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즈음 내가 가장 많이 읊조리는 시는 김광섭 시인의 '저녁에'다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으로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이 시 가운데 가장 내 가슴에 닿는 시구는 제2연으로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라는 구절이다.

요즘 나는 그 시구의 화자처럼 어둠 속으로 조용히 사라지고 싶다. 그런 가운데 지난 3일 한밤중 포르투갈 전 경기에서 종료 직전 결승골을 어시스트 한 뒤 환희의 눈물을 쏟는 손흥민 선수를 보았다. 그 순간 나도 내 작품에 최선을 다한 결과물을 이룬 뒤 그 선수처럼 눈물을 쏟으면서 이 세상에서 퇴장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 솟았다.
 
3일 오전(한국시간) 카타르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H조 3차전 대한민국과 포르투갈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며 16강 진출에 성공한 대표팀 손흥민이 경기 종료 뒤 그라운드에 엎드려 기뻐하고 있다.
▲ 손흥민, 승리의 기쁨 3일 오전(한국시간) 카타르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H조 3차전 대한민국과 포르투갈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며 16강 진출에 성공한 대표팀 손흥민이 경기 종료 뒤 그라운드에 엎드려 기뻐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나는 어려서부터 조부님의 엄한 교육을 받으면서 문장가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내가 쓴 글에 감동하여 그 글을 교직원회의에서 낭독한 바, 전 선생님들이 열띤 박수를 치셨다는 얘기를 들려주시면서 '너는 장차 대문장가가 되라'고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낙방의 세월
 
중동고 교지<중동 제9호>에 실린 박도의 <국화꽃 필 때면>
 중동고 교지<중동 제9호>에 실린 박도의 <국화꽃 필 때면>
ⓒ 박도

관련사진보기


1963년 고교 2학년 시절, 교내문예현상모집공고를 보고 하룻밤을 새우다시피 단편소설 <국화꽃 필 때면>이란 작품을 써서 공모한 바, 당선의 영예를 누렸다. 그때 평론가 곽종원 선생의 선후 평이다.

"박도의 <국화꽃 필 때면>은 문장이 간결하여 선명하고 장면 장면이 독자의 머릿속에 확실하게 떠오른다. (중략) 고등학교 학생 작품으로서 이만한 수준도 드물 것이다."

그때 나는 우쭐했다. 그리하여 상대나 법대로 진학하라는 아버지의 말씀은 끝내 듣지도 않은 채 국문학과로 진학했다.

하지만 그 이후는 좌절 연속으로 낙방의 세월을 보내다가 1994년 1월, 쉰의 나이로 <사람은 누군가를 그리며 산다>라는 제목의 장편소설로 문단 말석에 겨우 얼굴을 내민 늦깎이였다. 이후 오늘까지 40여 편의 책을 펴냈으나 거의 태작이다.

이즈음 나는 코로나19 후유증에, 저물어 가는 연말, 게다가 신체 각 기능의 빨간 신호등으로, 그저 소리 소문도 없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픈 마음이 굴뚝같다. 하지만 한 번 떠나면 다시 올 수 없는 길, 어린 시절 고향의 금오산을 바라보며 키웠던 그 꿈을 다짐하면서 전력투구 집필해야겠다고 흐트러진 내 몸과 마음을 추슬러 본다.

그리하여 어느 깊은 밤, 마침내 그 작품을 탈고한 다음, 자만자족의 눈물을 흘리면서 영원히 깨어날 수 없는 긴 잠에 빠지고 싶다.

태그:#집필 각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