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하루 앞둔 2022년 11월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 수험생을 응원하는 메시지가 걸려 있다.
▲ "수능대박! 사랑한다! 응원한다!"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하루 앞둔 2022년 11월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 수험생을 응원하는 메시지가 걸려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미적분과 언어와 매체로 바꿔주시면 안 될까요?"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작년보다 올해가 갑절은 더 많아진 듯하다. 수능이 끝나기가 무섭게 선택과목 변경에 관한 문의 전화가 잇따르고 있다. 이미 내년에 운영될 학급 및 시간표 편성 작업이 마무리되는 와중이라 담임교사와 학교 교육과정 담당자는 난감할 수밖에 없다.

옛말로 치면 문과에서 이과로 옮기겠다는 거다. '통합 수능'이 치러진 작년 이후 부쩍 늘어난 기현상이다. 문과와 이과의 구분이 사라진 데다 과목별 난이도 차이를 보정하기 위한 표준점수가 반영되다 보니 당장 선택과목에서 대입에서의 유불리를 따지게 된 것이다.

국어 영역의 선택과목은 화법과 작문에서 언어와 매체로 이동이 눈에 띄고, 수학 영역에서는 확률과 통계에서 미적분과 기하로의 변경 요구가 확연하다. 표준점수가 다른 선택과목보다 높다는 이유에서다. 작년의 경우 각각 2~3점 차이가 났는데, 올해는 더 큰 차이가 날 것으로 예상된다.

최상위권의 경우 국어 영역이, 중상위권의 경우 수학 영역이 대입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건 불문율이다. 절대평가로 전환된 후 영어 영역은 대입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해졌다. 절대평가로는 변별력을 확보할 수 없어, 어떻든 일렬로 줄 세우려면 국어와 수학에 기댈 수밖에 없다.

단 몇 점 차이로 명문대 합격 여부가 '인 서울'과 '지방대'로 갈리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똑같이 100점을 받아도 선택과목별 표준점수의 차이로 피해를 겪게 되는 모순 아닌 모순 속에서, 특히 상위권일수록 민감하다. 어느새 그들에게 미적분과 언어와 매체는 선택과목이 아닌 '공통과목'이 됐다.

더욱 심해진 자연계의 문과침공

문과 침공. 작년 수능 이후 생겨난 신조어다. 미적분과 기하를 선택한 이과 아이들이 상대적으로 높은 표준점수를 활용해 대학의 문과 계열로 방향으로 트는 현실을 꼬집은 것이다. 예컨대 연고대 이과 계열로 갈 바에야 비슷한 점수대의 서울대 문과 계열로 가겠다는 거다.

작년 수능을 치른 올해 서울대의 문과 계열 신입생의 경우, 둘 중 하나가 미적분과 기하 등 이과 선택과목을 이수한 아이들이다. 심지어 60%를 상회하는 대학도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이는 전국 모든 대학이 겪고 있는 공통적 현상이다.

문과 침공과 짝을 이뤄 회자되는 웃픈 이야기도 있다. 통합 수능이 치러지면서 '수능(修能)'이 '수능(數能)'으로 변질됐다는 거다. 대학에서 수학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판별하겠다는 취지로 도입된 수능이 오로지 수학 실력을 테스트하는 시험으로 전락했다는 조롱이다.

이태 전까지만 해도 수학은 문과와 이과로의 진학을 정하는 기준이었다. 수학에 흥미가 없거나 점수가 생각만큼 나오지 않는 경우 운명인 양 문과를 선택하곤 했다. 영어는 문이과 공통과목이고, 국어를 잘하면 문과, 수학을 좋아하면 이과를 선택하는 게 전가의 보도였다.
    
통합 수능 이후 공식은 깨졌다. 문과든 이과든 이젠 대학 진학의 열쇠는 수학이 쥐게 됐다. 수학의 장벽을 넘지 않고서는 명문대는커녕 '인 서울' 대학 진학 꿈조차 꿀 수 없다. 대입에서 수학 영역을 반영하지 않는 일부 학과나 학령인구의 감소로 정원 채우는 것조차 버거워하는 이른바 지잡대(지방 소재 대학을 비하하는 뜻의 속어)를 제외하곤 진학할 수 있는 곳이 거의 없다.

