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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28일- 5월12일까지 46일에 걸쳐 산티아고 순례길 중 Via de la Plata를 걸은 체험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 연재합니다.[기자말]
'22년 4월 27일 까미노 31일차
tabara-> santa marta de tera 23.1 km
 
바르에 나타난 데이브는 그 자리에서 즉흥 연주를 해주었다.
▲ 데이브 바르에 나타난 데이브는 그 자리에서 즉흥 연주를 해주었다.
ⓒ 송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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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묵은 알베르게에서는 아침이 제공돼서 대부분의 순례자들이 다 같이 아침식사를 했다. 그동안 비슷한 일정으로 걸었던 독일인 알폰소 부부, 독일에서 온 엘크, 이태리에서 온 아니타 등과 같이 나섰다. 핸드폰에 있는 지도 애플리케이션으로 오늘 갈 길을 찾아보았더니 이들은 내가 보는 지도 상에 표시된 길과 다르게 간다.

그래도 목적지는 비슷할 거라 생각하고 믿고 따라갔다. 나는 잠시 길옆에 피어 있는 라벤더꽃의 향기를 감상하느라 걸음이 늦어졌다. 문득 주변을 돌아보니 같이 걷던 사람들이 보이질 않는다. 혹시 샛길이 있는지 지도를 다시 살폈지만 지도에 다른 길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지도를 보며 걷는데 내 앞에도 뒤에도 순례자로 보이는 사람은 없다.
  
아침풍경
▲ 아침 아침풍경
ⓒ 송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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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걷다가 두 갈래 갈림길이 나타났다. 두 길은 다시 하나로 만나기에 중간에 바르가 있는 길로 향했다. 바르에 도착해 화이트 와인 한 잔과 타파스 음식 하나를 주문했다. 잠시 후 아는 얼굴이 나타났다. 루마니아 청년 안드레이와 아일랜드 할아버지 데이브였다. 그들도 바르에 잠시 차를 마시러 들어온 듯 했다. 안드레이는 며칠 전 같은 알베르게에 묵으며 몇 마디 대화를 나눴던 청년이다.
  
들판에 홀로 서있는 나무 평화로운 느낌이다.
▲ 나홀로나무 들판에 홀로 서있는 나무 평화로운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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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브는 이틀 전 모레루엘라에서 알게 되었다. 알베르게에 짐을 풀고 동네탐방을 다니던 중 어디선가 음악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갔더니 은발의 노인이 아담한 교회 앞 벤치에 앉아 피리를 불고 있었다. 멋진 연주에 반해 박수를 쳤다.

관객은 나뿐이었다. 그는 이어서 또 한 곡의 음악을 연주했다. 여행지에서 듣는 음악은 사람을 들뜨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연주가 끝나자 그에게 다가가서 말을 붙였다. 그의 이름은 데이브이고 더블린에서 왔다고 했다. 나도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데이브가 물었다.

"많은 한국인들이 까미노에 오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한국 사람들은 여행을 좋아하는 경우가 많아요. 특히 요즘엔 걷기 여행이 인기라 한국에도 올레길이나 둘레길과 같은 걷는 길이 많아졌어요."

  
까미노를 걷는 동안 사람이 안 사는 듯한 집들이 많이 보인다. 스페인 시골에도  빈 집들이 많은 것 같다.
▲ 폐가 까미노를 걷는 동안 사람이 안 사는 듯한 집들이 많이 보인다. 스페인 시골에도 빈 집들이 많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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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노에서 만난 서양인들에게 같은 질문을 여러 번 받았다. 그러나 까미노가 끝날 때까지 내가 만난 한국인은 네 명뿐이었을 정도로 '은의 길'에는 한국인이 그리 많지 않았다. 프랑스길에는 한국인이 많다고 들었으나 '은의 길'은 아직 한국인들에겐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인 듯하다.

한국인의 입장에서 까미노를 걷는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한국에서 유럽을 가자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자주 가기도 어렵고 한 번 갈 때 완주하는 것을 목표로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유럽 사람들에게 까미노는 버스나 기차를 타고 올 수 있는 곳이고 여러 번에 나누어 걸을 수 있는 기회가 있으니 무리하게 걸을 필요도 없을 것이다.
  
걷기 좋은 날
▲ 반영 걷기 좋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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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에서 만난 데이브는 바로 피리를 꺼내 즉흥 연주를 시작했다. 바르 주인은 데이브의 연주에 맞추어 어깨춤을 춘다. 우리는 같이 와인을 마시고 다시 길을 떠났다.
우리 셋은 알베르게에 도착해 같은 방에 묵게 되었다. 천천히 걸으며 찍은 그들의 사진을 보내주기 위해 소셜미디어 계정이 있느냐고 물었다. 안드레이는 자신은 컴퓨터로 이미지 작업을 하는 아티스트라며 인스타그램 계정을 알려주었다.

데이브는 소셜미디어 계정이 없다며 이메일 주소를 알려주었다. 데이브와 대화를 나누며 휴대폰으로 아일랜드에 대한 정보를 검색해 보았다. 한국에서 종종 들었던 'Danny Boy'라는 노래가 아일랜드 포크송이라는 걸 확인하고 이 노래가 한국에서 매우 유명하다고 말했다. 데이브는 그 자리에서 바로 'Danny Boy'를 연주해 준다.

데이브가 부는 피리의 이름을 물었더니 '틴 휘슬'이란다. 데이브가 한국의 전통 악기를 궁금해 하여 한국의 전통 악기들을 소개하며 유튜브에서 대금 연주 영상도 보여주었다. 데이브는 연주 영상을 집중해서 보더니 바로 따라서 연주를 한다.
 
노란 담 집 안에 핀 하얀 꽃이 길손의 마음을 평안해게 해주는 것 같다.
▲ 한가로움 노란 담 집 안에 핀 하얀 꽃이 길손의 마음을 평안해게 해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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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수채화처럼 일정한 간격에 똑같은 크기의 미류나무들이 줄지어 있다.
▲ 미류나무 마치 수채화처럼 일정한 간격에 똑같은 크기의 미류나무들이 줄지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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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똑같이 연주할 수 있냐며 놀라워했더니 자신은 아일랜드의 뮤지션이라 한다. 유튜브계정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구독자가 많지는 않다며 알려 주었다. 나도 안드레이도 그 자리에서 구독 신청을 했다. 나는 데이브에게 한국으로 연주여행을 오면 구독자수를 늘려줄 수 있다고 말했더니 데이브는 나를 자신의 매니저로 인정하겠다고 웃으며 말했다.

까미노를 걸으면 걸을수록 즐거운 일이 많아진다. 초반에는 영어로 대화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인해 사람들과의 대화를 피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대담해져서 내가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걸어 보고 번역기를 돌려가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까미노의 매력은 다양한 국적과 다양한 직업,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을 만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닐까?

태그:#SANTA MARTA DE TERA, #VIA DE LA PLATA, #DAVE, #TIN WHIS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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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성과 감동은 늙지 않는다"라는 말을 신조로 삼으며 오늘도 즐겁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에 주저앉지 않고 새로움이 주는 설레임을 추구하고 무디어지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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