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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옥천의 흙과 물은 얼어붙은 표피 안에 온기로 가득한 생명력을 몰래 품고 있다. 정적과 한기만 남은 듯 보이는 겨울의 이면에는 훈훈한 속정이 서려 있는 것이다. ⓒ 월간 옥이네
 
매서운 한파에 건강관리 유념하라는 뉴스가 여기저기서 자주 흘러 나온다. 한낮 기온이 빙점 밑으로 곤두박질치는 이런 한겨울에 농촌을 여행하려면 옷깃만이 아니라 마음까지 추슬러야 제대로 살필 수 있다.

충북 옥천군 청성면·청산면을 따라 놓인 505번 지방도를 타고 둘러본 풍경이 그러했다. 옥천의 흙과 물은 얼어붙은 표피 안에 온기로 가득한 생명력을 몰래 품고 있다. 정적과 한기만 남은 듯 보이는 겨울의 이면에는 훈훈한 속정이 서려 있는 것이다.

농한기도 모르는 농민들, 삼남리 장승백이 마을
 
싸락눈이 구름 흘러가는 방향대로 쏟아 내리다가도 금방 거두어지곤 하는 변덕스러운 산골 날씨지만, 주민들은 꿋꿋이 대를 이어 터를 지켜왔다. ⓒ 월간 옥이네
 
청성면 묘금리에서 출발한 505번 지방도는 궁촌재를 넘어 보청천을 휘감으며 보은군 마로면까지 가 닿는데, 삼남리는 이 길에서 만나는 첫 번째 마을이다. 싸락눈이 구름 흘러가는 방향대로 쏟아 내리다가도 금방 거두어지곤 하는 변덕스러운 산골 날씨지만, 주민들은 꿋꿋이 대를 이어 터를 지켜왔다.

한때 오지 중에 오지로 통했던 삼남리는 최근 3년 사이 크게 바뀌었다. 먼저 마을 초입부터 풍채 듬직한 장승들이 눈에 띄는데, 조상이 물려준 옛 마을 이름 '장승백이'를 기리자며 주민들이 세워둔 것이다. 몇 년 전 외줄기 오솔길이었던 마을 길도 2차선 포장도로로 변신했고, 지난해엔 정류장이 생겨 22번 마을버스가 들어오고 있다. 배차 간격이 시간 단위로 길다지만, 버스 노선이 드문 것과 아예 없는 건 경제적 권리를 갖느냐 못 갖느냐를 가르는 차이점이다.

그래서 삼남리 토박이 김장진씨는 505번 지방도를 '숨통'이라 부른다.

"지방도 없으면 동네 사람들 왔다 갔다 할 방법이 없어요. 재작년에 마을 안쪽까지 포장도 닦고 나선 오지 마을 소리 안 들으니 편하고 기쁘고요. 외줄타듯 오솔길 걸어 마을 들어오던 옛날보다야 훨씬 낫죠. 다만 이런 겨울엔 온통 빙판이 껴서 나이 많은 주민들은 겁날 때가 있어요. 그래도 지방도는 제설 잘하는 편이니..."

농한기 농민들이 '겨울잠 자듯' 한가하게 지낸다는 건 편견이다. 요즘 농촌에선 부업 없이 생계 유지가 힘들다. 농사로는 한 해 천만 원 벌기도 어려우니, 다들 '투잡'에 나선 것이다.

읍내까지 나가 돈벌이하는 주민은 이제 드물지 않다. 부업이 아니더라도 농기계 동파 방지와 농지 관리에 신경 써야 하고, 이날처럼 눈이라도 펑펑 내리면 공동 제설 작업을 거들어야 한다. 안 그러면 집이고 도로고 순식간에 눈에 매몰되기 십상이다.

