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늘도 어김없이 동네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골목길엔 저렴한 커피집이 있기 때문인데 맛도 제법 괜찮다. 입이 심심할 땐 가끔 찾아 나서는 커피집이다. 차를 세우기도 어렵고, 주차할 곳도 마땅치 않아 아내가 얼른 내려 커피를 사서 차에 오른다. 역시 묻는 말은 쉽게 살 수 있었느냐는 물음이다. 어디서나 당황스런 키오스크 때문인데, 아내도 이젠 능숙해서 어려움이 없다니 다행이다(관련 기사: 키오스크 순서 양보하는 노인의 말 못할 고충 https://omn.kr/2796m).

그 옛날, 초가지붕이 이마를 맞대고 있던 시골동네는 먹고살기에도 궁핍했다. 숭늉 한 그릇이면 세상이 다 내 것 같았던 시절, 커피라고는 들어보지도 못했다. 이웃 사촌은 우리와는 전혀 다른 삶이었다. 예쁘게 생긴 쟁반에 거무스름한 알갱이와 설탕 그리고 하얀 가루가 든 병이 나란히 있었다. 검은 알갱이를 하얀 잔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부었다. 설탕과 흰 가루를 넣어 마시던 커피는 어떤 맛이었을까? 나는 맛보지 못했던 향기 짙은 검은 물을 그는 마시곤 했다.

커피라는 것을 잊고 중고등학교를 지나 대학에 진학했다. 헝그리 복싱이 유행하고 축구 중계가 성행하던 시절, 텔레비전을 보기 위해 다방을 가야 했다. 기어이 커피 맛을 봐야 했고, 세월은 더 흘러 어느덧 소위 '셀프'라는 커피가 등장했다. 식당 입구에 버젓이 자리 잡은 커피 자판기, 벽면엔 '커피는 셀프'라는 문구가 눈을 끌었고, 일상과 떨어질 수 없는 한국인의 기호식품이 되어갔다. 
 
어느덧 우리의 일상에 없어서는 안될 커피가 되었다. 시골까지 들어선 커피점이 사람의 발길을 모으고 있다. 향긋한 커피향에 젖어 맑은 햇살을 반기는 아침은 더없이 행복한 시골 생활이다. 나의 커피값은 얼마가 적당할까? 부담없는 커피값이 형성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 커피 향이 그리운 아침 어느덧 우리의 일상에 없어서는 안될 커피가 되었다. 시골까지 들어선 커피점이 사람의 발길을 모으고 있다. 향긋한 커피향에 젖어 맑은 햇살을 반기는 아침은 더없이 행복한 시골 생활이다. 나의 커피값은 얼마가 적당할까? 부담없는 커피값이 형성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 Pixabay

관련사진보기

 
아직은 낯선 커피 문화 

얼마 전 아이들과 여행길에  찾은 강릉 안목항, 무슨 커피를 주문할까라는 물음에 할 말이 없었다. 수도 없이 많은 커피 이름이 낯설어 아이들한테 주문을 부탁해야 했고, 커피 이름을 외워 늘 같은 커피를 주문했다. 마음을 바꾸어 커피 공부를 해야 했고, 커피 유래와 맛을 설명하며 거침없이 커피를 주문할 수 있게 되었다. 시대의 흐름에 어울릴 수 있는 최소한의 공부를 한 것이다. 

다양한 시설이 있는 고속도로 휴게소는 언제나 신나는 곳이다. 휴게소에서 옷을 팔고 있는 상점 주인이 얼굴을 붉히고 있다. 젊은 부부 각기 두 손에는 5000원짜리 커피가 들려 있는데, 만 원짜리 옷을 깎아 달라 했단다. 커피값 밖에 안 되는 정도인데도 깎아달라 하니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는 하소연이다. 

요즈음에 달라지는 사회적인 분위기, 번듯한 건물은 커피전문점이다. 커피점에 빵이 곁들여진 상점이 수도 없이 세워지고 있다. 섣불리 대들었던 작은 커피점은 순식간에 문들 닫고 다시 들어서는 대형커피전문점이다. 대형커피전문점의 판매전략도 다양해지면서 먹거리와 볼거리가 어우러진 복합공간은 한 나절을 충분히 보낼 수 있는 놀이공간이 되었다. 

자그마한 면소재지에 커피점이 대여섯 개가 된다. 여기서도 판매전략이 다양하고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가끔 언론에 되뇌어지는 사연, 하루 종일 커피점에 진을 치고 있단다. 어느 공간에는 와이파이를 설치해 주는 곳도 있지만, 자그마한 공간은 다양한 신경전이 펼쳐지고 있는 모양이다.

