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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언련 언론포커스'는 언론계 이슈에 대한 현실진단과 언론 정책의 방향성을 모색해보는 글입니다. 언론 관련 이슈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고 토론할 목적으로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마련한 기명 칼럼으로, 민언련 공식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기자말]
민언련은 지난 4월 19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교육원에서 '새 정부에 바란다: 언론 공공성과 시민 미디어기본권 강화를 위하여'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민언련은 토론회에서 언론 공공성과 시민의 미디어 기본권 강화를 위한 사회적 합의 기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민언련은 지난 4월 19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교육원에서 "새 정부에 바란다: 언론 공공성과 시민 미디어기본권 강화를 위하여"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민언련은 토론회에서 언론 공공성과 시민의 미디어 기본권 강화를 위한 사회적 합의 기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 민주언론시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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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이후 지난 40년은 시민을 '위한' 미디어 시대였다. 언론은 시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역할을 스스로 자임하며 여론 형성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해 왔다. TV와 라디오는 이에 더해 시민들의 문화생활을 위한 각종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공급해 왔다.

법과 제도 역시 시청자와 독자 및 이용자 권리 진흥을 위한 규제 정책을 만들어 왔다. 다양한 공공 조직과 기관 및 위원회도 시민을 '위해' 조직돼 이런 정책을 실행해 왔다. 이는 시민을 위한다고 주장하는 정치인과 관료로 조직돼 운영되는 대의 민주주의 시스템과 정확히 동일한 방식이다. 전문 언론인과 제작자와 의원과 관료 및 각종 단체와 조직이 추천한 '시민대표'들이 시민의 귀와 얼굴과 목소리를 대신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민을 "위한" 미디어 시대는 결국 시민을 대리하는 '대의 미디어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대의 미디어 체제, 남겨진 것은 반시민적인 것뿐

시민을 대리하는 대의 체제는 이상적인 조직과 운영 체제가 아니다. 단지 효율적인 체제일 뿐이다. 대의 체제를 지탱하는 공리의 성격도 효용성(Utility)에 가깝다. 잘 알려져 있듯이 효율성과 효용성은 자유시장 논리가 추앙하는 작동 원리다.

지난 20여 년간 언론과 미디어 산업의 공공성이 급격히 약화되고 거대 미디어와 소수 언론 기업의 독과점이 증대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효율과 효용만이 극대화된 미디어 체제는 결코 시민을 '위한' 미디어 조직 원리가 아니다. 조금 과장해서 이야기하자면 시민을 대리하는 대의 미디어 체제는 소수 언론·미디어와 거기에 복무하는 관련 전문가들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필요'조건일 뿐이다.

우리가 아닌 바로 그들을 '위한' '필요'조건이 대의 미디어 체제다. 이 체제가 시민의 자유와 권리 실현과 확장의 필요조건은 아닐 것이다. 어떻게 '대리'하는 체제가 자유와 권리 확장을 위한 필요한 조건이 될 수 있겠는가? 최근에는 시민을 대리하는 언론과 미디어 체제가 더 효율적이며 효용성을 갖춘 충분조건이라고 주장하는 보수 우익 미디어 단체들까지 생겨나고 있다. 미디어 민주주의에 반대하는 단체로서는 당연한 주장이다.

우리는 이제 대의 미디어 시대를 넘어서야만 하는 위태로운 시기에 도달했다. 국가와 산업 및 사회가 승인하는 전문가들에 의해 대리되는 미디어 시스템은 이제 권위(authority)만 남긴 채 각종 미디어 조직의 신뢰와 운영의 효율성, 그리고 결정과 심판에 대한 정당성이 심각하게 의심받고 있다.

이제는 아예 사법 기관들을 동원해 대의 미디어 체제 자체를 독점하려는 시도까지 과감히 자행되고 있다. 대의 언론과 미디어 체제를 조직하는 효율성과 효용성이 시민의 미디어 체제를 조직하는 평등성과 참여성을 압도하고 있다. 그 결과로 우리 시민에게 남겨진 것은 시민을 위한 어떤 것과도 상관없는 반(反)시민적인 것들뿐이다. 언론과 미디어에 대한 극도의 불신은 도무지 개선될 것 같지 않으며, 미디어에 의한 시민의 자유와 권리는 상시적으로 훼손되고 있으며, 언론과 미디어 산업의 독과점화는 도전받지 않고 진행되고 있다.

지난 20년간 한국 사회의 불평등과 혐오, 소외는 다른 어떤 발전된 국가보다 심화되고 있다. 그런데 이 기간은 우연인지, 필연인지, 한국 사회 언론과 미디어가 과거 어느 때보다도 채널 수와 산업 규모에서 성장을 경험하고 있는 시기기도 하다. 소통의 공간이 무한 확장하는 곳에서 소외가 덩달아 증가되는 이 모순의 상황은 체제의 모순을 투영한다. 실제로, 모든 소외 및 불평등의 관계와 사건이 발생하는 공간에서는 어김없이 이를 외면 또는 왜곡한 언론과 미디어가 있다. 사회적 불평등과 이를 대리하는 언론과 미디어 체제 간에는 유의미한 관련성이 있음이 분명하다.

'대리 미디어' 시대의 시효는 끝났다

이제 우리는 이미 그 시효를 다하여 실패하고 있는 시민을 '위한' 대리 미디어 시대를 뒤로하고 시민이 스스로 대표하는 '시민의 미디어 시대'를 기획해야 할 때다. 시민의 미디어 시대에는 모든 시민이 평등하게 모든 미디어에 개입(engagement) - 시민들의 참여(participation)는 그 본래의 의미와 상관없이 대리 미디어 시대에 너무나 남용된 개념이다 - 할 권리를 갖고, 전문가들을 대면하고 동료 시민들과 마주하며 미디어의 생산, 유통, 공유의 과정을 조직할 자유를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

민언련을 포함한 시민단체 역시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대리 미디어 체제가 아닌 모든 시민들의 평등한 참여 - 무작위 선출을 원칙으로 하는 - 를 위한 제도개혁에 매진해야 한다. 이상적이고 낭만적이며 모호해 보이는 이 체제를 독점적이고 신뢰를 받지 못하는 대리 미디어 체제를 대체할 수 있는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며 대안적 체제가 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할 때다.

윤석열 정부는 가칭 '미디어혁신기구' 신설을 통해 기존 언론과 미디어 규제 체제를 시장과 산업 중심으로 재편하고자 한다. 대의 미디어 체제를 통해 기존 독과점 구조를 강화하고자 하는 의도를 숨기지 않고 있는 것이다. 민언련과 언론노조 등 미디어 시민사회는 이와 관련해 미디어 공공성 강화에 반하는 어떠한 규제 완화 조치도 반대한 바 있다.

하지만 여기서 더 나아가야 한다. 공공성 강화가 시민을 위한 미디어 체제의 논리였다면 이제는 더 민주적인 미디어 체제를 위한 개혁을 요구해야 할 때다. 시민의 언론과 미디어의 체제 전환을 위하여 전문가나 시민단체로 대표되는 시민이 아니라 시민들이 '직접' 시민사회의 의견을 구성하고 개혁 과정에 개입하는 '미디어시민개혁기구'를 조직해 광범위한 시민의 목소리와 사회 주장을 개혁 내용으로 구체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채영길(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 한국외국어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입니다. 이 글은 민주언론시민연합 홈페이지(www.ccdm.or.kr), 미디어오늘, 슬로우뉴스에도 실립니다.


태그:#민언련, #미디어혁신기구, #미디어정책, #대의미디어, #미디어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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