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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4일 오전 서울 중구 중앙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를 찾아 상담하러 온 시민들로부터 채무상환 애로 등을 청취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14일 오전 서울 중구 중앙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를 찾아 상담하러 온 시민들로부터 채무상환 애로 등을 청취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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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인 투자하려고 빚까지 낸 이들을 정부가 왜 도와주나. 이러니까 TK(대구·경북)에서도 지지율이 떨어지는 것이다"

경기도에 거주 중인 공무원 김정연(33, 가명)씨는 15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정부 조치를 향한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모아놓은 돈으로 지난해 처음 주식 투자를 시작했다는 김씨는 "최근 주가 하락으로 큰 손실을 봐 좌절했지만, 그럼에도 '내 투자 책임'이라는 생각이었다"며 "이번 조치를 보니 '정부가 왜 나는 안 도와주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지금 정부가 도와줘야 할 이들은 '빚투족(빚을 내 투자한 투자자들)'이 아니라 창업을 했다가 코로나19 사태로 사업을 삶의 기반이 무너진 청년들"이라고 강조했다. 

'빚투 청년' 구제 방침에 분노한 '보통' 청년들

윤석열 정부가 '빚투 청년'을 구제하기 위해 내놓은 대책이 '보통 청년'들을 분노하게 하고 있다. 14일 정부는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제2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열고 '금융부문 민생안정 과제 추진현황 및 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에는 신속채무조정 특례를 신설, 당초 빚을 내 주식·가상자산 등에 투자했다가 실패한 청년층의 재기를 돕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관련 기사: 청년층 주식·코인 투자 실패, 정부가 떠안는다 http://omn.kr/1ztl0

기존 신속채무조정은 정상적으로 채무를 갚고 있지만 조만간 이자가 연체될 걸로 예상되거나, 채무 상환이 연체된 지 30일 이하에 해당하는 채무자를 구제하는 제도다. 이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채무자에게는 이자율이 최대 15%로 제한된다. 최대 3년인 원금 상환유예 기간의 이자율도 15%를 넘지 않는다. 대신 프로그램 이용료로, 신청비 5만원을 납부해야 한다.

이번에 정부가 1년 한도로 운영하겠다고 밝힌 신속채무조정 특례에선 혜택이 더 늘어난다. 만 34세 이하, 신용평점 하위 20% 이하의 '저신용 청년'이 그 대상자인데,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채무 이자율이 30~50% 가량 감면된다. 가령 채무 이자가 10%로 결정된다면, 여기서 3~5%포인트가 내려간 5~7%가 실제 납부 이자율이 된다. 뿐만 아니라 원금 상환유예 기간 이자율도 3.25%가 적용된다. 별도의 프로그램 신청비도 받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 조치가 자신이 한 투자는 손실까지 스스로 책임진다는 '투자자의 자기책임 원칙'에 어긋난다며 반발하는 청년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서울 관악구에 거주 중인 김민식(26)씨는 "이미 정부는 코인 투자가 위험하다고 여러차례 경고했다"며 "그런데도 일부 투자자들은 스스로의 선택으로 빚까지 내 투자를 했다. 그걸 왜 우리의 세금으로 지원해야 하냐"고 반발했다. 

그는 정부의 이번 조치가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씨는 "코인 가격이 급등해 돈을 벌면 투자자가 혜택을 누리고, 코인 가격이 폭락해 돈을 잃으면 정부가 그들을 구제해줄 것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생기면 이후 투자 시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코로나19 사태로 국내 주가가 요동치는 틈을 타 주식시장에 진입한 '동학개미' 김다이(31)씨 역시 정부의 이번 조치가 청년들의 빚투를 부추길 수 있다고 비판했다. 김씨는 "열심히 돈을 버는 사람들은 이번 조치를 보면서 '대충 살아도 나라에서 빚을 다 갚아주겠다'는 생각을 할 것"이라며 "정작 나도 '이렇게 열심히 일해서 뭘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정부가 청년들의 빚투를 부추기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고금리에 대출 이자 갚기도 버거운데..."빚투 구제 말도 안 돼"
 
