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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장이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선서하고 있다.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장이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선서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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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위원장은 반노동적인 인사인가? 노동계는 그렇다고 말하지만, 정작 그 자신은 아니라고 답한다. 그 이유로 든 것은 1970년부터 20여 년간의 노동운동 이력이었다. 한일도루코 노조위원장, 전태일기념사업회 사무국장, 서울노동운동연합 지도위원 등. 이 이력 덕택에 누구도 이루지 못한 '노동개혁'을 해낼 수 있을 거라 그는 자신했다.

하지만 그가 끝내 말하지 않은 이력도 있다. 1996년 12월, 노동운동가에서 보수정당의 정치인으로 변신하고 내린 결정 말이다. 경사노위 위원장으로 임명된 이후 그의 행보를 눈여겨봤을 땐, 그때 겪은 몇 달간의 경험이 오히려 노동개혁의 성공 여부를 좌우할 시금석이 될 터다.

"과거 권위주의와 산업화 시대의 낡은 노사제도와 관행으로는 기업의 번영과 국가발전은 물론 근로자의 '삶의 질' 향상도 기대할 수 없다."

"이제 우리의 노사관계도 새로운 시대에 맞게 변화하고 개혁해야 한다."

"구시대의 지나치게 규제적인 법과 제도는 유연하고 탄력성 있게 재조정돼야 하며 국제기준과 관행에 부합하도록 고쳐나가야 할 것이다."


누구의 말일까? 윤석열 대통령? 지난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노동개혁'을 이야기 하며 말한 내용과 비슷해 보이지만, 아니다. 1996년 4월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노사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말한 내용이다.

노동계가 총파업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경사노위의 전신은 1998년 1월에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발족한 노사정위원회라고 보는 시각이 대체적이지만, 사실 1996년 5월 당시 김 대통령이 노사관계를 개혁하기 위해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로 출범시킨 노사관계개혁위원회라고 볼 수도 있다. 이 위원회는 지금의 경사노위처럼 노사대표는 물론 학계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협의체로, 노사정의 합의에 따라 노동법을 개정하려는 구체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최종적인 합의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노사 대타협이란 애초의 약속을 무시한 채 노동법 개정을 단독으로 강행하려 했다. 이를 위해 총리를 비롯한 관계부처 장관들로 구성된 총리실 산하의 노사관계개혁추진위원회를 새로 구성한다. '추진'이란 이름만 새롭게 붙인 이 위원회는 부랴부랴 노동관계법 개정안을 확정짓고, 약 한 달 만에 국회로 넘기는 추진력을 보였다.

국회에서는 여당이 야당과 합의 없이 이 개정안을 직권상정한 후, 본회의 개회 7분 만에 통과시켰다. 155명의 여당 의원이 본회의에 참석해서 154명이 찬성한 결과물이었다. 찬성표를 던지지 않은 한 명도 사실은 본회의장에 늦게 도착해서 아예 표결을 할 수 없었을 뿐이다. 당시 김문수 의원은 그때 그 한 명도 아니었다. 154명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몇 달 뒤, 이 개정안은 철회된다. 노동계가 총파업 투쟁을 벌이며 강하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노동계가 총파업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분명했다. 이 개정안이 노사개혁이란 취지와 달리, 사용자와 노동자의 관계를 더욱더 종속적으로 만드는 법이었기 때문이다. 주요 개정내용만 봐도 알 수 있다.

첫째, 정리해고를 법제화한 부분이다. 경영상 긴박한 필요라는 단서가 붙긴 했지만, 이 문구 자체가 해석을 요한다는 점에서 사용자가 노동자를 자유롭게 해고할 가능성을 높였다. 게다가 기업의 양도 또는 합병, 인수 시에도 정리해고가 가능하도록 명시해 놓았다. 이 요건에 대해서는 "재계에 '기대하지 않았던' 선물까지 안겨"주려 했다는 평가가 나올 만큼, 사실상 재계를 위한 '맞춤형' 법 개정이나 다름없었다(저지른 김에 재계 요구 대폭 수용, <한겨레>, 1996년 12월 27일).

둘째, 파업 시 대체근로의 허용 부분이다. 파업은 업무에 공백을 일으킴으로써 노동자의 요구조건을 관철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인력 투입을 가능케 하거나, 하도급을 줄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은 결국 쟁의권의 위축을 낳을 수밖에 없다. 파업의 이유가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것에서 비롯되기에, 사실상 이를 요구하기 힘들어질 수 있음을 의미했다.

