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핼러윈 축제가 열리던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10월 29일 밤 10시22분경 대규모 압사사고가 발생해 1백여명이 사망하고 다수가 부상을 당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구급대원들이 참사 현장 부근 임시 안치소에서 사망자 이송을 위해 길게 줄지어 대기하는 모습.
 핼러윈 축제가 열리던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10월 29일 밤 10시22분경 대규모 압사사고가 발생해 1백여명이 사망하고 다수가 부상을 당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구급대원들이 참사 현장 부근 임시 안치소에서 사망자 이송을 위해 길게 줄지어 대기하는 모습.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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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발생. 
- 참사 발생 26일째, 2022년 11월 24일부터 2023년 1월 7일까지 45일 동안 국정조사를 진행할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출범.
- 참사 발생 53일째, 2022년 12월 21일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출범 27일 만에 첫 현장조사
- 참사 발생 68일째, 2023년 1월 5일 국정조사 기간 종료 이틀 전 국정조사 일정 열흘 연장 합의.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는 참사의 원인과 대응, 이에 대한 책임을 묻고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과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것이었지만, 그 시작조차 힘들었다. 이태원 참사로 국민 159명이 희생된 만큼, 그 원인을 제대로 분석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그러나 이 당연한 과정인 국정조사는 참사 발생 이후 한 달이 다 되어서야 결정됐다. 윤석열 정부는 초기 수사를 통해 다 밝힐 것이니 다른 과정은 필요 없다는 입장이었고, 이는 결국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정치적 책임은 없으며, 조사 뒤 법적 책임이 있다면 그때 책임을 지면 된다는 입장으로 이어졌다. 결국 여야가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기간을 오는 17일까지 열흘 간 연장하기로 합의했지만, 그마저도 충분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관련 기사: 참사 유족 "국정조사 10일 연장? 부족하다, 조수진 특위 사퇴하라" http://omn.kr/2297l ).

나는 지난 12월 7일 발족한 '10·29이태원참사시민대책회의'에서 활동 중이다. 대책회의의 진상규명 시민참여위원회 위원으로서 이번 국정조사 전 과정을 모니터링하며 다양한 전문가들과 참사의 원인·대응의 문제점, 재발방지를 위한 논의에 참여하고 있다. 시민대책회의는 진상규명 과정에 적극 대응하면서 희생자 유가족을 비롯한 생존자, 지역주민 등 피해자 지원 활동과 참사에 대한 기록 활동을 진행 중이다.

앞서 이태원 참사 수사를 위한 경찰청 특별수사본부(특수본)이 꾸려졌지만, 특수본의 수사는 결국 용산구청, 용산경찰서, 용산소방서 정도의 수준에서 멈추고 있다. 9일 언론 보도들에 따르면 특수본은 행정안전부와 서울시 등 상급기관에 대해선 법적 책임을 묻지 않고, 당일 구조 책임을 맡았던 최성범 용산소방서장과 박희영 용산구청장, 김광호 서울경찰청장 등에만 책임을 지우는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참사의 원인과 책임자 처벌은 수사에 맡기고 대책은 참사에 제대로 대응조차 못했던 기관들에 맡기라는 윤석열 정부. 이런 정부에서, 이태원참사 이후의 세계를 만들고 참사의 재발을 막으려는 시민들이 설 자리는 없어 보인다.

'꼬리자르기'로 끝나는 특수본... 그래서 국정조사는 더 필요하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 6일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특위 2차 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오른쪽은 오세훈 서울시장.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 6일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특위 2차 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오른쪽은 오세훈 서울시장.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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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의 앞선 주장처럼, 수사를 하면 되니 국정조사는 불필요한 과정인 걸까. 그렇지 않다. 조사과정을 충분히 알 수 없는 수사와 달리 국정조사는 국회의원을 비롯해 국민에게 정보와 조사 과정이 공개되고, 피해자들의 참여가 보장된다. 이 과정은 참사의 진상과 책임을 사회적으로 묻는 시간이며 피해자의 회복과 재발방지를 위한 논의에 공동체가 참여해 시민적 책임을 만드는 시간이다. 

여야의 합의에 따라 추가된 열흘조차, 엄밀히 따지면 '국정조사 연장'으로 받아들이기엔 무리가 있다. 원래 예정되어있던 45일의 기간 중 반 이상을 흘려보내고 시작한 탓에, 마무리 시점을 열흘 뒤로 늦춘다 한들 애초 예정했던 45일보다 짧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2번의 현장 조사, 기관조사 2회를 거쳐 2차 청문회까지 진행했고, 나는 대책위 소속으로 이를 지켜봤다. 그러나 이 시간 동안 목격할 수 있었던 것은 '몰랐다'란 말만 반복하는 정부 기관의 수장들, 시민의 다급한 구조요청을 위험으로 인식하지 않고 보고도 전파도 하지 않는 기관 관계자들이었다. 그곳에 국민을 지켜주는 국가는 없었다. 구조와 수습을 위해 기민하게 협력하는 국가도, 이를 위해 상황을 총괄하고 조정하는 국가도 없었다.