"아, 손 달 데가 얼마나 많가니. 트랙터도 냅두기만 하믄 얼어 터져. 냉각수 빼놓던지 부동액 갈아야지. 눈도 오죽 오간? 지 집 마당이랑 골목은 알아서 치워야 해. 지붕도 안 쓸면 눈 무게에 무너져. 정류장서 마을 오는 길이 내리막이라 눈도 팍팍 쓸어줘야 하고. 장정들 없고 노인만 많은데, 그 일이 쉬운감." (박기분씨)

설경이 들이닥친 대지를 굽어보는 고개, 궁촌재와 궁촌리
     
산줄기와 논밭이 깍지끼듯 맞물려 형세를 이룬 산계뜰이 온통 백지장처럼 하얀 눈으로 덮여 반짝이는 모습은 장탄식을 절로 뽑아냈다. ⓒ 월간 옥이네
 
장승백이 마을을 지나 북진하던 505번 지방도는 전국적으로 이름난 고갯길 '궁촌재'에 이른다. 대설 특보가 내려진 가운데 긴장감을 품고 오른 고갯길이었지만 다행히 빙판은 없었다. 원격으로 작동한다는 '자동염수분사장치' 덕일까, 아니면 바지런히 고개를 오르내린 제설차 덕분일까? 쌓인 눈을 말끔히 걷어낸 아스팔트 길로 무리 없이 주행할 수 있었다.

궁촌재에는 2021년 10월 준공된 해발 250m 높이 전망대가 있다. 주차 공간에 차를 대고 3층 철탑을 올라 구름다리를 건너면 정상이 나온다. 데크에 쌓인 눈 위에 발목 깊이까지 푹 빠지는 첫 발자국을 남겨본다. 이곳에서는 날이 맑으면 청성을 넘어 청산과 보청천, 북쪽 보은까지 아스라이 시야에 들어온다. 굽이굽이 산비탈을 따라 꼬아진 'ㄹ'자 모양 도로도 볼만한 구경거리다.

해 뜰 무렵이면 보청천에서 피어오른 운무가 백화산(933m), 팔음산(771m), 삼승산(576m) 등 재 너머 산봉우리들을 싹둑 잘라 얹은 채 세상을 집어삼킨다. 산줄기와 논밭이 깍지끼듯 맞물려 형세를 이룬 산계뜰이 온통 백지장처럼 하얀 눈으로 덮여 반짝이는 모습은 장탄식을 절로 뽑아냈다.

"궁이 활 궁자여. 산이 꼭 활 모양새거든. 그래서 궁촌리, 궁촌재 하고 이름 붙은 건데, 어른들은 활골, 활골재라고 더 많이 불렀어. 한자냐 우리말이냐 차이만 있지 실상은 같은 소리지. 전망대 생기고 나선 다니는 차도 늘고 마을도 활기차 좋긴 한데, 쓰레기 놓고 가고 고성방가 질러대는 사람이 가끔 있어서 고생이여." (정순자씨)

궁촌재 밑으로는 궁촌리 마을이 들어서 있다. 조선시대에는 청산현 남쪽 고갯길이라 하여 '남대문재'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청산과 옥천읍 방면을 잇는 요지인 데다 지금은 폐광된 금광이 있어 사람깨나 들락거렸다는 궁촌리는 한때 쇠락 직전까지 내몰렸다.

그러나 2017년 '창조적 마을만들기(농림축산식품부 공모사업)' 지역으로 선정돼 마을 정비에 나서고, 귀농·귀촌을 적극 장려하면서 지금은 53가구 중 30집 이상이 귀농·귀촌인으로 채워질 만큼 활기를 되찾았다.

