사뽀뽀/ 도회지로 찾아가자 사치기 사치기 사뽀뽀/ 사치기 사치기 사뽀뽀
5·16은 참다못해 일어난 봉화/ 십 년에 못한 일을 하루아침에/ 똑같은 한 겨레다 한 마음 한 뜻으로/ 혁명 과업 완수하자 얼씨구절씨구 신난다/ 재건설의 종이 운다 사치기 사치기 사뽀뽀/ 사치기 사치기 사뽀뽀
(야인초 작사, 백영호 작곡, 도민호 노래)
 
<랏슈 재건> 가사에서는 지난날 아이들 놀이에서 불렸던(?) '사치기 사치기 사뽀뽀'가 후렴처럼 쓰인 것이 우선 눈에 들어온다. 이는 아마도 자칫 심각하게 느껴질 수 있는 노래의 정치적 메시지를 코믹하게 희석해, 듣는 대중의 심리적 부담을 줄이려는 의도로 쓰인 것이라 짐작된다. 하지만 어떻게 표현을 했든, 결국 노래에서 말하는 바는 벌레 먹은 4월 혁명보다 참다못해 일어난 쿠데타를 지지한다는 것이다.

박정희 쿠데타를 미화하는 대중가요는 <랏슈 재건> 외에도 1960년대 초중반에 몇 곡 더 발표되었으나, 지금까지 확인된 수는 4월 혁명 관련 작품보다 많지 않다. 그 드문 사례 가운데 다른 사람도 아닌 야인초의 작품이 있다는 것은, 사실 좀 당혹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불과 한 해 전만 해도 혁명 성과를 긍정적으로 표현했던 이가, 이번에는 혁명의 의미를 누르며 쿠데타를 띄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승만 독재에 대한 비판이 혁명 이후 민주당 정권에 대한 실망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쿠데타에 대한 긍정적 기대로까지 나아갔다는 해석도 있다고는 하나, 혁명과 쿠데타의 접목은 아무래도 매끄럽게 보기가 어렵다. 가미카제특공대를 미화하는 내용으로 해방 직전에 개봉한 영화 <사랑과 맹세>와 독립운동을 소재로 해방 직후에 만들어진 영화 <자유만세>를 연출한 감독이 같은 사람이라는 점만큼이나, 야인초 가사에 대한 해석은 난감하기만 하다.

대중예술의 속성 자체가 원래 시류에 편승하는 그런 것이라고, 그 해석에 무슨 심각한 고민을 할 필요는 없는 것이라고 그냥 넘길 수도 있다. 그러나 무슨 생각이 꼭 있었을 것만 같은 작사가의 두 모습을 그렇게 무심히 넘기기는 역시나 좀 찜찜하다. 앞서 쓴 세 편 가사를 두고서 다시 <랏슈 재건>을 썼던 야인초의 심정은, 과연 어떠했던 것일까.

태그:#4월 혁명, #쿠데타, #야인초, #랏슈 재건, #김봉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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