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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오스크'란 정보 서비스와 업무의 무인∙자동화를 통해 대중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공공장소에 설치한 무인 단말기를 말한다. 예전엔 패스트푸드점에서만 찾아볼 수 있던 키오스크는 이젠 식당은 물론 영화관, 기차역, 버스터미널까지 없는 곳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많은 곳에 설치되기 시작했다. 키오스크는 편리하고 빠르게 주문을 처리하고 인건비를 줄여주지만, 한편으로 어떤 이들의 목소리는 들어주지 않는다.

햄버거를 사러 간 어느 날이었다. 키오스크 주문을 마치고 자리에 앉아 내 햄버거가 나오길 기다리던 중, 한 할머니 손님이 들어오셨다. 할머니는 곧장 픽업대로 가서 주문할 준비를 하셨다. 그때 햄버거를 세팅하던 직원은 "주문은 키오스크에서 도와드릴게요."라는 말을 남기고 마저 할 일을 했다. 할머니의 머리 위엔 주문은 키오스크에서 해달라는 팻말이 달랑거리고 있었다. 할머니는 뒤에 있는 커다란 세 대의 기계 중 한 대 앞에 서 한참을 주저하셨다. 내가 도움을 드리려고 일어선 순간 할머니의 발걸음은 다시 직원에게 향했고 손자가 말한 메뉴를 찾고 싶은데 찾을 수가 없다고 하소연하셨다. 할머니는 직원을 도움을 받아서야 주문을 마칠 수 있었고 나는 한참을 바라보다 자리를 뜰 수 있었다. 

무지했던 나는 사실 이때까지도 키오스크 사용법의 문제는 그저 노년층만 겪는 것이라 생각했다. 
 
지난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롯데리아 동묘역점에서 열린 디지털 약자 어르신 키오스크 교육에 참여한 서울재가노인복지협회 소속 어르신들이 키오스크로 음식을 주문하는 과정을 체험하고 있다.
▲ 어르신 디지털 격차 해소 위한 키오스크 활용 교육 지난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롯데리아 동묘역점에서 열린 디지털 약자 어르신 키오스크 교육에 참여한 서울재가노인복지협회 소속 어르신들이 키오스크로 음식을 주문하는 과정을 체험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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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이 바뀌게 된 건 아빠와 음식을 주문하려고 키오스크 앞에 선 날이었다. 아빠가 이리저리 터치하며 메뉴를 찾는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결국 키오스크 주문은 내 몫이었다. 아빠와의 키오스크 주문을 마치고 나니 머리가 띵해졌다. 이게 노년층만의 문제는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은 노년층이 될, 중장년층의 우리 엄마와 아빠의 문제였다.

실제 한국 소비자원이 2020년 65세 이상 고령 소비자 3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복잡한 단계로 인해 키오스크 이용에 불편함을 느끼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이외에도 다음 단계 버튼을 찾기 어렵고, 뒷사람의 눈치가 보인다는 답변이 뒤를 이었다.

하지만 이는 연령대의 문제만은 아니다. 

장애인들의 키오스크 접근성 또한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2021년 실로암장애인자립센터가 서울 시내 공공∙민간 키오스크 245곳에 대한 실태 조사를 벌여 낸 결과에 따르면, 절반 이상의 키오스크가 시각장애인들이 이용할 수 없는 수준임을 알 수 있다. 또한 2019년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이 발표한 '키오스크 정보 접근성 현황조사'에 따르면 휠체어에 앉아 조작할 수 있는 키오스크의 비율은 25.6%에 불과했다. 

생각보다 키오스크의 문제가 크고 가깝게 다가온다고 느껴지던 차에 그 실체를 숫자로 확인하니 당장 길거리를 걷다 유리문 안으로 보이는 키오스크가 짐같이 느껴졌다. 나에게는 분명 빠르고 편리하게 주문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던 기계였는데, 누군가에게는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게 하는 답답한 기계일 뿐이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했다. 

나아지는 방법은 없을까요?

사실 디지털 불평등 해소를 위한 서울시와 정부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4월, 디지털 불평등 해소를 위해 디지털 역량 강화 교육이라는 칼을 빼들었다. 키오스크 주문 및 앱 사용을 어려워하는 어르신들을 위해 1:1 교육과 이동형 디지털 교육 버스 운영 등 디지털 교육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키오스크 사용법을 익힐 수 있는 디지털 체험존과 맞춤형 교육 콘텐츠 확보에도 힘쓰기로 했다.

정부는 2022년 2월, 2016년 제정된 '공공 단말기 접근성'을 개정한 '무인 정보 단말기 접근성 지침'을 발표했다. 글씨 크기를 정량화하는 등 2016년 제정 이후의 부족한 점을 보완한 것으로 보여진다. 

하지만 이와 같은 노력에도 디지털 불평등의 해소는 여전히 큰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지난 12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윤영찬 의원이 한국 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키오스크 접근성 향상 실적이 계속해서 저조한 것으로 분석되었기 때문이다. 장애인들도 어려움 없이 사용할 수 있게 한 배리어프리 키오스크가 개발됐지만, 2000만 원 정도의 비싼 가격은 여전히 큰 장벽이다.

앞으로 사회는?
 
모두가 함께하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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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진행 중인 디지털 대전환과 그 기로에 선 우리는 혼란스러운 변화를 맞을 수밖에 없다. 디지털 대전환, 간단히 말해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는 세상이다. 과학 기술의 발달과 4차 산업혁명 속에서 우리가 변화해야 하는 건 맞지만, 어느 한쪽에만 국한된 변화가 혁명을 이끌어내는 것은 아니라고 힘주어 말할 수 있다. 함께 사는 사회에서 어느 한쪽의 편리함을 이끌어냈다고 해서 그것을 혁명이라고 볼 수는 없다.

키오스크 앞에 서 고민하는 동안 몇 초 이내 선택하지 않으면 홈 화면으로 돌아간다는 메시지는 비장애인이자 20대인 나조차 여전히 당황하게 한다. 아직 선택하지 못했는데, 아직 생각 중인데. 멋대로 홈 화면으로 돌아가는 기계를 바라보는 내 마음은 답답함과 동시에 기다리고 있을 뒷사람에게 느끼는 미안함이다. 이런 감정을 기계를 맞닥뜨리는 순간순간마다 느낄 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해 본다. 

혹여 그들이 도움을 필요로 순간이 온다면 도움의 손길을 베풀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디지털 사회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을 평생 도와줄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우리도 언젠간 디지털 불평등 앞에 서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모두가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는 보장도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실제로 그들도 남에게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사실이 달갑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도 누군가의 도움 없이 홀로 설 수 있는 순간이 필요하다. 

디지털 불평등 해소를 위한 확실한 정책은 당장에 필수적이다. 정부와 공공기관은 디지털 대전환 속 불편함을 겪는 사람들을 위해 눈에 보이는 해결책을 내놓아야 한다. 가격이 장벽이 되지 않도록 키오스크의 형태를 통일하고 강제성을 부여해서라도, 민간까지 범위를 확대한 해결책이 필요하다.

태그:#키오스크, #디지털 불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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