참사 직후 '경찰·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해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라며 책임을 회피했던 이상민 장관은 12월 27일 첫 기관보고에서도 "이태원 참사는 1차 긴급구조가 최우선, 중대본 구성이나 이런 건 그 다음"이라며 행안부의 구조 총괄 책임을 피하는 듯한 취지로 말했다. 사망자 신원을 빨리 확인하라는 대통령의 지시 사항과 관련해 "(대통령 지시를 제가) 직접 받은 건 아니"라며, "(그러나) 누가 받았든 어쨌든 그 업무를 서울시에서 했다"라고 책임회피성 발언을 했다. 또 수행기사를 기다리느라 현장 이동에 85분이 걸렸지만, 그럼에도 "놀고 있었던 것은 아니"라며 할 일을 다 했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1월 6일 2차 청문회에서 장관이 직접 건 전화는 1통 뿐이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그의 항변은 빛이 바랬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어떠한가. 당시 정부 차원의 즉각적인 개입이 필요했다는 지적에 그는 "응급의료 대응이라고 하는 것은 보건복지부장관한테 보고를 하고 지시를 받아서 이뤄지는 게 아니"고, "현장 컨트롤은 보건소장이 하는 것"이라는 답변을 남겼다. 복지부 장관이 재난 대응에 역할을 못해도 괜찮다는 것인지, 그렇다면 장관은 왜 존재하는 것인지 듣는 이로선 의문이 남을 수밖에 없는 발언이었다.

유체이탈 화법, 책임 떠넘기기 급급한 정부 인사들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가 지난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국조연장 및 철저한 진상규명 촉구 공동 긴급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가 지난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국조연장 및 철저한 진상규명 촉구 공동 긴급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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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체이탈 화법'은 경찰도 마찬가지였다. 서울청장이 경찰청장에 보고를 하지 않아 참사 발생 2시간 뒤에야 경찰청장에게 최초 보고되는 보고체계가 이상하지 않냐는 질문을 받고 윤희근 경찰청장은 "안타깝게 생각한다"라며 마치 남의 일인 듯 답변했다.

이들 변명처럼, 현장에서 책임자가 판단하고 즉각적인 대처를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훈련이 되고 경험이 많은 현장 책임자가 내리는 상황 판단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현장 책임자가 적극 대처를 할 수 있는 조건 및 충분한 권한과 환경이 주어져야 하며, 그런 조건을 만드는 게 바로 정부 부처와 부처 책임자들의 몫일 것이다. 그럼에도 국조특위에 나온 정부 책임자들은 자기 역할이 무엇이어야 했는지, 자신이 무엇을 놓쳤는지에 대한 성찰은 없어 보였다.
  
우리는 국정조사를 통해 왜 참사가 발생했는지에 대한 답을 찾기를 기대했다. 왜 실패했는지를 알아야 비슷한 일의 발생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책임보다 무능을 증명하기로 작정한 듯해 보였다. 특위에 나선 관계자들이 한 말은, 주로 '현장의 판단과 대처는 현장의 몫'이라는 말뿐이었다. 이들은 자신은 당시 최선을 다했으며, 그러므로 앞으로도 그 자리를 유지하겠다고 했다.

국정조사는 무엇을 위해 하는 것인가? 참사의 책임 있는 자들의 변명을 듣기 위해서 하는 것인가, 국회가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는 비난을 피하고자 마지못해 하는 것인가? 이런 식이라면 열흘이 추가된다고 해도 실제 충분한 조사와 재발방지를 위한 논의가 진행될 수 있을지 우려된다. 국정조사는 국회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인데, 이마저도 다하지 않는다면 과거와 다를 바 없지 않겠는가. 
 
이종철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대표가 지난 4일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1차 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는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을 바라보고 있다.
▲ 전 용산서장 바라보는 유가족협의회 대표 이종철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대표가 지난 4일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1차 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는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을 바라보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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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중요한 것은 국정조사 기간이 참사를 살펴보기에 충분한지, 나아가 국정조사가 당초 목표에 맞게 충실하게 진행되고 있는지 지켜보는 일일 것이다. 기한 연장은 그런 맥락에서 의미가 있는 것이지, 마지못해 또는 선심 쓰듯이 일정을 늘리는 것이 돼서는 안 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국정조사는 국회의 가장 기본적 책무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그간의 국정조사를 통해 작은 조각들이 맞춰지기 시작했고, 아주 조금씩 진상이 드러나고 있다. 참사에 대한 행안부 장관의 인식이 어느 수준인지, 누구 말이 참에 가까운지를 추측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 그렇다. 향후 비슷한 참사를 막으려면 행정적·정치적인 책임까지 물어야 한다고 본다. 참사의 재발 방지를 위해, 구조적이고 조직적인 무능과 실패의 원인을 찾는 것까지가 국정조사가 해야 할 역할이다. 그 역할을 할 시간은 '단 10일'로는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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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이태원참사, #국정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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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운동공간 활 상임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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