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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윤석열정권정치탄압대책위원회(위원장 박범계) 소속 김의겸 의원이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감사원 앞에서 전정부에 대한 표적감사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윤석열정권정치탄압대책위원회(위원장 박범계) 소속 김의겸 의원이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감사원 앞에서 전정부에 대한 표적감사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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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이 감사원에 부여한 사명은 국가권력과 정부에 대한 감찰이다. 헌법 제97조는 "국가의 세입·세출의 결산, 국가 및 법률이 정한 단체의 회계검사와 행정기관 및 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감찰을 하기 위하여 대통령 소속하에 감사원을 둔다"고 규정했다.

그런데 지금의 감사원은 야당 감찰을 벌이는 듯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전 정부에 대한 감사 역시 감사원의 업무 범위에 속한다. 하지만, 월성원전 경제성 문제 등에 이어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을 다루는 감사원의 모습은 여당이나 검찰과 보조를 맞추는 듯한 인상을 준다.

충분한 명분도 없이 문재인 전 대통령을 조사하려는 모습이나 국무회의에 배석한 감사원 사무총장이 대통령 국정기획수석비서관에게 업무 상황에 관한 문자메시지를 발송하는 모습 등은 지금의 감사원이 본연의 의무에 충실한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감사원이 주목 받기 시작한 '사건' 

감사원은 1963년 헌법(제3공화국 헌법) 때부터 있었지만, 그 원형은 1948년 헌법 이래로 있었다. 1948년 헌법 하에서는 헌법에 의해 설치된 심계원이 회계 감찰을 담당하고 정부조직법에 의해 설치된 감찰위원회가 직무감찰을 담당했다.

기구의 연혁이 짧지 않은데도 1980년대까지도 감사원의 존재는 미미했다. 이는 행정부에 대한 견제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기 때문인 측면이 컸다. 

1993년 9월 3일자 <한겨레> 8면 기사에 등장하는 감사원 간부는 "몇 년 전만 해도 감사원이 무엇을 하는지 모르는 국민이 태반"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방 사람들은 감사원이 어디 있는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1948년에 출범한 기구가 1980년대까지도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랬던 감사원이 국민적 주목을 받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에피소드가 위 기사에 보도됐다. '감사원 어제와 오늘'이라는 제목이 붙은 위 특집 기사는 "최근 언론에는 강원도 양구군의 경찰서장 등 기관장들이 레스토랑에서 술을 마시다 여주인을 희롱하고 폭언을 퍼붓자, 여주인의 남편이 '문민정부의 고위 기관장으로서 자격이 없다'며 감사원에 이들을 고발하는 기사가 실렸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예전 같으면 일반 시민으로서 기관장의 위세에 눌려 그냥 지나쳤거나 검찰에 고발했을 일을 감사원으로 직접 들고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위의 감사원 간부가 '몇 년 전만 해도 사람들이 감사원을 잘 몰랐는데'라고 말한 것은 이 사건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 간부는 양구군 주민이 지역 기관장의 비행을 다른 기관도 아닌 감사원에 알린 이 사실을 언급하면서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 주민이 지역 내의 행정관서나 경찰·검찰을 찾지 않은 것은 지역 기관장들이 관련된 사안이라 그런 데에 제보하기 힘들었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그런 생각으로 감사원을 찾은 것이라면, 이는 그가 감사원의 행정기관 감찰 기능을 인지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런 생각으로 그렇게 한 게 아니더라도, 그가 감사원의 존재의의를 인식하고 있었음은 분명하다.

국민들에게 비치는 감사원의 위상이 이처럼 달라진 것은 감사원 직원들이 그만큼 노력한 결과이기도 하겠지만, 1990년대 초반에 세상의 주목을 끈 인상적인 사건들로 인한 측면도 크다.

1990년 5월에는 재벌의 땅 투기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가 합리적 이유 없이 중단된 사실이 이문옥 감사원 감사관에 의해 폭로됐다. 토지 공개념 정책을 추진하는 노태우 정부의 위선과 정경유착을 드러내는 폭로였다. 감사원 자체는 정권과 손잡고 부조리를 저질렀지만, 이를 용감히 폭로하고 구속까지 당하는 이문옥 감사관의 꼿꼿한 모습은 '감사원에 저런 사람이 있구나'라는 인상을 갖도록 만들었다.