지나는 길에 만난 커피점, 전망이 좋은 창가에서 젊은이가 공부를 하고 있다. 얼마나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컴퓨터까지 동원되어 진을 치고 있는 모습이 이채롭기도 하다.      

어느새 친숙해진 커피 

아내가 들고 구입해 온 커피, 그윽한 향이 그럴듯하다. 비록 2500원짜리지만 커피 한 모금 입에 물고 운전을 한다. 어느새 마음까지 상쾌해진다. 조용하게 살아가는 골짜기의 아침에 맑은 햇살이 찾아왔다. 맑은 이슬 위에 내린 맑은 햇살은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 얼른 커피 한 잔을 마련해 창가에 앉아 바라보는 풍경은 너무 좋다. 오래전 나의 이웃도 이런 맛을 알고 마셨던 걸까?     

골짜기까지 들어온 커피 향, 아침 운동을 하고 마시는 아이스커피 한 잔은 신체를 깨운다. 운동으로 땀을 흘린 몸의 갈증을 해소해 주는 아름답고도 포기할 수 없는 맛이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운동 후의 커피는 달랑 2500원이지만, 산뜻한 마음에 커피 한 잔을 들고 체육관을 나선다.

무심하게 들어선 커피전문점에 보이는 커피값, 오천 원을 넘어 만원에 이르는 값이다. 잠시 망설인다. 주변의 저렴한 커피를 찾아 다시 나갈까? 선뜻 지갑을 열기엔 아직도 망설여진다. 오래도록 어렵고도 고단한 삶에 찌든 몸과 마음아 아직도 움츠리고 있기 때문이다. 시내 곳곳에 커피잔을 든 젊은이들이 오가고 있다. 나는 저런 행렬에 낄 수는 없을까? 아직은 망설여지는, 늙어가는 청춘이다.      
 
운동후에 만나는 시원한 커피 한잔은 포기할 수 없는 맛이다. 땀으로 흠뻑 젖은 몸을 풀어 주는 시원한 커피 한잔으로 시원함을 달래보는 하루다.
▲ 아이스 아메리카노 운동후에 만나는 시원한 커피 한잔은 포기할 수 없는 맛이다. 땀으로 흠뻑 젖은 몸을 풀어 주는 시원한 커피 한잔으로 시원함을 달래보는 하루다.
ⓒ Pixabay

관련사진보기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중, 느닷없이 배달원이 서둘러 내린다. 발걸음이 급해 보여 정지버튼을 누르고 기다렸다. 다시 엘리베이터에 오른 배달원은 고맙다며 살짝 웃음을 짓는다. 무엇을 배달해 주었느냐는 말에 커피를 배달했다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배달료가 얼마냐고 짓궂은 질문에 3500원이라며 웃는다. 커피를 배달해 온 곳은 아파트 앞에 있는 커피전문점이다. 아내가 웃으며 우리는 2500원짜리 커피를 사다 먹는다고 답한 뒤 웃는다.   

다시, 바다가 훤히 보이는 커피전문점이다. 부산에 사는 딸아이가 엄마 아빠를 구경시켜 준다 해 따라간 커피전문점이다. 수도 없는 차량이 들어서 있고, 널따란 커피점엔 많은 사람이 북적인다. 커피를 사 들고 빵을 사서 느긋하게 앉아 바다 풍경을 즐기고 있다. 시간도 돈도 넉넉해 보이는 젊은이들이다. 어린아이는 자연히 이런 문화에 익숙하게 성장할테니 젊음과 늙어감의 차이를 실감하게 하는 공간이다. 

나는 언제쯤 저런 모습으로 느긋하게 앉아 삶을 즐겨 볼 수 있을까? 시원한 바다를 바라보며 나의 삶을 생각해 보지만, 이번 생에는 저런 삶이 오지 않을 듯하다. 경제적인 문제가 아닌 삶의 방식의 차이 때문일 것이다. 언제나 시간에 쫓기고 돈에 시달려 몸과 마음도 넉넉지 못하게 살아온 삶이기 때문.

이제야 마음 놓고 커피 한 잔이야 마셔도 문제가 없겠지만, 여전히 아직도 망설여지는 세월이다. 내가 마시는 커피값은 대체 얼마가 적당할까? 커피 한 잔을 놓고 많은 생각이 오가는 아침이다. 

태그:#커피, #커피값, #커피전문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고희무렵의 늙어가는 청춘, 준비없는 은퇴 후에 전원에서 취미생활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면서, 가끔 색소폰연주와 수채화를 그리며 다양한 운동으로 몸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세월따라 몸은 늙어가지만 마음은 아직 청춘이고 싶어 '늙어가는 청춘'의 글을 쓰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