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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대보름 날 아침, 눈을 뜨자 아내가 뭔가 한주먹 입에 넣어준다. 정월 대보름이니 부럼을 깨물어야 한단다. 부럼, 정월 대보름날 아침에 한해의 건강을 위해 깨물어 먹는 밤, 잣, 호두등 견과류를 의미한다. 아, 오늘이 정월 대보름이구나! 오래전엔 조상들이 중시했던 세시풍속이다. 부럼을 깨물고 덕담을 주고받았다. 

보름날 아침, 갑자기 친구 이름을 부른다. 친구가 대답을 하면 얼른 외친다. 내 더위 사 가라고. 친구는 다시 더위를 팔기 위한 친구를 찾아 나섰다. 잊지 못할 추억이었던 부럼 깨기나 더위 팔기, 건강을 위한 세시풍습이었으니 건강이 언제나 최고였음을 알려준다. 엊저녁엔 아내덕에 정월 열나흗날 행사를 거창하게 치렀다.

정월 대보름, 뒷산에서

갖가지 나물을 준비했고, 여기에 고기를 곁들여 술잔을 기울였다. 이런 날 아니면 언제 술 한잔 해 보겠는가? 아내덕에 얼큰한 술자리에 부럼까지 깨물었으니 정월대보름을 잘 보낸 것이 아니겠는가? 아이들은 어떻게 보낼까 궁금하기도 하다.

얼른 부산에 사는 딸아이에게 전화를 했다. 오늘이 보름이냐고 되묻는 젊은 청춘이다. 손녀는 샌드위치로 정월 대보름날 아침을 해결하고 있단다. 역시, 세월은 많이 변했다. 정월 대보름이 무엇이고, 설날은 무엇일까? 부럼이라는 말이 있었단 말인가? 어색한 이런 날이 오지 않을까도 생각해 본다. 내 더위를 사고 팔 친구도 없다. 갑자기 요양원에 계신 장모님 생각이 났다.

언제나 정월 대보름을 챙겨주시고, 절기에 따른 풍습을 알려주시던 장모님이다. 정월대보름, 무엇을 생각하고 계실까? 아내는 갖가지 나물과 오곡밥을 준비하고 있다. 약간의 고기도 곁들여 오곡밥을 해다 드리려는 것을 보고, 정월 대보름 뒷산으로 향했다.

오래 전엔 정월 대보름 달을 보기 위해 밤에 나섰던 산길이다. 정월 대보름 날의 신선한 공기를 찾아 나선 것이다. 겨울바람과는 전혀 다른 바람이다. 냉혹했던 겨울이 비켜간 자리가 서서히 보이고 있다. 어느덧 바람은 따스함이 묻어난다. 서서히 뒷산으로 접어들자 많은 사람들이 보인다.

건강에 정월 대보름이라고 다를 것이 있으랴. 언제나 사람들이 북적이는 뒷동산이다. 무심코 앞만 보고 가는 사람, 라디오를 친구 삼아 오르는 사람 등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보인다.

산의 중턱에 오르자 벌써 내려오는 사람들이 보인다. 간단히 인사를 하자 반갑게 인사를 한다. 물끄러미 바라보며 지나는 것보단 간단한 인사라도 건네는 것이 편해서다. 할까 말까를 망설이다 얼른 먼저 고개를 숙인다. 할 수 없이 인사를 나누는 사람도 있고, 반갑게 인사를 하는 사람도 있다. 간이 의자에 앉아 핸드폰에 열중인 사람도 있다. 오가는 사람에는 관심도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오르는 산길엔 이미 봄이 오고 있음을 실감한다. 진달래는 작은 몽우리를 얹었고, 벚나무도 어느덧 봄을 감지했다. 나무껍질엔 어느새 촉촉한 물기가 흐르고 있다. 따스한 바람이 아니면 도저히 보일 수 없는 가지의 윤기다. 아, 계절의 숨길 수 없는 발길이 벌써 오고 있구나! 계절의 오묘함에 한참을 바라본다.

한 시간여를 오르자 작은 봉우리에 도착했다. 먼저 온 사람들이 숨을 고르며 땀을 닦는다. 누가 왔는지 전혀 관심이 없다. 인사를 할까 말까를 망설이다 순간을 놓쳤다. 옆자리에 앉아도 조금은 불편해 금방 후회하고 만다. 얼른 인사를 할걸! 기회를 놓치고 말았으니 이제서 인사를 할 수도 없는데, 왜 나만 먼저 인사를 해야 할까? 내가 하지 않으면 인사를 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내가 잘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생김이 이상한 것인지 물어볼 수도 없으니 답답하다. 불편함을 감수하고 앉아 봄 냄새를 맡는다. 시원함이 가득한 바람이 산을 찾았고,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며 온 길을 되짚어 내려온다. 내려오는 길에도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열심히 휴대폰만 바라보는 사람, 뛰어가듯이 산을 오르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오간다.

산에 올랐다 내려오며 하는 작은 생각

산을 내려오는 길, 등산화에 흙이 묻어 몹시 불편하다. 풀밭에 씻기도 하고, 바닥에 발을 굴러 보기도 한다. 흙이 쉽게 떨어지지 않아 수없이 반복해 본다. 스틱으로 등산화 바탁을 수없이 두드렸다. 한참의 노력 끝에 발이 가벼워졌다. 걷기도 편리하고 몸도 한결 수월해졌다. 느닷없이 여러 생각이 떠오른다.

세월이 더 지나 흙도 털어낼 힘도 없으면 어떻게 하지? 그러면 산에도 오지 못하려나? 갑자기 흐르는 세월이 서글퍼진다. 어렵게 흙을 털어낸 발이 가벼워 좋다. 이렇게도 가벼운걸 어떻게 내려왔을까? 삶도 이렇게 살 수는 없을까? 수없이 쌓아 놓고 사는 살림살이도 가볍게 털어내면 안 될까? 간편하고도 단출한 삶은 얼마나 편리할까? 아침에 읽은 어느 작가의 글이 떠오른다.

병에 들어 있는 사탕을 욕심껏 움켜잡으면 손을 뺄 수 없단다. 주먹은 고단함 속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먹을 만큼 적당한 양만이 손을 뺄 수 있게 허락한단다. 욕심을 부리지 말라는 뜻이었다. 삶도 그렇지 않을까? 어리석은 인간이기도 하니 그럴 수 없어 걱정이다. 한 개라도 더 움켜 잡으려 몸부림이다. 남보다 더 가져야 하고, 내 품에 하나라도 더 챙겨 넣어야 안심이 된다. 

정월 대보름달을 보며 무엇을 빌어야 할까? 아무래도 건강한 하루의 삶이 최고 아닐까? 남아 있는 삶동안 욕심껏 움켜 잡지 말고, 간소하게 살만큼만 잡게 해 달라고 빌고 싶어 진다. 정월 대보름 날, 산에 올랐다 내려오며 하는 작은 생각들이다. 

태그:#정월 대보름,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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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무렵의 늙어가는 청춘, 준비없는 은퇴 후에 전원에서 취미생활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면서, 가끔 색소폰연주와 수채화를 그리며 다양한 운동으로 몸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세월따라 몸은 늙어가지만 마음은 아직 청춘이고 싶어 '늙어가는 청춘'의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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