문민정부로 불린 김영삼 정부가 출범한 1993년 2월 25일 이후의 이회창 감사원장 체제 하에서는 감사원이 헌법 제97조를 문자 그대로 실천하는 양상이 나타났다. 훗날 한나라당 정치인이 된 뒤에 낡은 냉전 의식 등을 보여줘 실망감을 안겨준 이회창은 이 시기에는 꼿꼿한 법관의 이미지로 감사원을 이끌어 나갔다.

청와대와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까지도 과감히 감사한 이회창 감사원은 율곡사업(군사력 증강사업)이나 평화의댐 사업 등의 부조리를 들춰냈다. 이런 사업들은 북한이나 반공이라는 코드와 연결돼 있었다.

국민들의 직선제 요구가 거셌던 전두환 정권기에 추진된 평화의댐 건설은 북한의 물 공격 가능성에 대비한 댐 건설 쪽으로 국민들의 관심을 되돌리려는 기획과 관련이 있었다. 율곡사업이나 평화의댐 사업을 건드리면 빨갱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는데도 이 시기의 감사원은 그런 것들을 거침없이 파헤쳤다.

이런 감사는 이전 정권에 대한 감사의 성격도 띠고 있었다. 하지만 김영삼 대통령의 여당인 민주자유당(민자당)은 전두환·노태우의 민주정의당(민정당)에 뿌리를 두고 있었을 뿐 아니라, 이 시기에 민자당의 다수 세력은 민정계였다. 이 감사는 본질적으로 여당 감찰이었다. 그래서 이 시기 감사원의 감사는 지금 감사원의 감사와 질적으로 달랐다. 감사원이 그처럼 원칙적이고 정의로운 길을 갔기에 양구군 레스트랑 사장의 남편이 지역 기관장들의 비리를 감사원에 알리는 일이 생겨날 수 있었던 것이다.

"감사원은 소금 역할을 해야 한다"
 
1993년 12월 17일, 당시 신임 이회창 총리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김영삼 대통령.
 1993년 12월 17일, 당시 신임 이회창 총리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김영삼 대통령.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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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에 감사원을 이끈 이회창은 윤석열 정부의 감사원이 새겨 들을 만한 충고를 던졌다. 정권의 기획 사정에 동조하지 말고 감사원 본연의 감찰에 충실하라는 메시지가 그것이다.

그는 <이회창 회고록> 제1권에서 "(대통령실) 사정수석 주관하에 감사원·검찰·경찰·국세청·은행감독원 등 주요 권력기관이 참여한 합동 사정팀이 구성되어 일사분란하게 사정 업무를 기획·조율"했던 독재정권 시기의 감사 스타일을 비판하는 대목에서 이렇게 말했다.

"감사원은 독자적인 감사권을 가지고 행정부 내 각 기관을 직무감찰해야 할 책무가 있는데, 그 직무감찰 대상기관들과 한 팀이 되어 청와대의 지시하에 사정을 한다는 것은 정면으로 그 독립성에 위반되는 것이다. 만약에 청와대가 정치 목적으로 사정 권한을 남용할 경우 이를 견제할 감사원이 그 사정팀의 일원이 되어 있다면 어떻게 그러한 남용을 견제할 수 있겠는가."

정권과 행정부가 특정 대상을 조사·수사 혹은 압박할 때, 감사원은 압박하는 쪽에 서지 말고 압박하는 쪽을 감시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런 메시지를 던진 뒤에 그는 "감사원이 독자적인 활동을 못하면 그런 정부는 소금이 빠진 김치와 같다"고 말했다. 감사원이 정부 내에서 소금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감사원은 이전 정부를 감사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세상은 그것이 이전 정부 감사이기보다는 야당 감사 혹은 야당 탄압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고 있다. 이는 감사원의 감사가 공정성에 있어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감사원이 해야 할 일은 원래 자리로 되돌아가 야당이 아닌 국가와 정부를 감찰하는 소금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정권과 여당 차원에서 야당에 대한 압박이 전 방위적으로 전개되는 시기다. 이때 감사원이 해야 할 일은 윤석열 정부가 야당 수사, 야당 조사를 올바르게 하는지 감찰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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