셋째, 변형근로시간제도의 도입 부분이다. 이 제도는 법정 근로시간(당시는 주 44시간)의 총량을 1주 단위에서 2주나 한 달 단위로 바꾸는 것을 골자로 한다. 2주 단위를 기준으로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첫 일주일에 48시간을 일한다면, 나머지 일주일은 40시간을 일해야 한다. 즉 2주간 일한 평균만 44시간으로 맞추면 되는 것이다. 한 달 기준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법정 근로시간을 넘겼을 때다. 노사 간에 서면합의를 한 경우, 주당 최대 56시간(한 달 기준)을 넘기지 않는 선에서는 노동자가 연장근로수당을 요구할 수 없었다. 노사 합의가 없어도 주당 최대 48시간(2주 기준)만 초과하지 않는다면, 역시나 사용자는 노동자에게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할 의무가 없었다.

물론 노사합의라는 단서를 두었지만, 지금이나 그 시절이나 노조조직률이 그리 높지 않다는 점에서 단결조차 쉽지 않은 상당수 노동자들은 사용자가 변형근로시간제의 단위 설정을 한 달로 하자고 요구하면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다. 그만큼 변형근로시간제는 한 달이 총량 설정의 기본 단위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높았다.

결국 사용자는 일이 늘어날 때마다 변형근로시간제를 악용할 것이 자명했다. 원래라면 연장근로에 해당됐을 일이, 법정 근로시간의 총량을 한 달이란 단위 내에서 적절하게 변경만 하면 연장근로에 해당되지 않는 기적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는 필히 노동자의 실질임금 감소로 이어질 터였다. 이런 허점이 발생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한데도 대책은 없었다.

웬일인지 26년 전 날치기로 통과된 '노사개혁' 법안은 많은 부분에서 현재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 정책과 닮아 있다. 해고사유 확대, 노란봉투법 반대, 주 52시간제 유연화 등과 비교해보라. 시간이 꽤 지난 만큼 개중에는 법제화된 조항도 있고 내용이 일부 다른 정책도 있지만, 그 본질만은 같다. 그래서 이 정책이 노동계 전체의 반대를 불러올 거라는 점마저도 빼닮았다. 이 묘한 일치감은 사실상 법제화되지 못한 과거의 노동정책을 다시 계승하려는 시도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노동개혁'의 성공을 위해선 결국 '노사개혁' 당시의 실패원인을 복기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김 위원장만큼 그때의 실패를 몸소 느낀 이도 없을 것이다. 노동운동가 출신이 노동계 전체가 반대하는 법안에 찬성표를 던졌다는 사실이 원인이었다.

노동운동을 함께했던 동료들뿐만 아니라 그와 일면식도 없었던 노동자들도 그가 민주자유당에 입당했을 때보다 더한 비난과 비판을 했다고 한다("노동운동한 사람이 날치기라니…" 재야출신 의원들 곤욕, 1997년 1월 14일 매일경제 보도 참고). 그 여파가 커서 그는 "단독처리에 동참한 이후 많은 눈물을 흘렸"다고 말하기까지 했다(김문수 의원의 날치기 사과, 1997년 3월 1일 동아일보 보도 참고). 노동계 전체가 단결해서 반발하는 법안을 무리하게 강행하면 어떤 일이 초래될지를 누구보다 그가 제일 잘 알고 있는 셈이다.

그때와 전혀 달라진 게 없는 '노동개혁'

경사노위 위원장으로 취임하기 전날, 그는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비정규직 90%의 노동자들 보호하지 않고 지나치게 (…) 5%의 강성노조에만 끌려다니는 이런 경사노위는 안 된다."

그는 14.2%의 노조 가입자와 85.8%의 노조 비가입자 사이를 이간하려 한다(2020년 노조조직률 14.2% 기준). 14.2%에 속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갈라치기는 이미 시작된 지 오래다. 그는 노동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그동안 민주노총 탓으로 돌리는 습성을 보여 왔다. 경사노위 위원장으로 취임한 날에도 노란봉투법이 "하청 노동자만 해당하는 게 아니고 민주노총 연봉 많은 사람도 다 해당"하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는 뉘앙스를 내비쳤다. 이 또한 민주노총 내부를 이간하려는 시도일지 모른다.

이는 그가 20여 년간 노동운동가로서 수없이 외쳤을 "단결"과는 정확히 정반대되는 전략이자, 친노동적인지 반노동적인지와는 무관한 지극히 정치적인 셈법이다. 이러한 시도는 '노동개혁'의 성공 여부와는 별개로, 노동자를 위한 정책이 아니라는 사실만 증명해준다.

26년 전 '노사개혁'이 실패한 것은 단결된 노동계를 분열시키지 않아서가 아니라, 노동자를 개혁해야 할 대상으로만 바라봤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은 그때와 전혀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태그:#노동개혁, #노사개혁,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경사노위, #김문수 경사노위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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