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인생의 새로운 길에 섰습니다. 늘 누군가의 엄마로, 아내로 살아온 삶을 마무리하고, 이제 온전히 '내 자신'을 향한 길을 향해 가보려 합니다. [기자말]
"아이구, 시원해라."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겉옷 아래 입었던 민소매와 레깅스를 벗는 일이다. 온몸을 꽉 조이던 아래 위 요가복을 벗고 나면 날아갈 듯 몸이 가볍다. 벗고 나면 시원하지만 온몸을 꽉 옭죄이는 요가용 민소매와 레깅스가 나의 '전투복'이다.

"언니, 그거 밑이 빠지는 그런 거 아닐까?"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4시간 내내 줄곧 서 있는 일이 쉽지 않았다. 눈코 뜰 새 없이 정신없는 와중에도 마치 '치질'이 생긴 것처럼 묵지근하게 무언가가 아래로 내려오는 듯 불편한 느낌에 시달렸다. 형제들을 만난 자리에서 그런 불편함을 토로했다.

그러자 동생이 말했다. 아이를 낳고 질근육이 약해진 여자들에게 나타나는 '밑이 빠지는' 증상이 그거 아니겠냐고. 찾아보니 직장, 요도, 방광을 받쳐주는 골반저근이 약해지면 그런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거였다. 안그래도 '요실금' 증상도 나타나는 나이, 근육마저 없는 내 몸이 4시간씩 서서하는 일을 버거워하고 있었다. 어쩐다....
 
요가복
 요가복
ⓒ 이정희

관련사진보기


궁즉통, 레깅스!

'궁하면 통한다'고 했나, 레깅스를 꺼내 입었다. 작년에 한참 요가니 필라테스를 한다며 샀던 것들이다. 무려 1+1+1이라는 싼 가격에 덜컥 사놓고 얼마 입지도 못했었다. 이제 내 팔자에 다시 필라테스할 일이 있겠나 하면서 버리고 오려다가 그래도 산 지 얼마 안 된 것들이 아까워 들고와 깊숙히 쑤셔박아 놓은 것들이었다.

낼 모레 육십, 머리 허연 알바생이 유니폼 아래쪽에 알록달록한 레깅스를 입고 왔다갔다 하는 모습은 쫌 많이 '남사시럽다'. 하지만 지금 그런 거 따질 처지가 아니었다. 다행히 뭔가 아래로 내려오는 느낌이 한결 덜한 듯 싶었다. 그리고 레깅스를 입으니 허리 아픈 것도 좀 덜한 듯했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하루는 자고 나니 등이 딱딱하게 굳어 목에서부터 움직일 수가 없었다. '담'이 든 것이다. 도넛을 튀기고, 크림을 넣고, 청소를 하고, 생지를 나르고 하니 안 쓰던 근육이 놀란 것이다. 또 어쩐다, 하다가 강력한 탄성의 요가복 민소매를 유니폼 안쪽에 입었다. 등쪽으로 꽉 잡아주는 민소매가 갑옷처럼 나를 보호해주었다.

하지만 한결 덜하고, 조금 수월해진 것일뿐 증상이 완전히 나아진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돌아오면 등짝이 욱신거렸고, 허리가 묵직했다. 이런 식이라면 몸이 견디지 못해 오래 하기가 힘들 것 같았다.

레깅스를 전장의 갑옷처럼 입는 것도 좋지만, 그 옷 안의 몸이 일을 감당할 수준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고 일어나면 뿌드득 뿌드득 퇴행성 관절염에 시달리는 나이, 그 나이는 어찌해볼 수 없지만 '근육'은 만들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운동을 시작했다.

처음부터 본격적으로 운동을 한 건 아니었다. 그저 아프지 말라고 손목을 풀어주고, 목을 돌려주고 이렇게 시작했었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잠자리에서 우선 두 팔과 다리를 올리고 마구 흔들어 밤새 굳은 걸 풀어주었다. 그러다 의자에 두 팔을 얹고 몸을 굽혀 양쪽 다리를 최대한 펴주었다.

거기서 조금 더 열 호흡의 플랭크와 열 개의 스쿼트 등등. 그리고 잘 하면 '살인무기'도 되겠다고 늘 생각하는 '냉동 생지'를 들기 위해 딱인 '데드 리프트'도 약식으로 더했다. 이렇게 쭈욱 나열하면 대단한 운동을 하는 것같지만 그저 아침에 일어나 7시에 집을 나설 때까지 준비를 하며 짬짬이 이십 여분 몸을 움직여 주는 것이다. 