억조창생의 숨결을 품는 벌판과 강물, 청성 들녘과 상춘정
 
사시사철 정자를 물들이며 떠오르는 일출이 아름답기로도 소문이 자자하다. ⓒ 월간 옥이네
 
청산과 옥천읍 방면을 잇는 요지인 데다 지금은 폐광된 금광이 있어 사람깨나 들락거렸다는 궁촌리는 한때 쇠락 직전까지 내몰렸다. ⓒ 월간 옥이네
 
궁촌리 벌판을 죽 가로지르며 505번 지방도는 청성면 산계리로 이어진다. 계절풍이 북행하는지 궁촌재에서 따라 내려온 칼바람은 수은주를 영하 17도까지 강하시킨다. 오히려 전망대 위에서보다 더 살갗을 에는 공기다. '청성 추위는 알아준다'는 주민들 이야기가 빈말이 아니었다.

고드름이 처마마다 주렁주렁 달린 골목길에서 청성초등학교 어린이들은 뒤뚱뒤뚱 얼음 바닥을 걱정하며 걷는다. 버스에서 내린 어른들도 온몸을 움츠린 채 벌바람에 섞여 날아드는 송곳 같은 눈송이를 피해 귀가하는 모습이다.

청성 명소로 보통 상춘정을 꼽지만, 그에 앞서 산계뜰 농토를 둘러보길 바란다. 얼핏 모든 생명이 동사할 것 같은 이런 강추위에도 숨결을 이어나가는 억조창생(億兆蒼生)을 발견할 수 있다. 눈발을 뚫고 파릇한 보리 새싹이 생장하고, 설원으로 변한 밭에서 고양이는 털을 공처럼 부풀려 냉기를 막는다. 다시 봄이 올 때, 저들은 그 명을 당연하게 이어나가고 있을 터다. 이 땅의 농민들이 여전히 희망을 파종하듯이.

상춘정까지 가는 길은 평범한 천변길이다. 겨울이 아니라면 그렇다는 말이다. 보청천변에 이르면 추위는 절정에 달한다. 영하 19도, 체감온도는 영하 30도에 가까워 기겁할 날씨여서 카메라 셔터 누르는 손가락에 동상 걱정이 앞설 지경이다. 하지만 장점도 있다. 이런 한파는 더없이 맑은 북극 고기압 영향이므로 지평선 저편까지 확 열어젖힌 멋진 광경을 보장한다.

드디어 마주한 상춘정. 전통 건축물로 오해하는 이가 많지만, 의외로 1970년 지어진 현대 건물이다. 당시 청성면장이었던 박춘식씨가 주도해 건립했다고 전해진다. 모양새는 조선 후기 정자 양식이며, 보청천 한가운데 홀로 솟은 '독산' 꼭대기에 있다.

"이 날씨에 사진 찍으러 왔다 하면 이상한 시선 받기 딱 좋아. 추워서 그렇지 이런 날에 가시거리가 20km 넘게 열리거든. 요새는 내가 새 찍으러 돌아다니지만, 이렇게 날 좋으면 풍경도 찍소. 여름에 지겹게 은하수 찍으러 와서 눈 감고도 지리가 훤하거든. 사진쟁이들한테야 유명하지 유명해."

대전에서 왔다는 아마추어 사진가 정규진(53)씨 말처럼 상춘정은 '사진 명소'다. 여름에는 광공해가 적어 '은하수 명당'으로 이름 나 있고, 봄과 가을에는 벚꽃길과 단풍길로 변하는 505번 지방도를 따라 탐방객이 늘어난다. 사시사철 정자를 물들이며 떠오르는 일출이 아름답기로도 소문이 자자하다.

이에 비해 겨울은 상대적으로 인기가 떨어진다. 허허로운 벌판과 삭막한 가지만 그득한 풍경이 무엇이 아름다울까. 그러나 눈발이 더해지면 전혀 다른 평가가 내려진다. 특히 서리꽃이 피어오른다면 더더욱 그렇다. 왜 그런지는 펼쳐둔 사진으로 확인하자.

