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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 문학비평에서 김수영을 '모더니스트 시인', '자유를 갈망한 현실참여 시인'으로 평한다. 틀린 표현은 아니지만 김수영을 온전히 평가한 표현은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김수영은 단순한 문인이나 시인이 아니라 '철학 하는' 작가였기 때문이다.

그가 남긴 시 작품과 평론을 분석한 <철학자 김수영>(사실과 가치, 2022)이 이를 명징하게 보여준다. <철학자 김수영>은 김수영을 '철학하는 시인'으로 그 위상을 재정립한 문예비평서이다. 
 
2022년 9월 출간된 문예비평서 (철학자 김수영)은 동서양 철학을 바탕으로 김수영 시인의 작품세계와 정신세계를 치열하게 논구한 문예비평서이다.
▲ 김수영을 <철학하는 시인>으로 논구한 문제작 (철학자 김수영) 표지 2022년 9월 출간된 문예비평서 (철학자 김수영)은 동서양 철학을 바탕으로 김수영 시인의 작품세계와 정신세계를 치열하게 논구한 문예비평서이다.
ⓒ 김상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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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은 일본어판 <존재와 시간>(1927)을 닳고 닳을 정도로 하이데거를 사숙했다. 그만큼 김수영 자신이 처한 시대 상황은 혼란과 격동으로 점철된 시절이었다. 일제 식민 통치가 끝나고 해방 공간 혼란이 극에 달한 아노미 상태에서 시인 김수영은 번민했고 탄식했다.

가치가 극도로 혼란한 시대를 배경으로 탄생한 작품이 바로 <공자의 생활난>(1945)이다. 혼돈의 시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첫 번째 '실존'을 향한 고투이자 자신의 내면을 진실하게 토로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한국전쟁 발발 당시 김수영은 죽음의 고비를 넘게 된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던 극한 상황에 내몰리면서 시인은 현실의 거짓과 위선을 날카롭게 파헤친다. 전쟁 직후 작품 <달나라의 장난>(1953)이 바로 그것이다.

김수영이 쓴 <달나라의 장난>(1953)은 전후 현실의 부조리와 모순 앞에서 극심한 구토를 느끼며 쓴 작품이다. 1954년도 작품 <거미>는 전후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도 도덕성을 잃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작가 자신의 '실존'을 느끼게 해주는 작품으로 볼 수 있다.

대중이 알고 있는 김수영의 작품세계는 4‧19 혁명을 기점으로 발표된 <푸른 하늘을>(1960), <거대(巨大)한 뿌리>(1964),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1965), 그리고 민중을 상징하는 <풀>(1968)이란 작품들이다. 모두 사회성 짙은 작품들이자 혼돈 속에서도 작가의 정신세계가 민중을 지향하고 있음을 알게 해준다. 특히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1965)는 소시민성을 비판하면서도 '어떻게 살 것인가'를 깊이 있게 성찰한 수작이 아닐 수 없다.

늘샘은 <철학자 김수영>(사실과 가치, 2022)을 통해 기존 비평 문단에 경종을 울렸다. 왜냐하면 그동안 한국 비평 문단은 단 한 번도 시인 김수영의 정신세계와 작품세계를 철학적 관점에서 깊이 있게 분석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문단 내 패거리를 의식해 주례사 비평이나 좁직한 안목으로 골목 비평은 존재했을지언정 동서양 철학을 넘나들며 시인 김수영을 철학적으로 조명하고 논구한 적은 없었다. 한 마디로 김수영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선구적으로 열어젖힌 문예비평서이자 기존 김수영 연구자들의 게으름에 일침을 가하는 문제작이다.

지난해는 김수영 탄생 100주년 되는 뜻깊은 해였다. 한겨레신문사에서 다룬 기획연재물 '거대한 김수영 100년'은 그런 의미에서 색다른 시도였다. 철학을 전공한 대학교수부터 문예비평가, 작가를 망라해 다양한 필진들이 김수영을 논했지만 작가 김수영의 작품세계를 철학적 관점에서 다루진 못했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김상천이 펴낸 <철학자 김수영>(사실과 가치, 2022)은 평론가이자 번역가, 그리고 시인으로서 김수영이 처한 정신세계를 철학적 관점에서 논구한 문예비평서라는 점에서 한국 비평문학에 일대 충격을 던져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동안 비평 문단을 지배했던 패거리 의식과 이념적 한계를 훌쩍 뛰어넘는 사색의 흔적이 역력하기 때문이다.
  
<네거리의 예술가들>에서 김상천은 김수영 시인을 모럴리스트 시인으로 규정하고 있다.
▲ <네거리의 예술가들>(사실과 가치, 2021) 표지 <네거리의 예술가들>에서 김상천은 김수영 시인을 모럴리스트 시인으로 규정하고 있다.
ⓒ 김상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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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은 식민지 시절 카프 문학의 지도자 임화를 몹시도 존경했던 작가다. 임화가 쓴 <네거리의 순이>에서 알 수 있듯이 김수영은 임화의 단편 서사시 전통을 이어받은 작가다. 김수영이 쓴 산문시 '거대한 뿌리'(1964)가 대표작이다.

그의 작품세계는 70년대 김지하, 90년대 김남주로 계승되며 한국 현대 시문학의 시맥을 형성했다. 부조리와 불의한 시대에 맞서 김수영은 작품을 통해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뇌했던 작가다. 오늘날 김수영을 모더니스트 시인을 넘어서서 '모럴리스트 시인'으로 추앙하는 이유다. 독자 제현에게 일독을 강력히 추천한다.

철학자 김수영

김상천 (지은이), 사실과가치(2022)


태그:#김수영, #철학하는 시인, #산문시, #문예비평, #대중서사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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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원으로 가입하게 된 동기는 일제강점기 시절 가족의 안위를 뒤로한 채 치열하게 독립운동을 펼쳤던 항일투사들이 이념의 굴레에 갇혀 망각되거나 왜곡돼 제대로 후손들에게 전해지지 않은 점이 적지 않아 근현대 인물연구를 통해 역사의 진실을 복원해 내고 이를 공유하고자 함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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