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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옥천군 청성면 작은도서관에서 열린 '2022년 영어문화캠프 비홀드'
 충북 옥천군 청성면 작은도서관에서 열린 '2022년 영어문화캠프 비홀드'
ⓒ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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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국어를 완벽하게 익히는 데도 일생이 걸리는 법, 하물며 외국어라면 어떻겠는가. 특히 영어는 세상사 안 쓰이는 곳 없는 국제 공용어임에도, 영어 앞에서 작아지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다. 유년기부터 영어를 친구처럼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 장벽은 확연히 낮아질 터.

지난 여름방학 청성면 작은도서관에서 1박2일로 열린 '2022년 영어문화캠프 비홀드(Behold,이하 영어캠프)'는 언어 장벽은 낮추고 배움의 즐거움은 드높이는 값진 시간이 됐다.
 
영어가 색다른 말벗이 되도록

     
청성교육공동체 '디아트'가 청성면에서 영어캠프를 주최한 건 두 번째. 지난해 경험을 바탕으로 올해는 영어캠프에 다양한 변화를 시도했다. 먼저 장소를 놀이 공간과 학습 공간으로 이원화해 집중도를 강화했다.

유치·초등·중등부로 그룹을 나누고, 초등학생 참여자도 고학년과 저학년으로 세분화해 학생별 수준에 맞춘 영어 교육이 가능해졌다. 지역사회 관심도도 커져 언론 보도와 주민 후원이 부쩍 늘었다. 디아트 연군흠 대표는 올해 캠프를 '일거양득'이라 평가한다.

"따뜻한 관심과 지원 덕에 이번 영어캠프를 열 수 있었어요. 지난해 캠프도 지역에 큰 반향을 일으켰지만, 청성에 영어 교육의 장이 마련된 것 자체에 관심이 집중됐거든요. 올해는 학년별 맞춤 교육으로 더 탄탄하게 영어를 배울 수 있도록 준비했고, 우리 지역을 스스로 바꾸고 발전시키기 위해 주민이 머리를 맞대면서 공동체 의식까지 강화했어요."

이번 캠프는 지난해보다 양적·질적 측면에서 큰 성장을 이루었다. 청성 외 타 읍면 학생들까지 영어캠프에 참가해 인원수가 50명 이상으로 세 배 가까이 증가했고, 강사진 수도 5명에서 15명으로 세 배 늘었다.

그저 규모만 증가한 것이 아니다. 청성초등학교 총동문회의 도시락과 현수막 등 홍보 물품 지원을 비롯해 행정 협조에 발 벗고 나서준 청성면행정복지센터, 주민 관심을 북돋아 준 청성면민협의회 등 청성 각계각층의 전폭적인 격려와 지지가 캠프 준비에 큰 도움이 됐다. 청성을 사랑하는 주민들이 '마을 공동체'의 가치를 증명하는 화합의 상징으로 캠프를 당당히 완성한 것이다.

"즐겁고, 흥미롭고, 친근해야 해요. 엄중한 학습 분위기는 지금이 아니어도 차고 넘치게 경험하는 게 요즘 아이들이죠. 오늘 이 순간은 적어도 배움이 재미날 수 있다고 깨닫는 시간이 되면 좋겠어요. 문법도 어휘도 우리말과 이질적이어서 어려운 영어가 색다른 말벗으로 우리 아이들 머릿속에 다가가도록 말이에요."

연 대표는 배움의 앞뒤가 전치되지 않길 희망한다. 억압되고 경직된 언어 교육보다는, 친구와 소풍을 나온 듯 놀이 활동을 펼치고 선생님과 교감을 나누며 자연스럽게 영어에 몰입하는 게 '영어 말문 틔우기'에 더 효과적이라는 설명이다. 그래서 전체 행사 과정도 마치 체험 프로그램을 구상하듯 기획했다. '영어 놀이터'의 철학에 맞게 요리 만들기, 오락 활동 등 즐길 거리 풍성한 캠프로 운영한 것.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찾는다고, 교육의 기회를 찾아 도시로 떠나는 게 농촌 실상이죠. 하지만 저희는 좀 다른 우물을 판 거예요. 멀리 가지 않아도 동네에서 얼마든지 영어를 배울 수 있다면 굳이 나갈 이유가 없겠죠. 게다가 청성은 교육 이주를 통해 생기를 얻은 지역이잖아요. 캠프 두세 번으로 세상을 바꿀 순 없겠지만, 캠프 이후의 청성은 이전과 분명 다른 희망을 하나 얻게 될 것이라 믿어요."