워낙도 허리가 안 좋았고, 나이가 들며 자주 몸져 눕기를 반복하자 아이들이 운동을 권했다. 사는 동네 근처에 헬스장에 6개월을 끊으면 필라테스나 요가를 할 수 있어 우울한 마음도 '일신(日新)' 할 겸 회원권을 끊었었다. 헬스장에 처음 가면 우선 '인바디'라고 해서 체력 측정부터 한다. 처음 했던 '인바디'에서 우량한 '체지방'과 부실한 '근골격근량'을 기록했었다.

그로부터 2년 여 요가와 필라테스 클래스가 없어질 때까지 우수 회원으로 꾸준히 다녔다. 처음엔 당연히 몸져 누웠다. 일주일에 2번 가는 것도 힘들었다. 그러다, 일주일에 네다섯 번을 갈 정도까지는 되었다. 하지만 헬스는 안 하고 요가나 필라테스만 하는 정도로는 골격근이나 기초 대사량이 막 좋아지지는 않았다. 무료한 저녁 시간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느니 운동이나 하자는 심사로 다녔었다. 

그런데 가랑비에 옷 적시듯 배운 필라테스와 요가 동작을 이제 본격적으로 내가 써먹고 있는 것이다. 물론 나이 들어 뻣뻣해진 몸이 어디 쉽게 노골노골해지겠는가. 아침마다 가부좌를 틀고 손바닥을 거꾸로 바닥에 대고 풀어주면 매일해도 매번 아구구 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래도 참 희한한 게 몇 개의 동작을 하고 스쿼트를 할 즈음이 되면 몸에서 열이 난다. 마치 자동차 엔진이 켜지듯이 말이다. 그렇게 몸을 좀 움직여주고 가서 일을 하면 한결 몸이 가볍다. 어느새 내가 '냉동 생지 덩이'를 스쿼트하듯 내 몸의 근육으로 받아내린다.
 
다이어리와 글들
 다이어리와 글들
ⓒ 이정희

관련사진보기

 
마음에도 근육이 필요하다 

어디 몸의 근육뿐일까. 지난 2년여 운동도 하고, 산책도 하며 생활의 루틴을 조금씩 변화시켰던 '습관'이 있으니 매일 새벽 댓바람부터 요가 매트와 씨름하는 요량을 만들어 낸다. 이처럼 지난 몇 년간 버둥거렸던 내 마음의 '애씀'들이 '굳세어라 금순아' 버전인 지금의 나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닐까.

불과 몇 년 전이었다. 낼 모레 육십이라는데 더는 그 무엇도 내가 살아갈 이유를 찾기가 힘들었었다. 아이들만 제 앞가림을 해주면 좋겠다는 소망이 마치 내 인생의 마침표처럼 다가왔다. 가슴이 답답했다. 숨을 쉬기조차 힘들다고 느껴지던 날들이 이어졌다. 

그때 주저앉아버리는 대신 공부를 시작했다. 평소에 해보고 싶던 '심리' 공부를 그림책을 매개로 하여 시작해 보았다. 막상 전문가 자격증을 땄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혼자 닥치는 대로 이 책 저 책을 섭렵했다. 그리고 마음을 달래기 위해 성경도, 불경도 마다하지 않고 찾아보았다.

작년에는 큰 아들이 한 커피전문점 다이어리를 주었다. 매일매일 거기에 내가 찾은 문구들을 적어넣었다.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성경의 시편, 타로의 글귀, 그리고 좋은 시들을 찾아썼다. 그렇게 다이어리를 거의 다 채워갈 즈음 해가 바뀌었다. 작은 아이가 새 다이어리를 주었다. 인스타에서 팔로우한 좋은 글귀들이 새 다이어리를 채워갔다. 

물론 그 많은 좋은 글들을 이제 다시 보면 새삼스러울 정도로 다 기억하지는 못한다. 그런데 참 희한한 게 좋은 글들을 읽고, 적다보니 마치 몸에 근육이 생기듯 그 좋은 글의 힘을 받아 내 마음도 조금씩 단단해져감이 느껴진다. 매일 아침 운동을 하며 부릉부릉 하루의 시동을 걸듯이 낼 모레 육십을 앞두고 나는 마침표 대신 쉼표만 하나 찍고 다시 삶의 문장을 이어갈 마음의 여력을 만드는 중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브런치(https://brunch.co.kr/@5252-jh)에도 실립니다.


태그:#낼 모레 육십, 독립선언서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