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사람1 :  "언니, 저는 논이 갖고 싶어요."
사람2 : "그래? 우리 아버지가 충청도에 논이 있는데 인건비가 안 나와서 농사를 못 지으신대. 너가 가서 농사 지어라."
사람1 : "아뇨, 언니. 농사를 짓겠다는 게 아니라 논이 갖고 싶다고요."


1990년대 20대였던 나는 논이 갖고 싶었다. 농사는 엄청 부지런한 사람만 지을 수 있는 고된 일이라는 정도는 나도 들어서 알았다. 게으른 내가 감히 농사를 지을 수 있으리라 꿈도 꾸지 못했지만 논이 있으면 굶지는 않겠구나 싶었다. 1986년에 시작된 우루과이라운드가 1994년에 타결되었고 자세한 내용은 몰라도 농민들이 만날 나와서 시위하는 장면은 뉴스에 크게 보도되었다.

쌀 수입개방, 한 단어는 분명히 인식할 수 있었다. 그래, 캘리포니아 쌀, 싸고 맛있다지. 그래서? 평생 싸게 먹을 수 있을까? 세상 물정 없다 해도 수입쌀을 영원히 싸게 먹을 수 있다는 믿음은 생기지 않았다. 논이 있어서 쌀 가격이 어찌 되든 나와 식구들이 먹을 쌀이 났으면 했다. 그 와중에 논이 있는데 농사를 지어 쌀을 팔아도 농사 지은 인건비보다 쌀값이 적게 나온다는 건 무슨 소리인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때는 농촌의 현실을 들어도 이해하지 못하는 도시 사람이었다.

올해부터 시작된  CPTPP 교육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가입저지 범국민운동 회원들이 5월 24일 오전 서울 중구 청계광장 부근에서 가입반대 서명운동을 하고 있다.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가입저지 범국민운동 회원들이 5월 24일 오전 서울 중구 청계광장 부근에서 가입반대 서명운동을 하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어쩌다가 40대 중반에 제주도로 이주했고, 농민은 아니지만 여성농민회 회원이 되었고(농민 수가 급감하자 비농민도 가입할 수 있게 변경되었다) 이주 5년차인 작년에 감귤과수원 임대농이 되었다. 농사를 짓는다고 하면 '땅을 샀느냐?'는 질문을 듣기 때문에 꼭 '임대농'이라고 밝힌다.

과수농사가 밭농사보다 쉽다는데 그 말은 밭농사 짓던 사람에게나 맞는 말이지, 우리 같이 농사 경험 없는 이주민은 젖 먹던 힘까지 쓴다는 말을 실감했다. 올해 여성농민회에서는 회원에게 CPTPP 교육을 열심히 하고 있다. CPTPP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11개국이 참여하는 초대형 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인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의 영문 약자이다. 정부는 지난 4월 15일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CPTPP 가입 추진계획을 의결했다.

우리나라의 농축수산물 수입자유화 비율은 2002년부터 99.1%를 유지하고 있다. 포도, 돼지고기, 쇠고기, 김치, 감자, 양상추, 동태, 새우, 고등어 등 먹거리를 생각하면 외국 원산지가 금방 떠오른다. CPTPP는 농축수산물 수입자유화를 심화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가 지금 원전 오염 문제로 수입금지하고 있는 일본 후쿠시마 일대 수산물 수입이 가입 조건이 될 수도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후쿠시마산 수입 허용이 CPTPP 가입의 전제조건이 아니다"(4월 15일)라고 밝혔지만 지난 2월 타이완 정부는 CPTPP 가입을 위해 일본의 요구를 수용, 후쿠시마산 식품 수입을 '전량 통관검사' 조건을 달아 허용했다.

지금은 아프리카 돼지 열병이 발생하면 발생한 나라를 지정해서 돼지고기 수입을 금지할 수 있지만, CPTPP가 발효되면 열병이 발생한 일정 구역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의 돼지고기 수입을 금지할 수 없게 된다. 외국 원산지인 재료를 수입해서 우리나라에서 가공해 완제품을 만들면 '국산'이 된다고 하는데, 그 안전성은 누가 보장할까? 삼시세끼를 먹는 사람들이 먹거리에 위험부담을 지려는 이유는 뭘까?  

'경제적 이익'이 더 크다고? 밥은 안 먹나요?

돈을 더 벌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반도체와 자동차를 더 많이 수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CPTPP를 해설하는 동영상들은 한결같이 '1차 산업 종사자들은 반발하겠지만 공산품 수출은 늘어날 것이므로 경제적 이익이 더 크다'고 한다. '경제적 이익'이라는 말이 의심스럽다. 2차, 3차 산업 종사자들은 밥을 안 먹기라도 한단 말인가? 사람은 먹지 않고 살 수 없다. 우리는 매일 무언가를 먹어야 한다.

1차 산업 종사자들이 수입이 줄어서 CPTPP를 반대한다고만 생각하면 오산이다. 우리는, 농민은 식량주권을 지키고자 한다. 돈이 많이 들더라도 내가 먹을 것은 자급할 수 있어야 한다. 올해 세계 곡물 가격이 많이 올랐고 에너지 가격도 마찬가지다. 세계 정세는 통제할 수 없다. 공산품을 많이 팔아서 그 돈으로 언제까지 식량을 살 수 있을까?

아니, 그 전에 한 번 물어보고 싶다. 우리는 얼마나 부자가 되기를 원하는가? 얼마나 많은 반도체와 얼마나 많은 자동차를 팔기를 원하는가? 우리가 원하는 부의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그 대단한 부는 식량자급을 포기할 정도로 영원한 가치를 유지할 것인가?

중학교 때 적성검사를 했다. 전교 1등하던 친구의 적성이 '농부'로 나왔다. 우리는 모두 놀라서 서로 쳐다봤다. '네가 왜?' '전교 1등인 네 적성이 왜 농부?' 십대에 나는 왜, 친구들은 왜 공부를 잘 하는 친구의 적성이 농부라는 말을 듣고 놀랐을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을까? 반성한다. 지금이라도 반성한다.

식물은 공기 중의 탄소를 흡수해 땅 속에 고정하기 때문에 농사는 당장의 먹거리를 해결하는 일일뿐 아니라 앞으로 올 세대를 위해 지구를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방법이기도 하다.

6년 전 서귀포로 이주했을 때 내 눈에는 좋아만 보이는 제주도를 두고 이주 7년차였던 안거리 부부는 제주도가 너무 많이 달라져서 이제는 무서울 지경이라고 했다. 나도 이제는 그들이 한 말을 이해한다. 내가 사는 곳도 하루가 다르게 과수원이 없어지고 건물이 들어서고 있다. 과수원마다 날아오르던 꿩들은 다 어디로 가야 할까? 농촌 붕괴는 이미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돈다발과 농지를 바꾸는 일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좀 다른 생각을 배우고 싶습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