겨울의 마력이 물결까지 매혹하는 풍경, 보청천과 생선국수 거리
 
벤치와 울타리, 보도블럭은 물론 갈대에까지 덥썩덥썩 달라붙은 서리꽃들은 극권(極圈)에 방문한 듯 오묘한 감상에 빠지게 한다. ⓒ 월간 옥이네
 
상춘정 하나로 보청천 아름다움을 다 경험했다 말하면 오만이다. 505번 지방도는 보은에 닿을 때까지 보청천의 유려한 명경치를 길 오른편으로 느릿하게 풀어둔다. 천변 곳곳에 마련된 데크와 쉼터를 거점 삼아 도로 밑 산책로에서 걸어볼 수 있는데, 다른 계절이라면 철새와 수생 식물 관람하기 좋았겠으나 지금은 겨울이다. 대신 겨울왕국에 당도한 듯 얼어붙은 사물과 생물들이 빚어둔 '이세계' 같은 경치를 즐길 수 있다.

벤치와 울타리, 보도블럭은 물론 갈대에까지 덥썩덥썩 달라붙은 서리꽃들은 극권(極圈)에 방문한 듯 오묘한 감상에 빠지게 한다. 이곳에서 사람은 마치 빙하기나 '눈덩이 지구'에 던져진 기분을 느낀다. 수면부터 갈대, 나무와 수풀, 심지어 공기와 바람마저 급속 동결된 마냥 느껴지는 정경 속에서 홀로 살아 숨 쉬는 사람의 동작은 유빙의 그것처럼 무생물적 움직임으로 둔해진다. 아마도 보청천은 겨울이 부리는 마력이 가장 강렬하게 전달되는 장소 중 하나가 아닐까.

상춘정 일출만큼, 얼어붙은 보청천 위로 뜨는 태양도 아름답다. 출렁거리던 모습 그대로 굳어버린 수면은 반사광을 사방팔방 배출하며 태양의 거울 노릇을 한다. 청산보 근처가 강폭이 제일 넓어지는 구간이니 일출 보기엔 안성맞춤. 특히 두꺼운 얼음 밑으로 훈김을 내며 흘러나오는 강물이 인상적이다. 제아무리 맹렬히 확장된 얼음이라도 이 작은 강줄기 하나마저 완전히 침범하지 못한다는 증거다.

"청산이 생선국수로 유명하잖아요. 강이 좋아야 생선도 잘 나오죠. 지금은 많이 탁해졌다지만, 그래도 맑아요. 보청천이 청산 생명수죠. 겨울에도 늦게 얼어붙었던 기억이 나요. 얼음 깨고 물속에서 고기 잡던 추억도 있고요."

주말마다 친정인 청산에 내려온다는 심옥자(66)씨가 기억하는 보청천은 '먹을 것 많이 나오는' 보물 같은 강이다. 붕어며 피라미, 모래무지 등 온갖 민물고기를 천렵하던 아버지 모습도 생생하다. 한겨울에도 다른 금강 지류들보다 늦게 얼어붙는 특징이 있어 천렵 기간이 길었단다. 지난 2018년 조성된 '생선국수 거리'가 청산의 명물이 된 것도 다 이런 내력들이 쌓여서다.

겨우내 잎 떨어진 자리에 반드시 순이 돌아오듯, 백운리와 대성리
 
수령을 300살 이상 넘긴 우람한 소나무들이 마을 뒷산 3천 평(1만㎡) 부지에 고루 자생한다. ⓒ 월간 옥이네
 
잠시 505번 지방도에서 벗어나 '살짝' 청산의 속내로 걸음을 옮겼다. 청산면 지전리 위로 북진하면 덕의산 밑자락에 안긴 백운리가 나온다. 이 마을은 유정 조동호 선생을 비롯해 독립운동가를 8명이나 배출했다. 마을 어귀부터 소담한 백운천을 따라 놓인 솟대와 서각이 볼거리인데,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글씨를 새겨넣었다는 서각은 공동체 정신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빼곡하다.

