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약과를 좋아했다. 한입 깨물면 바삭하고 쫀득한 식감이 동시에 느껴지고, 진한 달콤함이 입안 가득 퍼지는 약과는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손에 끈적하게 달라붙는 느낌조차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약과는 명절 할머니 댁에 갔을 때나 맛볼 수 있던 간식이었다. 오래된 전통시장이나 떡집에서만 판매하고 있을 정도로 찾는 이들이 적고, 고루한 이미지로 굳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또래 사이에서는 꾸준히 약과를 좋아하는 이들은 '옛날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트렌디한 간식'이 된 약과
그렇게 촌스러운 취급을 받던 약과의 위상이 지금은 저 하늘까지 높아졌다. 사람들은 의정부, 춘천 등 먼 지역도 마다하지 않고 약과 맛집으로 소문난 곳을 찾아간다.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약과는 품절 현상이 지속되고, 영업시간 전부터 줄을 서 기다리는 오픈런 현상까지 빚었다. 약과 구하기가 콘서트 티켓팅하는 것만큼 어렵다 보니 '약켓팅(약과+티켓팅)'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이런 실정이다 보니 유명한 약과는 중고마켓에서 더 높은 가격에 재판매되는 경우도 흔하다. 웃돈을 주고서라도 약과 맛을 보겠다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이런 추세에 따라 유행에 민감하다는 빵집들은 모두 약과와 빵을 여러 형태로 조합한 신제품들을 잇달아 출시하기 시작했다. 인기 빵집인 던킨과 노티드도 합류해 약과 도넛과 스콘을 내놨다.
재미없던 약과가 품절 대란의 주인공으로, 식품 시장을 선도하는 트렌디한 간식으로 재탄생했다. 그리고 놀라운 점은 약과의 이미지를 180도 바꾼 주 고객층이 MZ세대라는 것이다. 약과 맛집 리스트를 각종 커뮤니티와 SNS로 퍼다 나르고, 전국을 순회하며 약과를 맛보고, 자랑스레 인증사진을 남긴다. 도대체 약과의 어떤 점이 이들을 매료시켰을까?
'약과' 트렌드는 왜 생겼을까?
첫 번째, 뉴트로 트렌드를 큰 요인으로 볼 수 있다. 대한민국은 지금 뉴트로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 특히 젊은 층이 오래된 것들을 '힙'하게 받아들이고 새롭게 해석해 즐기는 문화가 유행처럼 자리 잡았다. 할머니가 좋아할 법한 취향과 감성에 빠진 트렌드를 두고 일명 '할매니얼'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할매니얼의 대표적인 음식들로는 약과를 비롯해 떡, 흑임자, 누룽지, 꽈배기 등이 있다. 재미를 소비하는 요즘 세대에게 옛 간식들은 신선하고 재밌는 것으로 인식이 되는 것이다. 그중 특색 있는 모양과 찐득한 식감, 달콤한 맛을 가진 약과는 기존 식품 시장에서 차별점을 갖기에 충분했고, 지금처럼 유행의 중심에 서게 됐다.
두 번째, 요즘 세대의 '건강에 관한 관심'이 커진 만큼 전통 먹거리에 대한 수요도 대폭 커졌다. 일반적으로 곡물 및 과일 등 원재료를 활용한 전통 식품은 몸에 좋을 것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양 음식에 비해 든든한 포만감과 구수함을 느낄 수 있어 식사 대용으로 전통 식품을 택하는 이들도 많다. 지인 A씨(25)는 건강한 느낌이 든다는 이유로 칼로리가 같아도 서구식 메뉴 대신 전통 디저트를 택하게 된다고 답했다.
마지막으로, 중장년층의 활발한 활동도 일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배우 윤여정과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 등 노년층 인물들이 세계시장에서 활약을 이어 나가고 있다. 그리고 젊은 층은 이들의 어록을 SNS에 올리고, 이들의 재밌는 모습을 밈으로 제작해 커뮤니티에 공유할 만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를 통해 MZ세대는 자연스레 휴대폰 속 '스타 할매'뿐만 아니라 조부모 세대 자체에 친근함을 느끼고 그들의 문화까지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할매니얼 트렌드로 전통 음식은 우리 일상 곳곳에 스며들었다. 젊은 층은 끊임없이 전통 음식에 서구 재료들을 더하고 섞어 새상품으로 재탄생 시켜가며 유행을 만들어내고 있다. 약과는 한철 떴다가 지는 반짝 유행이 아닌 젊은 층에 의해 수면 위로 끌어올려진 '재발견'이라고 봐야 한다. 전통 음식의 새로운 맛에 반한 MZ세대의 약과 사랑은 꾸준히 이어질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