문과와 이과라는 이분화한 교과 장벽을 허물고 각자의 흥미와 적성에 따라 공부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는 통합 수능의 취지가 무색해졌다. 도입한 지 불과 두 해 만이다. 학벌 구조라는 몸통은 그대로 둔 채 대입 제도라는 꼬리만 흔들어서는 백약이 무효일 수밖에 없다.

"먹고살 걱정이 별로 없는 의치한약(의대·치대·한의대·약대)을 제외하면 대학 간판을 따라가는 건 당연한 선택이에요. 각자도생의 생존경쟁을 벌이는 입시 전쟁터에서 흥미와 적성 운운하는 게 귀에 들어올 리 있겠어요? 말이 좋아 통합 수능이지, 학벌과 점수 경쟁만 더 치열해질 뿐이죠."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지는 11월 17일 오전 서울 중구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에서 한 수험생이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지는 11월 17일 오전 서울 중구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에서 한 수험생이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통합수능은 실패

아이들은 통합 수능이 실패로 귀결될 거라고 입을 모았다. 한 아이는 자신의 친척 형의 사례를 들어 학벌은 최후의 기댈 언덕일 뿐, 최종 목적지는 '의치한약'이라고 말했다. 명문대 국문과에 학적을 두고 있지만 2년째 '반수'를 선택했다. 작년 '문과 침공'에 성공한 경우다.

대학에 진학한 제자들의 전언에 따르면 최근 들어 학과와 전공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대학별로 전과와 복수전공이 허용되는 분위기 탓도 있지만, 전공 공부보다 '별도의 시험 준비'에 여념이 없는 학생들이 많아서란다. 별도의 시험이란 로스쿨 시험과 반수를 뜻한다.

학과마다 로스쿨 대비반이 운영되고 있는 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최종 진로가 문과 계열은 로스쿨로, 이과 계열은 의치한약으로 수렴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라 뒷맛이 개운찮다. 죄다 법조인과 의사, 약사를 꿈꾸면 '소는 누가 키우느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형국이다.

통합 수능의 부작용은 대입 이후에도 계속된다. 로스쿨과 의치한약이라는 최종 목적지에 가닿기 위해서라도 미적분과 기하를 선택하는 것이 낫다. 이과는 두 곳 모두 선택할 수 있지만, 문과는 의치한약에 아예 갈 수 없다. 그나마 로스쿨 진학에 딱히 유리한 것도 아니다.

지금 대학과 고등학교는 요지경 속이다. 의치한약을 목표로 반수하는 이과생, 이과생의 문과 침공으로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문과생, 재수하며 이과로 전향한 문과생, 재수생으로 인해 갈피를 못 잡는 재학생 등이 도미노처럼 연쇄적 혼란을 겪고 있다. 알다시피, 올해 수능 응시생 세 명 중 한 명은 재수생이었다.

통합 수능에서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의 그림자가 아른거린다. 학종은 수능의 폐해로 지적된 기출문제 풀이식 교실 수업을 변화시키기 위해 도입한 제도다. 그러나 온갖 편법이 난무하며 공교육에 대한 불신만 키웠고,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되는' 우리 교육의 민낯을 보여주었다. 통합 수능 역시 비슷한 전철을 밟게 되지나 않을지 우려된다.

통합 수능의 도입으로 '문송한(문과라서 죄송한)' 현실은 더욱 강화됐다. 이젠 대학이 아닌, 고등학교 때부터 문과와 이과가 성적순으로 구분되는 모양새가 됐다. 언제부턴가 문과는 공부하기 싫어하는 아이들이 모인 곳으로 낙인찍혔다. 덩달아 이과 쏠림 현상도 뚜렷해지고 있다.

아이들은 통합 수능을 두고 문과를 이과에 흡수 통합시킨 수능이라며 비아냥거렸다. 어차피 졸업 후 취업도 안 되는 문과 계열 학과들이 자연스럽게 정리되는 과정이라는 거다. 윤석열 대통령도 대학이 반도체 등 첨단 산업을 이끌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고 강조한 마당이다.

이 와중에 낼모레 학교에선 진로 탐색의 날 행사가 열린다. 아이들이 자신의 흥미와 적성에 따라 진로를 고민해볼 수 있도록 학과와 직업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려는 취지다. 문과 침공이 벌어지는 수능(數能) 시대에 이게 과연 무슨 효용이 있을지 자문해보게 된다.

댓글2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