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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처음에는 코로나 팬데믹 때문인 줄 알았다. 그 다음에는, 내 마음같지 않게 진로를 정해버린 첫째아이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는' 사춘기와의 전쟁 때문이라고도 믿었다. 예전에는 거의 하지 않았던, '인생 망했다' 는 생각을 이렇게 매일매일 하는 이유는. 

매일 실연을 당하고 있으니 당연한 것 아닌가, 이 패배감은. 내 인생에서 거의 겪어보지 못했던 망한 기분은. 그래서 나는 처음 성인이 된 것처럼 '사막을 건너는 방법'이나 '인생의 겨울을 지날 때' 와 같은 책들을 에코백 가득 빌려서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즈음 우리가 겪는 무력감과 낭패감, 우울함은 사실은 '필수코스'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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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
 두 사람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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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왜 50부터 반등하는가>란 책에서는 살면서 치명적인 실패나 낭패를 겪어보지 못해 신생실패면역자가 되어 과학이라도 기대어 그 이유를 찾고 싶은 나같은 사람을 위한 연구를 해주었다. 

인생에서의 만족도를 물어 수치화 했을 때, 전 세계 공통적으로 40대~50대 정도에 최하를 찍는 포물선 곡선이 나타난다고 말이다. 최하를 향해 점점 낮아지다가, 50대 초반, 즉 대체로 '찐중년'이라고 일컬어지는 시기에 밑바닥을 치면서 서서히 위로 곡선을 그린다.

그 이후에는 오히려 '내 삶에 만족한다'고 답한 비율이, 우리가 '내 삶에 만족한다'고 답할 확률이 높다는 거다. 만족, 행복의 정의가 무엇인지는 잠시 미뤄두자. 그런데 이건 한 개인의 일대기에서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도 공통적이었다.

이것에는 성별, 결혼유무, 자녀나 부모의 여부, 직업 등이 아니라 오로지 '나이'라는 변수만이 작용했다고 한다. 즉, 남자건 여자건 기혼이건 미혼이건 실직했건 아니건 누구나 '그 나이'가 되면, 이제 삶에서 뭔가 쌓아올린 것이 가장 높아보이는 그때, 만족도는 최저를 찍게 된다는 것이다. 

오오, 인생이 최고차수가 양수인 2차함수라니. 오 그리고, 이건 전 세계적으로, 모든 인간에 대해, 공통이라고? 그러니까, 내가 겪는 이 '망한 느낌', '별거 아닌 게 된 것 같은 기분',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인 것 같은 무력감' 등등이 인생의 당연한 단계라는 거지? 나는 그저 당연한 수순을 밟고 있을 뿐이라는 거지? 우린 그저 시간의 함정에 빠져 있는 것이라는 거지?

지금까지의 삶은 운이 좋았다면 좋았지만, 이제 인생이란 얇디 얇은 얼음장 위를 걷는 것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아버린 나는 그 그래프를 동아줄처럼 붙잡는다. 썩은동아줄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그저 내가 줄을 잡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러니 거창하게도, 같잖게도, 전 세계 나와 같이 터널을 걷고 있는, 특히 내 나이 또래의 사람들, 꼭 나같은 사람, 포물선 최저점이라 여겨지는 구간을 통과하고 있는 인류군집에 위로를 건넨다. 

봄이 오고 여름이 오듯 이렇게 와버린 것이라고. 그저 봄이었기만 해도 아팠던 청춘의 침대가 있었듯 지금 우리를 무언가 또다시 관통하게 내버려 두어야 하는 때가 온 것이라고. 지금 축제가 사라진 대신 이젠 우리가 그 통과의례를 손수 창조해야 하는 현대의 무기력한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라고. 

그래서 나는 그 손수 '의례'를 위해서 돈을 모으고 있다. 이탈리아행 비행기표를 끊으려고 말이다.

태그:#중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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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캐는 엄마, 아내, 부캐는 동안긍정중년. 화를 내는 것과 진지한 것은 다르다고 믿고 있는. 너무 무거우니 무겁지만은 않게 사는 인생에 대해 쓰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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