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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중순 지리산골 마을은 곶감 깎는 손길이 분주하다
▲ 지리산곶감 11월 중순 지리산골 마을은 곶감 깎는 손길이 분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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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중순 지리산 장당골 아래는 오후 3시가 조금 지나며 해가 설핏 기울자 기온이 갑자기 뚝 떨어진다. 냉기가 얇은 옷 틈을 후비고 들어오니 몸이 자동으로 떨리며 움츠러든다.

'지리산두리농원'의 마당에 들어서자 저쪽 곶감 작업장에는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 준비를 하는 둘째 아들의 손을 놀리지 않으려고 감 깎는 작업이 한창이다. 이정둘씨는 얼마 전 SNS에 "우리 부모님들도 농사지어 자식들 대학 보내고, 결혼시키시더니, 우리 부부도 그렇게 살아지누나"라고 본격적으로 곶감 작업에 들어가는 심정의 글을 올렸다. 달콤한 한겨울의 간식거리가 누군가에게는 치열한 삶의 수단인 것이다.
 
군대제대하고 복학 준비를 하는 둘째 아들이 도와줘서 올해 곶감작업은 한결 수월하다고 한다
▲ 곶감작업 군대제대하고 복학 준비를 하는 둘째 아들이 도와줘서 올해 곶감작업은 한결 수월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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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가 와서 물러지기 전에 감을 따야 한다.
▲ 감따기 서리가 와서 물러지기 전에 감을 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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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이정둘씨에게는 지금도 유년의 추억이 생생한 고향이다. 산촌에서 공부를 잘한 그녀는 중학교를 마치고 진주에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하며 이곳과는 한동안 거리를 두고 살았다. 농사꾼의 자식으로 태어나 맨주먹으로 뛰어든 대처(大處)의 생활은 결코 화려할 수가 없었다. 날로 치열해지는 경쟁 속에서 버티려고 발버둥치다 보니 몸과 마음이 조금씩 무너져 내리고 있는 줄을 몰랐다.

남편과 같이 창원에서 수학학원을 운영하던 그들에게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났다. 남편은 폐결핵, 정둘씨는 갑상선암이 임파선에 전이되었다는 판정을 거의 동시에 받았다.

치유의 땅에서 활기를 되찾다
 
농산품은 생산도 중요하지만 판매가 가장 힘들다. 지난 제22회 산청한방약초축제에 참가하여 판매부스를 열었다.
▲ 한방약초축제 판매부스 농산품은 생산도 중요하지만 판매가 가장 힘들다. 지난 제22회 산청한방약초축제에 참가하여 판매부스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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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아프거나 힘이 들고 지칠 때는 고향과 어머니가 생각나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 아닌가. 2020년 4월 그들은 두 아들이 고3, 고2인데도 불구하고 큰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히도 고향에는 친정부모님이 생존해 계시며 여전히 농사를 짓고 있었다.

2만여 평의 농장에는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두릅, 음나무순, 취나물, 고사리, 돌배 등이 지천이었다. 사람이 아프면 건강의 소중함을 더욱 깨닫게 된다. 그래서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하고는 나름의 원칙을 정했다. 부모님이 해오던 관행농법을 따르지 않고 '소비자의 건강과 지구를 지키는 지속 가능한 농업'을 하고자는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은 아이들이 어리니 소득이 중요했다. 산청에서 돈 되는 품목을 조사해보니 곶감, 딸기, 양봉이었고, 딸기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하기가 어려웠으나 곶감은 별다른 준비 없이도 바로 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섰다. 비록 시골출신이라고는 하지만 농사는 전혀 모르는 실정이라 산청귀농귀촌연합회를 찾았다.

그곳에서 오보환 회장을 만나 양봉에 대한 교육을 받고 30통으로 양봉을 시작했다. 지금은 200통까지 늘렸으며, 힘들어도 산청·하동·예천 등으로 이동하며 아카시아·때죽·밤·야생화 꿀을 생산한다. 소비자의 불신을 해소하고자 한국양봉협회에서 실시하는 꿀 검사제도인 벌꿀 등급제를 자진하여 받고 1+등급을 받았다.

검사 기간이 7주 정도 소요되며, 그 외에도 검사비, 등급필증 작업 등이 번거로워 대부분의 양봉농가에서는 꺼리는 일이다. 또한 영양소 파괴가 있는 단시간 고온농축을 지양하고, 비록 시간은 하루 종일 걸리지만 저온농축을 고집한다.

행복을 주는 사람
 
부부의 웃는 모습을 보면 자연스럽게 해바라기의 '행복을 주는 사람'이 더오른다.
▲ 이정둘, 임영근 부부 부부의 웃는 모습을 보면 자연스럽게 해바라기의 '행복을 주는 사람'이 더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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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둘씨의 '활짝 웃는 얼굴'은 이제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엄마, 아빠가 제대로 보살펴주지 못하는 상황이 되니 아이들이 빨리 철이 들었는지 스스로의 갈 길을 잘 찾아가고 있어 대견하죠. 이제 부부 둘만 건강하면 되니까, 욕심부릴 필요가 없어 올해는 곶감도 작년 6동에서 절반으로 줄였어요. 앞으로는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농장으로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라며 예의 그 사람 좋아 보아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작별 인사를 하며 배웅나온 부부 사진을 대문간에서 찍으니 이런 노랫말이 딱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는 길이 험하고 멀지라도, 그대 함께 간다면 좋겠네. 우리 가는 길에 아침 햇살이 비치면, 행복하다고 말해주겠네. 이리저리 둘러봐도 제일 좋은 건, 그대와 함께 있는 것.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덧붙이는 글 | 지역신문인 산청시대와 기자 개인블로그인 '길 위에서 구도자가 되다'에도 게재됩니다.


태그:#지리산두리농원, #무유황곶감, #양봉, #산나물, #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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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 지리산 자락 경남 산청, 대한민국 힐링1번지 동의보감촌 특리마을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여전히 어슬픈 농부입니다. 자연과 건강 그 속에서 역사와 문화 인문정신을 배우고 알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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