입가에 함박웃음을 잔뜩 붙인 아이들이 손깍지를 낀 채 동그라미를 그린다. 고음으로 터져 나오는 깔깔 소리가 듣기 거북하지 않고, 덩달아 들뜬 사회자 목소리에도 즐거움이 가득 번진다. 청성면 작은도서관에 일순간 행복이 형체를 지닌 듯 들어찬다. '영어'와 '캠프'의 개연성을 둘 다 놓치지 않는 이 풍경은 이번 영어캠프가 단순히 언어 공부를 위해 열린 것이 아님을 방증한다.

'영어 만날 기회'를 통한 나비효과
 
충북 옥천군 청성면 작은도서관에서 열린 '2022년 영어문화캠프 비홀드'
 충북 옥천군 청성면 작은도서관에서 열린 '2022년 영어문화캠프 비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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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세상은 영어 교육으로 범람 중이다. 전국 각지에 어학당이 우후죽순이고, 토익(TOEIC)이나 토플(TOFEL)이 의무교육인 양 취급받는다. 골목과 아파트 단지에는 영어 학원부터 개인 과외까지 영어 배움의 기회가 사방천지에 넘친다. 인구절벽이 시시각각 학교를 점령해 학생 수는 갈수록 줄어드는데, 이상기후처럼 '영어 공급'의 열기는 멈출 줄 모른다. 도시에서는 그렇다는 말이다.

반대로 옥천은 결핍에 시달린다. 과외는커녕 학교 수업도 도시권에 비하면 여러 부분에서 절대량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원어민 강사 수도 모자라고, 월 단위로 개정돼 서점에 쏟아지는 최신 영어 교재를 구하는 일도 상대적으로 어렵다. 이런 현실은 학생의 학습 의욕을 떨어뜨리고, 학부모의 기대치마저 낮춘다. 농촌이 학업 성취도와 학구열의 동반 침체라는 악순환에 쉽게 빠지는 이유다. 이런 도농 간 틈새를 메우려면 어디서부터 변화의 손길이 펼쳐져야 할까.

"우리는 평등한 세상에 살고 있다고 믿지만, 농촌 이곳저곳에는 여러 격차가 도사리고 있어요. 사는 곳이 도시건 농촌이건 똑같이 학습할 기회를 얻어야 할 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해요. 강사들 대부분이 이런 문제를 개선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서 참여한 분들이에요."

서울에서 한달음에 달려와 교육을 펼친 이세영 강사는 이번 캠프가 엄청난 변화를 일으킬 기적이 될 것이라 믿지는 않는다. 단 한 번의 행사로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지나친 낙관주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계기의 중요성은 잘 알고 있단다. 농촌이 영어 교육의 기회, 아니 '영어 만날 기회'를 겪었느냐 아니냐는 지역 주민들의 내일에 큰 영향을 끼칠 요소가 될 수 있어서라고. 그러니까 나비효과의 순기능을 신뢰한다는 뜻이다.

"경험이 권리처럼 느껴지는 게 슬프지 않나요? 이번 캠프를 통해 제가 전하고 싶은 마음은 '당연한 것을 누리게 하자'에요. 영어캠프는 영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기회를 준다는 의의가 있어요. 단어 몇 개, 문법 몇 줄 더 익히는 게 중요하지 않아요. 영어 그 자체를 청소년 근처로 끌어들여 어렵고 불편한 공부가 아니라 스스로 더 알고 싶어지는 무언가로 만들고 싶어요."