한국은행이 10일 발표한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올해 5월 말 기준 예금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1천60조6천억원으로 4월 말보다 4천억원 증가했다. 은행권 가계대출은 지난해 12월(-2천억원)과 올해 1월(-5천억원), 2월(-2천억원), 3월(-1조원) 4개월 연속 뒷걸음치다가 4월(+1조2천억원) 반등한 뒤 두 달째 증가세를 유지했다. 작년 말 이후 부진한 가계대출을 만회하기 위해 최근 은행들이 금리를 내리고 한도를 늘리는 등 대출 문턱을 낮췄기 때문이라는 게 한국은행의 분석이다. 사진은 이날 서울의 한 시중은행 대출 광고 안내판.
 한국은행이 10일 발표한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올해 5월 말 기준 예금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1천60조6천억원으로 4월 말보다 4천억원 증가했다. 은행권 가계대출은 지난해 12월(-2천억원)과 올해 1월(-5천억원), 2월(-2천억원), 3월(-1조원) 4개월 연속 뒷걸음치다가 4월(+1조2천억원) 반등한 뒤 두 달째 증가세를 유지했다. 작년 말 이후 부진한 가계대출을 만회하기 위해 최근 은행들이 금리를 내리고 한도를 늘리는 등 대출 문턱을 낮췄기 때문이라는 게 한국은행의 분석이다. 사진은 이날 서울의 한 시중은행 대출 광고 안내판.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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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의 분노가 극에 달한 건 최근 기준금리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는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다. 한국은행은 지난 13일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사상 처음으로 '빅 스텝(한 번에 기준금리 0.50%포인트 인상)'을 단행했다. 지난해 8월 0.50% 수준이었던 기준금리는 1년도 안 돼 2.25%로 급등했다. 

덩달아 대출 금리도 급격히 오르는 추세다. 몇 년 새 부동산 가격 급등에 따라, 여기저기서 대출을 받아 내 집 마련에 성공한 청년들은 급격히 불어날 이자를 어떻게 감당할지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번 대책엔 변동금리 대출을 고정금리 대출로 전환하는 안심전환대출 40조원 공급 계획이 포함됐다. 하지만 '빚투 채무'까지 정부가 돕겠다는 계획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약 2년 전 주택담보대출을 포함, 각종 대출을 받아 부산에 아파트를 마련한 직장인 이지은(32)씨는 "고금리 시대에 나 또한 최근 이자에 허덕이고 있는데 '실수요자'도 아닌, 개인 욕심으로 빚을 져 투자한 이들의 채무 이자를 왜 세금으로 지원해줘야 하는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어 안심전환대출을 언급하면서 "'빚투 청년 구제는 별개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어렵게 대출을 받아 경기도의 구축 아파트에 신혼집을 마련한 이영아(32, 가명)씨 역시 "시중은행에서 빌린 돈은 총 2억원이었지만 최근 대출금리가 오르면서 부담이 커져 어렵게 4000만원을 마련해 먼저 갚아버렸다"며 "정부가 '빚투 청년'이 아닌 보통 청년 구제부터 신경써야 하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오전 서울 용산 청사에서 출근 도중 기자들과 만나 이번 조치가 '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수 있다는 질문을 받고 "금융 리스크는 비금융 이런 실물분야보다 확산속도가 엄청나게 빠르다"며 "(청년들의 재정 여건이) 완전히 부실화돼 정부가 뒷수습을 하기 보다 선제적으로 적기 조치하는게 국가 전체의 후생과 자산을 지키는데 긴요한 일"이라고 답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 역시 전날 서울 정부청사에서 브리핑을 진행하면서 "20·30 세대는 우리나라를 이끌어나갈 미래의 핵심"이라며 "청년층에게 재기의 기회를 빨리 마련해 주지 않으면 우리 사회가 나중에 부담해야 될 비용은 훨씬 더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태그:#빚투, #대출, #금리인상, #대출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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