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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살아가면서 때론 사소한 감정과 미미한 사건으로 일상의 균열을 일으키곤 한다. 한 번 흔들린 감정은 좀처럼 붙잡지 못한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감정이 폭발하고 사람도 잃게 된다.  

그만큼 시대가 너무 각박해졌다. 뜻하지 않은 재난 상황으로 인해 사람 간의 배려는 더 멀어졌다. 이전보다 더 철저하게 단절된 개인주의로 변해갔다. 실존주의 철학가 사르트르의 '타인은 지옥'이라는 말이 실감 난다.

더딘 일상이고 무딘 감정의 반복이다. 하루하루 애벌레의 삶이 된 지 오래다. 직장문화도 완전히 달라졌고 사회현상도 급격하게 변했다. 굳게 접힌 호랑나비 날개는 언제나 활짝 열릴 수 있을까.

일명 '블랙 마스크' 사회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낯설고 두렵게 만들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 아니라, 악연이다. 지독한 감염의 전조증상이다. 이런 탓에 적당한 사회적 거리는 배려의 또 다른 상징이 되었다. 남을 배려한다는 것은 즉 남과 멀리한다는 의미다. 아이러니고 역설이지만 그게 도리고 순리가 되었다. 나는 나이고 남은 남일 뿐.

서두가 길었다. 지난 3년 코로나19로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 어떻게 1분-1초를 버티고 이겨냈는지 모를 일이다. 코로나로 인한 다양한 스트레스와 트라우마에 큰 병에 걸렸고 죽다가 겨우 살아났다. 악전고투 끝에 뒤늦게 들어간 공무원 직장과도 인연이 다했다. 마치 세상에 홀로 버려진 것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법. 그렇게 백수가 됐고 또 그렇게 자유로운 영혼이 되었다. 느리게 더 느리게 일상의 톱니바퀴가 목을 옥죄고 가슴을 짓누른다.
 
아이폰과 에어팟.
 아이폰과 에어팟.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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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기회에 공무직 아르바이트 자리가 생겨 여느 날과 같이 지하철을 탔다. 블루투스 이어폰을 찾고 핸드폰을 꺼내 음악파일을 뒤졌다. 여전히 고지식한 음악적 취미는 7080에 머문다. 변진섭의 '그대에게', 이문세 '사랑이 지나가면', 장혜진 '1994년 어느 늦은 밤', 이승환 '텅 빈 마음' 등등.

잠시 음악 선율에 맞춰 첫사랑 그 시대로 회귀한다. 너무 몰입했을까. 몽롱해지고 촉촉해진 눈가와 멍한 뇌파에 온 정신이 쏠린다. 도착지를 깜빡 잊고 출입문을 바라본다. 냅다 도망치듯 출입구로 내달렸다. 간신히 겨우 가까스로 지하철을 빠져나왔다.

헉, 아뿔싸! 멀어져간 지하철은 내 핸드폰을 그대로 삼키고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 너무 어이가 없어 비명도 나오지 않았다. 이를 어떻게 하나. 어디서 잃어버린 내 분신을 찾을까. 나를 쏙 닮은 가케무샤여. 이렇게 영영 이별이란 말인가.

우연히 벌어진 핸드폰 분실 사건은 일상을 뒤흔들었다. 아무것도 없는 나에게 전부와도 같던 핸드폰은 존재의 의미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도 못하고 의지할 수도 없고 애타게 찾을 수도 없었다. 고립무원!

그렇게 한 시간 두 시간을 멍하니 넋을 놓고 주저앉았다. 이런 한심한 멍청이 같으니라고. 자학이 뒤따랐다. 도대체 정신을 어디에 팔고 다니길래. 그깟 사랑놀이에 추억팔이에 그대의 전부인 핸드폰을 버려버리다니. 제정신인가!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뇌 신경은 온통 핸드폰 찾기에 매몰됐다. 그나마 토요일이라 근무시간이 아니라서 불행 중 다행이었다. 사무실 컴퓨터를 켜고 검색을 시작했다. '핸드폰 지하철 분실', '핸드폰 분실', '분실 핸드폰 찾는 방법', '지하철 분실물 센터', '경찰청 분실물 센터', '핸드폰 공기계', '핸드폰 위약금' 등등.

또 한 시간 그렇게 4시간이 흘렀다. 도저히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서울지하철, 인천지하철 고객센터에 전화를 했지만 수거된 핸드폰은 없었다. 도대체 누가 핸드폰을 주웠을까. 설마 핸드폰 갖고 장난치지는 않겠지. 분실신고를 하자니 찾을 길이 없고 그냥 기다리자니 마음이 초조하다. 이리저리 근심 100단, 고민 100단, 불안과 초조감이 증폭됐다. 참 이게 뭐라고 참! 참!

반나절 이상 식음을 전폐하고 뇌 신경과 줄다리기를 이어갔다.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그러나 더딘 뇌세포는 언제나 제자리만 맴돌고 있었다. 이내 낙담과 자포자기로 선회했다. 분명 핸드폰에 발이 달린 게 맞을 거야. 어차피 나를 떠나갈 운명이었어. 그래 할 수 없지. 돈은 아깝지만 새로운 가케무샤를 찾는 게 나을 거야.

다음날 일요일 아침. 낙오자의 행색으로 주말 근무를 나서기 위해 사무실에 입성했다. 동료 후배가 먼저 나와 일에 파묻혀 있다. 그런데 뜻밖의 이벤트가 펼쳐졌다. 후배의 말에 따르면, 어제 늦은 저녁에 지하철 유실물 센터에서 후배에게 전화가 와서 지금 부평구청역사에 내 핸드폰이 맡겨져 있다는 것. 기가 막힐 노릇이다. 완전 대박이었다. 그것도 내가 아는 지하철 공사 선배가 그 핸드폰을 아주 소중하게 갖고 있다는 메시지였다.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지 않은가.
 
지하철 터널.
 지하철 터널.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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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사연은 대강 이랬다. 석남역에서 장암역으로 가는 7호선 승객 중의 한 명이 핸드폰을 주워서 인근 역무원에 전달했다. 그 역무원은 처음 잃어버렸던 부평구청역사로 행랑을 통해 전달했다. 때마침 당직근무를 서던 지인 선배가 우연히 핸드폰을 보게 돼 동료 후배에게 연락을 취해 나에게 전달한 것. 마치 한 편의 드라마처럼!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던 나에게 뜻밖의 행운(세렌디피티)이 찾아온 것. 인연은 돌고 도는 것이라고 했던가. 지하철 공사에 다니는 친했던 선배를 그렇게 실로 몇 년 만에 다시 얼굴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인연의 위대함이라고 했던가. 그렇게 나를 잊었던, 내가 잊고 있었던 마지막 배려는 나의 완전체였던 핸드폰을 단 하루 만에 나의 품으로 되돌렸다. 배려의 힘이 나은 축복이었다.

거의 12시간 남짓 되는 짧은 시간이 마치 1년이라도 된 듯 길게 느껴졌다. 마치 첫사랑을 잃어버렸다가 뜻밖의 장소에서 우연히 마주친 소감이랄까.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핸드폰과의 해후는 잃었던 배려를 일깨워주었다. 무심히 버렸던 인연의 소중함을 일깨워주었다. 무던히 잊었던 사랑의 의미를 일깨워주었다. 영화 '세렌디피티'의 명대사가 바람을 타고 귓속을 주무른다.

"인생은 의미 없는 사건의 연속이 아니다. 인생은 숭고한 의미를 실현하기 위해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다"

태그:#핸드폰 분실, #지하철 유실물 센터, #배려,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부평구청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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