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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논과 길.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풍경이다.
 8월의 논과 길.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풍경이다.
ⓒ 용인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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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적응이 빠른 동물이다. 여름이 시작될 때는 이렇게 더워서 어떻게 여름을 날까 걱정했는데, 이젠 한낮에도 그늘을 찾아다니며 여름에 몸이 적응한 것이 놀랍다. 사계절이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는 것 아닐까.

정해져 있는 자연법칙이지만 언제나 다른 사건이 생기는 계절은 우리에게 변화에 대처하는 기회를 주고, 그에 대한 적응력을 갖게 한다. 평생 사계절을 경험하며 적응력을 갖는 것은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어벤져스에도 나오지 않는 초능력 하나를 장착한 느낌이랄까.

더위를 식히며 시원한 커피 한잔 마시고 산책을 갔다. 매미 울고 잠자리가 논 위를 날아다니고, 백로와 왜가리는 어슬렁거리니 딱 여름이다. 여름 한가운데 있다고 머리로 인지하니 더운 날씨를 각오하게 되고, 마음을 먹고 나니 더위에 한층 무뎌진다.

가끔 스치는 시원한 바람이 꿀맛 같다. 논과 개울을 따라가는 길에 바람이 이는 것은 당연하지만 더운 여름이니 그 고마움이 더하다. 길가에는 망초와 개망초, 강아지풀이 피어있고, 질경이가 사람 다니는 길을 알려주듯 길 중앙선을 만들고 있다.

논 옆이라 그런지 뽑혀서 던져진 '피'도 보인다. 논에서 자라지만 않았더라도 강아지풀 옆에서 같이 잘 자랐을 '피'다. 뿌리를 잘못 내린 탓에 뽑히는 슬픈 운명이다.  

길을 걷다 보니 갈참나무 잎이 떨어진다. 바람이 세게 불어 떨어지는가 했지만 살랑이는 바람에 잎이 붙은 가지가 떨어질 정도는 아니다. 몇 발짝 걸었는데 또 떨어진다. 무거운 갈참나무잎에 열매까지 붙은 잔가지는 꽤 빠른 속도로 떨어졌다.

주변을 살피니 여러 개의 가지가 이미 길을 많이 덮은 상태였다. 아하, 웃음이 지어졌다. 8월 초, 갈참나무 끝 가지를 잘라내고 있는 도토리거위벌레의 귀엽지만 힘든 모습이 떠올랐다. 15미터가 넘는 큰 나뭇가지에 매달려 알을 낳고 톱질해 가지를 떨어트리는 일이 참 고된 일이겠다. 하지만 그것이 이 곤충이 사는 이유이니 힘들지만 아름다운 일이다.

한 마리의 도토리거위벌레가 50개 정도 알을 낳는다고 한다. 수십 번 톱질하고 나서야 이 일도 끝이 나겠다. 도토리거위벌레가 찾아와 이렇게 가지치기해준 갈참나무는 올해 알이 큰 도토리를 만들 수 있으니 도토리거위벌레도 이 나무도 서로에게 좋은 친구가 아닐 수 없다.

길가에 누군가 심어놓은 아주까리가 눈에 띄었다. 아주까리는 우리나라에서 1년을 사는 한해살이 식물이지만 본디 있던 따뜻한 곳에서는 여러해살이 식물이다. 지금은 세계 많은 곳에서 자라는 생명력 강한 식물 중 하나이다.  

큰 잎 아래에 작은 암꽃과 수꽃이 함께 피어있다. 같은 가지에 두 종류의 꽃이 피는데, 암꽃은 위에 수꽃은 아래에 핀다. 암꽃은 붉은 암술머리를 가지고 있고, 수꽃은 노랗고 반짝이는 꽃가루가 있어 개미나 다른 곤충들이 꼬이기 좋다. 수분이 잘 된 아주까리 암꽃은 어김없이 열매를 맺었다. 그렇게 주렁주렁 달린 열매는 지나가는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키가 큰 아주까리꽃을 찍으려고 청백색 줄기를 잡았더니 식물에서 나는 향이 매우 강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알레르기가 심한 사람은 식물을 만지기만 해도 반응이 일어난다고 하는데, 무식해서 용감했다.

"아주까리, 동백꽃이 제아무리 고와도~" 라는 노래가 있듯이 아주까리 열매인 피마자는 동백기름에 버금갈 정도로 그 쓰임이 매우 다양했다.

우리나라의 따뜻한 곳에서는 아주까리를 뒷마당에 많이 심어서 어린잎을 나물로 먹고, 기름을 짜서 쓰기도 했다. 예전과는 많이 달라진 지금 세상에선 식물을 삶에 그대로 사용하지 못한다. 부모나 조부모와 떨어져 식물이 없는 곳에서 살고, 그래서 그 식물이 무엇인지 배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아주까리를 심은 사람은 이걸 어떻게 쓸지 궁금하다.
 
도토리거위벌레가 톱질해 길에 떨어진 갈참나무 잎
 도토리거위벌레가 톱질해 길에 떨어진 갈참나무 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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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까리꽃과 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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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홍은정 생태환경교육협동조합 숲과들 활동가입니다. 이 기사는 용인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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