마을 가운데에는 '평짓마샘'이 있다. 백운리에 사람이 모여 살기 시작한 후로 대대손손 써온 우물이다. 본래 샘 안에 가재와 버들치가 살 정도로 맑았다는데, 상수도가 들어오면서 방치돼 막혔던 것을 지난 2018년 복원사업으로 되살려냈다. 지금은 방문객들이 족욕을 하고 여름철 더위를 피하는 쉼터로 쓰인다.

"청산에서도 우리 백운리 물맛이 최고라고 이름났었지. 물이 어디서 솟는지, 아무리 퍼내도 수위가 일정하고 맑아. 가뭄이 들어도, 홍수가 나도 물이 탁하거나 줄어드는 법이 없어. 이렇게 복원해서 마음이 흐뭇해."

평생을 백운리에서 살았다는 어르신에게 물맛이 어떻게 좋았는지, 서각은 어떤 분들이 새겼는지 이야기 더 해주십사 부탁드려도 "그냥 백운에서는 남남이 없어"란 소회만 남긴다. "대성리까지 응달이 여기저기 있으니 빙판 조심해"란 조언을 끝으로 손사래 치곤 이름 말씀도 없이 가신다.

이번 지방도 여행의 끝은 대성리다. 청산에서는 최북단이고, 보청천 줄기도 조금씩 가늘어진다. 75가구, 130명 남짓한 주민이 사는 대성리는 원주 원씨의 집성촌으로 유명하다. 길가에 있는 청학정은 원주 원씨 유학자 원세중 선생을 기리기 위해 지어졌다는데, 본래 정자 형태에서 지금은 사당에 가까운 모습으로 변했다.

대성리는 나무, 숲과 인연이 깊은 마을이다. 특히 수령을 300살 이상 넘긴 우람한 소나무들이 마을 뒷산 3천 평(1만㎡) 부지에 고루 자생하는데, 이를 '마을 숲'으로 지정하고 관리하며 자랑으로 여긴다.

또 마을 입구 천변에 우뚝 선 600살 느티나무도 마을의 정신적 대들보 역할을 한다. 사실 보은부터 청성에 이르기까지 보청천 인근에는 수백 살 먹은 느티나무가 여럿 존재한다. 안타깝게도 몇몇 나무들은 환경 오염 등으로 죽기도 했지만, 대성리 느티나무는 아직 굳건하다.

"내 알기론 나이가 600살 넘었어. 여서 동네 잔치도 허고, 관광객들 놀러와서 캠핑도 하고 그래요. 전에는 동제도 지내고 그랬는데 코로나19 후론 잠잠해. 나 어릴 때도 이만큼 컸는데 지금 봐도 똑같이 커요. 그냥 우리 동네 신령이지, 신령." (원일순씨)

여름엔 천변을 그늘로 꽉 채울 만큼 우거진다는 느티나무. 겨우내 잎은 털어냈지만 의젓한 골격은 더 곧게 뻗는 듯하다. 경이로운 기분마저 드는 웅대한 자태를 보아하니 신령이 생명체로 강림한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다. 봄볕이 입김을 불어 넣으면 이 '마을의 뼈대'엔 다시 살이 붙고 잎이 돋아날 테다.

삶보다는 죽음, 생기보다는 정적에 가까운 것이 겨울의 인상이다. 하지만 505번 지방도를 따라 들이마신 옥천의 겨울 공기 속에는 잠열이 가득하다. 얼음 밑으로 흐르며 김을 뿜는 보청천 물살처럼, 청성 들녘에 삐죽삐죽 돋아난 겨울 보리 싹처럼, 빗과 삽으로 지붕 위 눈을 털며 삶의 무게를 덜어내는 농한기 농민들처럼, 그리고 600번의 낙엽과 새순을 담담히 맞아온 아름드리 나무들처럼...

온도계로는 측정 불가능한 삶의 잠열을 가만히 들춰보고 싶다면 가장 추운 날, 505번 지방도로 길을 잡아도 좋을 일이다.

월간옥이네 통권 67호(2023년 1월호)
글·사진 김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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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지방도, #옥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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