무조건 교육에 흥미를 강조하는 것은 위험한 방식이 될 수도 있다. 회화, 문법, 어휘, 발음 등 영어를 구성하는 요소 중 어느 것에 역량을 집중하고 공부 순서를 정할지 판별하는 일은 성인 학습자에게도 쉽지 않다. 그저 흥미 가는 대로, 재미가 느껴지는 부분만 골라 습득하면 언어 공부는 불균형의 늪에 빠지기 십상이다.

그렇기에 영어캠프의 역할이 더 소중하다. 필요성은 강조하되, 다른 언어란 본디 흥미로운 것임을 잊지 않도록 균형 잡힌 가르침을 캠프 참여 학생들에게 제공했기 때문이다. 초등 4~6학년을 맡은 강예서 보조 강사는 이런 부분에서 영어캠프가 '외줄타기'를 잘 펼쳤다고 진단한다.

"1박 2일은 짧은 시간이죠. 깊은 지식을 전수하는 건 애초에 불가능해요. 어린이들도 영어 특훈 받으러 캠프에 오지 않아요. 그래서 꼭 수련회에 온 듯 친구들과 우정을 쌓고, 지도에 따라 일상에 영어를 실사용해보며 친밀감을 느끼게 하는 데 중점을 뒀죠. 도시에서는 하기 어려운 방식이에요. 오로지 학습성과에 집착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청성이 캠프로 증명한 '위대한 지혜'

 
충북 옥천군 청성면 작은도서관에서 열린 '2022년 영어문화캠프 비홀드'
 충북 옥천군 청성면 작은도서관에서 열린 '2022년 영어문화캠프 비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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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캠프는 청성면에 꼭 필요한 값진 경험이었지만, 전국에서 달려온 강사들에게도 큰 깨달음을 줬다. 알게 모르게 농촌에 덧씌워진 편견과 오해를 타파하고 옥천을 있는 그대로 알게 돼서다. 강 강사 역시 청성에 와서야 무의식 속에 자리한 선입견을 훌렁 벗어던질 수 있었다고.

"처음엔 아무래도 농촌이니까 학구열과 학습성과가 떨어질 거란 예상을 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캠프를 진행하니까 강사분들 지도를 너무너무 잘 따라오고, 열정도 넘치더라고요. 영어 실력도 결코 떨어지지 않았어요. 스스로 마음속에 품었던 낡은 생각을 휙 버리는 전환점이 되었죠. 물론 객관적 지표로 통계를 들이밀면 도시보다 떨어질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엄청난 잠재력을 무시할 순 없을 거예요."

비교적 가까운 세종에 살면서도 옥천은 낯선 지역이었다는 강 강사는 배움 외의 풍경에도 큰 감명을 받았다. 특히 마을 공동체가 정성스레 어린이들을 돌보는 모습에서는 감동까지 느꼈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과 예닐곱 살 꼬마가 함께 책을 고르는 게 익숙한 동네, 학교를 마치면 자연스럽게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주는 학생들, 어떻게 하면 더 좋은 마을 환경을 만들고 지역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을지 골똘히 의견을 나누는 부모들... 청성면 작은도서관에서 만난 어린이들 표정 그 어디에서도 불안과 억압을 발견할 수 없었다는 것.

"청성에서 산다면, 꿈을 방해하는 것들에 좌절하지 않는 어른으로 자랄 수 있을 것 같아요. 영어도 마찬가지에요. 영어캠프를 준비하고 참여한 사람 중 성적 높이는 것이 지상과제인 분은 없다고 자신해요. 이곳 어린이들이 꿈을 꾸고 실현하는 데 영어가 좋은 방법이 되도록 만들고 싶을 뿐이에요. 그리고 굳이 제가 강조하지 않아도 이미 청성은 맞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같고요. 눈을 빛내며 공부에 집중하지만, 동네와 함께 커가는 그런 방향이요."

월간옥이네 통권 64호(2022년 10월호)
글‧사진 김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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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영어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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