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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춘천의 청소년들은 행복하겠다'라고 자신 있게 제목을 적었지만, 사실 아직은 나의 바람이고 희망 사항이다. 다만 춘천의 시민들이, 어른들이, 소소하지만 썩 괜찮은 움직임을 시작했음을 알리고 싶어 과한 제목으로 시작한다.

오랫동안 마을교육공동체 정책이 '삶과 배움이 일치하는 살아있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정책적 어젠다로 부상하면서 청소년들에 대한 여러 가지 시도들이 곳곳에서 실험되고 있다. 춘천도 행복교육지구사업이라는 정책의 일환으로 교육청과 시청이 업무협약을 맺으면서 지역과 마을이 아이들을 돌보는 성장 배움터로서의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마을교육활동을 하고 있는 나도 몇 년 전부터 춘천의 청소년들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보통 중학교를 입학하면서부터 청소년 본인들은 물론 우리 사회 모두가 대입 경쟁을 위한 6년의 길고도 험한 여정을 시작했음을 당연시 인정하게 된다. 그런데, 미래의 희망이자 나라의 희망이라고 얘기하는 청소년들이 '입시생' '수험생'이라는 수식어가 더 어울리는 이 현실이 맞는가 하는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중간지원조직으로 이 업무를 맡게 되면서 고민이 들었다. 숨 쉬는 것도 귀찮아하는 청소년들, 입시 준비에 24시간도 모자란 청소년들, 꿈도 희망도 생각해 볼 여유도 없는 청소년들. 이 아이들을 위한 일을 어디서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명쾌하게 잡히지가 않았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면서 청소년들의 일상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우리 시대 청소년들에게 지역사회나 어른들의 환대나 보살핌, 지지 응원이 있었나 하는 물음이 들었고 거기서부터 시작하자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노골적으로 '이리와 얘들아 너희를 응원할게'하는 사업이 아닌 익명성이 보장되면서 일상에서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시공간을 마련해주는 '맡겨놓은 카페'라는 청소년 환대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춘천의 청소년들을 위한 '환대' 프로젝트인 '맡겨놓은 카페'는 이탈리아에서 1930~1940년대 벌어졌던 '카페 소스페소(Cafe Sospeso)' 운동에서 착안했다. 이 소스페소 운동은 하루 한 잔 커피를 마시는 것이 일상적인 문화로 형성된 이탈리아에서 경제공황을 겪으면서 경제적 약자, 노숙인들을 위해 조금 여유 있는 시민이 커피 한 잔 값을 미리 지불하고 그들이 무료로 이용하는 나눔 캠페인이다.

춘천도 급격히 카페가 늘어 이 작은 소도시에 450여 개의 카페가 있고 이 공간을 청소년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남는 시간에 우리 청소년들은 공원 벤치나 거리를 배회하게 된다. 친구들과 수다 떨고 놀고 싶은데 우리 사회에서는 갈 곳이 마땅히 없다.

무더운 여름날, 추운 겨울 우리 아이들은 어디에 있을까? 용돈이 부족해도 편안히 몸을 쉬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 수 있는 공간으로 카페를 이용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춘천의 시민들이, 어른들이 지역의 청소년들을 위해 한잔의 음료를 맡겨놓고 응원의 한마디 전해줄 수 있도록 기획했다. 춘천의 6개 중간지원기관들이 TF(사이사이)를 구성하고, 7월부터 시작해 세 달여가 지난 지금 그동안 자발적으로 동참한 카페가 28개, 시민들이 맡겨놓은 음료가 1300여 잔, 이용한 청소년들이 500명을 넘어섰다.

과연 가능할까? 생각했던 아이디어가 현실이 되었다. 눈에 보이는 수치를 넘어 그 28개 카페 현장에서 벌어지는 감동스럽고 재미난 이야기들이 속속 들려온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카페 사장님들이 고맙고, 마음을 나눠주시는 시민들이 고맙고, 카페를 찾아준 청소년들이 고맙다. 우리 사회가 어떤 큰 정책이나 사업으로 변화하고 발전하는 것도 있겠지만 일상에서 누구나가 참여와 동참으로 성숙해지는 것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수준(격)을 높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맡겨놓은 카페'가 단번에 청소년들 문제를 해결한다거나 해법을 주는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춘천의 청소년들에게, 춘천의 어른들이 너희를 생각하고 응원하고 지지하고 있다는 환대의 마음을 전해주고 있는 일임은 틀림없다.

다시 꿈을 꾼다. 먼 훗날 지금의 청소년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지난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누군지 모를 춘천의 어른이 맡겨놓은 음료 한잔 마시던 때를 생각하며 푸근해졌으면 좋겠다. 또, 제목처럼 '춘천의 청소년들은 행복하겠다'라는 생각이 현실이 되었으면 좋겠다. 지금 우리 시대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환대와 지지, 응원의 한마디 말과 토닥토닥해주는 바로 옆의 선한 이웃 어른들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윤요왕님은 인권연대 회원이십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에도 실립니다.


태그:#청소년, #미래, #희망, #강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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