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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들의 마지막 노래 "엄마, 사랑해"|故 이지한씨 .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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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지한씨 육성 "어디 일진 모르겠지만 / 혼자였던 밤 하늘 / 너와 함께 걸으면 / 그거면 돼. (적재, <별 보러 가자>) 엄마 생일 축하해, 사랑해"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이지한씨의 어머니가 지난 11월 22일 참사 후 첫 기자회견에서 아들의 마지막 육성을 들려주며 오열했다. 

아래는 이씨 어머니의 발언 전문이다. 

 
"저는 배우 이지한의 엄마입니다. 지한이와의 추억이 너무 많아 종이에 적을 수 없어 머릿속에 담아 왔어요. 2001년 육아일기장에 '너는 별명을 효자로 지어야겠구나'라고 써 있더군요. 그 아이는 그렇게 착했습니다.

연줄 하나 없는 집안에서 태어나 자기 힘으로 동국대 연극영화과 들어갔고 올 5월에 한 달 간의 오디션을 거쳐 큰 기획사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12월 방영을 앞두고 매일 같이 제대로 먹질 못했어요. 운동은 하루도 거르지 않았고 오직 그 작품에 온 신경과 온 정성을 쏟고 있었습니다. 오후 2시 바지와 와이셔츠를 다려 입히고 구두끈을 매주니 (아들이 말했습니다.) '엄마 나 오늘 밥 먹고 와야 해, 다음날 촬영 있어서 금방 올 거야.'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날 12시 아이가 죽었다니요. 믿고 싶지 않았고 믿을 수 없어서 병원으로 가 보았는데 지한이가 맞았습니다. 그날도 못 먹은 거 같았어요. 볼이 너무 패여 있었고 배가 홀쭉해서 '지한아, 넌 오늘도 못 먹었구나.'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그러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할까. 곰곰이 생각하다 '그래도 가장 힘 있는 사람이 대통령밖에 없겠구나, 그분에게라도 편지를 써보자, 그분에게 호소를 해보자'고 두서없이 막 적었습니다.

존경하는 대한민국의 대통령님께.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 이태원 참사의 희생자 배우 이지한의 엄마입니다. 해가 뜨는 것이 두렵고 제 입으로 물이 들어가는 게 싫어 제 입을 꿰매버리고 싶은 심정이며 제 뼈에 붙은 살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아들이) '엄마' 하며 들어올 것 같고 (아들의) '배고파요' 환청에 시달려 정신과 치료도 받으려 합니다. 지한이 아빠는 장례 직후 자살시도를 하였고 지한이 누나는 자기가 대신 죽었어야 한다며 죄책감이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 참사는 분명히 초동 대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일어난 인재이며 부작위에 의한 살인 사건임에 분명합니다. 저는 법을 공부한 적도 없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인이란 생각이 자꾸 듭니다. 저는 이 사태가 158명(11월 22일 기준)을 쳐다만 보면서 생매장한 살인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초동 대처만 6시 34분부터 제대로 이뤄졌다면 158명 희생자는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으리라 확신합니다. 상하체계는 모래성 같아 사건이 생기면 모두 무너지게 돼 있었고 지능인들로 구성된 줄 알았지만 탁상공론 하는 지식인들만 있었고, 발로 뛸 줄 알고 뽑아줬건만 자기자리 지키려고 숨만 쉬는 식물인간들로 이뤄졌었습니다.

만약 류미진 전 과장, 용산구청장, 용산경찰서장, 경찰청장, 서울시장, 행안부장관, 국무총리 자식들이 한명이라도 그곳에서 '숨쉬기 어렵다, 압사당할 것 같다, 살려 달라, 통제해 달라'고 울부짖었다면 과연 그 거리를 설렁탕 먹고 뒷짐 지고 어슬렁어슬렁 걸어갈 수 있었을까요. 절대 아니죠. 이건 아니죠. 그럴 순 없죠. 이러한 행위는 칼을 들진 않았어도 정황상으로도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 적용하여 모두 형사책임을 지워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린아이들에게까지 형사책임을 묻는 법을 개정하면서 어찌 이 어른들을 그냥 넘어가려 하십니까.

이번 대통령 선거 때 태어나서 34년 만에 처음으로 제 손으로 대통령을 뽑았습니다. '이번엔 잘 할 거야, 잘 하고 말고' 그 믿음은 지금도 의심치 않습니다. 윤석열 대통령님 간절히 부탁하고 또 부탁드립니다. 10만 명 아이들도 보호할 수 없다면 158명 희생자와 다친 청년들도 구할 수 없다면 이 5000만 국민들은 누굴 믿어야 합니까. 포기해야 합니까. 나라를 버려야 합니까. 이 억울한 마음을 FBI에 알려야 합니까. 이 분한 심정을 전 세계에 알려야만 합니까. 대한민국의 축제나 콘서트에 올 때는 반드시 경호원을 대동하여 와야 한다고요. 그래야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말을 바꾸고 증거를 인멸하는 행태가 바뀌는 겁니까.

대통령님. 사고 현장 앞을 밥 먹고 뒷짐 지고 어슬렁어슬렁 걸어가던 이(이임재), 112상황실에 있지도 않았던 이(류미진), 핼러윈은 축제가 아닌 현상이라고 말한 이(박희영), 그 중에서 가장 괘씸죄를 추가하고 싶은 행안부장관(이상민)의 말 바꾸기, 책임을 느끼지 못하는 행안부장관, 이 책임의 앞과 뒤는 누구의 책임이냐며 비웃으며 빈정대던 이(한덕수). 이 모두에게 직무유기, 업무상과실치사는 물론이며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를 적용해주십시오.

대통령님이 아끼는 사람들이 국민의 생명을 하찮게 여겨, 무시해 생명을 잃게 했다면 그들을 가까이 두어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요. 귀하지 않은 생명이 어디 있습니까. 장관의 아이도 회사원의 아이도 시장 상인의 아이도 생명의 무게는 다 같지 않습니까.

저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믿을 것입니다. 왜냐고요. 저와 제 남편, 그리고 지한이도 윤석열 대통령님을 뽑았기 때문입니다. 망언을 일삼는 공직자들, 죽어가는 청년들을 보고만 있던, 아니 못 본 채 한 이들, 그들의 자녀들이 압사를 당해봐야 알 수 있는 일들일까요.

국민들의 뜨거운 눈물이 제게는 너무나 큰 위안이 되었으나 망언을 일삼는 그들을 보면 숨을 쉴 수가 없습니다. 대통령님 도와주세요. 다시는 우리 청년들이 어처구니없이 생매장 당하지 않도록 호되게, 표본이 되게 형사적으로 엄하게 처리해주십시오. 찬란한 미래까지 짓밟힌 아들을 잃은 이 어미의 마지막 소원을 제발 들어주세요. 믿습니다. 믿겠습니다. 믿을 것입니다. 제발. 이태원 참사 희생자 배우 이지한 엄마 올림.

그리고 지한이가 제가 이 노래를 좋아한다고 했더니 노래를 불러 마지막 육성을 남겼습니다.

[고 이지한씨 육성 : 어디 일진 모르겠지만 / 혼자였던 밤 하늘 / 너와 함께 걸으면 / 그거면 돼 (적재, <별 보러 가자>) 엄마 생일 축하해, 사랑해]

마지막 육성입니다. 여기 계신 158명 희생자 부모님들은 제 슬픔보다 더 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 아들은 이렇게 저를 사랑했으며 이렇게 추억이 많습니다. 그런 아들을 잊을 수 없어 이 자리에 나서게 됐습니다.

국민 여러분 도와주세요. 기자 분들 부탁드립니다. 지금도 증거인멸은 이뤄지고 있으며 자료 삭제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모든 걸 낱낱이 밝혀 이 억울한 청년들의 찬란한 미래가 짓밟히지 않도록 내 아이들의 앞날에 더 이상 억울한 일이 없도록 국민 여러분들과 기자님들께 부탁드립니다. 도와주세요. 감사합니다."

 
10.29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가 지난 14일 오후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인근 이태원 광장에 시민분향소를 설치했다. 원하는 유가족들은 이 분향소에 희생자의 영정사진을 올린 뒤 오열했다. 고 이지한씨 부모가 아들의 영정사진을 끌어안고 오열하고 있다.
 10.29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가 지난 14일 오후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인근 이태원 광장에 시민분향소를 설치했다. 원하는 유가족들은 이 분향소에 희생자의 영정사진을 올린 뒤 오열했다. 고 이지한씨 부모가 아들의 영정사진을 끌어안고 오열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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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이태원, #참사, #희생자, #이지한, #RECORD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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